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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장이 떴다] 온종일 뚝딱뚝딱⋯옛 마을회관 아름다운 변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건 신(神)만 할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청년 이장이 해냈습니다. 가구라고는 싱크대뿐이었던 냉기 가득한 화정마을 옛 마을회관은 아늑한 아지트로 바뀌었습니다. 장판 깔기부터 방 꾸미기까지 해 본 우당탕탕 이야기보따리 한 번 풀어보겠습니다. 참고로 청년 이장들은 창문에 단열 에어캡 '뽁뽁이'도 안 붙여봤습니다.(우당탕탕 덤앤더머 같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완주 고산면사무소의 지원을 받아 지업사에서 가지고 온 장판 매트를 옮기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청년 이장의 자동차는 모닝인데 300x400, 400x500 크기 매트를 구겨 넣으려니 곧 차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겨우 옮기긴 했는데 직접 깔아야 한다니 정말 한숨부터 나왔습니다. 일단 돌돌 돌려 깔고 보니 제법 그럴싸해 보입니다. 혹여나 냉기가 올라올까 걱정돼 매트 테두리 전체에 테이프도 붙였습니다. 마음처럼 쉽지는 않았습니다. 청년 이장 둘이서는 할 수 없다는 판단에 같은 디지털미디어국 영상제작부 기자들의 도움까지 받았습니다. 한 명은 장판을 붙이고, 한 명은 테이프를 자르고, 또 한 명은 테이프를 연결하고. 나름대로 분업 끝에 한 시간에 걸쳐 장판 깔기를 마쳤습니다. 잠시도 엉덩이를 붙일 틈이 없었습니다. 아직 장판만 깔았을 뿐 갈 길이 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장판 위 청소하기, 책상·의자 설치, 테이블보 깔기, 행거·수납장 조립하기, 단열 에어캡 붙이기. 그래도 천천히 하나씩 해 나갔습니다. 줄어들지 않을 것 같았던 할 일도 어느새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날이 너무 추워 냉기가 들어올까 봐 단열 에어캡 뽁뽁이를 붙이기로 했습니다. 청년 이장 두 명과 영상제작부 기자들까지 세 명은 처음 붙여 보는 뽁뽁이에 머리를 맞대고 설명서를 읽었습니다. 일단 분무기가 필요한 듯합니다. 문제는 분무기가 없습니다. 일단 고민도 없이 경로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할머니들은 모여서 왁자지껄 이야기 꽃을 피우고 계시네요. 분무기가 있냐고 물어보자 분무기는 없고 떡과 배만 있다고 합니다. 분명 분무기 빌리러 간 건데 제 손에는 떡과 배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 집에 분무기 있당게! 같이 가자고"라는 할머니의 말에 곧바로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여기서도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직접 만드신 단호박 식혜입니다. 아지트에 있던 두 명은 바리바리 싸 온 청년 이장에게 "뭐야?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겠어요. 정을 가득 안고 돌아왔습니다. 어르신들의 정에 힘입어 다시 속도를 냈습니다. 그렇게 안 끝날 것 같던 아지트 꾸미기도 다 정리됐습니다. 이곳은 마을주민들이 와서 커피도 마시고 공부도 하고 시골에서 하기 어려웠던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는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 책상·의자를 들이고, 행거를 들이고,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도 놓으니 뭔가 집 같습니다. 제법 모습을 갖춘 아지트는 이미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쏙 빼앗은 듯합니다. 아지트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실 때는 '내일 또 여기 와야지!'라는 마음을 가지고 가시길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08 10:06

[청년 이장이 떴다] "아따, 잘 꾸몄네"⋯10년 만에 마을회관 본 주민들 반응은?

화정마을에 새 경로당이 생긴 지 벌써 10년, 마을주민과 동고동락했던 옛 마을회관이 문 닫은 지도 10년이 됐다는 말입니다. 건물을 허물지 않았지만 귀농·귀촌인 등이 잠시 머무는 거처가 되면서 마을주민도 옛 마을회관에 들어가는 게 조심스러워졌습니다. 평생 못 들어갈 줄 알았던 옛 마을회관의 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경로당 가던 할머니들도, 게이트볼 치러 나가려던 할아버지들도 마을회관이 아지트가 됐다는 소식에 구다보고('들여다보다'의 전라도 사투리) 가십니다. "나 진짜 10년 만에 들와보네. 그때 생각 나, 성님도 글치?" 놀랍게도 불과 일주일 전 옛 마을회관을 청소하던 '청년 이장' 취재진들에게 "여긴 못 써, 추워!"라고 말하던 마을주민들의 반응입니다. 지나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할머니·할아버지들도, 경로당에서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묻던 이장님도 인정(?)하는 아지트가 됐습니다. "아니, 이렇게 아늑혔다고? 아따, 잘 꾸몄다!"부터 "진짜 옛날 생각 난다잉"까지. 반응도 제각각이지만 다 긍정의 표현을 하십니다. 내심 '너무 춥지 않을까? 이거 사람들이 오긴 할까?' 걱정하던 청년 이장들도 마음을 놓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때 '삐그덕' 나무 문이 열리고 문틈 사이로 이경구 노인회장이 고개를 내미십니다. 평소 무뚝뚝하시던 회장님은 "벌써 문 연 겨? 깨끗하게 잘해 놨네잉"라는 말씀만 남기고 바로 게이트볼을 치러 가셨습니다. 그래도 성공입니다. 이제 이곳에서는 좋은 일들만 일어날 것입니다. 평소에는 삼삼오오 둘러앉아 따뜻한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어느 날은 청년 이장과 공부를 하기도 하겠죠. 매일 모여 화투만 치던 할머니들도, 게이트볼 치러 다니던 할아버지들도, 집에만 있던 어르신들도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 같습니다. 우리가 만든 아지트가 조용한 시골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안고 이번 주도 화정마을로 출근해 보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2.08 10:06

[작지만 강한 우리마을]②365일 강정처럼 단단하게…남원 웅치마을, 기적을 만들다

"이제는 마을 주민 누구나 자부심을 가지고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가난했던 곰재마을은 잊어주세요” 최미아 웅치마을영농회 대표는 과거의 아픈 기억에서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 웅치마을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남원시 주천면에 위치한 웅치마을은 지방소멸 위기 속에서도 강정 사업을 중심으로 지역 경제를 일으키고, 공동체의 자립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뤄내며 주목받고 있다. 웅치마을은 지역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옥수수와 들깨를 전량 수매해 어르신들이 시장까지 가지 않고도 마을 내 공장에서 즉시 수매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했다. 공장에서 작업에 참여하는 주민들에게는 시간당 1만 원의 인건비가 지급돼 추가 소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웅치마을 주민들은 고령화와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인 소득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단순한 농산물 재배에서 벗어나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강정을 가공·판매하며 경제적 자립 기반을 구축한 셈이다. 나아가 농촌 체험 프로그램과 관광을 연계해 마을을 찾는 방문객이 증가하면서 지방소멸 위기 극복의 새로운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최 대표는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주민들이 농사만 지어도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게 됐다”며 “마을 전체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가난하고 외면받던 곰재마을에서 새롭게 태어난 웅치마을 웅치마을은 원래 ‘곰재마을’로 불렸다. 그러나 1995년 지방행정 개편으로 ‘웅치마을’로 이름이 바뀌었다. 곰재마을이라는 이름은 남원 지역에서 가난하고 발전이 더딘 곳으로 여겨져 주민들에게조차 부끄러운 과거의 상징이었다. 최 대표는 “예전에는 곰재마을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시당하거나 불편한 시선을 받곤 했다”며 “마을 이름이 바뀌고 강정 사업을 시작하면서 주민들의 인식도 크게 변했다”고 회상했다. 웅치마을의 변화는 단순한 명칭변경에서 끝나지 않았다. 주민들은 마을을 새롭게 가꾸기 위해 매년 꽃을 심고 가꾸며 ‘꽃이 있는 웅치마을’을 만들어갔다. 특히 2018년 5월 본격적으로 시작한 강정 사업은 웅치마을을 ‘못사는 곰재마을’에서 ‘잘 사는 웅치마을’로 탈바꿈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경제적 어려움 속 인내와 도전의 3년 웅치마을은 지리산 자락 초입에 위치해 자연의 풍부한 혜택을 받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쌀과 옥수수, 쥐눈이콩, 땅콩, 들깨 등 직접 재배한 농산물을 활용해 방부제 없이 전통 방식으로 조청을 만들어 강정을 생산한다. 주요 제품으로는 곰재강정, 곰재옥수수강정, 들깨땅콩강정, 찰옥수수 뻥튀기 등이 있다. 이 강정들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영양 간식으로 입소문을 타며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웅치마을의 강정은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먹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주민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최 씨는 “우리 손으로 키우고 만든 강정이 마을의 상징이 됐다”며 “그저 물건을 파는 것이 아니라, 마을의 정성과 역사를 함께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웅치마을 강정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웅치마을의 강정 사업은 2016년 남원시 환경 취약지구 개선사업에서 12억6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시작됐다. 웅치마을영농회라는 마을기업을 설립하고 마을회관 옥상에서 소규모로 출발했지만, 초기 3년은 경제적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마을 주민 대다수가 고령층이었고, 여성들이 농사와 공장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환경 탓에 인건비 부담이 컸다. 최악의 경우 최 대표와 마을 이장은 무급으로 일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또한 마을기업의 수익 분배 구조도 문제였다. 판매 금액의 10%를 주민들에게 돌려주는 방식은 마을 신뢰를 얻는 데 효과적이었지만, 마진이 적어 자립이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 대표와 주민들은 포기하지 않고 강정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방부제를 사용하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조청을 직접 달여내는 노력을 이어갔다. 동시에 홍보와 유통망 다변화에도 주력했다. 그 결과 웅치마을의 강정은 전국 농협 로컬푸드 매장과 우체국, 온라인 쇼핑몰 등에 입점해 판매되기 시작했고, 연매출 2억 원을 기록하는 건실한 마을기업으로 성장했다. 강정뿐만 아니라 조청 해석 공장과 체험장을 조성해 연간 2000여 명의 방문객을 유치하며 농촌 관광지로도 자리 잡았다. 강정 만들기 체험은 가족 단위 방문객과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며 마을의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공동체로 가는 길, 마을 주민이 직접 그리다 웅치마을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마을 경관 개선과 공동체 활동에도 힘쓰고 있다. 주민들은 2016년부터 새뜰마을 가꾸기 사업을 통해 환경 정비에 나섰고, 그 일환으로 무궁화 800그루를 심어 마을 곳곳에 꽃동산을 조성했다. 무궁화꽃은 단순한 경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매년 피어나는 무궁화는 주민들의 땀과 노력을 상징하며, 마을의 정체성과 자부심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웅치마을은 ‘365일 태극기 휘날리는 마을’로도 유명하다. 주민들은 국경일뿐 아니라 매일 태극기를 게양하며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다. 이러한 활동은 여러 차례 방송과 언론에 소개되면서 마을의 인지도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 마을은 어르신들을 위한 문화·여가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다. 트로트 장구, 농악단 활동을 통해 주민들은 함께 어울리며 세대 간 유대감을 쌓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주민 간 소통을 활성화하고, 마을 내 고립감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웅치마을의 성공은 단순히 경제적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며 공동체를 일구어낸 결과다. 지방소멸 위기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웅치마을은 농촌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며 희망의 마을로 자리 잡고 있다. 웅치마을은 강정 이외에도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곡물바, 전통 디저트 등의 신제품 개발을 검토 중이며 도시 소비자들과의 접점을 넓혀가는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또 마을 내 젊은 층의 유입을 유도하고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강화할 계획이다. 최 대표는 “마을의 발전은 결국 사람에서 시작된다”며 “우리가 힘들게 만들어온 성과를 다음 세대와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준서
  • 2025.02.06 17:27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2) 경상도 상주와 김산소모영의 동학농민군 진압 자료인 〈소모사실〉

