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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6) <시문기>와 <기문록>- 충청지역 유생이 바라본 동학농민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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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기〉 표지.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시문기(時聞記)>와 <기문록(記聞錄)>은 충청지역 유생이 작성한 기록물이다. 당시 유생들의 동학농민혁명 시대인식과 충청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여러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두 기록물은 각각 1862-1895년, 1894-1897년에 걸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큰 시대적 흐름 위에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시문기>는 충남 공주지역에 살던 유생 이단석(李丹石)이 동학농민혁명의 배경과 혁명의 진행과정에 대해 듣고 경험한 바를 기록한 글이다. 필사본 1책으로 서문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이 기록물을 작성한 것은 1896년 7월이다. 서문에 의하면, 그 이유가 1862년부터 시작되어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절정을 이룬 국난을 기록하여 후대 증거로 삼고자 한데 있었다. 그런 만큼 이 기록물은 한 시골 지식인의 시대인식과 관련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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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문기〉 1894년 1월.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시문기>의 시간범위는 삼남 농민항쟁이 일어난 1862년부터 1895년까지 편년체 형식으로 매년 연월일별로 기록하였고(8개년 누락), 공간범위는 충남 공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지역이다. 

주요한 내용은 1862년 삼남 농민항쟁을 시작으로 사학의 폐단, 천주교의 탄압과 병인양요, 당백전의 폐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을 기술한 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관력 사실을 정리해 놓았다. 특히 5월에 이미 공주지역에 동학 접이 수십개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 공주, 이인, 금산 등 충남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접주들의 부민 수탈에 대해 기록한 점, 7월 5일 이인 반송에 설치된 동학 도소의 활동 등이 주목된다. 

특히 7월 이인 반송에 설치되었던 동학농민군 도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당시 이인 반송 도소는 흰 포장을 넓게 펼쳐 더위를 피하였고 수백명이 모일 정도로 큰 규모였는데, 동학농민군 지휘부가 있는 곳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반송 도소를 이끌던 동학농민군 대장은 임기준이었다. 이를 통해 7,8월 충청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동학농민군의 도소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도소는 동학농민군들의 활동 거점이자 지휘부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8월초에는 보은집회를 주도한 서병학이 경병에 잡혔다는 사실, 충청감사가 이헌영에서 박제순으로 변경된 내용, 10월 이후에는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의 전투와 사상자 등이 주목된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북접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공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한 10월 23일에는 동학농민군 1만여명이 신소마을에 유숙하면서 소 12마리를 도살하고 다음 날까지 마을 주민들이 2만개의 밥상을 제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0월 24일에는 동학농민군의 행렬이 물고기를 꿴 것과 같이 몇 리까지 길게 연이어 이어졌다고 한다. 그 규모도 10여 만명에 이르고 효포, 태봉, 오곡, 이인 등지에 주둔하면서 일본군 및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1월 9일 있었던 공주 우금치전투 때의 상황으로 보이기도 하는 만큼 사료 비판이 요구된다. 특히 종일 접전하였고 콩을 볶는 소리처럼 들린 총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질 않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금치전투 때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24일 이인에서 있었던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일본군과의 전투는 밤낮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밖에 금산군수의 동학도 처형, 청주병영군 73명의 전몰, 김개남부대의 청주성 공격, 7, 8월 공주지역 동학농민군을 이끌던 임기준의 체포 등 단편적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시문기>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오류도 많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홍계훈이 전주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운 시기를 3월에 기술해 놓거나, 전봉준을 김봉준으로 표기하고 서일해(서인주)와  손화중이 김개남과 같이 청주성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한 부분 등은 모두 오류인 만큼 자료 내적 비판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 저자는 충남 일대 동학농민군의 동향에 대해, ‘곳곳에서 봉기하니, 봉기하지 않은 고을이 없었다. 모두 척왜(斥倭)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은 화적이었다’고 하듯이, 지방 유생의 비판적인 입장에서 경험한 바를 직접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기록물을 남긴 이단석은 동학농민군을 ‘천한 도적떼’에 비유할 정도로 동학농민혁명에 비판적이다. 당시 보수적인 지식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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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록〉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시문기>가 1862-1895년에 걸친 편년체 역사기록물인 반면에, <기문록>은 1894-1897년에 걸쳐 작성된 일기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나오는 지명인 용산과 초강 등이 충북 영동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북 영동에 살던 어느 유생으로 보인다.

작성된 일기 내용은 일기체 형식으로 그날 그날의 날씨나 일상생활과 농사일, 그리고 시국에 관해 견문한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1894년 6월 7일부터 1897년 4월 13일까지 근 3년에 걸쳐 있으나, 전체 분량의 절반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된 1894년 6월부터 12월까지이며 내용도 자세하다. 1895년부터는 내용이 소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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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문록〉 1894년 7월 1일.                       /고려대 도서관 제공

1894년 기록은 6월 27일자에 6월 21일 있었던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관련 내용을  시작으로, 6월 28일 대구에 온 일본인들이 소를 팔지 않는 두 부녀를 살해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또 7월 14일 마을 주민과 동학도들이 충돌한 사건, 7월 18일 동학도들의 옥천 이원집회, 7월 19일 이씨 집의 노복이 동학도를 때려죽인 사실, 7월 22일 동학도들이 초강에 집결한 뒤 전곡을 거두어간 사실, 7월 25일 동학도 천여명이 검촌 민씨 집의 사랑채를 부수고 주민들을 결박한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7월에 들어와 사실상 영동지역은 동학도들이 장악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투어 동학에 가입하였는데, <시문기>의 저자가 살던 마을 주민들도 8월 1일경에는 모두 동학에 들어갔고 자신도 8월 17일 동학에 입도하였다. 

<시문기>에 따르면, 충북 영동은 9월 26일 대대적인 첫 기포가 있은 뒤 몇 차례 더 기포가 있었으며, 10월 14일 동학농민군 대군이 해월 최시형이 있던 청산으로 이동함에 따라 마을에서 밥상 700개를 준비하였는데, 실제 10월 16일 진천과 충주 등지에서 온 동학농민군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10월 18일에는 동학 지도자 청주 출신 손천민이 부녀를 겁탈한 동학도를 직접 징계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11월에 들어와 상황은 역전되었다. 정부군과 일본군이 영동에 들이닥치고 남아 있는 동학도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경북 상주의 민보군도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영동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12월 17일 동학농민혁명기 마지막 대전투였던 보은 북실전투에 관한 일기를 끝으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은 거의 모두 일본군이나 민보군 등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체포, 처형된 내용만 일기에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시문기>는 갑오년 6월부터 12월까지 충북 영동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특히 이 기록은 저자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요일별로 정리해 놓아 진정성이 있을 뿐 아니라, 역사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반면에 <기문록>은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1896년에 저자가 1862년 이후 30여년의 사실을 보수적인 시각에서 편향적으로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활용시 주의를 요한다. 

김양식 전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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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식 전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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