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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지역감정을 해소하는 것은 남북통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우리 역사상 지역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핵심이 영호남간의 갈등이나 차별은 아니었다. 지역감정은 7대 대선 때 당시 국회의장이었던 대구 출신 이효상씨가 만들어냈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며 당시 공화당 박정희 후보 지지를 유도한 게 지역감정의 효시가 됐다. 60년대만해도 선거결과는 여촌야도(與村野都)였다. 60년대부터 지역주의가 횡행, 남남 갈등이 생겼다. 국가 인재등용은 물론 국가예산배분 과정에서 차별이 심했다. 권력의 심장부에 영남 출신들이 대거 진출해 전북은 변방으로 내몰렸다. 전북 출신 고위 공직자 중에는 본적을 서울로 옮겨 놓기도 했다. 지역감정 뿌리가 워낙 깊게 박혀 선거 때마다 악순환이 반복됐다. 호남과 영남에서 지난 30년간 싹쓸이 선거만 이뤄졌다. 전북에서는 황색 깃발만 꽂으면 막대기라도 당선됐다. 그간 역량있는 후보들이 지역주의를 극복하려고 총선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지난 19대 총선 때 전주 완산을서 한나라당으로 정운천 후보가 출마했으나 선거 막판에 야권후보로 표 결집이 이뤄져 36%를 얻는데 만족해야 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18대 대선때 전북에서 13.2%를 얻었다. MB가 얻은 9% 보다 많지만 그 정도는 선거운동을 안해도 얻을 수 있는 고정표다.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이 내년 총선 때 호남에서 당선자를 내야 지역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정서로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대구 수성갑에서 새정연으로 김부겸이 순천에서 새누리 이정연이 출마하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전북에서도 새누리당이 특단의 카드를 마련해야 한다. 도민들 가운데는 그 대상자를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으로 본다. 선대가 500년간 임실에서 살았고 남원에서 출생해 전주북중을 졸업할 때까지 학창시절을 전주에서 보낸 김 실장을 가장 적임자로 꼽는다. 김 실장은 35사단장, 합참의장과 MB 때 국방장관을 역임하고 현 정권서도 국방장관을 거쳐 안보총사령탑인 국가안보실장을 맡는 등 실세로 알려져 더 가능성을 높게 본다. 준 전시상태로까지 간 남북대치상황을 43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통해 해결책을 마련한 김 실장이 국가안보책임자로서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주의를 풀 수 있는 인물로도 적임자라는 것이다. 뜻 있는 도민들은 ‘김실장을 내년에 전주나 임순남지역서 출마시켜 당선시키면 전북의 어려운 상황이 상당 부분 개선될 것’이라면서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일할 시간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말한다. 도민들은 ‘국가안보가 국익의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서 김 실장 신상 문제를 말하기가 곤란하지만 이제는 그 경륜을 지역주의 해소하는데 썼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카리스마가 강한 김 실장이 과연 현실 카드가 될까.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8.31 23:02