〈소모사실(召募事實)〉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붙인 사료가 1895년에 경상도 상주와 김산 두 지역의 소모영에서 나왔다. 상주의 〈소모사실〉은 상주 소모사 정의묵(鄭宜默, 1847~1906)이 상주소모영을 설치해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기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건곤(乾坤) 두 권의 자료이고, 김산의 〈소모사실〉은 김산 소모사 조시영(曺始永, 1843~1912)이 김산소모영을 설치하고 동학농민군 진압을 지휘한 기간에 주고받은 공문서를 모은 단권 자료이다. △소모사 선임 과정 소모사는 왕조정부가 외적이 침입하거나 병란이 일어나서 위기에 처했을 때 민간에서 사람들과 재물을 모아 대처하도록 군권을 부여한 임시 관직이다. 조선후기에 들어와서 몇 차례 소모사를 임명한 사례가 있었다. 먼저 영조대에 이인좌의 난을 진압할 때 민간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 소모사를 임명하였다. 19세기에 들어와서는 순조대에 서북지역에서 일어난 홍경래 세력을 진압하기 위해 소모사를 임명하였다. 가장 많은 소모사가 임명된 것은 1866년 병인양요 때였다. 불과 28년이 지난 1894년 9월에 다시 소모사를 임명한 것은 왕조정부가 삼남을 중심으로 거의 전국에 걸쳐 대규모로 봉기한 동학농민군을 자체 무력만으로 진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9월 22일 임시 군사지휘부인 양호도순무영을 설치해서 경군을 파견하도록 하였다. 그 직후 경기도의 전감역 맹영재를 소모관에 임명하였고, 경상 감영의 남영병을 이끌던 대구판관 지석영은 토포사에 임명하였다. 호남의 장성부사 이병훈은 소모사를 겸하도록 했고, 금산유학 정두섭도 소모관에 임명하였다. 9월 29일에는 삼남 요지에 각각 2명씩 현직 지방관을 선정하여 소모사에 임명하였다. 영남소모사에는 창원부사 이종서와 함께 상주의 향리에 있던 전 승지 정의묵을 선임하였다. 상주 목사는 9월 22일에 상주 읍성이 동학농민군에게 점거될 때 도피해서 공관 상태였다. 영남 북서부 일대는 8월 말부터 격동하고 있었다. 예천에서 동학농민군과 읍내 민보군이 격돌하여 공방전을 벌였고, 9월 18일 동학 교단의 기포령 직후 상주와 선산 읍성을 동학농민군이 점거하였다. 그러자 상주 낙동과 태봉, 선산 해평에 설치된 일본군 병참부의 주둔병이 기습해서 읍성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상주성에서 물러난 동학농민군 지도자를 집중 추적해서 경내를 안정시켰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이 임명된 날은 11월 21일로 일본군과 남영병이 동학농민군을 평정해서 경상도 지역에서 봉기 상황이 종료된 시기였다. 바로 그때 충청도에서 우금치전투를 치른 손병희 통령의 북접농민군이 전라도를 거쳐 김산 인근까지 북상해왔다. 김산과 상주소모영이 최대 위기에 처한 것이었다. 두 편의 〈소모사실〉에 실린 마지막 문서들은 그 내용을 생생하게 전해준다. △〈소모사실〉의 공문서와 소모영의 관할 군현 상주의 〈소모사실〉 건은 10월 16일부터 12월 11일까지 주고받은 92건의 공문서를 모은 것이고, 〈소모사실〉 곤은 12월 12일부터 다음해인 1895년 정월 25일까지의 130건을 모은 것이다. 김산의 〈소모사실〉은 11월 21일부터 1895년 정월 22일까지 주고받은 138건의 공문서를 모은 것이다. 김산소모영에서 공문서를 주고받은 날은 모두 56일이고, 상주소모영은 모두 69일이다. 상주소모사의 임명 날짜인 9월 29일보다 17일이나 늦게 공문서 편집이 시작된 것은 임명장이 뒤늦게 왔기 때문이다. 경상도의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한 군권 부여자는 더 임명되었다. 창원부사 이종서, 그리고 거창부사 정관섭도 소모사가 되었고, 대구판관 지석영과 인동부사 조응현은 토포사가 되었다. 따라서 책임 소재를 위해 관할지역을 정할 필요가 있었다.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경상감사 조병호를 만나서 이를 제의하였고, 이에 따라 경상감사는 60개 군현을 나누어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북부 15개 읍, 대구토포사 지석영은 대구에 인접한 12개 읍, 인동토포사 조응현은 중부의 9개 읍, 거창소모사 정관섭은 지리산에 인접한 12개 읍, 창원부사 이종서는 남부의 12개 읍을 분장하도록 했다. 상주소모사는 상주 함창 문경 의성 용궁 예천 예안 안동 풍기 봉화 순흥 영천 청송 진보 영양을 관장하였다. 이런 조치 직후 다시 조시영이 김산소모사에 임명되자 인동토포사가 관할하던 9개 읍인 인동 칠곡 선산 개령 김산 군위 의흥 비안 성주 고령과 의흥을 관장하게 하였다. 1894년에 전국에 임명된 소모사 소모관 토포사 조방관 등이 많았지만 현재 전해지는 공문서집은 오로지 상주와 김산소모영에서 편찬한 것뿐이다. 상설이 아닌 임시로 운영된 기관은 관련 문서를 남겨둘 필요가 있었다. 활동 실적을 알리면서 운영 경비를 적절하게 사용했다고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상주소모영의 기록은 처음부터 철저히 편집해서 상주 〈소모사실〉의 내용은 매우 중요하다. 양호도순무영 등에 보고한 문서를 남김없이 수록하여 〈갑오군정실기〉나 〈고종실록〉 등에 들어가지 않은 여러 사건을 보여주고 있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은 먼저 소모영을 운영한 상주의 선례를 직접 알아본 다음에 김산소모영을 설치하였다. 공문서를 보관해서 책자로 만드는 내용도 직접 들었을 수도 있다. △〈소모사실〉의 주요 내용 상주 〈소모사실〉에 전재한 공문서를 왕래한 대상에 따라 모아보면, 다음 표와 같이, 상주목과 각 면리에 보낸 공문이 91회로 가장 많다. 상위 기관인 의정부와 순무영 그리고 군무아문과 주고받은 공문은 14회이고, 경상감영과는 36회를 왕래하였다. 이 자료에 전재된 소모영막하파임기(召募營幕下爬任記)와 소모절목, 그리고 군문규획(軍門規劃) 등은 소모영의 편제와 운영 방침에 관해 자세히 알 수 있다. 김산 소모영의 편제와 운영 등을 전하는 상세한 기록은 없다. 그런 까닭에 이 내용으로 추정해야 한다. 김산 〈소모사실〉에 전재한 공문서의 왕래 대상은 상주와 다르다. 북접농민군이 김산으로 행군해올 것에 대비해서 추풍령을 방어하던 군관과 병정에게 보낸 공문이 눈에 띈다. 김산소모영 활동 기간에서 가장 황급하게 보낸 시기가 북접농민군 대군이 경상도로 들어올 것을 우려하던 때이다. 공문의 표현을 보면 그 실상을 짐작하게 한다. “전라도 무주의 적당 수만 명이 둔취하여 이미 황간읍의 성을 함락시키고 여러 날 청산현 지역에 진을 치고 있다가 장차 괘방령과 추풍령의 두 재 사이로 향하려 하는데, 그들 명성과 위세가 워낙 거세므로 비단 누차에 걸쳐 해당 읍에서 구원을 청할 뿐이 아니고 이 적당이 만일 재를 넘는다면 재 밖의 모든 군현은 어떤 지경에 이를지 모릅니다.” 김산소모사 조시영과 상주소모사 정의묵이 공문을 통해 다른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흥미롭다. 북접농민군을 막기 위해 추풍령에 경상도 각 군현의 민보군을 집결시켜야 한다고 김산소모사 조시영은 주장을 했고, 상주소모사 정의묵은 상주성이 가장 위험하니 보은에서 상주로 오는 길목을 집중해서 지켜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합의를 하지 못하고 각 소모사가 관할하는 군현의 민보군을 불러들이게 되었다. 상주에는 안동 민보군 370명, 예천 민보군 516명, 용궁 민보군 21명, 함창 민보군 20명, 대구 남영병 50명이 집결하였다. 외지에서 온 관군과 민보군이 모두 977명이었다. 여기에 상주 민보군을 합하면 그 수는 적지 않았다. 김산에서 추풍령을 막던 병력은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는데, 대구 남영병 150여 명과 선산포군 150명, 개령포군 95명, 인동포군 100명, 성주포군 10명 등 500여 명으로 나온다. 북접농민군이 보은으로 행군하자 추풍령 방어군은 이들을 뒤따라서 보은까지 들어갔다. 김산소모사 조시영이 경영(京營)에 보낸 공문에는 김산의 실상이 잘 드러난다. 김산은 교통의 요지로 보은과 영동, 무주와 진안 등과 쉽게 연결된다. 동학 교단의 영동포 등의 조직이 김산에 이어지고, 무주와 금산 등과 오가면서 김개남 장군과도 연계된 기록이 나온다. 김산 〈소모사실〉에 그러한 내용이 같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보은의 동학과 연결해서 활동하던 김화준과 김순필은 동학교주 최시형의 혈당이라고 하였다.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는 증언이다. 보은을 거점으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조직이 있는 충경포가 활동했는데 김산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김산 동학농민군의 거두가 4인인데 그중 5 ~ 6만명을 거느린 남홍언과 편사흠은 “전라도 한 도는 거의 다 성을 함락하였고, 충청도와 경상도 두 도는 장차 도륙(屠戮)할 것이니, 통일하는 계획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다.”라고 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남원에 주재하고 개남왕을 칭하던 김개남 처소에 가서 신하라 일컫고 이런 뜻을 담은 소초(疏草)를 올렸는데 그 글을 그들의 집에서 찾아냈다고 하였다. 전봉준 장군과 관련된 내용도 나온다. 무주에서 활동하던 전천순과 김원창을 체포했는데 이들은 ‘전봉준의 폐부(肺腑) 역할을 하는 괴수로, 영남에 출몰하면서 기포를 독려’했다고 하였다. 상주 〈소모사실〉은 개인 소장이고, 김산 〈소모사실〉은 동학농민혁명 기념재단에서 소장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는 공공기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김산 〈소모사실〉이 등재되었다. 신영우 동학농민혁명연구소장

  • 기획
  • 전북일보
  • 2025.02.05 17:12

[청년 이장이 떴다] 시골 마을에 아지트?⋯손님 맞이 준비 '착착'

