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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향에서] 한미 FTA와 전라북도 - 남형두

한미 간에 FTA 협상이 타결되어 양국은 이제 각기 국회의 비준을 앞두고 있다. 국회 비준이 끝나면 국내법 개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결국 한미 FTA 내용은 국내법에 그대로 반영되어 우리가 지켜야 할 법규범이 되는 것이다. FTA는 양자간 협상으로서 일괄타결을 원칙으로 한다. 따라서 한 부문이 이익을 얻게 되면 다른 부문에서 양보를 해야 하는 것으로서, 그간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치열한 공방 끝에 현재의 협정문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끝까지 가장 큰 관심을 끌었던 농업 및 축산물 분야는 기간의 문제일 뿐 결국 개방과 무한 경쟁의 틀로 가는 것으로 정해졌다. 미국 의회는 그마저도 불만스러운지 쇠고기의 즉각적인 수입재개 없이는 비준하지 않겠다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다. 미국 농축산업의 경쟁력을 따라잡을 수 없는 우리로서는 깊은 한숨이 나오는 대목이다.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이렇게 한숨 나는 대목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와 섬유산업은 일본, 중국 등 경쟁국을 따돌리고 미국 시장에서 상당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중국의 무서운 질주는 미국 내에서 우리 공산품이 갖게 될 경쟁력을 빠른 시일 내 FTA 이전으로 떨어뜨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잠시 몇 년 동안의 호황을 맛본 후 경제에 깊은 주름살만 남길 수도 있다. 농업등 1차산업의 피폐와 장기적으로 2차산업의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저작권등 지적재산권 분야는 우리가 미국에 대폭 양보한 분과로 알려져 있다. 미국측 요구에 따라 저작권보호기간을 현행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양해한 것이 주 골자다. 이로써 출판계를 위시하여 문화계의 불만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다.저작권이 강화된다는 것은 문화소비자에게는 불편을 초래하고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문화생산자에게는 더욱 큰 창작의 유인을 제공하는 것으로서 장기적으로 볼 때 문화를 풍성하게 하고 문화산업을 발전시키는 토대가 된다.한미 FTA는 농축산업의 비중이 높은 전라북도에 큰 타격을 줄 것이 예상된다. 반면 문화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전라북도는 저작권의 강화로 인하여 문화산업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위기는 말 그대로 위험한 기회다. 위기를 넘기지 않은 위인이 없듯이 나라나 지방자치단체도 위기를 선용하게 되면 그만큼 큰 발전을 하게 된다. IMF 경제체제가 그러했듯이 FTA는 명암이 있는 경제문제다. 전라북도가 FTA가 가져다줄 위험한 기회 중, 문화산업을 중흥시킬 기회를 포착한다면 큰 도약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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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4.19 23:02

[타향에서] 축제에도 콘텐츠를 - 오태수

곳곳에서 축제가 열리고 있다. 특히 지자체 실시 이후 각 지역에서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체험의 기회를 접할 수 있어 굳이 서울 중심권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됨이 의미 있고 반갑다. 봄이 되면서 밖으로 쏠리는 마음은 저마다의 놀이마당을 물색하게 만들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정보는 대개 방송이나 신문을 통해 얻어내게 된다. 그런 상관관계는 TV프로그램의 경우 음식이나, 관광, 그리고 건강 같은 주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높고 인기가 있다는 것에서 반증된다. 그래서 시청률을 의식하는 제작자는 정보로서도 가치가 있는 여가활용 소재를 일부러 선택하기도 하고 또 그런 점을 이용해 축제 관계자는 언론사와 접촉하며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펴기도 한다. 작년에 전국에서 치러진 축제가 725개, 지역마다 그렇게 경쟁적으로 행사를 치르다 보니 특히 TV매체의 경우는 지자체마다의 적극적인 홍보 대상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느 해는 어떤 이가 나를 찾아와 자기네 행사를 프로그램에 소개해 달라며 협박 비슷한 간청을 하던 일이 있었다. 방송을 등에 업고 행사장의 부스판매와 입장료 수익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그런가 하면 예산을 그렇게 헤프게 써도 되나 싶을 정도로 수억, 수십억의 협찬비를 제시하며 행사의 공동 주최나 후원과 함께 많은 횟수의 TV스파트를 요구하기도 한다. 공익성보다는 정치적 흑심으로 전시효과를 노리는 경우가 없지 않아 엄격한 심의의 잣대를 댄다. 모두가 TV의 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소비자로서의 시청자는 현명하고 냉정하다. 아니다 싶으면 다시는 찾아가지 않는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것은 축제의 성격과 그 안에 담기는 콘텐츠가 아닌가 싶다. 콘텐츠가 좋으면 방송이 스스로 행사장을 찾아 나서게 되어 있다. 우리 지역의 지평선이나 반딧불 같은 축제는 지난 해 우수축제로 뽑혀 정부지원과 함께 바람직한 축제로 자리매김한 편이지만 그러나 전국적으로 대대수의 행사는 컨셉과 프로그램상의 콘텐츠가 미흡하여 전문성이나 차별성이 떨어지고 거기에다 선심이나 과시, 무사안일로 인해 막대한 예산만 집행될 뿐 겉치레 행사가 많았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방문객 유치 숫자를 마구잡이로 계산하거나 상품 판매액수를 구매의향 계약액이라는 허수에 불과한 애매한 숫자로 부풀리고 도비나 국비까지 수입으로 잡아 흑자행사로 둔갑시키면서 성공적인 행사로 치부하기도 한다. 이제는 단순한 눈요기 감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차원에서의 전통성을 살린 다양한 현장체험 기회, 양질의 특산품 판매, 풍부한 먹거리와 편안한 잠자리까지를 제공하여 실질소득과 연계되는 방안이 정착되어야 한다. 그래서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창출해 내고 주민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고 나아가 지역민의 단결과 화합을 통해 자긍심과 애향심까지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좋은 계절 속에 전주국제영화제, 남원 춘향제 등 우리 고장의 많은 행사들이 차례로 손님맞이를 준비하고 있다. 그 모두 귀중한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고 보면 모든 축제들이 보다 독창적이고 풍부한 콘텐츠로 꾸며져서 성공한 행사로 평가되길 바란다. 여기에는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지만 주민 스스로의 감시역할 또한 중요함을 첨언하고 싶다. /오태수(KBS방송문화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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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4.12 23:02

