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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정경 작가-최아현‘밍키’

어쩌면 당신, 혹은 나의 이야기를 닮은 8편의 소설

‘밍키’ 표지/사진=교보문고

『밍키』라는 책을 받아 든 순간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보자기를 어깨에 두른 채 엄마의 로션 병을 들고 요술공주 ‘밍키’ 주제가를 부르며 온 집 안을 뛰어다니는 여자아이의 모습. 작가는 이야기라는 술법으로 독자를 홀려 그가 만든 세계로 초대한다. 언니의 유산으로 받게 된 돈가방에 ‘밍키’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인물의 이야기. 소유했다고 믿었으나 ‘내 것’일 수 없는 것들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삶에 대해 질문하게 하는 표제작 「밍키」도 인상적이었지만, 유독 여운이 남았던 작품이 있다.

「대원의 소원」은 작가의 능청과 이야기꾼으로서의 탁월함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딸의 결혼식에 손잡고 들어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해온 대원이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콘서트에 처음 간 대원이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 온몸에 힘이 쭉 빠져”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는 공연장에 앉아 있기까지 꽤 험난한 과정을 통과해야 했다. 동료 택시 기사의 딸에게 도움받아 어렵사리 팬카페에 가입하고, 공연 표도 구할 수 있게 된 대원. 내친김에 그에게 ‘예은님’의 팬으로서 주의할 점과 교양 있게 공연 관람하는 법도 전수받는다. 행복감에 젖어 콘서트 날만 기다리던 그에게 청천벽력 같은 일이 닥친다. 하필 딸의 결혼식과 공연 날짜가 겹친 것.

그는 딸의 결혼식과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걸 모두 성공하기 위해 물샐틈없는 작전을 전개한다. 주례사 시간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주례를 맡고, 여분의 옷을 미리 챙겨놓고, 동료에게 기차 시간에 늦지 않도록 역까지 자기를 데려다줄 것을 미리 부탁해 두었다. 전주에서 용산역까지, 기차에서 내려 공연장까지 가는 방법을 시간대별로 모두 계획해 두었다. 오전 10시 결혼식과 저녁 8시 공연 사이 그는 무대 위 연주자처럼 분주하다.

 

대원의 투박함과 소란스러움이 귀여워 보이는 것은 아내의 부재를 견디는 대원의 시간을 작가가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일상의 훼손.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이 의식처럼 통과해야 하는 환멸과 치욕. 재기 발랄한 젊은 작가의 위트로 반짝이는 소설집 같지만, 묵직하고 먹먹한 목소리가 스며있어 이야기는 힘을 갖는다.

작가는 일상의 균열과 관계의 변화에서 시작된 감정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포착하는 능력을 지녔다. 『밍키』에 수록된 8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평범하다. 어디엔가 살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 우리의 이웃이거나 친구이거나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일지 모를 인물들이 그의 소설 속에서 살아 움직인다. 얼핏 보면 나와는 무관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핏줄처럼 얇고 가는 관계망 속에서 당신과 내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작가가 직조해 낸 이야기 속에서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자고 일어났더니 뿔이 생긴 「뿔 있으세요?」는 또 어떤가.

「뿔 있으세요?」에서 화자는 오빠의 결혼 상대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제 몸에 이상한 일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엉덩이, 정확하게 꼬리뼈 부근에 뿔이 난 것이다. 이 뿔 때문에 화자와 화자의 주변에 한바탕 소동 아닌 소동이 벌어진다.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었다. 종일 허리를 펴고 앉았다고 등에 힘이 생긴 것 같았다.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당장 없앨 수도 없다면 일단 이 뿔과 사는 방법을 먼저 터득하면 될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_ 「뿔」 부분

최아현 작가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그에게 계속 ‘뿔’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들에게 드러내서 보여줄 수도 없고 불편과 고통도 따르니 작가는 괴롭겠지만, 어쩐지 그 불편과 고통으로 인해 그가 다른 이들과는 다른 눈과 귀를 갖게 되었을 것 같다. “체급 차이가” 분명한 이 세계와 대적해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고 허리를 펴고 앉아 “그렇게 스스로 경험(글)을 쌓아나가면”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즐거움이 될 테니까. 요술봉을 가진 손으로, 이야기를 계속, 계속, 써주기를.

김정경 시인은

2013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시 「검은 줄」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지은 책으로 시집 『골목의 날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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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아현 #밍키 #단편 #소설 #신춘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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