화정마을 한가운데에 있는 빈집이 시끌벅적합니다. 굳게 닫혀 있던 문은 활짝 열려 있고 왁자지껄 웃음소리가 마을 가득 퍼집니다. 빈집 주변에 사는 마을 주민들은 인기척에 슬리퍼만 신고 나와 빈집 창문 밖으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요리조리 살핍니다. "아따! 누가 이렇게 시끄럽게 하나 했더니 우리 청년 이장님들이었어?" 맞습니다. 조용한 시골 마을에 아지트를 만드는 사람들, 바로 '청년 이장' 저희들입니다. 어떻게 저희가 아지트를 만들게 됐냐고요? 한 달여 전으로 돌아가 봅니다. 본격적인 <청년 이장이 떴다> 기획 취재에 앞서 화정마을을 답사하던 중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장님의 도움을 받아 문을 열어보니 냉기가 돌았습니다. 보일러도 안 되고 낡은 곳도 많지만 쓰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어 보였습니다. 사실 이곳은 옛 마을회관입니다. 바로 옆 경로당이 생기면서 마을회관 대신 귀농·귀촌인 등이 잠시 머무는 거처 역할을 해 왔습니다. 지난해 말까지도 사람이 살았지만 다시 빈집이 됐습니다. 이장님 말에 '청년 이장' 취재진은 귀가 솔깃했습니다. 고민 끝에 이곳에 아지트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의 집(?), 마을 아지트가 생겼습니다. 지역 소멸을 겪는 시골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으면서 우리의 색깔을 찾아가려고 합니다. 아직 아지트는 가구도 없고 휑한 공간입니다. 일단 이곳저곳 있었던 거미줄을 치우고 먼지 가득 쌓인 창틀을 닦으니 금새 사람 사는 집이 됐습니다. 이번주부터는 쓸 수 있도록 인테리어 등에 속도를 내면서 손님 맞이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감사히도 고산면사무소는 책상·의자를, 이웃 마을인 용진읍에 사는 주민은 블라인드를 지원해 주기로 했습니다. 당분간 화정마을에는 "버스가 없어서", "다리가 아파서"라는 말은 없습니다. 읍내에 나가기 어려웠던 마을 주민들은 그동안 매일 경로당에 모여 화투 치고 이야기 나누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수십 년 잡고 있었던 화투 패는 잠시 내려놓고 이제는 붓·펜·아령을 드는 날이 올 것입니다. 첫 날 말했듯 청년 이장이 온 이상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농번기가 오면 오전에는 같이 작업복 입은 채소 밭을 매고 오후에는 이곳에 모여 새로운 추억을 쌓게 되겠지요. 쉽지 않겠지만 평소 경로당에 나오지 않던 마을 주민부터 경로당 할머니들·게이트볼 할아버지들과 차 한 잔 마시고 여러 프로그램도 하는 '따뜻한 아지트'를 만들어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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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2.01 11:34

[청년 이장이 떴다] "잘 부탁드려요"⋯정성 가득 담은 한 그릇 맛있게 ‘후루룩’

오늘은 22일, 완주군 민생안정 지원금을 나눠 주는 날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지원금을 배부한다는 말에 일찌감치 마을 사람들이 경로당에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들은 다른 때보다 경로당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점을 고려해 따뜻한 국수 한 그릇을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화정마을 정기총회 때 지원금 배부가 점심 때쯤 끝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죠. 음식을 뽐낼 솜씨는 아니지만 맛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믿음 하나로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일회용품 없는 전북' 만들기에 동참하기 위해 전북특별자치도 지속가능발전협의회에 전화해 다회용기부터 대여했습니다.(나름 꼼꼼히 준비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쉬웠지만 장보기부터 난관에 봉착했습니다. 애호박, 당근, 양파 등 구입할 것은 모두 정했는데 50인분은 처음이라 재료를 얼마나 사야 할지 감이 안 잡혔습니다. 애호박을 들었다 놨다, 당근을 들었다 놨다, 양파를 들었다 놨다. 몇 번을 반복하고는 한 보따리 장을 보고 재료 손질부터 했습니다. 정말 많았습니다. 해도 해도 줄지 않는 재료들.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많더군요. 문제는 장보기도, 재료 손질도 아니었습니다. 끓이기만 하면 되는데 어마어마한 양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났습니다. 일단 경로당에 있는 큰 냄비란 큰 냄비는 다 꺼냈습니다. 육수부터 내고 재료를 넣고 팔팔 끓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직 끝이 아닙니다. 소면을 삶아야 합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저희를 보고 불안해하셨습니다. 그냥 지켜보시는가 했더니 참지 못하고 한 마디씩 던졌습니다. "우리 청년 이장님들을 보고만 있자니 불안한디?"부터 "50인분은 쉽지 않을 텐데", "경로당은 좁으니께 다 가지고 나와. 우리가 소면을 삶을게"까지. "보기만 하셔요. 저희가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지만 그 누구도 저희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도움을 받았습니다.(정말 저희끼리는 할 수 없는 일이더군요.) 마음은 급해도 처음 해 보는 일이라 속도를 낼 수 없었던 취재진들과 달리 속전속결로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말 안 하고도 어르신들은 소면 씻기, 1인분씩 덜기, 그릇에 담기, 경로당으로 옮기기 등 각자 자리를 잡고 속도를 냈습니다. 어르신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녁을 대접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차저차 국수를 완성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일단 국수의 모습은 갖춰야 할 듯해 처음 만들어 본 달걀 지단까지 올렸습니다. 평소 취재진들을 묵묵히 지켜 보시던 아버지·할아버지들도 고맙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오늘 하루 힘듦을 다 잊게 만드는 한 마디입니다. 저희를 흔쾌히 청년 이장으로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수 대접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저희 사무실이자 화정마을 사랑방이 될 구 마을회관을 둘러봤습니다. 아참, 저희에게 드디어 집(?)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거미줄도 많고 곳곳에 흠집도 있고 고칠 게 산더미지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진짜 화정마을 주민이 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다음 편에서 소개하겠습니다. 많이 놀러 와 주세요!

  • 기획
  • 박현우
  • 2025.01.28 14:29

[청년 이장이 떴다] 함께 노래 부르고 음식 나눠먹고 ⋯ '팔순잔치' 동네가 들썩

청년 이장 4일 차인 1월 21일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습니다. 지난번 이사떡 돌리기 이후로 처음 둘러보는 마을입니다. 도시는 오전 10시면 시끌벅적하지만 화정마을은 꿈쩍도 않습니다. 날이 추워서인지 어르신들도 나오지 않고 골목길이 고요합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던 찰나에 경로당 앞 집에 소리가 나서 인사를 드리려다 젊은 여성 두 명과 마주쳤습니다. 청년 이장을 하면서 진짜 청년을 마주한 것은 처음입니다. "어이구, 그대들 왔는가. 나는 저 사람들이 자네들인 줄 알고 여즉 이야기 듣고 있었네!" 집 주인인 조재신(89) 할머니가 나오셨습니다. 시골 마을인 화정마을에는 간간이 포교를 위해 젊은이들이 찾는다고 합니다. 대부분 사이비 종교에서 찾아오는 터라 곤란할 때가 많다는 게 할머니의 말씀입니다. 그래도 할머니가 젊은이들에게 커피를 내주는 이유는 좌우명 때문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약이 된다.' 이것이 할머니의 좌우명입니다. 오는 사람은 막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할머니는 다 같은 사람이니 집에 오면 커피라도 주는 게 사람의 도리라고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시골마을 집까지 찾아와서 포교를 하는 것을 처음 접해본 청년 이장들은 적잖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지나가다 저희에게도 인사를 건넸거든요. 아무튼 할머니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동네 할머니 집에서 커피를 마셔보는 일은 처음입니다. 진짜 이장이 된 듯했습니다. 할머니가 내 주신 맥심 커피는 달콤했습니다. 한 잔은 뜨거운 물에, 한 잔은 차가운 물에 타 오셔서 커피도 안 녹았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지금도 작은 소망이 있다면 그림은 또 배우고 싶네. 참 재미있었거든. 내가 언제 이런 걸 해 보겄어." 할머니와 '청년 이장' 취재진 2명은 뜨거운 장판 위에 앉아 이불을 덮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할머니는 취미 부자입니다. 30여 년 전부터 써 온 일기는 수십 권의 역사 책이 됐고 방 한 칸에는 취미로 그린 유화 그림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쉽게 우울해진다고 생각한 할머니는 뭐라도 해 보고 싶었다고 합니다. 이전에 화정마을로 찾아온 강사로부터 그림을 배우긴 했지만 혼자서 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지팡이 없이는 걷기 힘든 할머니는 그림을 배우러 나가기도, 그림 그리는 용품을 사기도 어렵습니다.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취미를 갖는 것도, 유지하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청년 이장들은 할머니의 소망을 수첩에 적었습니다. 언젠가는 이뤄 드리는 날이 오겠지요. 어김없이 오후 2시가 되니 또 경로당이 북적이기 시작합니다. 오늘은 최은주(80) 할머니의 팔순 잔치가 있는 날입니다. 떡, 통닭, 귤 등 음식을 잔뜩 준비해 오셨습니다. 취재진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할머니는 방마다 돌아다니며 팍팍 먹으라며 성화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생일 파티를 해 보는 것도 오랜만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데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같아 이장님께 여쭤봤습니다. "우리는 원래 이래요. 생일이면 다 같이 모여서 맛있는 것 먹어요. 각자 준비해서 오는 거지, 뭐. 생일 아니더라도 장보러 나갔다가, 병원 갔다가, 어디 지나가다가 맛있는 거 보이면 사서 같이 나눠 먹어요." 정말 신기한 일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수십 명에 달하는 마을 사람들이 자주 모여서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같이 생일 파티를 한다니. 20대 취재진들은 팔순 잔치가 끝날 때까지 놀람의 연속이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최은주~ 생일 축하합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요. 케이크도 없지만 상 위에 음식을 올려놓고 일단 같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주 어릴 적 친구들과 모여서 생일 파티를 했던 게 전부이다 보니 너무 놀랐습니다. 취재진들은 '아, 우리가 틀에 박힌 생각을 했던 건가?' 반성했습니다. 공동체를 잊고 살았나 봅니다. 오늘도 이렇게 하나 배워 갑니다. 할머니, 생신 축하합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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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1.27 14:49

[청년 이장이 떴다] 시골 어르신들의 설 나기 계획은⋯"몸 아파도 허야지"