[타향에서] ‘해란강아 말하라’ -노경식

중국 연변의 연길시 한 호텔(羅京飯店)에서 가볍게 한식뷔페로 아침을 때우고 두만강을 찾아 보려고 승용차를 출발시킨 것은 대략 오전 아홉 시경이었다. 중조변경(국경)을 백두산에서부터 동북쪽으로 흘러 동해 바다로 들어가는 두만강을 만나보는 것은 누구한테나 가벼운 흥분과 설레임을 갖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내 나라의 북쪽 땅끝 두만강 물줄기를 건너서 북한의 함경도 산천도 일별해 보고-- 우리들 서울 연극인 일행 셋은 바로 어젯날(3월 15일) 오후에 이곳에 도착했었다. 우리의 연변방문 목적은 연변연극단(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연극단의 약칭)의 서울 초청공연 및 남북의 연극교류 문제 등을 논의하자는 데 있었다. 연변연극단은 50여 년의 긴 역사를 가진 중국 유일의 예술단체이자,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에 있는 극단 고려극장과 더불어 전세계에서는 단 두 개밖에 없는 조선어극단(모국어) 중의 하나이다. 그건 그렇고 연변 연극인 방미선 교수(연출가)의 친절한 안내와 자상한 설명을 들으며, 우리는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 남동쪽으로 룡정(龍井)을 향해 달려내려갔다. 때마침 50년래의 폭설로 얼마 전에 내린 50센티의 흰눈이 드넓은 산야와 마을들을 하얗게 뒤덮고 있었다. 이 눈밭이 다 녹자면 앞으로 4, 5월은 돼야 한다나? 시원하게 뚫린 자동차 도로는 한적하다시피 차량들도 드문드문 적고, 차갑고 맑디맑은 공기에 시원하고 푸른 하늘이 겨울 정취를 완연하게 한다. 오늘 기온은 영하 10도인데, 바람이 없어서 오히려 포근한 편이란다.우리는 중간 지점인 룡정 시가지를 어느새 지나고, 출발한 지 겨우 50여 분만에 목적지인 두만강가 삼합해관(三盒海關)에 닿았다. 우린 촉박한 일정 때문에 우선 먼저 두만강의 한 곳만을 찾아보고, 다시금 연길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역사 유적지도 몇 군데 둘러보기로 한 것. 해관은 중국식의 세관(稅關)이란 뜻인데, 두만강 7백 리에 걸쳐서 중국과 북한간의 국경세관은 모두 7개란다. 고성리, 남평, 삽합, 개산툰, 도문, 훈춘시의 사타자 및 권하해관 등등. 삼합해관의 강 건너는 함경도 회령시. 강 위에 놓여 있는 허술한 콘크리트 다리는 화물 트럭 한 대가 겨우 건너갈 수 있는 너비에 길이는 불과 30여 미터. 우리가 다리 난간쪽으로 가까이 접근하자 경비병이 제지한다. 작년 가을까지만 해도 인민폐 10위안을 주면 다리 중간지점(경계선)까지 걸어가볼 수 있고 사진도 찍게 할 수가 있었다나? 에게게- 여기가 두만강? 개천이네, 실개천! -- 연출가 김성노씨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내뱉는 말. 물론 여기서는 강의 상류쪽이라 그렇다 치고, 지금은 위쪽 무산 철광에서 흘러내리는 광산폐수와 갖가지 오염물 때문에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은 전설로만 남아 있고 온통 검은 물뿐이란다. 그렇다면 오늘은 하얀 백설과 얼음장이 강물을 덮고 있어서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이다.이곳 삼합에서부터 호랑이와 늑대, 산도적이 들끓는 오랑캐령을 넘고 록장(鹿場)과 달라자(智新)를 지나서 명동, 선바위, 룡정, 국자가(延吉)로 이어지는 노정은 험난한 북간도 길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 중의 하나였단다. 해서 지금이야 편한 세상이지만 그 길을 따라서 우리는 되돌아간다. 지신향 명동촌의 윤동주 생가와 김약연선생기념비, 룡정 지명의 유래가 된 룡두레 우물터, 멀리 비암산의 일송정 풍경과 화룡시의 광활한 평강벌, 항일독립운동의 요람 룡정시를 관통하는 해란강 등 -- 이 북간도의 젖줄 해란강은 연길의 부릉하통하와 만나고, 도문에 이르러서 두만강과 합류, 넓은 동해 바다로 흘러간다.나는 돌아오는 승용차 안에서 지그시 눈 감고 우리의 저항시인 윤동주의 <서시> 한 구절을 가만히 읊조려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해란강아 말하라! 남북의 한민족과 땅덩어리가 평화통일이 이루질 그때 그날이 언제쯤인가를 ---- /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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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4.05 23:02

[타향에서] 환경 친화적 지역발전을 - 이정식

세계화는 인간과 자연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지구환경시대이다. 근대 문명은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위한 토대를 제공했지만 인간생존의 근본적 기반인 자연을 도구화하고, 황폐시키는 우(愚)를 범했다. 지구온난화, 오존층의 파괴, 대기와 수질의 악화, 토양의 오염, 생물종(生物種)의 감소 등이 지구환경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다. 전 지구적 환경위기의 극복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이제는 발전과 환경을 배타적인 개념으로 보지 말고, 환경 자체가 발전의 중요한 전제이자 기회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 환경적으로 건전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제 시스템이나 도시 및 지역발전 시스템, 그리고 우리의 생산과 소비양식 전체가 환경 친화적으로 전환되지 않으면 안 된다.예를 들면 우리나라는 1년에 약 336억 톤의 물을 사용하는데 이 중 생활용수는 72억 톤에 이른다. 비록 각 유역별로 수자원의 공급과 이용은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우리가 생활용수의 10%만 가정에서 아껴도 섬진강 상류의 주암댐 규모와 비슷한 양의 물을 절약하게 된다. 가격의 탄력성은 아직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물 값을 인상해서라도 물의 수요관리와 물의 사용습관부터 고쳐야 한다. 아직도 상수도의 누수율(漏水率)이 14.8%이고, 무수율(無收率)이 13.3%임을 감안하면 낡은 상수관의 교체는 물론이려니와 계량기를 조작하여 물 값 덜 내는 몰염치한 행태도 사라져야 한다.날로 악화되어가고 있는 수질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도시 내의 낡은 하수관부터 정비하고, 빗물과 폐수를 철저히 분리하여 2차, 3차 처리까지 가능한 하수종말처리장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이와 함께 도시와 농촌에서 사용하고 있는 합성세제, 비료, 농약 등의 양을 줄여야 하고, 특히 하천의 부영양화(富營養化) 원천인 축산폐수를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이다. 이러한 비점 오염원(non-point pollution)을 체계적으로 차집(遮集)하여 처리할 수 있는 기술개발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의 환경보전의식에 대한 학습과 계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한편 대기오염은 오존층의 파괴를 유발하고, 이는 다시 엘리뇨(El Nino)와 라니냐(La Nina)라고 하는 이상기후를 초래하여 홍수, 태풍, 가뭄 등 자연재해를 우리에게 안겨준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매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저유황유의 사용과 매연차집기의 설치가 의무화되어야 하며, 대기오염의 또 다른 원천인 자동차, 특히 경유를 사용하는 승용차, 버스, 지프차, 트럭 등의 매연가스를 줄일 수 있는 노력과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우리나라 자동차 대수는 이미 1,500만대를 넘어 섰으며, 이 중 30%의 경유차가 매연가스의 64%를 배출하고 있다. 산성비와 토양오염으로 인해 늦가을의 낙엽이 썩지 않는 것은 낙엽을 썩게 하는 미생물종이 사라져 버린 결과이다. 흙의 영양분이 고갈되고 있다. 생태계의 파괴가 우리에게 주는 경고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이정식(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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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29 23:02

[타향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 남형두

잠시 미국의 로스쿨에 체류할 때의 일이다. 방학 때면 텅 비어야 할 학교가 학기 중 보다 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지역 변호사협회의 연수회가 방학 중에 학교시설을 연수장소로 활용했던 것이다. 땅 덩어리가 좁지도 않은 나라인데 변호사협회 건물이나 연수원이 없어서 대학의 강의실을 빌려 쓰는가 싶어 이상하였다.우리의 경우 무슨 행사를 한다고 하면 맨 처음 공간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연수회를 한다면 연수원건물부터 생각하는 것은 그 이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연수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연수할 내용이 아닐까?마찬가지로 공연을 활성화한다고 하면 거대한 공연장부터 생각하는 것이 우리네 습관이다. 그러나 이제 서울 외에도 어지간한 지방자치단체는 천 석이 넘는 규모의 대형 공연장을 갖춘 경우가 많다.문제는 이러한 하드웨어를 채울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갖춰져 있느냐에 있다. 안에 채울 내용물이 충분하지 않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전라북도는 다르다. 사람의 오감을 울리는 여러 가지 문화가 풍부하다 못해 넘치는 우리 고장이 다른 지역과 같이 강당을 짓는데 경쟁하는 것 보다는 이 안에 넣을 사람과 문화를 발굴하고 지속적으로 발전시키는데 투자하는 것이 더 좋아 보인다. 서너 해 전, 국립극장 야외무대에서 자정이 넘도록 안숙선 명창의 수궁가 완창을 감상한 적이 있다. 안 명창은 세 시간이 넘도록 2백여 명 관객들의 배꼽을 빼놓더니 출출하면 뒷마당에 준비해 놓은 막걸리와 빈대떡으로 요기하라는 친절까지 베풀면서 대공연을 완성하였다. 비슷한 시기에 조수미 공연과 중국 장예모 감독의 투란도트 공연이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렸다. 하늘극장의 공연과 상암구장의 행사를 단순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여운이다. 공연장인지 경기장인지 알 수 없는 곳에 운집한 사람들밖에 기억나지 않는 행사와 달밤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함께 어깨춤을 추고 어우러진 그 밤 공연은 문화의 품격에 있어서 차원이 다르다.그런 점에서 영국 여왕이 찾았다는 안동의 하회별신굿 탈놀이는 시사하는 점이 크다. 2백여 평 남짓한 마당에 겨우 두 세 계단 정도 되는 관객석을 갖추고 연중 상시공연하는 하회탈춤극은 몇 시간이 걸려서라도 일부러 찾고 싶은 곳이자 공연이다.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소리의 전당을 생각할 때 문화의 중심인 전라북도에 이런 공연장이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그런데 장중한 소리의 전당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리꾼이다. 어떤 가수의 노랫말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우니까.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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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22 23:02