위대한 유산의 힘

중세, 유럽의 수도원은 종교적 영역에서 뿐 아니라 학문과 지식의 거점이었다. 수도원들은 장서를 모으고 필사본 책을 만들면서 점점 소장하는 책들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이 때문에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도서관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 오랜 전통을 가진 도서관 중의 하나, 스위스의 북동부 도시인 장크트 갈렌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도서관이 있다.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이다. 수도원은 612년 아일랜드에서 건너와 움막을 짓고 포교를 했던 성인 갈루스를 기리어 719년 건립됐다. 830년에는 좀 더 새롭게 재건되었는데 9세기에 이르러 종교적으로 뿐 아니라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로 번성한 이 도시와 함께 수도원 또한 학문과 지식, 그리고 미술의 중요한 거점이 됐다. 이 도서관은 수도사들이 필사를 했던 필사실이 도서관으로 발전한 예다. 수도원은 17,18세기를 관통한 바로크 시대에 두 번째 전성기를 맞아 재건되었는데, 당시 이름난 건축가와 목수, 화가가 참여해 완성한 도서관 역시 예술적 완성도를 보여주는 천정 벽화와 아름다운 나무기둥과 조각 등이 어우러져 풍경만으로도 큰 감동을 준다. 덕분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얻은 장크트 갈렌 수도원 도서관은 그 자체로 예술품이 됐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 수많은 아름다운 책으로 가득찬 ‘지식의 창고’는 수도원의 장엄한 역사를 그대로 전한다. 그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책은 역시 수도사의 손끝에서 만들어졌을 필사본들이다. 실제 이 도서관의 보물은 천년이 넘은 중세의 성경들과 주석들이고, 다른 도서관들과 차별되는 특징도 손으로 쓴 필사본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장하고 있는 장서 16만권, 8세기부터 15세기 동안 만들어진 필사본 책이 2천100점에 이르고 1500년 이전에 인쇄된 책의 초기 단행본도 1650점이나 된다. 놀라운 것은 이 도서관이 오늘에 이르러 그저 단순히 옛책을 전시하고 보여주는 박물관으로서의 기능이 아니라 도서관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 도서관은 ‘영혼의 치유소(Soul Apothecary)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천년 세월을 건너 만나는 옛 책이 주는 감동이 주는 힘이 그만큼 크다.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수없이 많은 날들을 책을 읽고 필사 했을 수도사들의 고행과 그 유산을 지키기 위한 고투가 없었다면 이 위대한 유산이 존재했을리 없다. 결국은 사람의 힘인 것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8.28 23:02

유감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연출된 최근 상황이 북측의 ‘유감’ 표현 한 마디에 눈 녹듯이 사라졌다. 남과 북은 물론 이목을 집중시켰던 중국과 미국 등도 다행스럽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뜩이나 세계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다. 중국이 위안화 평가 절하 조치를 취한 뒤 증국 증시가 폭락하고, 한국 증시도 큰 하락세를 보이던 참이었다. 북한의 목함지뢰와 2발의 포탄, 남한이 쏜 36발의 포탄은 한국 증시를 폭락시켰다. 다행히도 북한이 지뢰 도발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우리도 대북 확성기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제 남은 리스크는 중국발 경제 불안인데, 중국이 보여 줄 글로벌 리더십이 관심거리다. 유감의 사전적 의미는 사과가 아니다. 사전적 의미는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다. 이 때문에 북측이 남측에 진정어린 사과 표명을 했다고 믿기는 어렵고, 극한 대립 속에서 벌어진 협상을 어떻게 해서든 성공시키기 위해 양측이 내놓은 지혜 소산으로 보인다. 남북합의문 제2항은 “북측은 최근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이 부상을 당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고 돼 있다. 당국은 ‘북측’이라는 명백한 주체를 명시해 지뢰 폭발 사건에 대해 유감이라는 단어를 사용했고, 이를 공식 합의문에 명기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의미를 크게 부여한다. 또 유감이란 표현이 외교문서에서는 사과를 뜻한다고 부연하고 있다. 문제는 제2항 ‘북측은∼유감을 표명했다’가 애매모호하다는 사실, 유감은 사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제2항에서 ‘북측은’ 이라는 주어가 있지만, 이는 주어 다음에 이어지는 사건의 실체가 아니다. 그저 군사분계선 비무장지대 남측지역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로 남측 군인들에 부상 당한 것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주체일 뿐이다. 그들이 도발했다는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주어 ’북측’은’은 제3자일 뿐이다. 또 유감은 사과가 아니고, 지뢰 사건에 대한 국민 감정에 부합하지도 않는 완전히 다른 단어다. 몇 가지 ‘유감’스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남북이 합의한 것들이 모두 지켜지기만 한다면, 8월25일 새벽 양측이 서명한 남북합의문은 대단히 성공적인 작품으로 기록될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평화와 통일이다. 당장 서운하다고 평화와 통일을 걷어 차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8.27 23:02