화정마을은 고요합니다. 오래 전 내려앉은 고요는 쉽게 깨지지 않습니다. 자동차 경적과 대화 소리로 가득 찬 도시와는 다르게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강아지·고양이의 발걸음 소리에 집중하게 만듭니다. 간간이 들려오는 정겨운 어르신들의 대화 소리도 들리지만 그것도 잠시 여느 시골 마을이 그렇듯 다시 고요해집니다. "왔어요, 왔어. 설날이 왔어." 그래도 매년 두세 번은 매일 고요할 것 같은 화정마을 골목길이 시끄러워지는 때가 옵니다. 바로 설·추석을 비롯해 집집마다 중요한 날이면 잠시나마 고요가 깨집니다. 평소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던 아들·딸, 손자·손녀, 친지 등이 찾아오기 때문이죠. 매년 설 연휴가 오기 직전 주부터는 매일 점심 먹고 경로당에 모여서 화투를 치는 할머니들도, 오후 2시만 되면 게이트볼을 치러 가는 할아버지들도 오전부터 분주하게 움직입니다. 여기저기서 '달달달달' 트럭 시동 거는 소리도 들립니다. 장보러 가려고 준비하는 듯합니다. "할머니, 날 추운디 어디 가시게. 할아버지랑 뭐 맛있는 거 잡수러 가셔?" 돌아오는 대답은 다 같습니다. "장보러 가야지!" 버스가 많지 않고 자동차 없는 경우가 다반사인 시골 마을에서는 밖에 나가는 것도 일입니다. 할머니·할아버지는 시골 마을에서 시내로 통하는 읍내에 나간다고 한껏 예쁘게 꾸민 채 장보러 나갑니다. 두 시간 지났을까 화정마을로 트럭 한 대가 들어옵니다. 아까 장보러 가셨던 할머니·할아버지네요. "나 민생지원금 다 썼어!" 오율례(76) 할머니는 며칠 전 받은 완주군 민생안정지원금 30만 원을 하루 만에 다 썼습니다. 시아버지·시어머니부터 상할아버지·상할머니, 할아버지·할머니 차례 지내고 설 명절 자식들에게 맛있는 음식 해서 먹여야 하기 때문에 부족하다는 겁니다. '청년 이장이 떴다' 취재진과 한창 이야기 중이던 할머니가 갑자기 손뼉을 치십니다. "아! 내 정신 좀 봐. 나 오징어 안 샀네. 그 늘어난 오징어 전 부치려면 사야 하는디. 나 인자 생각 났네." 민생지원금 탈탈 털어 다 썼지만 아직도 장을 다 못 봤습니다. 할머니는 "홍어·조기는 샀고 고기도 좀 샀지. 딸·아들 주려고 그렇지, 뭐. 그래도 설인디 맛있는 거 해서 맥이고 싸 줘야지. 안 그려?"라고 말합니다.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없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이번에는 얼마 안 혀. 그냥 겉절이 조금 하고 꼬막이나 좀 무치고 전 부치고 말라고. 몸 아파서 더는 못 하겄어." 최은주(80)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난 취재진의 머릿속에는 백 개도 넘는 물음표가 떠다닙니다. '다 하시는 것 같은데⋯?' 몸이 안 좋아서 전처럼 많이 하실 수 없다고 하시지만 준비할 게 산더미입니다. 자식들 온다고 하는데 어떻게 안 하냐고 하십니다. 할머니의 푸짐한 마음에 괜스레 웃음이 지어집니다. 할머니는 "나 그냥 얼마 안 샀어. 소고기 2근, 돼지고기 조금, 배추 3포기, 꼬막 조금. 떡국은 끓여 먹어야지 않겄어? 자식·손주들 온다는디 어떻게 안 혀, 안 그려?"라고 말씀하십니다.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나 봅니다. "그런데 어떻게 안 혀. 말이 그렇지. 먹을 건 조금 허야지 않겄어?" 다른 할머니는 놀러가신다고 자랑하십니다. 이칠월(90) 할머니는 최장 9일에 달하는 설 명절 연휴를 맞이해 자식·손주와 놀러가기로 했습니다. 취재진이 "그러면 이번에는 장만도 안 하시겄네?"라고 말하자 "그치. 이번에는 자식·손주들이 놀러가자고 하네? 그래도 집에서 먹을 건 좀 해야지. 겉절이나 좀 하고 전이나 부치지, 뭐∼"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할머니는 설 연휴 1박 2일 여행만 갈 뿐 음식 장만 준비는 똑같이 하기로 했습니다. 진짜로 할머니의 마음은 다 똑같습니다. 몸이 아파도, 안 해야지 생각해도, 진짜 조금만 해야지 생각해도 오랜만에 집에 올 자식·손주들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 지금도 화정마을 할머니·할아버지는 장보러 나가시고 장만 준비에 바쁘실 겁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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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1.26 10:43

[설 특집] 전북, 첨단산업 육성으로 미래경제 중심지 도약한다

지난해는 전북특별자치도가 미래산업 육성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둔 해였다. 전북자치도는 지난해 미래 먹거리 산업 발굴을 통해 바이오, 이차전지, 디지털산업 분야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며, 경제 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전북자치도는 올해 이차전지 특화단지와 첨단바이오 산업 인프라 구축, 디지털산업 혁신을 통해 전북은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다는 계획으로, 지난해 성과와 올해 계획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 2024년은 첨단산업 육성 기반 강화 지난해 전북은 이차전지 분야에서 새만금 이차전지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실시간 고도분석센터(369억 원)와 디지털트윈 기반 사용 후 배터리 재자원화 최적화센터(84억 원) 등 연구인프라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새만금 특화분야(광물가공·리싸이클링) 초격차 기술확보 기반을 마련하고 R&D혁신 허브로 발돋움할 준비를 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에서는 바이오 기업 30개사를 유치하며 레드바이오 전용펀드(1274억 원)를 결성했다. 또한, 글로벌 혁신의료기술 실증지원센터와 메카노바이오 실증센터를 개소해 바이오 기술 경쟁력을 높였다. 디지털산업의 경우, 전북형 디지털 혁신거점을 구축하고, 빅데이터 기반 행정역량 강화와 AI융합기술을 접목한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특히, 농식품 메타버스 기술 실증사업을 통해 농업의 디지털 전환에도 기여했다. △2025년 중점 추진 과제 전북자치도는 2025년 미래 먹거리 산업의 경쟁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첨단산업 생태계 구축에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먼저 이차전지 대학원 설립과 첨단산업 인재양성 부트캠프를 운영하여 현장 맞춤형 핵심인력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차전지 벤처펀드 확대 조성과 기업지원사업을 통해 특화단지 중심의 이차전지 산업생태계를 조속히 구축해 나갈 예정이다. 바이오산업의 경우, 바이오 기업 150개 유치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산·학·연·병·관이 협력하는 전담 거버넌스를 구축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바이오 얼라이언스 추진단을 운영한다. 또한, 첨단바이오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R&D) 등에 200억원을 지원하고, 바이오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함께 레드바이오 분야 (의약품·의료기기)기업 육성을 위해 1,274억원 규모의 전용펀드를 조성하여 적극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더불어 ‘전북형 디지털혁신거점’을 구축하고 IT/SW기업 취·창업 연계 전문인재 양성, 데이터센터 등 디지털산업 인프라를 확대할 계획이다. 전북형 디지털 거버넌스와 협력체계를 강화해 주력산업의 디지털전환을 촉진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방침이다. △미래산업 육성의 기대효과 전북자치도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디지털산업의 발전이 전북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청년 일자리 창출, 지역 균형 발전, 산업 다변화를 통해 전북은 미래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국가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다.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는 “전북은 이제 미래산업의 중심지로 도약하고 있다”며, “2025년에도 도민과 함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김관영 지사 미니 인터뷰 “도전 없이는 변화도 없습니다, 2025년은 전북이 첨단산업 중심지로 도약하는 해가 될 것입니다.” 지난해 이차전지, 바이오, 디지털산업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괄목할 성과를 이룬 전북은 새해를 맞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김관영 지사는 “지난해 이차전지와 바이오등 첨단산업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낸 만큼 새만금 특화단지를 중심으로 연구개발 인프라를 확충할 예정”이라며, “특히 카이스트 이차전지 대학원을 설립해 전문 인력을 양성할 계획”이라면서 R&D인프라 확충을 강조했다. 전북의 강점인 그린바이오를 기반으로한 바이오산업 확충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김 지사는 “그린바이오를 기반으로, 레드바이오까지 영역을 확장할 예정으로, 150개의 바이오 기업 유치를 목표로 R&D 지원과 글로벌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며 “탄소소재 의료기기센터와 메카노바이오 센터를 통해 첨단 의료기술을 선도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지사는 이차전지와 바이오, 디지털산업 등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인해 전북의 성장동력이 강화되고 나아가 청년 일자리 창출과 지역 경제 활성화에 보탬이 될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2025년 은 전북이 더 큰 도약을 준비하는 해로 새해에는 전북이 더욱 크게 도약할 것”이라며 “도정의 목표는 언제나 ‘도민의 행복’과 더 나은 삶‘이다. 도민 여러분께서도 “전북은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믿음을 갖고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 도민 여러분 모두 풍요롭고 따뜻한 설명절 보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 기획
  • 백세종
  • 2025.01.23 18:02