[타향에서] 꽃나무가 있는 풍경 - 오태수

봄 프로그램을 만들다가 대춘(待春)으로 설레는 사람들의 정서에 편승하여 며칠이라도 먼저 봄을 보여주고 싶어 과장된 표현을 할 때가 있었다. -올봄에는 예년보다 일주일 일찍 꽃망울을 터뜨렸다는 식인데 그렇게 개화시기를 해마다 앞당겨 둘러댔다면 아마 지금쯤의 봄꽃은 대한 추위에 피었어야 맞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정말로 개화시기가 예년보다 열흘 정도나 앞당겨져 버렸다. 남녘의 매화와 산수유 화신은 진즉 들려왔었고 주초까지 잠시 차가왔지만 집 앞 가까운 산자락에도 봄이 와 있다. 가지마다 내려앉은 화사한 햇살에 생강나무가 맨 먼저 노오란 꽃봉오리를 피운 것이다. 진달래보다 일찍 피는 생강나무 꽃은 정선아리랑에 동백꽃 이름으로 등장하여 임 그리는 애틋한 사연을 취재했던 시절과 선친의 본향에 유난히도 많이 피었던 모습이 점철되어 유독 정이 쏠리지만 어떻든 잎보다 꽃이 먼저 피어나는 나무들을 대하면서 나만의 감흥에 빠져 잠시 추억 속을 유영해 보기도 한다. 지금 이대로의 꽃바람이라면 다음 주말 무렵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는 얘기를 고향의 지인으로부터 전해들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기가 좀 늦더라도 가로수 벚꽃 보다 아무렴은 산벚꽃 소식이 기다려진다. 전주 승암산과 모래재 주변 산자락에서 보았던 동화 같은 파스텔 톤의 환상적인 연분홍빛 아름다움과 온통 벚꽃으로 치장되어 그 자체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어버리는 완산칠봉 봄날 풍광의 장관이 눈에 선하다. 어디 그 뿐인가. 벚꽃들의 향연이 끝나면 나무마다 새움이 빠르게 돋아나면서 나무들 저마다가 만들어 내는 신비스런 신록의 파노라마와 바래봉의 철쭉 등으로 이어지는 나무들의 축제 시리즈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아카시아나 신갈나무처럼 번식력과 자생력이 강한 나무들 덕분에 그동안 우리 산이 빠르게 푸르러 진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런 획일적인 산림녹화에서 탈피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인식시켜 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검은 숲으로 불리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독일의 유명한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인공으로 조성된 침엽수림이지만 사철 거무스름한 색깔을 하고 있어 사람들이 싫증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이제는 계절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숲으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우리도 단순한 식목만을 생각할 것이 아니라 산의 다양한 변화를 기대할 수 있는 조림으로 옮겨가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암시한다. 식목 시기는 진즉 찾아왔고 나무시장도 곳곳에 열려 있다. 가정과 직장 그리고 지자체 그 나름대로 시간과 기회를 만들어 이왕이면 꽃과 잎과 열매가 모두 좋은 나무를 심어 보자. 굳이 산이 아니더라도 좋을 것이다. 산에서만 봤던 노란 꽃과 붉은 열매의 보기 좋은 산수유와 이팝나무, 자귀나무 같은 것이 이미 가로수로 등장했듯 생강나무, 산딸나무, 산목련 같은 나무들이 도심에 심어진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먼저 계절을 맞아들여 자연과 대화하며 공존하는 기쁨을 가질 수 있지 않겠는가.꽃나무 앞에 서면 갈 곳 없는 바람도 따스해진다 했다. 비록 감수성이 예민하지 않더라도 꽃나무 한그루라도 심겠다는 마음을 지금 가진다면 빈들처럼 허허로워진 가슴에 생기가 돌고 꽃잎이 피어나는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을 만큼 분명 삶이 풍요로워 질 것이다. /오태수(KBS방송문화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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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15 23:02

[타향에서] '동편제' 에 홀린 사나이 - 노경식

高敞城 높이앉아 羅州풍경 바라보니/ 萬丈雲峰 높이솟아 층층한 益山이요/-- 南原에 봄이들어 각색화초 茂長하니/ 나무나무 任實이요 가지가지 玉果로다~판소리 단가 <호남가>의 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판소리 음악이 지난 2003년에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일은 알만한 사람은 익히 알고 지내는 터. 그런데 오늘은 그 판소리의 태동지인 남원 고을에서 25여 년 동안을 지리산 동편제 소리에 미쳐(?) 발품 팔며 혼자서 소리소문 없이 연구하고 있는 무명의 전문가 한 사람을 소개치 않을 수 없겠다. 그의 이름은 김용근(48)씨로 지리산에 가까운 산내면 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평범한 공무원이다. 그의 태생으로 말하면 남원시 주천면의 육모정 근방인데, 고향에서 학교를 나오고 곧장 지방공무원 생활에 들어가서 근무연한 21년째이며, 어쩌다가 판소리 음악에 재미 붙여서 옹근 25년간이란다. 그러니까 지리산 동편제의 뿌리와 맥을 찾아서 그는 잊혀지고 묻혀 있는 자료수집과 발굴 및 현장조사를 위해 긴긴 한세월을 바치고 있는 셈이다. 전라도 섬진강을 중심으로 그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판소리 유파[法制]가 발달한 모양인데, 광주 나주와 보성 장흥 고창 정읍 등지는 서편제라 이르고, 지리산록의 동쪽 남원 운봉을 중심으로 한 구례 순창 흥덕 임실 전주는 동편제라고 부른다. 서편제[界面調]란 그 소리가 맑고 높고 아름답고 애원처절하여 여성적이라면, 동편제[羽調]는 뱃속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로 장중하고 씩씩하고 호방하고 웅건청담하여 남성적이라는 것. 어쨌거나 19세기 중엽 조선왕조 말에 판소리를 집대성하고 동편제를 일으킨 송흥록 선생은 남원 운봉면의 비전거리[碑殿里]가 탯자리이다. 가왕(歌王) 송흥록의 출생지가 운봉이란 것은 전설적으로 전해 올 뿐 실증적 자료도 별로 없고 전무한 상태이다. 그런데 김용근은 송씨 가문의 족보를 뒤지고 호적을 찾고 또 찾아서 송흥록 선생의 6대장손 아무개씨가 현재 경기도 수원에서 버젓이 건재하고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그러고 그의 공적 중 또 하나 예를 들자면, 지난 일제강점시기의 암흑과 광기 속에서 우리네 서민대중의 시름과 한과 설음을 달래주던 명창 이화중선(李花中仙)에 관한 출생지와 주소 및 묘지 등을 근근히 찾아내고 그 잘못을 바로잡기도 했다. 흔히 알려진 바와 같이 이 명창의 고향은 경상도의 부산이 아니고 전라도의 남쪽 바닷가 목포(남교동 12번지)이며, 그녀가 남원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그당시 유명한 남원권번에서 기생수업을 하였고 남원읍내 천거리가 주거지였다는 등등. 동편제에 홀린 사나이 김용근씨! 고향 땅에서 그냥 공무원 생활이나 잘하고 지내면 좋을 텐데, 무슨 판소리 귀신이 씌우고 애향심이 발동해서 그 지랄(?)이며 그 고생일꼬? 생각하면 그 공무원에게 경의와 찬사를 보내고 싶을 뿐이다. 엊그제 YTN 인터넷방송에 올해 전주시에서는 가정주부 학생 어린이 할 것 없이 판소리 대중화 운동에 나서서, 시민들이 <호남가>를 배우느라고 한창이라는 토막뉴스를 봤다. 오매오매, 신명나고 좋은 일이고말고 잉. -- 우리 호남의 굳은 法聖, 全州百姓을 거나리고/ 長成을 멀리쌓고 長水로만 돌아들어/ 礪山石에다 칼을갈아 南平樓에다 꽂았으니/ 조선예의란 三禮도 으뜸인가, 거드렁거리고 놀아나보세. * 노경식씨는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초, 중, 남원농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소작지 井邑詞 하늘만큼 먼나라 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들 등 장단막극 30여 편을 썼으며,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산문학상, 동랑유치진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서울특별시문화상 (연극)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차범석연극재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노경식(극작가서울평양연극제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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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8 23:02