면 행사로 그친 웅치전투 추모제

임진왜란 당시 전라도는 왜구들에게 전략적 요충지였다. 군량미 조달을 위해선 곡창지대인 호남평야를 반드시 확보해야 하는데다 조선 7도를 장악하고도 전라도에는 발조차 붙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왜군의 위신과도 직결됐다. 여기에 조선 점령의 가장 큰 걸림돌인 이순신을 제거하기 위해선 근거지인 전라도를 장악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왜군은 이에 한성 이북까지 올라갔던 군사를 도로 불러들여 병력을 총집결하고 전주성 공략에 나선다. 1592년(선조 25년) 7월 왜군은 주력부대를 둘로 나눠 한 패는 금산을 점령한 후 이치(梨峙)를 거쳐 전주를 공략하고 다른 한 패는 안의와 장수 진안을 지나 웅치(熊峙·곰치재)를 넘어 전주성으로 진격한다.이에 맞서 조선군은 전라도절제사 권율이 이치에서 왜구를 막아냈고 김제군수 정담은 관군과 소양면과 부귀면 주민 등 3000명을 규합해 웅치에서 1만 여명의 왜군과 대치하게 된다. 제1·제2 방어선은 나주판관 이복남과 의병장 황박이 맡았고 정담과 해남현감 변응전은 가장 높은 곳에 제3 방어선을 구축했다. 음력 7월 7일 수천 명의 왜군 선봉부대가 공격해 오자 황박과 이복남이 맞서 적군을 무찔렀으나 이튿날 왜군의 전 병력이 총공격에 나서면서 제1·2 방어선이 무너지고 황박과 이복남도 전사했다. 제3선을 지키던 정담과 군사들도 항복요구를 거절한 채 화살이 다 떨어지자 창과 낫 등으로 백병전을 벌이다 모두 장렬하게 최후를 맞았다. 이후 왜군은 전주성까지 진격했으나 이정란 의병장이 성을 사수하고 있자 결국 공격을 포기한 채 퇴각하고 말았다. 당시 적장 안코쿠지 에케이는 후퇴 도중에 웅치전투에서 순국한 조선군의 시체를 길가에 모아 큰 무덤을 만들고 조조선국충간의담(弔朝鮮國忠肝義膽)이라는 비(碑)를 세우고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고 한다.지난 21일 완주 소양면 신촌리 웅치전적비에서 소양면 웅치전투기념사업추진위원회 주관으로 제423주기 웅치전투 추모행사가 거행됐다. 3년 전부터 지역주민들이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앞서 지난 13일 진안 부귀면 세동리 신덕마을에서도 임란웅치전적지보존회 주관으로 추모제를 가졌다. 하지만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3000여명의 순국선열을 기리는 추모제가 면지역 주민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은 면목없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박성일 완주군수와 이항로 진안군수가 각각 추모제에 참석했지만 전북도나 정부 차원의 인사는 전혀 보이질 않았다. 1979년 12월 전북도에서 웅치전적비를 세웠지만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한 후속대책은 아직까지 손을 놓고 있다. 하루빨리 웅치전투 추모제를 격상시키고 국가지정문화재 승격과 함께 역사박물관 건립 묘역조성 등 성역화사업을 서둘러야 한다. 역사를 망각하는 부끄러운 후손들이 돼서는 안된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8.26 23:02