2025 임실 방문의해…'1000만 관광 시대' 힘찬 비상

임실군이 민선 6기부터 8기까지 일관성을 지닌 행정을 통해 2025년 종시여일(終始如一)의 각오로 군정 주요 핵심사업을 강력하게 추진한다. 심민 군수는 신년 인사에서 “성장과 변화를 상징하는‘푸른 뱀의 해’ 2025년은 소망하시는 모든 일들이 이뤄지고 우리 군도 더 크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 10년 6개월을 열심히 일했고 남은 1년 6개월과 임기를 마치는 그날까지 오로지 임실군과 군민 만을 위해 혼신을 바쳐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했다. 군은 올해가 ‘임실 방문의 해’로서 ‘이제 임실’이라는 대표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적인 홍보와 관광객 유치에 박차를 가할 방침이다. 이를 통해 올해 반드시 천만관광 임실시대를 열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 명품 관광벨트 구축⋯천만관광 임실시대 실현 총력 임실군은 지난해 옥정호와 임실N치즈축제 등을 중심으로 한 사계절 축제로 888만명이 임실을 찾은 만큼, 임실 방문의 해인 올해는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임실군 생활 인구는 2018년에 498만명에서 2023년 853만명, 2024년에는 888만명으로 7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군은 천만관광 임실시대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계획을 점검하고 군정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그동안 착실히 준비해 온 2025 임실 방문의 해 추진과 함께 대외홍보에 집중할 방침이다. 그 일환으로 임실여행 숙박비 할인과 특별한 임실 투어 프로그램 운영, 대학생 투어, 찾아가는 방문의 해 홍보단 등을 운영해 누구나 찾고 싶고 와보고 싶은 임실을 알릴 예정이다. 2024년도 문체부 선정 대한민국 3대 최우수 문화관광축제인 임실N치즈축제에는 58만명이, 겨울 대표 축제인 산타축제에는 31만명이 찾아 흥행에 성공했다. 임실군은 또 옥정호 벚꽃축제와 임실N펫스타 등 지역자원을 활용한 다양하고 풍성한 특색있는 사계절 축제를 준비할 계획이다. 관광 기반 조성을 위해 옥정호 관광호텔과 붕어섬, 섬진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 5.2km 케이블카 등 민간개발 등 옥정호 권역 관광개발도 추진한다. 임실치즈테마파크 내 치즈아이랜드와 호텔형 숙소신축, 농촌테마공원 등도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수에는 세계명견 테마랜드 조성사업과 성수산 산림레포츠시설 준공, 관촌 사선대 개발계획 등 명품 관광벨트 구축사업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 함께하는 희망농업⋯행복한 농업농촌 실현 농촌의 고질적인 일손 부족 해결을 위해 캄보디아와 라오스 등 외국인 계절근로자 업무협약을 2월에 체결해 외국인 근로자를 도입하고 지역 다양화 및 확대에도 전념할 계획이다. 또 특화 작물을 활용한 고부가가치 식품개발과 농작물 병해충 공동방제, 수확 대행 작업단 운영 등 농가에 실질적인 도움으로 농업경쟁력도 강화한다. 논 콩을 많이 심고 가루 쌀 재배단지를 육성하는 등 전략작물 산업화 지원을 통해 쌀 적정 생산 유도와 쌀값 안정화에도 힘쓴다. 특히 홀스타인 품종보다 원유 품질이 월등히 우수한 저지종 품종으로 개량, 기능성 숙성치즈와 고품질의 유제품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차별화해 임실치즈의 경쟁력을 높여 나갈 계획이다. 군은 현재 시행 중인 관내 학교 유제품 학교급식 지원을 주 2회에서 3회로 늘려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도모하고 군 자체 아동수당 지원과 어르신 이•미용료 지원도 6매로 확대 시행한다. △ 활력있는 지역 경제⋯맞춤형 경제시책 민생 현안과 밀접한 경제 활성화와 군민 복지향상을 위한 맞춤형 사업도 빈틈없이 추진할 계획이다. 운암면 소재지에 조성 중인 한우 특화 거리 개장과 임실시장 음식특화상가를 올해 완공, 본격적 운영으로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임실·오수 제2농공단지 기업 유치 및 입주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아울러 남·녀 사우나 시설을 갖춘 목욕탕과 로컬푸드 직매장, 영화관 등이 구비된 임실 정주활력 복합센터도 조성한다. 오수면 80세대와 관촌면 120세대의 아파트를 올해 착공하고 임실읍 120세대 임대 아파트도 내년 착공토록 준비하고 있다. 특히 천만관광 시대를 위해 꼭 필요한 현안인 KTX 임실역 정차를 위해서도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다. △ 찾아가는 맞춤복지⋯사회복지 안전망 확대 어르신과 취약계층에 대한 다양한 일자리를 지원하고 수요자 중심의 복지 체감도 향상을 위한 특색있는 복지 시책을 적극 추진한다. 여성의 사회참여를 확대하여 저출산에 따른 사회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는 출산 및 양육 정책 지원과 다문화가족의 사회취약계층 지원도 세심하게 배려할 계획이다. 아울러, 임실·오수·관촌 풍수해 생활권 정비와 관촌 자연재해위험지구 정비, 강진지구 농어촌생활용수 개발사업 등 재난 재해 예방에 빈틈없이 대응해 군민의 생명과 안전이 보호되도록 추진할 예정이다. △ 품격있는 교육‧문화⋯다양한 문화‧체육시설 확충 군은 봉황인재학당의 수준 높은 수업과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중학생 150명, 고등학생 50명까지 확대해 운영한다. 지사면 소재지에 단독주택 12가구로 구성된 농촌 유학 가족 체류형 거주시설도 조성해 가족 단위 학생들을 적극 유치할 계획이다. 지난해 공모에 선정돼 125억원이 지원되는 교육발전 특구사업도 촘촘히 챙겨 지역인재 정주기반 마련에도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더불어 관촌면의 옛 상월분교에 복합문화공간을 조성하고 예총회관에는 문예담터 조성 등을 통해 문화예술을 활성화해 나간다. 이밖에 볼링장과 스포츠센터를 겸비한 국민체육센터와 탁구 피구 생활체육관, 야구장 조성 등으로 생활체육 인프라를 확충하고 주민 건강증진과 삶의 질 향상에도 노력할 방침이다. ●심 민 임실군수 "임실방문의 해 군민 모두가 동참해야" 올해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도 많고 군정 발전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임실 방문의 해’를 맞아 전북특별자치도를 넘어 전국, 아니 세계에 이름을 드높일 수 있도록 모두가 지역관광자원 홍보에 온 힘을 쏟아야 할 때입니다. 이를 통해 전 국민이 한 번 이상 우리 지역을 방문하고 재방문객이 늘어날 수 있도록 서로가 노력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또 작금의 지방 소멸의 시대를 극복하고 소란스럽고 어려운 시기를 슬기롭게 손을 잡고 함께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여기에는 저를 필두로 앞장서며 오직 군민 만을 바라보며 군민의 행복을 위해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노력에 총력을 쏟겠습니다. 군민 여러분! 새로운 임실의 밝은 미래를 향해 올해도 임실군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모두 함께 힘차게 전진합시다 감사합니다.

  • 기획
  • 박정우
  • 2025.01.23 13:40

[뉴스와 인물] 남관우 전주시의회 의장 “시민 체감형 의정활동 주력”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치 아래 제12대 전주시의회 후반기를 이끄는 남관우 의장은 주민의 안녕과 함께 더 살기 좋은 전주시를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특히 남 의장은 민생경제 회복과 발전적인 지방시대 실현을 위한 시민 체감형 의정활동에 주력하겠다는 계획이다. 남 의장을 만나 올해 전주시의회의 시민 소통 중심의 현장 의정활동의 방안 등을 들어봤다. 시민들에게 새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2025년 을사년(乙巳年)과 함께 희망찬 내일을 열기 위한 새로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전주시의회는 올해도 가장 낮은 곳에서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시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동행하고자 합니다. 나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희망을 품고 화합으로 진력한다면 어떤 어려운 과제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전주시는 무한한 가능성의 도시입니다. 또한 우리에게는 미래를 향한 큰 꿈과 희망이 있습니다. 64만 시민 한 분 한 분이 지닌 꿈, 그 꿈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며 포부이고 미래입니다. 2025년, 여러분과 함께 나아갈 전주시의회를 믿고 지지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민 여러분이 꿈꾸는 전주시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을사년 새해에도 시민 여러분의 가정에 늘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지난해 전주시의회 성과를 꼽는다면. “의원들이 시민의 대변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근거가 성과로 가시화됐습니다. 이는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무엇보다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제12대 전주시의회가 개원한 2022년 7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통계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기간 의원 발의로 처리한 조례안은 125건, 5분 발언 248건, 시정질문 102건이었습니다. 이는 제11대(조례안 85건, 5분 발언 211건, 시정질문 77건), 제10대(조례안 80건, 5분 발언 166건, 시정질문 95건) 의회 같은 기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의원들이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지역발전을 위해 발로 뛰며 각종 현안에 적시 대응하고,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올해 전주시의회 의정활동의 중점 방향은 무엇인가요. “을사년 전주시의회는 시민을 위해 현장에서 발로 뛰는 의회, 소통하는 의회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입니다. 여기에 시민의 관심과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고, 시민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욱더 반영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그 일환으로 올해부터 전주시의회는 긴급현안질문 제도를 신설하고 본격 시행합니다. 이 제도는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긴급한 문제에 대해 의원들이 즉각적으로 집행부의 설명을 요구하는 것으로, 긴급 현안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는 것은 물론,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집행부에 대한 견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지방의회의 책무입니다. “지방의회의 책무이자 존립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민의(民意)가 반영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의회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의원은 시민의 대리자이자 대변자로서 시민의 참뜻을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을 받고 의회에 입성했습니다. 의회는 집행부가 예산을 올바르게 집행하는지, 불필요한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도한 규제로 시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지 않는지 등을 다각도에서 시민의 뜻에 부합하는 시정 운영을 위해 항시 꼼꼼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다만 새는 양 날개로 날아야 온전히 목적지에 안착할 수 있듯, 잘못된 행정은 과감히 지적하면서도 때로는 긴밀한 협조로 시민과 전주시를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될 것입니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불안도 커져만 가고 있는데요. “엄중하고 혼란스러운 시국 속에서도 우리 시민의 삶이 평온하게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회와 집행부의 역할입니다. 의회는 무엇보다 시민의 안전과 민생 회복에 중점을 두고 의정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때보다도 경기가 어렵다는 호소가 있는 만큼 실질적인 경기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경기회복에 힘쓰겠습니다. 또한 민생과 안전에 관련된 사업에 시민의 의견이 잘 반영되고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조례와 예산 지원 등으로 뒷받침하겠습니다. 재정 건정성 확보와 전주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예산 심사도 꼼꼼히 실행하겠습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처럼 2025년에는 시민을 위해 의회와 집행부가 서로의 역할과 책임을 존중하며, 시민을 위한 일에 더 견고히 협력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 회장도 맡고 계십니다. 최근 협의회에서 2036 하계올림픽 유치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는데요.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에서 채택한 ‘2036년 하계올림픽 전북특별자치도 유치 촉구 건의안’은 지역발전과 국가 균형발전 및 지방 활성화 실현을 위해 하계올림픽을 전북에 유치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전주시는 자연과 문화,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도시로 올림픽 개최지로 최적입니다. 또 올림픽을 유치할 경우 지역 경제 활성화는 물론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 활성화를 실현하는 상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협의회는 정부의 올림픽 유치 의사 적극 표명, 중앙-지방 정부 협력 및 지원 체계 구축, 예산 확보 등을 한목소리로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을사년 새해에도 전주시의회는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를 기치로 시민의 참뜻을 바로 세우며 전주시 발전의 밀알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또한, 높은 곳보다는 낮은 곳을, 어렵고 소외된 이웃을 더욱 배려해 살기 좋고 모두가 행복한 전주시를 만드는데 진력하겠습니다. 변화와 혁신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잘못된 관례와 인습을 과감히 바꿔나가겠습니다. 특히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노력하는 자세로, 의원들 모두가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갖춰 시민 여러분의 신뢰를 받고 믿음을 주는 전주시의회로 거듭나겠습니다. 항상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시민 여러분의 응원에 꼭 보답하는 의회가 되겠습니다.” 남관우 의장은 남관우 의장은 취임 후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기조 아래, 시민 가까이에서 함께하는 의정활동을 강화하고 지방자치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수행했다. 남 의장은 지역 현안 발굴 및 정책을 연구하고 시행하는 데 있어 시민의 편에서 철저히 검증하고 확인하는데 힘쓰고 있다. 특히 그는 제9대 후반기 전북특별자치도시군의회의장협의회장에 추대되어 전북지역의 각종 현안사업의 해결을 위해 도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발굴하고 실현하는데 앞장서는 등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남관우 의장은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고, 지역사회와 협력해 전주다운 미래를 만들어 가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 기획
  • 강정원
  • 2025.01.19 17:32

[프롤로그] "어르신들 꿈 응원합니다"⋯ 우리동네 '청년 이장'이 떴다

지역이 위기다.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면서 우리는 이미 오래 전부터 '지역 소멸'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졌다. 대한민국의 화두는 예나 지금이나 '지역소멸 위기 극복'이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전국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했다. 전북일보는 지난해 10월 도내 지역종합일간지 최초로 디지털미디어국을 신설하고 독자들과 함께 호흡할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에 대해 고민했다. 아직도 고민은 끝나지 않았지만 연말부터 '지역 뉴스'에 집착해 왔다. 지역 뉴스를 전달하는 지역 언론이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무엇이 있을지 몇 날 며칠을 생각했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3년 전 지역 언론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킨 부산일보 <산복빨래방>, 경남신문 <심부름센터>를 잇는 제2의 프로젝트가 떠오를 것만 같았다. 어느 날 MZ세대로 구성된 취재진들이 농촌마을의 '청년 이장'이 돼서 도민들과 함께 호흡하면 어떨지 상상해 봤다. 지역 언론은 가장 가까운 삶의 현장에서 지역민의 이야기를 듣고 전달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고 노인만 남은 농촌마을은 다시 활기를 찾을 것만 같았다. 독자에게는 도민들,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등 '일석삼조 프로젝트'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민 끝에 지역소멸 위기 극복 프로젝트 신년 기획 <청년 이장이 떴다>가 탄생했다. 청년 이장의 역할을 하면서 농촌마을이 가진 이야기를 전하고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프로젝트다. 여기에 더해 농촌마을 어르신들의 꿈까지 실현해 주기로 했다. 처음 시도해 보는 '찐(진짜)' 지역 밀착 저널리즘이라 걱정도 되지만 일단 진행해 보기로 했다. 신년 기획 첫 번째 마을은 35가구 55명이 살고 있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이다. 청년 한 명 없는 화정마을에 청년이 나타난다면 어떨까. 화정마을 주민들은 영어 공부·요가·뮤직 비디오 촬영 등 하고 싶은 게 많지만 쉽게 배울 수 없었다. 보행 보조기 없이는 거동이 불편해 읍내에 나가는 것도 어려워 매일 경로당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화투를 치는 게 일상이다. 그래서 청년 이장이 된 취재진들이 어르신들의 일상에 들어가기로 했다. 도내 시·군에서 활동 중인 청년들을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초청해 어르신들에게 배움을 선물하면서 지역과 청년, 어르신을 연결할 계획이다. 지금 당장 매주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감도 안 잡히지만 일단 취재 현장·사무실 대신 경로당으로 출근하기로 했다. 전북일보 신년 기획 '청년 이장이 떴다'는 매주 월요일 전북일보 지면과 인터넷 신문·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 기획
  • 박현우외(1)
  • 2025.01.18 16:55