[타향에서] BIT산업의 융합으로 지역발전을 - 이정식

세계화는 경제적 상호의존과 무한 경쟁이 교차하는 지구촌 시대이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경제로 통합되면서 기업들의 초국적화는 더욱 빨리 진행되고 있다. 글로벌(global) 경영체제를 갖춘 기업들은 투자매력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들고 있다. 그동안 국가의 보호아래 국경 안에서 안주해 온 경제주체들은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는 자유경쟁에 뛰어들 것을 요구받고 있다. 이 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힘, 즉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사명이다.한 국가의 경쟁력을 키우는 과정은 토지, 노동, 자본 등 전통적인 생산요소의 투입에 의한 발전과정을 거쳐 핵심기술 및 혁신에 의한 발전, 그리고 최종단계로 축적한 부(富)의 분배?소비에 의한 발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요소투입과 자본투자의 확대를 통한 경제발전을 토대로 이제 혁신에 의한 발전을 추구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따라서 과거의 중후장대(重厚長大)형 제조업에서 정보기술과 접목된 지식기반산업의 창출이 국가와 지역발전의 핵심으로 등장하고 있다.세계적인 미래학자 토플러(Alvin Toffler)는 혁신 중심의 문화와 분위기를 구축하는 국가가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는 우리나라 지식기반산업의 핵심을 생명공학(BT)과 정보기술(IT)의 융합(BIT)에서 찾으라고 권고하였다. 특히 바이오칩(biochip) 기술의 성공적인 개발을 통해 우리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그는 전망하고 있다. BIT 융합기술은 미래형 융합기술 산업의 대표 주자로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분야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가 혁신주도형 신성장 시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미래 유망산업의 발전전략이 수립되어야 한다. 전라북도도 예외는 아니다.전북의 성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차세대 성장동력의 창출을 통한 지역발전이 추진되어야 한다. 전북의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醬類) 식품과 젓갈류, 치즈, 복분자 및 머루주의 주류(酒類), 그리고 홍삼과 한약 등을 포함한 미생물 발효식품은 이미 그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전통식품의 발효기술에 기초한 바이오산업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장류 식품과 김치 등의 냄새를 제거하고, 기능성을 제고하여 이들 산업의 고부가가치화를 위해서는 우수 균주(菌株) 등을 활용한 발효기술의 개발이 필수적이다. 더 나아가 생체 바이오칩 기술과 결합된 각종 암과 당뇨병 등을 위한 면역치료제, 세포치료제, 유전자치료제 등이 개발되면 전북의 발효식품도 이를 토대로 맞춤형 기능성 식품이 개발되어야만 차세대의 BT산업과 의료진단 관련 IT산업의 융합을 도모할 수 있다. 전북의 미래를 좌우할 성장동력의 창출에 필요한 산업혁신 인프라 확충과 함께 R&D 투자 확대, 전문인력 양성, 전략적 국제기술협력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비전과 전략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이정식(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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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3.01 23:02

[타향에서] 입신(入神)과 입신(入身) - 오태수

대부분의 대학이 이번 주에 졸업식을 끝냄에 따라 많은 젊은이들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들어서야 할 취업문은 여전히 굳게 잠겨있어 일자리를 얻기 위한 경쟁이 몹시도 치열하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도 심한 경쟁을 뚫고 올해 백 명 정도의 신입사원이 들어왔다. 학연이나 지연을 내 세울 일은 못되지만 그래도 팔이 안으로 굽어 고향 쪽 출신을 살펴보니 몇 사람 반가운 얼굴이 보인다. 지방대학의 핸디캡을 딛고 학과와 실기, 합숙평가, 면접 등의 까다로운 전형과정을 통과하여 입사했기에 더욱 정이 쏠린다. 이들은 일단 안정적인 급여와 신분을 확보하게 됐으니 취업난 시대의 요즘 유행어로 치면 신의 아들이 된 것 아닌지. 어떻든 남보다 더 노력한 결과로 신도 모르고 신도가고 싶어 한다는 선망의 직장을 구하여 그야말로 입신(入神)의 경지에 이른 취업자들과 비록 모자람이 있다 할지라도 나름대로의 직업을 갖게 된 사람들 모두에게 축하를 보낸다. 그렇지만 한 사람당 30군데 이상에 이력서를 제출하고서야 겨우 취업에 성공한 사람이 응답자의 45%나 된다는 한 취업관련 사이트의 통계와 취업률이 좋다는 어느 전문대 입시에 석 박사를 포함한 무려 700명이 넘는 대졸 고학력자가 몰리는 기현상에는 경악할 따름이다. 눈높이를 낮추면 취업문이 열릴 것이라고 얘기들 하지만 현재 구직난을 겪고 있는 사람만도 전국적으로 120만 명 정도에 달한다 하니 이런 암담한 현실 앞에 누군들 신의 가호를 기원하지 않겠는가 싶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태백이나 어둠의 자식들로 분류되어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는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마음을 전한다. 나도 한 때 이태 동안 무위도식한 바 있어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리기에 불투명한 구직활동이 계속되면서 점점 자신감을 상실하거나 자포자기 상태에 이르러 대인기피증까지 보이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를 부단히 경계해 주길 바랄 뿐이다. 한편으로 대학에서는 강의에 전념해야 할 교수들마저 취업실적을 위해 현장을 뛰고 취업률을 부풀려 홍보해야 하는 일이 흔하게 벌어지고 있다. 취업률이 신입생 충원여부를 결정하게 되어 학과의 존폐는 물론 학교경영과 위상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이해한다. 나에게도 가끔 부탁을 해오지만 모두들 힘들어하는 저간의 상황에서 취업문제에 대해서는 나로서도 신을 찾아야 할 만큼 역부족인 처지이고 그 때마다 주변에 얽혀있는 이런 저런 연분을 찾는다는 게 결국 사회적인 병폐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쉽지가 않다.그러니 어찌 하겠는가. 정부도 어찌하지 못하고 있으니 신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취업문은 당사자 스스로가 열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취업문제에 당면한 모든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전유물인 투지와 패기를 잃지 말고 칠전팔기의 도전과 자립정신을 최대한 발휘해 주길 기대해 본다. 우리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 했지만 그러나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는 나무 없다고 했다. 선택은 당연히 후자여야 한다. 그래서 더 많은 고향출신 젊은이들이 어떤 연분이나 신의 도움 없이도 당당히 입신(入身)하여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내 주변에서 자주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취업준비자들이여- 아자! 아자!/오태수(KBS방송문화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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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22 23:02

[타향에서] 삼양설탕과 아버지 - 남형두

요즘 핸드폰에는 음성인식 기능이 있다. 핸드폰을 열고 미리 입력된 이름을 발음하면 전화번호가 뜨고 통화버튼을 누르면 전화가 걸리는 기능이다. 그런데 기침을 몇 번 한 후 목소리를 가다듬고 똑똑히 발음해도 주변 소음 때문에 잘 안 되는 경우가 많다. 혹 삼사십년 전에 이미 이런 기능을 가진 전화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지금은 0번에 자물통을 채운 다이얼식 전화기도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보다 더 골동품은 공전식 전화기다. 수화기를 들기만 하면 전화국 교환수가 안녕하세요 하면서 어디 연결해 드릴 건지 물어본다. 발음이 시원치 않아도 심지어 정확한 이름을 몰라도 대개 교환수들은 척척 알아듣고 신기하게 잘도 연결해 준다.매년 이 맘 때가 되면 아버지는 자식들과 함께 백여 포가 넘는 3킬로그램 들이 삼양설탕을 선물종이로 포장하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요새로 치면 백화점택배 같은 것이다. 사업을 하셨기 때문에 군청, 경찰서 등 관공서에 감사의 뜻으로 돌렸을 것이다. 그밖에도 아버지는 선생님과 지인들에게 돌릴 설탕을 아들과 딸들이 직접 전달하게 하셨다. 그 중에서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앞서 말한 전화교환수들이다. 1년 내내 고생한 그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아버지는 설탕 한 포에 담아 돌리셨던 것이다. 발이 페달 끝까지 닿지 않는 육중한 짐자전거에 설탕 십여 포를 싣고 가다, 그땐 겨울이 지금과 달리 길고 응달진 곳은 내린 눈이 녹지 않아, 가로등도 없는 어둑한 골목길에서 기우뚱거리다 넘어지기를 반복한 끝에 다 돌리고 집에 올 때면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자식들에겐 팥죽에 설탕도 한 숟갈 넘게는 못 넣게 하시면서 남들한테는 포대 채로 돌리시다니. 어떨 때는 반항심으로 설탕을 몽땅 한곳에 버리고 오고 싶을 때도 있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전화교환수들에게 설탕 안 돌리면 전화 안 바꿔주나 하는 마음에 아버지를 원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똑 같이 설탕 한 숟갈 씩 넣었는데도 아이들 그릇에 담긴 팥죽은 내 것보다 항상 달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그새 두어 숟갈 씩 더 넣었겠지. 애비도 옛날에 그랬으니까.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가지런히 잘라 설탕을 듬뿍 뿌리고, 샘에서 막 퍼올린 시원한 냉수 한 사발에 설탕 한 숟갈 넣고 휘 저어, 한 여름날 러닝셔츠 차림의 지금 내 나이 쯤 되었을 흑백 사진 속의 아버지께 올려 드리고 싶다.설을 앞두고 칠산어장에서 잡아 올린 게로 만든 곰소 꽃게장을 몇몇 분들께 보낼 주문을 하면서 우리 먹을 것을 빼다가 사진 속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소스라치게 놀란다./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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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15 23:02