지도층의 부패

감옥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비리를 저지를 수 있을까. 어른도 아닌 청소년들 사이에 ‘예스’라는 응답이 나와 화젯거리가 된 적이 있다. 한국투명성기구가 몇해 전 전국 중·고생 1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반 부패인식조사’에서 청소년의 17.7%가 ‘감옥에서 10년을 살더라도 10억 원을 벌 수 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했다. 또 17.2%는 ‘내 가족이 부자가 될 수만 있다면 권력을 남용하거나 법을 위반하는 것’도 괜찮고, 20%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쓰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반면 ‘아무리 나를 더 잘 살게 해주어도 지도자들의 불법 행위는 절대 안된다’는 응답은 30.2%에 그쳤다. ‘나쁜 짓 하면 벌 받는다’ ‘남을 배려하면서 바르게 살아라’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등등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 온 세대들에겐 좀 어이 없는 결과다. 하지만 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의 거울 아닌가. 끊임 없이 터지는 공직자 부패, 공공기관의 모럴 해저드, 사회지도층의 비리, 돈이 전부인 세상.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병역비리, 논문표절, 뇌물수수, 위장전입, 전관예우, 성희롱·성폭력, 땅 투기 사례가 판도라 상자처럼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전직 총리와 국회의원 10여명이 지금 수사를 받고 있거나 재판 중이다. 어제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수감되는 모습도 국민들에겐 좋지 않게 투영될 것이다. 그럼에도 비리가 터질 때마다 부패척결만 외칠뿐 그걸 엄격히 제도화하는 데엔 관심을 두지 않는다. 무관용 원칙을 적용해 단죄하는 청렴 선진국들과는 대조적이다. 스웨덴의 부총리는 슈퍼마킷에서 공공카드로 생필품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 낙마했고, 핀란드의 교육부장관은 골프장 개발과정에서 회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만으로도 사퇴했다. 싱가포르는 뇌물수수자는 형벌과 별도로 뇌물 전액을 반환하되 반환능력이 없으면 징역을 추가로 부과한다. 홍콩은 공직자가 재산형성 과정을 증명하지 못하면 뇌물로 간주해 몰수한다. 이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관대하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개혁과제들이 관심을 끌고 있다. 사회지도층의 비리 근절을 위한 고강도 처방의 제도적인 대책도 내놓길 바란다. 돈만 된다면 감옥도 가겠다는 비윤리성을 후세대에게 물려줘선 안된다. 그런 청소년들이 나라의 동량, 지도층이 되면 어찌 될지 끔찍하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8.25 23:02

물갈이 타령

여야가 내년 총선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그 다음해 치러질 대선판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새정치민주연합에 정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하고 있다. 그간 진보가 두차례 보수가 각각 두차례씩 정권을 잡았다. 박근혜 정권 이후 다음 정권이 어느 쪽에서 들어설 것인가가 내년 총선에서 거의 판가름 난다. 다수당을 차지하는 쪽이 정권 잡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한치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잇다.정당은 누가 공천권을 행사하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력이 제일 커 박대통령이 주도적으로 공천권을 행사할 것이다. 박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공천카드를 쓸 것이다.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개혁공천에 방점을 찍을 태세다. 원래 야당은 개혁을 빼고서는 별로 설득력 있는 구호가 없다. 그간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번번이 패해 대표직 박탈 위기까지 몰렸던 문재인 대표가 혁신위원회로 하여금 현역 20%를 공천에서 원천 배제키로 확정했다. 129명 가운데 26명은 공천을 못 받는다. 지금 의원들 간에는 누가 대상자가 될 것인가를 놓고 설왕설래한다.여기서 경계해야 할 점은 호남권 현역의원들이 대거 ‘팽’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지역에서 신당 창당에 대한 여론이 워낙 강해 당 지도부가 신당 창당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이 카드를 꺼내 쓸 수 있다는 것. 경쟁이 치열한 수도권 보다 호남권에서 물갈이 대상자를 채워 넣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나돈다. 지난 19대 총선 때 물갈이 폭이 클 것으로만 알려졌지만 막상 공천 뚜껑을 여는 순간 11명 중 7명을 물갈이시킨 전례가 있어 현역들을 더 긴장시킨다. 지금 분위기로는 새정연 공천이 예전처럼 당선으로 연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만큼 새정연 의원에 대한 지지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새누리당과 무소속도 역량만 있으면 전략적으로 뽑아줄 필요가 있다는 여론이 조심스럽게 형성돼 가고 있다. 내년 20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에서는 새정연 김부겸이 지역감정을 극복해 당선되고 순천에서는 새누리당 이정연의원을 연거푸 당선시키는 것처럼 전북에서도 그런 사례를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달리 새정연의 혁신안에도 불구하고 신당이 만들어지면 예측 불허의 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유권자들은 총선 때 경쟁력 있는 후보를 국회의원으로 당선시킨 후 야당 통합을 가져오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지금 유권자들은 경제사정 악화로 몹시 지쳐 있어 물갈이 욕구가 그 어느때보다 강하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8.24 23:02