[청년 이장이 떴다] "이장은 처음이라"⋯일단 친해지기로 했습니다

1일차 임무는 '떡 돌리기' '청년 이장' 1일차 임무는 떡 돌리기. 아직 집은 없지만 이사떡부터 돌리기로 했습니다. 본 건 많은 청년 이장은 완주 화정마을로 가기 전 회사 옆 떡집을 찾았습니다. "이사를 가면 떡을 돌려야 한다"는 말에 미리 맞춰 놓은 팥 시루떡을 찾아 화정마을로 출근했습니다. 첫 출근일은 지난 15일. 본사 기자들로 구성한 취재진 3명은 직접 포장한 팥 시루떡·신문을 들고 화정마을 35가구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첫 인사는 "이 청년들은 누구디야?" 아니면 물음표 세 개 뜬 얼굴이었습니다. 기자라고 소개하는 게 익숙하지만 오늘 만큼은 먼저 "3개월 동안 화정마을에서 지내게 된 청년 이장들입니다."라고 소개했습니다. 이사떡을 건넨 청년 이장들에게 마을 주민들은 '정(情)'을 주셨습니다. 대문 앞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시는가 하면, 간식·따듯한 차를 주시는데다 반가워 하시면서 안아 주시는 어르신들까지. 1일차지만 모두 격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 기획 잘 될 것만 같아요.) 2일차 임무는 '네일아트' 일단 스킨십 만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은 없겠다는 생각에 어머님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분홍·빨간색 매니큐어를 챙겨 왔습니다. 하지만 이게 왠걸요.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고 계셔서 바로 네일아트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취재진들은 작전을 세웠습니다. 다리가 아파 바닥에 앉을 수 없어 화투를 구경하는 할머니들을 공략하자는 작전이었죠. "아고, 손도 고우시네요. 이거 손톱 물들이면 더 예쁘시겠고만."이라고 말하자마자 돌아오는 답은 "나 칠해 주려고?"입니다. 작전 성공입니다. 진짜 손이 고우셨던 박복순 할머니를 첫 손님으로 맞이했습니다. 박복순(90) 할머니는 평생토록 매니큐어를 칠해 본 적이 없습니다. 가르마는 없거나 5대5뿐이라고 알고 살았던 할머니에게 손톱은 사치였다고 합니다. 스물둘에 결혼해 70여 년을 화정마을에 살면서 자식들을 키우고 남편 챙기느라 정신 없이 사셨다는 거겠죠. 할머니의 손톱에는 별빛이 가득 올라가고 할머니의 눈은 어느 때보다 반짝였습니다. "반짝반짝 예쁘네. 설에 자식·며느리·손주 오면 자랑해야겠어. 고맙네, 고마워." 그렇게 열린 화정경로당 네일아트 숍은 대기 번호까지 생겼습니다. 1번, 2번, 3번⋯. 셀프 네일은 해 본 적도 없지만 서툰 실력으로 꼼꼼히 발랐습니다. 화투 치던 할머니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화정마을 할머니들 늙어서 호강 받네." 대기 번호에 이어 다음주 예약 손님까지 생길 정도로 개업 첫 날부터 관심을 받았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1.18 16:53

[청년 이장이 떴다] 화정마을 정기총회?⋯그렇게 진짜 마을주민이 됐다

"청년 이장 또 왔어? 올 줄 알았당게." 오늘(17일)도 어김없이 경로당에 모여 화투를 치고 계시는 할머니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모두가 취재진을 반기지만 유독 사랑을 주시는 이칠월(90) 할머니는 "어떻게 인사가 그려! 또 왔어가 뭐여! 잘 왔다고 해야지!"라며 오자마자 큰 웃음을 주십니다. 갑자기 경로당이 떠들썩해졌습니다. 치매 예방 차원에서 꼬박꼬박하는 10원 내기 화투가 말썽입니다. 누가 10원을 더 가져가면서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아니, 나 돈 안 가져 갔다니께? 누구여! 다 꺼내 봐!" 언뜻 보면 싸우시는 것 같지만 그냥 대화인 듯했습니다. 화투를 구경하던 이덕순(82) 할머니는 익숙하다는 듯 "다 나오랴! 화투 치는 사람들 잡으러 경찰 왔디야! 시끄라!"라며 상황을 정리했습니다. 정리되자마자 경로당은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기 시작했습니다. 참, 오늘은 화정마을 정기총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청년 이장' 3일 차지만 정기총회 초대를 받아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평소 경로당에 자주 찾지 않는 할아버지들까지 시간 내 모두 자리하셨습니다. 취재진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쓴 적도 없고 본 적도 없는(?) 지난해 화정마을 수입·지출 결산 보고 종이까지 들고 처음 마을 정기총회에 참여했습니다. 지금도 집은 없지만 진짜 마을주민이 된 것 같았습니다. "미숙하지만 많이 협조해 주시고 조언해 주신 덕분에 큰 일 없이 지난해 잘 보냈습니다. 부녀회장을 정해야 한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강창현 이장님의 인사말로 정기총회가 시작됐습니다. 이날 정기총회의 큰 안건은 부녀회장 선출, 야유회 일정 등이었습니다. 부녀회장은 마을주민 만장일치로 이복순(77) 할머니가 됐습니다. 화정마을은 1년에 한 번씩 야유회를 갑니다. 평소 자동차가 없어 시장·병원 가는 것도 어려운 마을주민들은 멀리 바람 쐬러 가는 야유회가 기다려집니다. 평일에 갈지, 주말에 갈지부터 며칠에 갈지, 어디로 갈지 모두 마을주민에게 선택권을 부여했지만 거절(?) 당했습니다. "아니, 그건 이장이 정해야지. 집행부끼리 정해서 어디로 가자고 하면 갈 겨." 끝나고 작은 간식 파티가 열렸습니다. 먹을 것을 보고도 그냥 가면 서운하다는 주민들의 지적에 자리 잡고 같이 간식을 먹는 저희에게 첫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경로당 앞 집에 있는 개들이 마을을 돌아다녀 집도 못 가겄어. 찍어서 어떻게 좀 해 줘 봐요." "청년 이장님들, 노래교실 같은 건 어려울랑가?" 세상에 안 되는 것은 없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일단 해결해 보렵니다. 하나씩 해 나가기로 약속했습니다.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심부름이 들어오면 좋을 텐데. 얼굴도 다 텄으니 다음주면 많은 의뢰가 들어오겠지?' 기대 반, 걱정 반. 앞으로 잘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퇴근합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1.18 16:53

[우리 마을 이장님은] 강창현 이장 "고향에 봉사하고 싶었어요"

완주군 고산면 화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소년은 커서 마을을 지키는 이장이 됐다. 소년이 크는 동안 많은 사람이 떠나고 한때 시끌벅적했던 마을은 조용해졌다. 이제 마을에 남은 건 노인들뿐. 마을 주민 중에서는 청년(?)으로 통하는 강창현(63) 씨는 고향에 무엇이라도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장을 맡았다. 화정마을에서 산 지는 얼마나 됐나요? "여기 화정마을에서 태어나서 쭉 살다가 결혼하면서 잠깐 고향을 떠났어요. 처가로 이사했다가 23년 만에 다시 마을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지는 10년 정도 됐네요. 우리 어렸을 때만 해도 이 마을 골목길은 다 흙길이었는데 길도 넓어지고 슬레이트 지붕도 다 신식으로 바꿨어요. 옛날에 이야기하던 시골 마을이 아니죠." 나고 자란 마을이자 지금 책임지고 있는 화정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요. "우리 화정마을은 일단 단합이 정말 잘 돼요. 여기가 귀촌한 사람도 들어오곤 하는데 그 사람들과 마을 토박이 주민도 잘 지내는 편이에요. 매년 봄이 되면 마을 주민끼리 여행도 가요. 생일도 챙겨 드리고 새해에는 신년회 열어서 잔치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 먹곤 해요." 이장이 된 지 2년 정도 됐다고 들었는데요. "네, 벌써 2년 차네요. 이장은 보통 한 번 하면 3년까지 해요. 연임까지 하면 최대 6년까지 가능하죠. 이장은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보통 그 사람이 해요. 여러 명이 지원하면 투표도 하는데 다행히 제가 나올 때는 저 혼자 이장직에 지원했어요." 마을 이장이라고 하면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보통 면사무소에서 나오는 프로그램·지원사업을 비롯해 전달사항 같은 것을 주민들한테 전달해 주죠. 마을에서 애로사항이 나오면 행정에 전달해 주기도 하죠.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을 가져오기도 하죠." 마을 발전을 위한 사업은 뭐가 있을까요? "예를 들면 화정마을은 오폐수가 나가는 하수도가 없어요. 어느 집 마당에서는 악취가 심하게 올라오기도 할 정도예요. 그래서 저희는 지금 이 오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하수도 설치하는 사업을 가져오려고 하죠. 다른 마을도 비슷한 애로사항이 있다 보니 신청한다고 해서 다 가지고 올 수는 없지만 주민들 불편사항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장으로 활동하면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마을 주민들도 사람이다 보니 다 같은 생각을 할 수는 없죠. 의견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주민들 의견까지 다 들어 줘야 하다 보니 어려워요. 저도 마찬가지고 이장들은 보통 본업이 따로 있다 보니 시간을 내는 일도 쉽지 않아요. 어떨 때는 정말 버거워서 이장직을 그만둘 생각까지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이장직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있나요? "그래도 내가 나고 자란 우리 소중한 마을이잖아요. 내가 태어난 고향이고 부모님이 사셨던 곳이기 때문에 봉사하고 싶었어요. 이장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무조건 뭐라도 마을에 들여서 주민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하는 게 지금 목표예요."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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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8 16:52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1) 〈이복영일기(李復榮日記)〉, 〈남유수록(南遊隨錄)〉과 이용규(李容珪)의 〈약사(若史)〉

