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07 12:38 (Fri)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타향에서
일반기사

[타향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내 고향 - 남형두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필자의 고향은 부안이다. 읍내에 사셨던 아버지는 새만금 물막이로 육지가 되어 버린 하서 앞바다 갯벌에서 얼마간 조개양식업을 하신 적이 있다. 여름 방학 때면 조개를 먹어치우는 소라를 잡으러 어린 아이 무릎까지 빠지는 개펄에 나가곤 했다. 일본에 수출한다는 잘생긴 어린 대합을 잡아먹는 흉측한 소라에 대하여 어린 마음에 적개심(?)을 품고 열심히 잡아댔다.

 

갯벌에도 강이 있다. 물이 들고 나면서 생긴 길게 패인 곳인데 썰물 때 물이 빠져도 여전히 먼 바다 쪽으로 물이 흐르고 있어 마치 작은 강같이 보인다. 양식장 간의 경계를 위해 쳐 놓은 그물이 이런 강을 가로지르는 곳에는, 썰물 때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물고기들이 어김없이 어른 키 높이 정도의 그물에 박혀 있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나무에서 과일을 따듯 그물에 박혀 있는 고기를 빼서 자루에 담을 때면 그렇게 옹골찰 수가 없었다. 이런 장면은 지금도 내 고향 부안이 아니면 어디서도 경험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소라 잡으러 갔다가 온갖 잡어들 잡는 재미에 푹 빠져 밀물 드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첨벙대며 뛰어 나온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한번은 온 가족이 각자 큰 자루에 가득 물고기와 소라를 잡아 나오다가, 앞서 말한 강에 막혀 건너지 못하고 돌아 나오느라 때가 늦어 자루를 버려두고 황급히 나온 적도 있었다. 어둑해질 때 무섭게 밀려드는 그 바다는 어릴 적 내게 두려움을 주었다.

 

초등학교 때 무슨 경시대횐가 하는 일로 군산에 간 적이 몇 번 있었다. 김제와 만경을 거쳐 군산에 가는 시외버스는 1시간 40분 정도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어디에서도 멀미약 광고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지만, 멀미약을 먹고도 늘 비닐봉지를 준비하였던 그 덜컹거리는 군산 가는 길은 어찌나 멀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서울에서 운전하다보면 간혹 교통방송 중에 부안톨게이트 부근 교통상황을 듣게 된다. 무심코 운전하다가 부안이란 소리에 귀를 의심하곤 한다. 서해안고속도로를 타다보면 2시간 만에 군산에 도착하고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시원한 길을 조금 간다 치면 이내 부안이 나온다. 불과 20여분도 걸리지 않는 이 길을 그 옛날 멀미약을 먹고 갔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하면서도 스스로도 믿기지 않아 말꼬리를 흐려버린다.

 

부안과 군산 사이를 메운 새만금, 이 광활한 땅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논란이 한창이다. 그곳에 공단이 들어설 지, 골프장이 들어설 지 아무 것도 확정된 것이 없다. 그러나 공단의 어느 지점인가 그 옛날 필자가 물고기를 땄던 곳이 있을 것이고, 골프장이 되어 있을 어딘가는 멀미로 차를 세워 찬바람을 쐬던 그 바닷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갯벌에서 바라본 서해낙조가 더욱 그리워진다.

 

오늘로써 "타향에서" 연재를 마친다. 마지막 글은 내 고향 부안을 위해 남겨둔 것이다. 모두 여섯 번의 글을 쓰면서 그 때마다 고향을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에 눈자위가 촉촉해진 기억이 있다. 이런 기회를 주신 내 고향과 전북일보에 감사와 함께 큰 절을 올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남형두(연세대 법대 교수·변호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