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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로부터 숲을 지키는 길, 임도가 답이다

산불 잦은 캘리포니아, 화재 발생시 임도 통해 소방장비 신속 접근
환경보호 이유로 임도 개설 부정적으로 보는 건 지엽적 시각일 수도
'길 없는 숲' 보호 받는 자연 아닌 화마 위협에 노출된 희생양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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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익섭 특파원. 미국 샌프란시스코.

미국 캘리포니아는 건조한 날씨와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매년 평균 8000건 이상의 산불이 발생하며, 여의도의 300배에 달하는 면적이 불에 탄다. 지난 2020년 8월 발생한 August Complex Fire는 41만7898헥타르(여의도의 약 1200배)를 태우며 캘리포니아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기록됐다. 지난 2018년의 Camp Fire는 85명의 사망자와 1만8804채의 건물 소실을 초래하며 최악의 인명·재산 피해를 남겼다. 매년 반복되는 대형 산불은 생태계 파괴와 온실가스 배출 증가, 토양 유실 등 환경적 피해를 초래하며, 이는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적·경제적 위기이기도 하다.

이처럼 산불 피해를 줄이기 위해 미국이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은 불길이 확산되지 않도록 저지선(firebreak) 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도로, 강, 바위산과 같은 자연적·인공적 장애물을 활용하며, 이러한 장애물이 부족한 지역에서는 나무를 베어내고 불도저로 땅을 밀어 차단선을 만든다. 이러한 방어선을 통해 불길을 통제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이에 미국에서는 산불 진압 상황을 발표할 때 “몇 퍼센트 껐다(put out)”가 아니라 “몇 퍼센트 통제했다(contained)”라는 표현을 쓴다. 이는 불을 완전히 진압하는 것보다 확산을 막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도(林道, forest road)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임도는 단순한 벌목을 위한 도로가 아니다. 산불 초기 대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속한 차단선 구축이며, 이를 위해서는 소방차와 진화 장비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필요하다. 임도는 산불 발생 시 소방 차량과 인력이 화재 현장에 신속히 도달할 수 있도록 해 초기 진화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임도가 없는 지역에서는 소방대원들이 도보로 접근해야 하거나 헬기 투입에 의존해야 하는데, 이는 시간 지연을 초래하고 화재 확산을 막기 어렵게 만든다. 이와 함께, 임도는 산불 진압에 필요한 장비와 물자를 운반하는 필수 통로이기도 하다. 소방수, 소방 장비, 방화복 등 화재 진압에 필요한 물품이 신속하게 공급되지 않으면 소방대원들의 대응 능력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임도 자체가 방화선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불길이 임도에 도달하면 연료가 되는 식생이 없거나 적어 불길이 약해지거나 멈출 수 있다. 따라서 잘 정비된 임도는 화재 확산을 막는 자연적인 장벽이 된다.

캘리포니아에는 차량 통행이 가능한 임도가 약 6만9700km 구축되어 있다. 이는 한국의 전체 고속도로 길이의 15배에 달한다. 이 중 약 80%가 비포장도로이며, 미국 산림청(USDA Forest Service)과 주·지방 정부 기관이 공동으로 관리하며 산불 예방 및 대응 전략을 수립한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산림 도로를 체계적으로 유지·보수하며, 필요에 따라 새로운 도로를 개설하거나 기존 도로를 확장하기도 한다.

반면, 한국은 임도 개설이 제한적이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임도는 총 2만4929㎞이며, 임도 밀도는 ㏊당 3.97m로, 캘리포니아의 ㏊당 5.22m, 그리고 임업 선진국인 독일(54.0m)과 비교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거에도 반복되어 왔다. 한국에서도 대형 산불이 발생할 때마다 “임도가 부족해 소방 장비가 제때 투입되지 못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하지만 여전히 환경 단체와 일부 정치권에서는 도로 개설을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산불이 날 경우 숲 전체가 한꺼번에 소실되는 더 큰 환경적 피해를 간과하고 있다. 정작 도로를 개설하지 않아 화재 발생 시 진화가 어려워지면서 더 많은 산림이 불타 사라지는 것이다. 임도 건설은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산불 확산을 막아 숲을 보호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다. 도로가 없는 깊은 산림에서 불이 나면, 진화 인력과 장비가 접근할 방법이 없다. 그 결과, 수십 년간 자란 숲이 단 며칠 만에 잿더미로 변하고 천년 고찰과 마을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산림 보호를 이유로 도로 개설을 반대하는 일부 사람들은 도로가 자연을 훼손한다고 주장하지만 임도가 산사태와 같은 재해의 원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지엽적인 시각이다. 우리는 나무를 베는 것을 싫어하고, 임도를 내는 것 또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다른 나라의 시각은 다르다. 임도 확충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진정한 환경 보호란 숲을 지키는 것이다. 산불을 방치하면서 “환경 보호”를 외치는 것은 모순이다. 지속 가능한 산림 관리를 위해서는 효율적인 화재 대응 시스템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임도는 반드시 확충돼야 한다. '길 없는 숲'은 더 이상 보호받는 자연이 아니라, 화마(火魔)의 위협에 그대로 노출된 희생양일 뿐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 신익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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