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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발과 명장 유배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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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정윤성

한지발은 한지를 만들 때 쓰이는 도구다. 한지가 세계에서도 우수한 종이로 평가받는 바탕에는 이 한지발이 있다. 한지발은 한지를 뜰 때 쓰는 대나무로 만든 발이다. 못을 쓰지 않고 만든 발틀 위에 올려놓고 물질을 하여 종이를 뜬다. 좋은 한지는 우선 재료가 좋아야 하지만 한지를 뜨는 과정에서 이 한지발의 면이 고와야 매끄러운 종이를 얻을 수 있다. 질 좋은 한지를 만들기 위해 꼭 필요한 도구인 셈인데, 안타깝게도 그 쓰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제작 과정이 어떤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5년 국가무형문화재 종목이 된 한지장과는 달리 한지발장은 종목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한지발을 만드는 과정은 까다롭다. 재료의 특성을 잘 알고 단계마다 그에 맞는 도구를 잘 다루면서 숙련된 기술이 더해져야 원하는 한지발을 만들 수 있다. 그만큼 만드는 사람의 지혜와 슬기, 끈기가 있어야만 가능한 고단하고 힘든 일이다.

그래서인지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예전부터 많지 않았다. 그조차도 점점 줄어들어 한지발을 만드는 사람은 전국에서도 단 한 명. 전주에서 활동했던 도 문화재 기능보유자 유배근 명장이 유일했다. 한지발 없이는 한지를 뜰 수 없고 제대로 된 한지발은 유배근 명장이 없이는 만들 수 없으니 그의 존재 자체가 한지의 맥을 잇는 상징이었던 셈이다.

1940년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유배근 명장은 어린 시절, 가업이 된 한지와 한지발 만드는 일을 익혔다. 한지발은 그의 어머니가 먹고살기 위해 배웠던 기술이다. 그가 살던 동네에서 한지발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의 어머니뿐이었다. 그는 어머니로부터 한지발 기술을 이어받았다.

결혼 후에는 아내와 함께 한지 공장을 운영하면서 한지발 제작을 이어갔다. 한지가 잘 팔리던 시절에는 자연히 한지발 수요도 늘었다. 덕분에 80년대 초반에 문을 연 한지 공장은 직원이 30명이나 될 정도로 성업을 누렸다. 그가 직접 만든 한지발로 떠낸 질 좋은 한지가 유배지란 이름으로 팔려나가면서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그가 한지발 제작에만 매달린 것은 한지 폐수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그 뒤 온전히 전통 한지발 제작에만 일상을 바쳐온 그는 한지발을 만드는데 필요한 도구들마저 중단될 정도로 환경이 어려워진 환경에서도 직접 도구를 만들어 그 길을 지켜왔다.

그는 2005년 도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50년 가깝게 한지발을 만들어온 그의 시간이 비로소 빛을 얻게 된 지 열 여덟 해. 갑작스러운 부음이다. 유배근 명장이 23일 세상을 떠났다. 섬세하고 미려한 한지발이 그의 이름으로 남은 자리, 이제 길을 함께 걸어온 아내와 아들이 이어갈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김은정 선임기자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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