△〈이복영일기(李復榮日記)〉 이 자료는 부여의 유생 소정(小亭) 이복영(혹은 李遇榮 : 1870~?)이 1889년부터 1934년까지 45년 동안 매일의 대소사를 기록한 일기이이며, 전체 39책의 방대한 분량이다. 이 가운데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내용은 〈일기 속5(續五)〉 제6권(1893.1.1~4.8), 〈남유수록〉 제7권(1893.4.9~4.19), 제9권(1893.8.30~1894.4.29)과 〈일기 제10〉 (1894.4.29.~1895.윤5.25)에서 기록되어 있다. 일기에는 그가 살고 있는 부여 대방면(大方面)에 동학농민군 도소가 설치되는 과정과 동학농민군의 활동뿐만 아니라, 이웃한 홍산, 공주 등 충남 일대 농민군의 활동과 집강소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먼저 1894년 6월 27일조에 호남에서 동학이 크게 일어난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6월 29일에는 인근 남당에서 농민군 수십 명이 말을 타고, 창과 칼을 가지거나 총을 쏘고 들어오자 이복영이 이웃 마을로 피신한 사실을 기록하였다. 이곳에서 농민군 도소가 설치된 것은 7월 12일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농민군 도소가 이 지역 ‘유지’들과 동학농민군 간의 협력적 관계 속에서 설치되었다는 점이다. 마을의 유지인 민참의(閔參議)와 임함종(林咸從, 함종 도호부사를 지낸 임씨) 등이 논의하여 농민군들에게 후강(後岡)에 도소를 설치하여 다른 우환에 대비하고자 했고, 농민군들도 이러한 의견에 동의한 것이다. 농민군들은 후강의 산 위에 차일(遮日)을 겹으로 쳐서 도소를 설치한 후 총을 쏘고 진법을 연습하며 모양을 갖추었다. 이때 농민군 도소에서는 군중들이 모여 주문(呪文)을 암송하는 소리가 사방의 마을에까지 들렸다고 한다. 도소를 주도한 농민군은 접주 장봉한(張鳳翰)과 접사 최천순(崔天順)이었다. 장봉한 등의 농민군은 산송(山訟), 고리대 및 소작관행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해나가는 등 농민군과 마을 ‘유지’ 간의 중재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갔으며, 일기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인근 마을의 농민군이 이복영의 집에 쳐들어와서 지난해에 바쳤던 지대를 돌려달라고 하자, 장봉한이 나서서 상황을 정리해주기도 했다. 물론 이 마을과 이웃 마을에서 농민군들의 다양한 토재 활동 등도 일어났으며, 이에 대해서도 많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 집강소의 권력은 접주, 접사, 접동들로 구성된 집행 실무기관과 농민군의 대중집회인 도회(都會)라는 의결기관으로 이원화되어 있으며, 집강소 등 농민군 조직의 운영방침은 농민군 전체집회인 도회에서 결정되었다. 접주, 접사들은 그러한 방침 하에서 주로 경제적 문제 등 각종 분쟁에 대한 중재자로서, 나아가 일정 범위에서의 재결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도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7월 24일 이 지역 농민군들은 대방면 가속리 장터에서 농민군 전체 집회인 도회를 열어 접주, 접사들의 타협적인 행위를 비판하고, 도소를 가속 장터로 옮긴 사례도 있었다. 한편 〈남유수록〉에는 제2차 봉기 때 전봉준과 합세하여 공주 전투에 참여한 이유상(李裕尙)에 대해 흥미로운 몇 가지 사실을 전하고 있다. 8월 1일조에는 이유상(李裕尙)이 논산 건평(乾坪)에서 민준호(閔俊鎬)가 유회를 모으고 진법을 가르친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토왜보국(討倭報國)하자고 권했으나, 민준호는 본디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거절하자 이유상은 추종자 백여 명을 거느리고 떠났다고 하였다. 10월 22일조에는 이유상이 전도사(前都事)로 정산 사람이며 원래 전봉준 휘하의 논산 건평(乾坪) 접주였는데, 유회를 가탁하여 무리를 모아 전봉준과 합세하였다고도 하였다. 부여 인근 충청도 지역 농민군 활동을 잘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용규(李容珪)의 〈약사(若史)〉 이 책은 공주 유생 이용규(1850~?)가 1888년(고종 25)부터 1897년(광무 원년)까지 매일마다의 대소사를 기록한 일기이다. 모두 필사본 4책으로 되어 있는데,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내용을 담은 갑오년 부분의 내제(內題)에는 〈甲午 日史 七〉로 되어 있어서 연도별로 분책되어 있던 일기를 한 데 모은 것임을 알 수 있다. 일기의 내용은 그리 풍부하지 않으나, 매년 말 그해 전체의 세평(歲評)에 볼만한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먼저 〈癸巳 日史 六〉의 마지막 부분에 1893년의 사정을 요약적으로 정리를 해둔 세평을 보면 흥미로운 기사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는 우선 1893년 3월(음력)에 일어난 보은집회에 대한 내용이 있다. 이용규는 보은집회 당시 7만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모였고, 이를 해산하기 위해 조정에서 선무사 어윤중을 보낸 사실, 또 홍계훈에게 300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가서 동학교도들을 해산시켰다고 한 사실 등을 기술하고 있다. 이어 동학교도들과 함께 서교(西敎)가 양호 지역에서 확산되어 날마다 달마다 번성해져 간 사실을 전하면서 몇 년 전에 프랑스와 맺은 조약 가운데 천주교를 전교하는 선교사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조항이 들어 있었기 때문에 수령들이 천주교도들로부터 모욕을 당하여도 금지할 수 없게 된 사정을 개탄스러워하며 기록하고 있다. 또 당시 빈발하던 ‘민요(民擾)’의 원인과 양상,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요인 등에 대해 일목요연하고 정리해 두고 있다. 곧 민요는 백성들이 방백 수령들의 부당한 수탈을 견디지 못하여 일어나는 것이며, 한 사람이 부르짖으면 수백 수천 명이 모여 관아를 공격하여 수령을 쫓아내거나 혹은 두들겨 패서 상처를 입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또 무리가 결집하여 해산하지 않으면 안핵사(按覈使)를 파견하여 그들의 청을 들어줌으로써 비로소 해산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동서남북 어디에도 민요가 없는 고을이 없었다고 하였다. 1894년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1894년 2월 16일조 상단에 의정부 초기(草記)를 인용하면서 ‘고부민요(古阜民擾)」에 대해 기록해두고 있는 점이 눈에 띈다. 또 4월 28일조에는 새로 부임하는 전라감사 김학진(金鶴鎭)이 완영(完營)으로 내려간 일, 5월 8일조에는 완영의 농민군이 귀화를 핑계로 빠져나와 태인 지방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7월 8일에는 동학농민군이 이용규의 집에 들이닥쳐 400량을 빼앗아 갔다는 사실, 7월 24일부터 동학농민군이 공주 대교(大橋)에 모였으며 29일에는 궁원에서 대도회(大都會)를 설치했다는 사실 등 당시 공주 인근에서 벌어진 농민군 활동과 관련한 사실을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다. 또한 갑오년 세평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주요 사실들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4월에 신임 전라감사로 발령받은 김학진이 전주 인근에 도착하고도 겁을 먹어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여산(실제로는 삼례)에 이르러 체류하였다가, 전봉준이 전주성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감영에 들어간 일을 전하고 있다. 특히 세평에는 집강소와 관련한 흥미로운 내용들이 적지 않다. 예컨대 전봉준은 귀화하였다고 일컬으면서 단신으로 감영에 들어와 감사의 일을 맡아 수행하였는데, 순영의 관문이나 감결(甘結)은 반드시 전봉준의 결재를 받은 후에야 열읍으로 보내어 행하도록 하였음을 전하고 있다. 또 전봉준이 여러 날 행정을 실시하면서 ‘형살(刑殺)은 없었으나 양호의 큰 화가가 양성(釀成)되었다’라고 하여 집강소시기에 대한 총평을 내리고 있다. 〈약사〉는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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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5 19:46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6)후백제 봉황무늬 수막새, 천년을 건너온 실크로드 문양

(그림1) 산치대탑 제1스투파 난간의 ‘원형 패턴 동물문’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시(Madhya Pradesh)주 작은 언덕 위에는 기원전 3세기경 마우리아(Mauryan) 왕조의 아소카(Ashoka) 대왕이 불교를 장려하면서 조성한 산치대탑(Great Stupa at Sanchi).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산치 제1 스투파 난간에 새겨져 있는 원형 주연부 안에 좌우로 날개를 활짝 펼친 공작새이다.(그림1) 한편 1989년 전남 광주 무진고성(武珍古城)에서 주연주가 연주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그 속에 봉황을 새겨 넣은 후백제 시대 수막새(그림3)가 출토되었다. 그런데 이 수막새는 산치대탑에 보이는 원형 패턴 새 문양과 흡사하다. 무엇보다 사산조 페르시아 시기에 대유행했고(그림2,4,6,7),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에까지 전파된 연주 동물문(連珠動物紋)과 깊은 관련이 있다. 무슨 소리일까? 이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크로드 ‘연주 동물문’의 역사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그림2) 사산조 페르시아 연주 시무르그 문양 [대영박물관] △ 연주 동물문과 연주문의 상징적 의미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후백제 봉황무늬 수막새는 연주 동물문(Pearl roundels with animal patterns) 기와이다. 연주 동물문(連珠動物紋)이란 연주문 속에 사자, 맷돼지, 그리핀, 공작, 봉황, 용 등 동물을 새겨 넣은 문양을 말한다. 여기서 연주(連珠)는 '이어진 구슬' 또는 '연결된 진주'를 의미한다. 진주는 고대부터 귀중품으로 여겨져 왔으며, 왕권과 부를 상징했다. 또 둥근 구슬 모양은 해와 달, 별과 같은 천체를 상징하며, 우주의 순환과 영원성을 나타낸다. 특히 연주문은 서아시아 파르티아 시대를 거쳐 사산조 페르시아에서 국왕의 초상화를 연주문으로 장식하여 왕권의 수호를 상징하는 코인을 발행하는 등 크게 유행했다.(그림4) 한편 불교에서 연주는 보배구슬(如意珠)을 상징하며, 깨달음과 지혜를 의미하고 부처의 사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연주문은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화 교류의 대표적인 예시로서, 각 지역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면서 동아시아 미술의 중요한 장식 요소로 자리잡았다. 한반도에서는 부여 외리에서 출토된 백제 무늬벽돌이 최초의 연주문인 동시에 연주 동물문이다.(그림5) (그림4) 사산조 페르시아 샤푸르(Shapur) I 연주문 (그림5) 외리 출토 백제 연주 용무늬 벽돌 △ 연주 동물문의 상징성 연주 동물문에 새겨 넣은 여러 가지 동물은 무엇을 상징할까? 먼저 사자(lion)와 맷돼지는 고대 페르시아에서 군사적 힘과 왕권의 상징으로 널리 사용되었다.(그림6) 특히 맷돼지 도상은 죽은 사람의 영생을 기원하는데도 활용되었다.(그림7) 시무르그(Simorgh)는 페르시아 신화에서 불사조로 신성한 지혜와 치유력 그리고 왕권의 신성함을 표현하는 중요한 도상이었다. 그리핀은 수호신적 존재를 상징했으며, 페르시아 예술에서 주로 연주 안에 배치되어 신성한 권위를 나타냈다. 독수리 문양은 초원 지대에서 하늘과의 소통, 힘과 용맹을 상징하는데 자주 사용되었다. 공작 문양은 힌두교와 불교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다. 공작은 힌두교에서 카르티케야(Kartikeya)신의 탈것이자 사라스와티(Saraswati) 여신의 상징이었고, 불교에서는 지혜、자비、치유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공작 문양은 실크로드를 따라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전파되어 왕권과 권위의 상징으로 자리잡는다.(그림8) 봉황은 고대 동아시아에서 고귀한 상상의 영물로 황실의 권위와 정통성을 상징했으며, 현명한 통치자가 다스리는 평화로운 시대에만 나타난다고 여겨졌다.(그림 3.12) (그림7) 사산조 페르시아의 연주 맷돼지 문양 (그림8) 중앙아시아 연주 공작 문양 [5-9세기] △ 연주 동물 문양의 동아시아 전파 연주 동물문이 실크로드를 따라 동쪽으로 전파되는 데는 소그드 상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이들은 호화로운 견직물 무역을 통해 페르시아의 이 문양을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소개했다.(그림9) 특히 당나라 시기 개방적인 국제 문화와 맞물려, 이 문양은 실크로드를 통해 들어온 이국적 요소로서 귀족 사회에서 크게 환영받았다. 경주박물관 연주문 장식 입수쌍조문(立樹雙鳥紋) 석주(그림10)와 일본 호류지(法隆寺)에 전해지는 사자수문금(獅子狩文錦)은 7-8세기 당시 동아시아의 문화적 복합성과 국제적 교류망을 증명한다.(그림11) 또 이 시기 중국의 장인들은 기존의 페르시아 양식을 재해석하여 중국적 미감에 맞게 봉황이나 용과 같은 중국의 전통적인 상상의 동물들을 연주 안에 배치하기 시작했다. 백제 역시 한반도에서 서역풍 연주 동물문을 가장 먼저 받아들였고, 기와에도 새겨 넣었다. 백제를 계승한 후백제도 마찬가지였다. 무진고성에서 출토된 연주 패턴 봉황무늬 수막새는 봉황의 좌우 날개를 화려하게 접고, 몸통을 유난히 튀어나오게 강조하는 후백제인만의 독창성을 발휘하고 있다.(그림12) 여기서 우리는 실크로드의 예술적 유산 연주 동물문이 천년을 건너 동아시아까지 전파되고 후백제인에 의해 창조적으로 수용된 흥미로운 예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림10) 경주박물관 ‘연주 쌍조문(雙鳥紋)’ 석주 [7-8세기] (그림11) 일본 호류지(法隆寺) 사자수문금(獅子狩文錦) (그림12) 무진고성 출토 후백제 연주 봉황문 수막새 (II)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 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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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3 19:57

