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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목대] 생전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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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김병국은 85세입니다. 전립선암으로 병원생활을 한지 일년이 넘었습니다. 병세가 완화되기 보다는 조금씩 악화되고 있습니다. 전립선암이 몸 곳곳에 전이가 되었습니다. 소변 줄을 차고 휠체어에 의지하고 있습니다만 정신은 아직 반듯합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을 때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 장례식에 오세요. 여러분의 손을 잡고 웃을 수 있을 때 인생의 작별인사를 나누고 싶습니다. 검은 옷 대신 밝고 예쁜 옷 입고 오세요. 같이 춤추고 노래 불러요.”

2018년 8월, 전립선암 말기 환자인 김씨가 생전 장례식(living funeral)을 위해 지인들에게 보낸 부고장(訃告狀)이다. 이날 김씨가 입원한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 3층 세미나실은 급하게 생전 장례식장으로 꾸며졌다. 여느 장례식장과 달리 풍선과 꽃으로 가득 찼다. 김씨도 환자복 대신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휠체어에 앉은 채 조문객(?)을 맞았다. 장례식이 시작되자 50여명의 조문객들은 차례로 앞으로 나와 2시간 동안 김씨와의 추억을 얘기했다. 

또 지난달 강원도 강릉 해변가에서는 원로 연극배우 박정자(83)씨의 생전 장례식이 열렸다. 유준상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 ‘청명과 곡우 사이’의 마지막 장례장면 촬영을 핑계로 조문객들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박씨와 평생 인연을 맺었던 탤런트 강부자와 소리꾼 장사익 등 한국의 내노라하는 문화예술계 인사 150여 명이 모여 잔치같이 유쾌한 장례를 치렀다. 박씨는 지인들에게 “장례식은 엄숙해야 한다고 누가 정했을까요. 오늘만큼은 다릅니다. 오래된 이야기와 가벼운 농담을, 우리가 함께 웃었던 순간을을 안고 오세요”라는 인상적인 부고를 냈다.

생전(사전) 장례식은 임종기 환자가 신체적 여건이 허락할 때 지인들을 불러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자리다. 장례식이라기 보다 사전 고별식 또는 이별파티가 더 어울릴지 모른다. 그리고 진짜 임종했을 때는 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족끼리 조용히 장례를 치른다. 이러한 생전 장례식은 종활(終活)이 보편화된 일본 등에서는 흔한 일이다. 사실 우리나라 장례는 조심스럽고 엄숙하다. 갑작스레 닥친 죽음 앞에서 유족들은 황망하고 조문객들은 조문과 함께 육개장 한 그릇 비우고 분주히 떠나는 게 예사다. 고인을 위한 장례라기 보다 유족 중심이다. 반면 서구에서는 일찍부터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유언장에 농담을 남기기도 하고 자신의 장례식에 재즈 연주를 부탁하기도 한다. 

생전 장례식은 지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감사와 용서, 화해를 하고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 않을까 싶다.(조상진 논설고문)

조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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