[타향에서] ‘남원시립도서관’을 위하여 - 노경식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의 보잘 것 없는 이들 몇 권의 장서는 본인으로선 피 같은 책들입니다. 극작가 노경식의 칠십 평생이 그 책들 속에 오롯이 담겨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마도 마누라와 자식들 빼놓고는 애지중지 가장 내가 사랑하고 아껴왔던 물건들입니다. -- 장서의 이름은 불초 하정당문고(下井堂文庫)로 정했습니다. 짐작이 가시겠지만, 옛날의 남원 읍내 下井里 83번지 주소는 본인이 그곳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흙장난치며 자라나 그곳에서 용성국민(초등)학교와 용중 및 남원농고를 줄곧 다녔으며, 노경식이가 서울에 대학진학을 한 뒤로도 내 할머니께서 돌아가실 때(1970년대)까지는 40여 년 세월을 어머님과 함께 농사 짓고 살아오셨던 인연 깊은 곳이기 때문입니다.--이 글은 내가 갖고 있던 몇 권의 책들(3청여 권)을 남원시에 기증하면서 시장님에게 보낸 편지글의 한 구절입니다. 본인이 관련된 일이라서 조금은 남세스럽고 안된 일이기도 합니다만, 저간의 남원 실상을 알리고 호소한다는 뜻에서 얘기를 꺼내기로 하였습니다. 지난 2003년도에는 우리나라 판소리 음악이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당당히 등록되었고, 그 중에서도 지리산 자락 남원이야말로 세상이 다 아는 <춘향전>과 <흥부가>의 탯자리이자 예향으로 불리는 본고장이올시다. 그런데도 지금껏 문화시설(도서관) 하나 없다니 될 법한 일이겠습니까. 흔히 도서관은 지식과 정서의 곳간이요 마음의 양식 창고라고들 합니다. 그런 의미에선 부끄럽고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겠지요. 어쨌거나 이번 일을 빌미로 남원시에서는 시립도서관 건립을 위한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입니다. 떡이나 빵에는 팥소가 있어야 제 맛이듯이 도서관에는 책과 자료가 있어야 제 격이지요. 그런데 소프트웨어가 없어서 되겠습니까? 우리 남원을 고향으로 갖고 계신 분이거나 아니거나 또는 출향해서 멀리 떨어져 외지에 살고 계시거나 아니거나, 평소에 내가 아끼고 손때 묻은 책들을 나눔의 광장으로, 공공의 장소에 쾌히 내놓는다는 것은 실로 보람차고 뜻 깊은 일일 것입니다. 여기서 남원시장님(최중근)의 적절한 한 말씀. 다만 우리는 귀한 책들을 시민을 위해서 잘 보관하고 관리하고 이용할 할 뿐이지요. 본인이 어느 날 책을 돌려달라고 하면 언제든지 반환할 수 있습니다. 책이야 한 권도 좋고 열 권도 좋고 30권도 좋습니다. 뜻 있는 독지가 여러분, 당신님의 소중한 책을 남원으로 보내소서! 춘향골 남원 시민들의 마음의 양식이 되고, 정서함양과 알뜰한 여가선용을 위하여. 그러고 보니까 장차 남원시립도서관의 장서가 시나부로 늘어나서, 10만 권 50만 권 하는 그날 그때를 꿈꿔 봅니다.* 노경식씨는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초, 중, 남원농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소작지 井邑詞 하늘만큼 먼나라 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들 등 장단막극 30여 편을 썼으며,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대산문학상, 동랑유치진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서울특별시문화상 (연극) 등을 수상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차범석연극재단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노경식 (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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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08 23:02

[타향에서] '설득의 예술'로 지역발전을 - 이정식

우리는 지난 1960년대 이후 20세기말 까지 놀랄만한 경제성장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성장의 저력은 무엇이었을까? 혹자(或者)는 수요와 공급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원리와는 달리 일종의 특수이론인 발전국가론(發展國家論)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이는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에 의한 민간 기업가정신이 경제발전의 요체라고 주장하는 경제발전론과는 반대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발전국가론은 국가가 민간기업가의 역할과 기능을 담당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의 과거 경제발전은 국가 기업가론의 속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첫째, 국가가 경제발전에 필요한 자본을 직접 세계은행 등에서 조달하고, 이를 배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과거 경제기획원의 경제개발5개년계획이 그 기능을 수행해 왔다. 둘째, 국가가 경제발전에 필수적인 각종 인프라를 직접 계획하고 개발하였다. 고속도로, 댐, 항만 등은 물론이고 크고 작은 산업단지까지도 국가가 직접 개입하였다. 셋째, 국가는 자본가와 근로자에게 일정한 규율(discipline)을 부과하여 기업경영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였다. 우리 젊은이들의 군복무 경험은 이러한 규율에 익숙해 질 수 있었다. 넷째, 새로운 산업기술 역시 시장논리보다는 국가가 우선순위를 설정하였다. 전자, 조선,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의 육성을 위한 각종 관련 법 제정이 그 대표적 사례이며, 신산업기술 개발에 필요한 연구개발(R&D)도 민간이 아닌 국가가 직접 주도하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비롯한 많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설립이 이를 증명해 주고 있다.결국 우리는 범정부 차원의 국가산업정책, 즉 국가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것이 국가의 주요 기능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개발독재체제로부터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그리고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에는 지역간의 분쟁과 갈등 때문에 지역개발사업의 추진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특히 정부(GO)와 비정부기구(NGO)의 역할과 견해 차이에서 발생한 새만금 사업과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등의 국가프로젝트에 대한 논란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분쟁조정을 위한 설득의 예술, 그리고 정답(正答)을 끌어낼 수 있는 토론문화의 정착과 인내심은 아직도 우리에게 요원한 숙제인가?세계화와 무한경쟁시대에 시장의 자율성은 더욱 커져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는 개개인의 가치판단기준이 다양화되면서 삶의 질에 대한 기준도 다원화되어 가고 있다. 과거 정부주도의 경제 및 지역개발의 기반이 되었던 경험적 지식에 대한 흥미가 퇴색되어 가는 일종의 발전피로증후군이 또한 우리 사회를 뒤덮고 있다. 이러한 신드롬에서 탈피하고, 21세기 메가트랜드(megatrend)에 적응해 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는 요구받고 있다. 지역발전에 필요한 이해당사자간의 합의형성을 위해 민주주의적 절차와 규범을 찾아내는 것이 민주화와 지역발전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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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2.01 23:02