[전북 이슈+] 지난해만 260팀 찾았다⋯ 전북은 지금 전지훈련 '후끈'

2025시즌을 앞두고 전국 선수단이 본격적인 전지훈련 일정에 돌입했다. 최근 전북특별자치도를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가 전지훈련 유치에 사활을 거는 가운데 전북에서도 익산시·순창군 등이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전지훈련지로 인정받고 있다. 12일 전북특별자치도체육회가 제공한 2024시즌 전북에서 전지훈련한 전국 선수단은 총 257팀(4861명·1일 기준)이다. 종목은 유도·씨름·태권도·축구·야구·육상·배드민턴·소프트 테니스·펜싱·역도·근대 5종·스쿼시·산악·카누·수영 등 모두 제각각이다. 꿈나무 대표부터 초등·중등·고등학교, 대학교, 실업팀, 체육회, 대표팀, 상비군 등 다양한 팀이 전북을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5시즌에도 많은 선수단이 전북을 찾을 전망이다. 대표적으로 익산시에는 이달 육상(투척) 국가대표 상비군·청소년·꿈나무, 펜싱 국가대표 후보 선수, 유도 국가대표 상비군, 고교 야구단 등이 찾는가 하면 순창군에는 고교 야구, 유소년 야구단, 소프트 테니스 꿈나무, 중·고등 테니스팀 등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올 1월에 익산시·순창군에서 전지훈련이 예정돼 있는 선수단만 총 25팀, 1600여 명에 달한다. 해마다 전북을 찾는 선수단이 늘어나면서 시·군 곳곳에는 새로운 전지훈련 시설이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 최대한 많은 선수단을 수용하면서도 전지훈련 중에 불편을 느끼지 않게끔 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제시는 생활 밀착형 국민체육복합센터, 전지훈련센터 조성 등을 추진해 몸과 마음이 건강한 스포츠 활력 도시로 거듭날 준비를 하고 있다. 특히 2026년까지 도비 18억 원을 포함해 예산 50억 원을 들여 전지훈련을 오는 선수단이 묵을 숙박·편의 시설인 전지훈련센터를 건립할 예정이다. 익산시는 매립장 부지를 활용해 일반·리틀야구장을 추가로 1면씩 조성하고 순창군은 전지훈련팀을 위한 지상 3층 규모의 트레이닝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전북을 비롯한 전국 17개 시·도가 전지훈련 등 스포츠 마케팅에 주력하는 것은 '지역경제' 때문이다. 오랫동안 머무는 선수단이 지역에서 소비하는 규모가 크다 보니 예산 10을 들이면 지역경제는 50, 100까지도 뛴다는 게 각 시·도의 설명이다. 단순히 훈련뿐만 아니라 장기간 지역에서 지내면서 숙박·식사 등을 동반하는 만큼 지역경제에 활력이 생기는 것이다. 김종신 순창군 체육진흥사업소 스포츠마케팅 팀장은 "전지훈련이나 유소년 대회 등이 온다고 하면 순창군 내 읍·면에 있는 펜션까지 꽉 찬다. (경기장과) 거리가 있는 면까지도 다 숙박시설이 만실이다"며 "평균 6일을 이곳에서 머무는 데 지역이 들썩들썩할 정도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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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5.01.11 10:06

[전북 이슈+] "이곳만한 곳이 없어요"⋯ 익산·순창, 최상의 훈련환경 제공

전국에서 최적의 전지훈련지로 부상한 익산시·순창군은 1월부터 선수단 발길이 계속 이어지면서 지역 전체가 들썩이고 있다. 2025시즌 준비를 위해 이달 익산시를 찾는 선수단은 총 10팀, 순창군은 15팀이다. 지금도 전지훈련이 한창이다. 지난 7일 주목받고 있는 전지훈련지의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찾은 익산시종합운동장. "하나! 둘! 셋!" 우렁찬 목소리가 운동장 밖까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점심을 먹고 오후 훈련을 시작한 서울 대치중 야구부 선수들이다. 동계 전지훈련을 위해 익산을 찾은 것도 벌써 3년차다. 지난 7년 동안 전남 영암에서 전지훈련을 해 온 대치중 야구부 선수들이 익산으로 담금질을 하게 된 것은 이동 시간·날씨 영향이다. 전남과 비교해 날씨가 크게 춥지 않은 데다 영암은 편도 5시간이 걸려 선수·학부모 등이 불편함을 겪었다는 것이다. 박철홍 감독은 "익산에서 배려해 주신 덕분에 부족한 것 없이 잘 지내고 있다. 다른 시·도로 가면 모텔에서 자는 경우도 많다. 익산은 유스호스텔도 있고 가장 중요한 음식이 너무 좋다. 전체적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운동장 시설도 좋다 보니 서울에 있는 팀들이 서로 오고 싶어 할 정도다. 야구장이 없어서 못 오는 지경이다"고 말했다. 도보 3분 거리에서는 육상(투척) 종목 전지훈련도 진행되고 있었다. 육상(투척) 종목 국가대표 상비군 역시 3년째 익산을 찾고 있다. 김순윤 감독은 "제가 감독을 지내는 동안에는 계속 익산으로 전지훈련을 올 생각이다. 전국체육대회를 개최해 시설·장비를 모두 갖추고 있는 편인데다 대여도 어렵지 않아 전지훈련을 진행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고 했다. 익산시는 전국대회를 통해 전지훈련을 유치하고 있다. 보통 전국대회를 위해 익산을 찾았던 팀이 당시 기억 속 익산이 좋아 다시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익산종합운동장에 전지훈련이 가능한 야구장·운동장 등이 밀집돼 있다 보니 팀끼리 정보를 공유하는 일도 어렵지 않다는 점이 선수단 감독의 마음을 끌고 있다. 음식이 맛있고 숙박비도 큰 부담이 없어 환경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전지훈련 최적지로 꼽힌다. 익산시는 더 많은 선수단을 유치하기 위해 올해 중으로 익산종합운동장 내 매립장 부지를 활용해 일반·리틀야구장을 1면씩 추가로 조성한다.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완공할 계획이다. 지난 8일 폭설이 내린 순창에서는 고교 야구 전지훈련이 한창이었다. 장안고 야구부는 5년째 방문 중이다. 실내 연습장이 있어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날씨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장안고를 순창으로 끌어들였다. 박건민 감독은 "다른 선수단을 보면 비가 오네 눈이 오네 이야기하지만 순창군은 실내 연습장이 너무나도 잘 돼 있다 보니 별 걱정 없다. 반팔 입고 운동해도 될 정도로 따듯한 온도가 유지돼 있다. 올해 웨이트장도 조성한다고 해서 지금보다도 더 많은 선수단이 순창을 찾으려고 할 듯하다"고 전했다. 순창군은 지역 특성상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실외 연습장의 경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제설 작업까지 완벽히 처리해 야외 훈련도 할 수 있게끔 준비를 해준다. 또한 선수들이 추위를 녹여가며 훈련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공무원들이 직접 따뜻한 어묵을 제공하는 등 최고의 행정서비스를 펼쳐 박수를 받고 있다. 여기에 팀당 전지훈련비를 지원하고 실내다목적구장, 실내야구연습장, 야구장 등 체육 시설을 무상으로 빌려 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9월에는 전지훈련 유치 확대를 위해 조례를 개정했다. 기본 경기장 사용료 외 경기장 조명, 냉난방기 등 부대 사용료도 모두 무료다. 또 산악지역으로 눈이 자주 내리고 춥다 보니 전지훈련 유치에 불리하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한 시설을 조성했다. 실내구장과 실내야구연습장을 건립하는 등 지속적으로 스포츠 인프라를 확충해 가고 있다. 동시에 스포츠 마케팅 지원팀을 운영하는 등 선수단을 밀착 지원하고 있다. 순창군은 오는 2026년까지 순창공설운동장 부지 내 선수단을 위한 트레이닝센터를 건립한다. 사업비 50억 원을 들여 지상 3층 규모(1층 휴게실, 2층 체력단련실, 3층 경기운영본부·실업팀 사무실)로 조성할 계획이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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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1 10:06

[전북 이슈+] 전지훈련 유치에 '왜' 열광하나⋯ 이유는 "지역경제 활력"

추운 겨울을 피해 따뜻한 지역으로 전지훈련을 떠나는 선수단 덕분에 지역경제에 수억 원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12일 순창군에 따르면 지난 8일 기준 전지훈련을 위해 전국에서 15개 팀 242명의 선수와 코치진이 찾아왔다. 이들이 하루 동안 소비하는 식사비, 숙박비, 간식비 등을 합하면 1인당 약 4만 7000원이다. 여기에 선수단의 수까지 합해 하루 동안 발생하는 지출 비용만 계산해도 1137만 4000원에 달한다. 선수단이 최소 일주일에서 한 달까지 머무는 것을 고려하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익산시도 올해 전지훈련 기간 동안 6개 종목 1296명의 선수와 코치진을 유치해 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선수단이 하루 동안 익산시에서 지출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6091만 2000원에 이른다. 실제로 익산시는 지난 2023년 3개 종목에서 1077명의 선수를 유치해 1억 9300만 원의 경제효과를 봤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조금 늘어난 4개 종목 1324명의 선수가 찾아와 3억 48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익산시청 관계자는 “찾아오는 선수는 1000명대이지만 학부모 등 부대 인원까지 더하면 동계 전지훈련 기간 동안 2000~3000명 정도가 익산을 찾는다”며 “이들까지 합하면 경제효과는 더 커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들이 하루만 있다가 가는 게 아니라 최소한 2주는 머물다 간다. 그러면 최대 10배 이상의 지역경제 효과가 있어 전지훈련 유치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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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1.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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