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과 도내 지자체의 비전을 보면 경제성장, 기업·미래산업 유치, 일자리 만들기 등 익숙한 구호가 대부분이다. “전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 “시민이 함께하는 자립도시 군산”, “전북권 4대 도시로 웅비하는 김제” 등을 내세우며 강한 경제, 성장도시, 세계축제도시 등을 표방한다.
그러나 전북의 현실은 17개 광역시도 중 재정자립도가 가장 낮고, 수도권에서 거리가 멀며, 인구도 적고 감소하는 추세이다. 16개 광역시도를 상대로 한 기업유치와 성장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그렇다면 문제의식을 달리 해야 하지 않을까? ‘전북을 경제와 산업 측면에서 얼마나 크게 성장시키느냐’가 아니라 ‘전북의 여건에서 전북 사람으로 어떻게 더 잘 살 수 있느냐’를 묻는 것이다. 역사도시 전주와 근대도시 익산, 항구도시 군산과 평야도시 김제, 임산물이 풍부한 무(주)진(안)장(수) 등이 지닌 서로 다른 정체성, 지리산·덕유산과 새만금, 비빔밥, 동학농민혁명 등이 켜켜이 쌓아 온 생활환경과 삶의 양식을 바탕으로 미래 설계를 해야 한다. 성장과 경쟁 위주가 아닌 삶의 질과 행복을 중심에 두는 행정이 필요하다.
부탄은 그 가능성을 보여 준다. 인구는 전주보다 조금 많은 80만명 정도이고 면적은 남한의 1/3정도인 히말라야 산악국가 부탄은 국내총생산(GDP:Gross Domestic Product)이 아니라 국민총행복(GNH:Gross National Happiness)을 국가 목표로 삼는다. GNH는 ①지속가능하고 공정한 사회·경제 발전, ②환경 보전, ③전통문화 보존과 계승, ④좋은 거버넌스라는 네 기둥을 중심으로 설계되었다. 부탄 정부는 심리적 웰빙, 건강, 시간 활용, 교육, 문화 다양성과 회복력, 좋은 거버넌스, 공동체 활력, 생태 다양성과 회복력, 생활수준 등 9개 영역에 1백30여 개 이상의 세부 지표를 정해 정기적으로 행복조사를 실시하고, 각 지역과 계층의 행복 수준과 격차를 면밀히 분석한다. 모든 법안과 개발계획은 사전에 ‘행복 영향 평가’를 받으며, 조사결과는 예산 배분과 제도 개선의 기준이 된다.
물론 전북이 따라야 할 모범이 부탄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성장은 수단이고 국민 행복이 궁극의 목적’이라는 철학, 그리고 그 목적을 계량화해 행정 전 과정에 반영하는 방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북 역시 산업을 육성하더라도 일자리의 안정성과 삶의 질을 함께 고려하도록 지표를 설계할 수 있다. 또 한옥마을과 판소리, 산과 갯벌과 논을 보여주기식 관광 재료가 아니라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자산이라는 관점에서 활용 계획을 세울 때, 경제와 함께 역사·문화·생태·지역공동체도 살릴 평가 체계를 만들 수 있다. 읍·면 단위까지 생활환경, 문화·여가, 돌봄·복지, 주민 자치 등을 종합한 ‘전북형 행복지수’를 만들어 이를 예산 편성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상상해 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가 가는 길이 대한민국이 가는 길’이라면, 그 길은 그럴싸한 구호가 적힌 현수막 나부끼는 길이 아닌 사람과 산업, 역사와 자연이 조화를 이루며 도민의 행복을 키워 가는 전북만의 길이어야 한다.
전북의 장점인 농생명·바이오·역사와 전통·자연과 휴식·맛과 멋·생활문화와 공동체성을 어떻게 지속가능한 행정 목표로 구체화할 것인지, 도민 행복을 어떻게 측정하고 예산과 제도에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적인 논의가 필요한 때다. 내년 6월이 지방선거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김춘석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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