[타향에서] 메밀꽃과 라디오스타 - 남형두

몇 해 전 메밀꽃 필 무렵의 이효석 생가가 복원되고 기념관이 건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봉평을 찾은 적이 있다. 마을 초입부터 봉평 장을 재현한 듯(?) 온통 막걸리에 감자전 판이었다. 허기사 소설에도 충주집이라는 주막이 나오긴 하지만. 주점 안에 들어가 생가와 기념관을 물어보면 대개가 모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이상한 사람인 듯 쳐다 본다. 물어물어 찾아간 기념관은 대로변에서 가장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하였다. 모두 충주집에서 다리가 풀렸는지 이곳까지 온 사람은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봉평을 찾은 것은 아이들에게 그 물방앗간과 희다 못해 필시 소금을 뿌려 놓은 듯한 그 메밀밭, 그리고 왼손잡이 동이 뒤에서 터덜터덜 대화 장으로 걸어가는 허생원이 보았던 그 밤 벌판을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충주집만 보고 왔으니 먼 길을 부러 간 것이 허탈했던 기억이 있다.지난 해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라디오스타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는 같은 해 왕의 남자로 대박을 터트린 이준익 감독이 만들었다. 이감독은 라디오스타 관람객이 백만을 넘자 왕의 남자의 천만 관객 보다 소중하다는 말로 이 영화를 자평하였다. 영월이라는 작은 지역에 전성기가 지난 퇴물 가수가 지역라디오방송 DJ로 나오고, 영월의 유일한 록 밴드 이스트리버(동강)가 이 지역의 사람 사는 이야기와 함께 인터넷방송을 통해 전국을 석권해 버린다. 이 영화 제목은 버글스라는 영국의 팝그룹이 부른 Video Killed The Radio Star에서 나온 듯싶다. 그런데 제목과 달리 흘러갔어야 할 라디오스타가 비디오시대에 다시 살아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으니, 영화 못지않게 제목이 주는 감동이 대단하다.교통의 발달은 세계를 가깝게 만들었다. 그런데 인터넷은 세계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동시대로 만들어 버렸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뜻하는데, 인터넷의 동시성은 장소의 간격을 메운 것이다. 이로써 더 이상 지역문화와 지역지식산업은 설 땅을 잃은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지역성(locality)에 터 잡지 않은 보편성(universality)은 큰 매력을 갖기 어렵다. 인터넷 시대에 지역성은 포기할 수 없는 콘텐츠다. 오히려 인터넷에 의해 이전에는 쉽게 알려지지 않았던 지역성, 지역문화가 널리 확산될 수단을 얻은 셈이니 지역성에 터 잡은 문화는 더 많은 유포와 교류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감자전은 봉평이 아니어도 된다. 그러나 이스트리버는 영월에만 있다. 첫 원고에 웬 강원도 타령이냐 묻는다면 문화자산이 풍부한 우리 고향이 혹 감자전을 팔고 있거나 그럴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기우에서다.△남형두 교수는 부안출신으로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워싱톤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사법시험합격 뒤 저작권심의조정위원.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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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25 23:02

[타향에서] 자연이 돋보이는 터전 - 오태수

서울에서 천안까지의 긴 거리가 거대한 건물 군(群)으로 메워졌다. 수도권 영역은 어느 새 천안까지를 잠식한 셈이다. 그 공간에는 아파트와 각종의 생산시설, 물류창고 같은 건조한 모습들이 차지해버려 산과 들의 아늑한 스카이라인 보기가 쉽지 않다. 지금은 자연보존권역을 정해 난개발이나 인구와 산업 집중을 막고 있지만 그 때문에 공존해야 할 자연과 인간과의 조화는 찾기 어렵고 사람들의 정서도 많이 황폐해 졌다. 고향에 내려갈 때 마다 차창을 통해 느끼는 단상이다. 우리 고장엔 아직 때타지 않은 자연이 잘 살아 있어 다행이다. 그리고 그 안에 존재하는 우리 고유문화가 난 참 자랑스럽다. 우리나라 경제개발 초기의 특정산업의 지역 편중 육성으로 내 고향 삶터는 아직까지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태여서 소득이 낮고 인구 유출이 많은 편이지만 그러나 부끄러운 것은 아니다. 빈곤상태를 벗어나게 되면 재산이 늘더라도 그것이 행복으로 직결되는 것이 아니라 했다. 경제력과 삶의 질과는 아주 미미한 상관관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계량화 된 수치는 없지만 굳이 행복지수를 따진다면 아마 우리 쪽이 훨씬 높지 않을까 생각된다. 고향 발전을 꾀한다며 낙후라는 꼬리표를 들춰내고 그럴듯한 구호를 붙여 멀쩡한 자연을 생채기 내면서 경제 제일의 가치만을 강조한다면 그에 따른 환경훼손과 오염, 교통체증, 위화감 조성 같은 폐해로 인해 지금 다른 지역에서 안고 있는 고민처럼 오히려 그게 더 부끄러운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개발과 경제력의 당위성은 공감하지만 조금 부족하고 더디더라도 자연을 안고 가야지 자연을 경시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횡포이자 오만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청계천에서 봤듯이 이제 자연을 되살려 내면 큰 박수를 받고 자연 그 자체가 돈을 만들어 주는 세상이 됐다. 그래서 거대한 인공시설물이 돋보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연이 돋보이는 터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환경 속에서 인물도 길러진다고 보면 미래에 대한 집중투자 대상은 이제 자연과 문화 그 자체여야 하고 그것이 결국 값진 자산으로 부각되고 널리 평가받게 되리라는 것은 자명하다. 이를테면 천연 그대로의 섬진강 보전이나 전통문화중심도시로의 육성 같은 것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최근의 정부 통계 하나를 보니 장차 은퇴하면 농촌에 들어 가 살겠다는 대도시 직장인이 조사 응답자의 60%에 달했다. 도시의 사회 경제적 압박 속에 그냥 떠밀려 산다고 푸념하면서도 마음은 언제나 농촌과 같은 자연환경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의미다. TV 농촌드라마 대추나무 사랑걸렸네가 냉혹한 시청률 싸움에서 10%대를 유지하며 17년 동안 프라임시간대에 살아 남아있는 것도 필시 그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며 살가운 이웃과 따뜻한 정 나누면서 살고파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소중한 자연과 문화유산을 우리 스스로 홀대하여 지금 수도권이나 산업지역에서 겪고 있는 중병을 자초하고 삭막한 터전으로 퇴행시키는 잘못은 없어야 한다.고향 쪽을 둘러 본 주변사람들이 너른 들과 깨끗한 산천, 그 안에서 문화를 가꾸어 가는 사람들의 곱고 여유로운 심성을 꼽으며 모처럼의 인상적인 감회와 여운을 나에게 들려줄 때마다 난 흐뭇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약력: 남원 출생. 원광대와 동국대 대학원 졸업. KBS PD로 6시내고향, 한국의 미, TV문화기행, 도전 지구탐험대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편성정책 주간, 방송콘텐츠 주간, 전주방송총국장, 시청자센터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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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18 23:02

[타향에서] 중단할 수 없는 발걸음 - 노경식

어느 호사쟁이 역술가의 꾸민 말인지는 모르나 황금돼지의 해 2007년이 밝아온 지도 벌써 1월 달의 둘째 주를 지나가고 있다. 전북일보의 애독자 온 가정에 부디 건강과 행운이 다 함께 충만하시기를 ~나도 올해는 좀더 생광스런 일이 일어나기를 빌어보며 이것저것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그 중의 한 가지는 국립극장으로부터 위촉 받고 있는 창작극을 기필코 완성해내는 작업이며, 또 하나는 내가 지금 관련 맺고 있는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회의 일. 벌써부터 2, 3년째 북한연극 바로알기 차원에서 해마다 토론회를 갖는다, 심포지엄을 연다 이것저것 노력은 하고 있으나 별무 성과다. 중국의 베이징이다 선양이다 하고 방문해서 북쪽 인사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는 등등. 허기사 하는 모든 일이라는 것이 첫 숟갈에 배 부를 수가 있으랴. 지금 남쪽 연극인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서울평양(평양서울)연극제 창설의 발상은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것이다. 그 옛날, 1930년대의 일제강점하에는 경평(京平)축구대회라는 멋들어진 행사가 있었단다. 그러니까 서울 경기중학과 평양의 숭실학교 학생들이 만나서 해마다 한데 어울어져 신명나게 한바탕 웃고 떠들어대며 북과 남 지역간의 친목과 스포츠 발전을 위해서. 그렇다면 6.15공동선언 정신을 계승하고 평화통일과 남북화해를 위해서 한바탕 신명나게 굿판을 벌여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 엄혹했던 일본제국주의 시절의 스포츠 행사가 나라 잃은 설음의 한풀이이요 신명이었다면, 오늘날 우리들의 광대놀이 굿판은 민족분단으로 허리 끊어진 설움의 한풀이이자 신명이 아니랴! 지난 해에는 한민족 100년 대토론회를 열어 멀리 중아아시아의 카자흐스탄(알마티)과 중국 연변에서 동포 연극인들이 왔으나, 정작 가장 가까운 북쪽에서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문이란 두드리면 열리겠지, 머. 해서 금년엔 평양연극의 초청공연을 추진할 생각이다. 공연작품은 북쪽이 자랑하는 <불후의 고전적 명작- 성황당>이나, 아니면 <혁명연극- 딸에게서 온 편지> 정도. 두 작품은 각각 미신타파와 문맹퇴치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서 이데올로기와 사상면에선 좀 떨어져 있는 셈. 그런데 하는 일이 엉성하고 서툴러서 그런지 아직은 갈길이 멀다는 생각이다. 여기서 지난 번의 토론회 때 개회사에서 한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할까 한다. 우리는 여기서 중단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연극인의 걸음걸이가 비록 지지부진하고 미미하며, 별로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 느린 소 걸음일망정 이대로 중단할 수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오늘이 아니면 내일이 있고, 내일 아니면 다음달, 또 다음달이 아니면 내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우린 어떤 신념과 의지와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남쪽과 북쪽은, 우리가 엊그제 10월 3일 개천절을 기념하여 모신 단군성조야말로 남과 북의 똑같은 할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옛날 고조선에서부터 3국시대, 고려왕조와 조선조 때까지 누천년의 역사와 정치 속에서, 똑같은 문화와 똑같은 말, 똑같은 풍속으로 더불어 살아왔으며, 우리의 세종대왕께서 창제하신 한글을 남과 북은 똑같이 나라 글자로 함께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뿐입니까. 그것은 지난 세기에 있었던 처절한 우리의 독립투쟁 역시 선열들의 공동목표는 남과 북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똑같이 일본 제국주의로부터의 국권회복이요 민족해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평범하고 지당한 역사적 진실과 민족적 동질성을 설명하자면 끝도 없을 것입니다. -- * 1938년 남원 출생으로 남원용성초, 중, 남원농고, 경희대를 졸업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 당선으로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달집 징비록 소작지 井邑詞 하늘만큼 먼나라 萬人義塚 징게맹개 너른들 등 장단막극 30여 편이 있다. 백상예술대상 희곡상(3회) 한국연극예술상,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작품상, 동랑유치진 연극상,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서울특별시문화상(연극)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고문, 한국문인협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노경식(극작가, 서울평양연극제 추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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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11 23:02

[타향에서] '그룹 리더십'으로 지역발전을 - 이정식

다사다난했던 병술년(丙戌年)을 뒤로 하고 정해년(丁亥年)의 새해가 밝아왔다. 복되고 탐스러운 돼지의 해를 맞이하면서 우리 모두가 금년에는 갈등과 질시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약과 화합을 통해 국운 융성의 한해가 되기를 먼저 기원한다. 우리 도민들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동안 도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새만금 사업은 방조제의 완공을 계기로 사업추진이 점차 가시화되어 가고 있다. 도민들의 집념과 끈기의 결실이 맺어진 셈이다. 이제 새만금 사업에 쏟아 부었던 열정과 노력을 전북의 새로운 도약에 필요한 성장동력의 발굴과 추진에 몰입(沒入)하는 금년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그러기 위해서는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에 걸맞는 지방행정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미국은 기업가형 지방경영을 지향하고 있다. 이는 지방정부 부문에 기업가 정신과 경쟁요소를 도입해 지역주민들의 만족을 극대화하고, 지역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해 그 지역의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다. 일본도 지방의 경쟁력을 제고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자는 사고(思考)의 틀 속에서 지방화 시대에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급변하는 국내외 여건변화와 기회를 최대한 활용해서 지역발전의 성장동력을 체계적으로 조직화하고 실천하는 데에는 누구 혼자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바로 그룹 리더십(group 또는 syncretics leadership)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이것이 성장동력을 키우는 지방화 시대의 핵심 요소이다.그룹 리더십이란 지방자치단체의 장, 대학의 총학장, 연구기관, 기업가 대표, 언론계, 시민단체 등이 협의체를 구성해 지역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는 조정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면 기업의 유치와 활동에 필요한 자금, 인력, 시장개척, 관련 행정서비스 등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각종 협의회 등을 구성하여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이해 당사자들 간의 반목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이른바 지역 거버넌스(governance)의 묘미를 최대한 활용하는 전략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첨단산업단지인 미국의 리서치 트라이앵글(Research Triangle)과 프랑스의 소피아 앙띠폴리스(Sophia Antipolis)는 그룹 리더십에 의해 성공한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함께 세방화(世方化) 시대에 적응해 갈 수 있는 도민들의 가치관과 행태 등 의식구조의 변화도 중요하다. 개인과 집단, 그리고 지역이기주의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 지방화와 애향심은 다르다. 다른 지역보다 뒤떨어졌다는 패배의식에서 벗어나 우리 도민들도 남보다 앞서 갈 수 있다는 자부심이 발휘되어야 한다. 일을 하는데 편법을 쓰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처리한다라는 논어의 옹야편(雍也篇)에 나오는 행불유경(行不由徑)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우리나라와 전라북도의 밝고 찬란한 한해를 염원해 본다. 모든 일에 항상 정도(正道)를 따르겠다는 다짐과 함께.<프로필>△임실 △서울대 △국토개발연구원 수석연구원 △국토계획학회 상임이사 △대통령비서실 사회간접투자기획단 자문위원 △ 국토연구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 △안양대교수 △저서 국토개발동향과 과제/이정식(안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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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01.04 23:02

[타향에서] 미국에 대한 애증 - 김은섭

친구!우리는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 태어났지. 우리가 철이 막 들을 무렵 자네는 말했지. 고향은 내가 지킬테니, 객지에 나가 돈을 벌어 지독한 가난을 물리치라고... 그 때부터 나의 타향살이는 시작되었고, 그 후 고향에 들를 때면 자네는 굳은살이 박인 내 손을 꼭 쥐고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한 밤 내내 이야기를 했지. 그젯밤도 여느 때처럼 그랬다네. 요즈음은 고향에서도 한미 FTA, 영어마을, 조기유학 붐 때문에 힘이 든다며 덧붙여 미국에 대한 사랑과 미움에 대해 말했네. 동감하네.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을 우리만큼 많이 받은 세대가 또 있을까? 미국과 우리의 관계는 시작부터 애증이 뒤섞여있지 않았나 싶네. 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딛기 위해 출항시켰던 제너럴 셔먼호는 대동강에 상륙하기도 전에 좌초됐고(1866년), 5년이 지난 신미년에 우리를 침공하여 강제 개항하려 했던 미군함대는 강화도에서 패하여 퇴각했었어(1871년 신미양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미국과 최초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게 되었지(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제1조 불공경모(不公輕侮), 필수상조(必須相助). 이후 미국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 특히 미국 선교사들은 교육과 의료 사업으로 우리 민족을 일깨워 주웠어, 고향의 전주 신흥학교, 기전학교, 예수병원도 이 때 태동하였지. 그러나 선교사업과 국제정치가 항상 같지만은 않지. 많은 선교사들이 한일합방 전후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던 데 반해, 미국정부는 일본이 조선과 만주를 지배할 것을 용인하겠다는 가쓰라-태프트 밀약(1905.7)을 극비리에 체결하여 조미수호통상조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기도 했지. 그럼에도 결국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한 것은 미국이 일본을 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닌가싶네. 이후 한국전쟁과 계속되는 남북대치상황, 그리고 전후 경제난을 견뎌내고 경제대국 10위로 성장해 오면서 미국과 우리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네. 한 때는 우리의 절대적인 친구라고 믿었고, 한 때는 철저한 자국 중심적 행태에 서운해 하기도 했지. 친구! 자네는 심각한 표정으로 지금 또 다른 개항이 시작되었다며, 형태만 다르지 100년 전과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고 했네. 다자간 무역협정인 WTO와 양자간 무역협정인 FTA가 시시각각으로 우리의 목을 죄어오고 있지. 무역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다고, 그러나 100년 전 상황이 피할 수 없는 것이었듯 지금의 상황도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자네는 말했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네. 미국과의 FTA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난 한 세기 동안 겪어왔듯 국제정치에서는 +도, -도 없네. FTA의 성사를 통해 얻는 것과 잃는 것, 얻는 사람들과 잃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런데 지금 우리를 보게. 한 쪽에서는 잃는 것만이 많다고 하며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고, 한 쪽에서는 얻는 것만이 많다고 무조건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네.워싱턴 DC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들을 기리는 참전비가 서있지. 미국과 우리는 미군병사 52천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혈맹의 우의를 변함없이 다져가야 할 것일세. 이것이 우리 자식들에게 굳은 살 없는 삶을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네. /김은섭(교육인적자원부 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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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21 23:02

[타향에서] 전북, 한국의 대표 브랜드가 되라 - 지동훈

전북을 관광브랜드로 육성하기 위한 F-TOUR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맛과 멋, 그리고 소리의 고장인 전북을 보다 널리 알림으로써 늘어나는 관광객을 통해 지역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전북도의 전략이다.전라북도는 무엇보다 풍부하고 다양한 전통문화유산과 더불어 다양한 전통축제, 각종 체험프로그램 등 국내외 관광객들의 관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주 5일근무제의 확대 시행에 따라 지난해 보다 전북지역을 찾은 관광객의 수요가 20% 이상이 증가한 가운데 F-TOUR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내년에는 보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올 것이라 기대된다.또한 전라북도에서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지와 한식, 한옥, 국악, 한복 등 한(韓)스타일 전략기지화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고 지방언론을 통해 접했다.이 사업은 굳이 한 브랜드 사업이 아니더라도 전통문화 콘텐츠 계승과 재창출을 위해선 반드시 추진됐어야 했다.풍부한 문화유산과 천혜의 자연조건, 최첨단 시설 등 전통과 미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북을 참신하고 독보적으로 디자인해 세계시장에 내놓고 한국을 느낄수 있는 전라북도를 널리 알리고 아울러 관광수입을 통해 지역경제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이러한 F-TOUR 프로젝트와 한스타일 전략기지화 구축 사업은 상호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는 필자의 생각이다.전통적인 생활양식과 현대도시에서 변형된 도시경관, 전통문화예술, 전통음식 등 전통과 현대가 어울려져 공존하고 있는 전라북도는 타 지역에 비해 실제 삶 속에서 이 모든 것들을 균형 있게 지니고 있는 유일한 지역으로 F-TOUR 프로젝트와 한스타일 전략기지화 구축 사업이 조화롭고 성공적으로 구축된다면 한국적인 색채가 옅어지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전북을 통해 한국을 배울 수 있는 새로운 시발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이제 전라북도는 국내관광지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한국을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들이 한국을 체험하고 한국을 배울 수 있는 장소로서 한국의 대표 브랜드가 되기를 기대한다. /지동훈(주한 유럽연합상공회의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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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14 23:02

[타향에서] 싱가포르 발전과 실용주의 - 박차웅

말레이시아 반도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서울크기의 작은 섬인 싱가폴은 비즈니스와 관광 중심 국가이다. 싱가폴은 원래 1967년 영국이 철수를 하면서 국가로 되기 위해서는 크기가 너무 작다고 판단하여 말레이시아의 한 주로 귀속되기를 희망했다. 하지만 인구의 70%가 중국계이어서 말레이시아와 이질적인데다가 종교, 관습 등도 다르고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아 1968년 말레이시아는 귀속을 거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 뒤 싱가폴은 살아남기위해서 실용주의와 경쟁력을 국가모토로 삼고 노력해온 결과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살기좋은 나라가 되었다.최근 방문한 싱가폴의 센토사 코브라는 지역은 매우 인상적인 곳이었다. 원래 센토사라는 섬은 싱가폴 밑에 매달려 있는 여의도만한 작은 섬인데 싱가폴 정부는 처음에는 시민들의 유원지로, 나중에는 국제적인 리조트로 개발해서 많은 관광객들을 끌어들였다. 이섬의 동쪽으로 튀어나와 있는 곶 부분을 센토사 코브라 부르는데 원래 이곳은 습지와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버려진 땅으로 가치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싱가폴 정부에서 여기에 요트계류장으로 사용할 물길을 내고 지목을 대지로 변경하여 몇백평 단위로 분필을 한 뒤 부자들에게 개별분양하고 또 기업들에게 대단위로 분양하여 대규모 콘도미니엄 단지 개발을 하도록 했다.그냥 버려진 모래땅에 여기저기 200~300평 단위로 줄을 그어 놓았는데 이 땅의 분양가가 우리돈으로 거의 40억원이라고 하니 기가 막혔고 또 분양이 다 끝났다고 해서 놀랐다. 가이드는 싱가폴 정부는 이렇게 벌어들인 돈을 서민들을 위한 공공아파트(HDB)를 짓는 재원으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국의 관료나 정치인들이 싱가폴에 와서 오차드로드(대표적인 쇼핑가)나 리버사이드(관광중심지)에만 있지말고 이 모래땅에 와서 이들의 실용주의를 배워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기실 싱가폴의 관료들은 국영기업 경영자와 겸직하거나 서로 자유로이 교환됨으로써 비즈니스적 감각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훈련받고 있는 나라이다. 그래서 수상에서 하급관리에 이르기까지 비즈니스맨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한다. 비즈니스맨 같다는 말은 바로 실용주의를 의미하고 이러한 실용주의적 정신은 모래땅을 부자들로부터 수억 달러를 끌어들이는 재원으로 활용하고 이 돈으로 다시 서민들에게 주택을 공급하는 재원으로 사용하는 원천이 되는 것이다.싱가포르인 82%가 거주한다는 HDB 주택은 건폐율이 400%이상이고, 발코니, 담장이 없으며, 엘리베이터도 3개층 단위로 운행하고 관리인도 없애 관리비를 최소화해놓는 대신에 공급가를 1억원(전용면적 100㎡ 기준) 정도로 해서 서민들의 주택마련에 대한 부담을 없앴다고 한다. 멀리 바라보이는 인도양의 석양이 아름다운 센토사 코브를 걸으며 실용주의적 사고로 황무지에서 노다지의 대지로 바꾼 이들의 혜안에 다시한번 감복했다. /박차웅(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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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2.07 23:02

[타향에서] 연말 고향모임 풍경 - 윤승용

며칠 전 가까운 고교 동문 선후배들과의 점심자리에서였다. 이날 동석하기로 했던 정부부처의 한 국장급 간부가 식사시간 10분이 지나서야 부처의 긴급한 일로 참석이 어렵겠다고 연락해왔다. 이 전갈을 들은 한 선배분이 버럭 화를 내며 그 친구 요즘 사람이 변했어. 통 동문 모임에 얼굴을 안 비쳐. 아예 고향 쪽에 등을 돌릴 셈인 가봐라고 쏘아 부쳤다.이어 참석자 중 서너명이 그 국장에 대한 서운한 심사를 잇달아 털어놨다. 내가 최근에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회신이 없더라고... 자기 동기들 모임에도 거의 발을 끊었다지? 순식간에 식사자리는 그 국장에 대한 성토장으로 변모해버렸다. 가까스로 한 원로 선배가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가 수상해서 가급적 동향모임 참석을 자제하는 모양이니 일단 이해해줍시다라고 말해 성토극은 막을 내렸다.며칠만 지나면 12월이다. 누구나 각종 동창회, 향우회 등 한 해를 매듭 짓는 이런저런 모임이 줄을 이을 것이다. 아마 그런 모임에서마다 어쩌면 앞서 묘사한 성토극이 재연될 지도 모른다. 당연히 비난 대상은 향토 출신 정치인, 관료, 기업인 등일 것이다. 이 같은 성토극은 과거에도 물론 있었겠지만 DJ정부에 접어들면서 줄을 이었다. 초기에는 그간 비호남 출신으로 행세하다 정권이 바뀐 후 나도 실은 고향이 그쪽 이랑께라며 커밍아웃한 인사들에 대한 비난이 주류를 이루었다. 어느 모임에서건 아니 그 친구가 호남사람이었어? 초등학교때 상경해놓고 이제 와서 전북출신이라며 결국 이번 인사때 지역안배 케이스로 우리 TO마저 잡아먹었다니까라는 말들이 오가곤했다. 기왕지사 고등학교까지 촌에서 나오는 바람에 호남인출신임을 이마에 써 붙이고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 눈에는 나도 전라도인이라는 커밍아웃 시리즈는 실소를 넘어 분노마저 들게 할 정도였다.이 같은 호남출신 커밍아웃은 참여정부들어서도 계속되더니 요즘 들어서는 양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당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희박해져가자 관료나 대기업 임원들의 경우 다시 과거처럼 고향 숨기기 등을 시도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한 양상의 일단이 동문 모임이나 향우회 등에 발길을 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고향모임에 발길을 뜸해하는 인사들에게 너무 가혹한 눈길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자의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처신해야만 하는 본인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리고 그렇게라도 살아남는 게 오히려 훗날 고향을 위해 도움이 될 수도 있지는 않을까? 또한 무슨 이벤트만 있으면 동향 오너 기업인이나 대기업의 임원 들에게 협찬이란 이름아래 손을 내미는 풍토도 이젠 지양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적인 민원으로 이들을 귀찮게 하는 일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일단 그 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진정 고향을 사랑하는 길이다. /윤승용(국방홍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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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11.3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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