음서제 변종

고려시대에 공신 또는 고위관리의 자손이나 친척들은 과거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관리가 될 수 있었다. 이른바 음서제(蔭敍制)라고 불리는 제도를 통해서였다. 그 이전에도 나라에 공이 있는 관리들의 자손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 있었지만 제도로 확립되어 적극적으로 시행된 것은 고려시대에서다. 고려의 음서제는 그 적용 방식이 다양했다. 같은 음서제 안에서도 왕족의 후예와 공신의 후손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내외원손에까지 해당되었지만, 3품 이상의 관료인 경우는 자손과 수양자 사위 조카 사위 동생에게, 3품 이하 5품 이상의 관료들은 자손에게만 혜택이 주어졌다. 음서제로 얻은 관직을 음직(蔭職)이라 했는데, 음서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시행되어 나중에는 음직을 가진 관리가 과거급제자보다 많게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능력에 따라 관리를 뽑지 않고 가문의 능력으로 관리를 뽑는 병폐는 컸다. 고려시대 문벌귀족의 정치적 기반을 제공한 것도 이 음서제도였다. 때문에 조선시대에 와서는 음서제도를 통해 기용된 관리를 높은 벼슬에 오르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주기도 했다. 어느 시대에서건 인재 등용은 한 국가의 중요한 덕목이었다. 성군으로 꼽히는 세종과 정조도 인재등용에 큰 관심을 쏟았다. 사학자 김준태씨가 사료를 바탕으로 세종과 정조가 가상대화하는 형식을 구성해 펴낸 책 <왕의 경영>에는 인재를 주제로 한 이들 두 임금의 대화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 중 한 부분. 세종이 말한다. “옛 사람들이 말하길, ‘어느 시대인들 사람이 없으랴’고 했다. 인재는 언제나 반드시 있어 왔지만, 다만 몰라서 쓰지 못했을 뿐인 것이다. 인재를 선발할 때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하다보면 놓치게 되는 인재가 많은 것 같다.” 덧붙여 말한다. “인재를 선발하는데 있어 정해진 방법이란 없는 것이지 않겠느냐. 다양한 선발 방법을 마련하여 선비들에게 자극을 주어야 할 필요가 있다.”지난 2010년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 특별채용 비리’로 등장했던 ‘현대판 음서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이번 논란의 불씨를 당긴 것은 국회의원이다. 여당과 야당 국회의원이 정부법무공단과 대기업의 변호사 채용을 둘러싸고 사이좋게 논란의 중심에 이름을 올렸다. 공정한 경쟁을 거치지 않고 부모의 능력으로 직업을 얻었으니 오갈 데 없이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다. 하기야 이 뿐인가. 둘러보면 여기저기서 명분 없는 인사 청탁이 횡행한다. 모두가 차단되어야 할 ‘음서제’변종이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8.21 23:02

자전거

자전거는 일상 생활에서 매우 유용한 이동 수단이다. 유럽에서 1790년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자전거는 우리나라에 1890년 무렵 선보였다고 한다. 자전거는 이동 수단이면서 한편으로는 무거운 쌀가마, 막걸리통 등을 손쉽게 나르는 화물 운송 수단이었다. 요즘 자전거는 인기 있는 레저 스포츠로 자리잡았고, 자전거 매니아들은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을 호가하는 자전거를 구입하기 위해 주저없이 지갑을 연다. 최근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열린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다. - 소설 속 한글’ 전시회에는 소설가 김훈의 연필과 함께 자전거가 전시됐다. 김훈은 자전거 마니아로 유명하다. 1999∼2000년에 전국을 자전거로 여행하고 ‘자전거여행’이라는 책을 냈는데, 책이 많이 팔려 그가 자전거에 투자한 500만원은 간단히 회수됐다. 요즘 자전거를 ‘좀 탄다’는 사람들의 외양을 보면 장난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이 타는 자전거 가격은 500∼1000만 원 이상이라고 알려진다. 부상을 방지하기 위한 기본 용품인 장갑과 헬멧 뿐만 아니라 과거 TV화면 속에서나 보았음직 한 늘씬한 사이클 선수용 복장을 하고, 골프화처럼 바닥에 징이 박힌 자전거 전용 신발을 신고 어기적 어기적 거리며 식당에 들어선다. 주말 휴일이면 국·지방도에는 자전거 라이더들로 차고 넘친다. 훈련 나온 선수들이 아니다. 둘이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는 것은 부부인 경우가 많다. 10여명 떼를 이룬 여성 동호인, 혼성 동호인 등이 길가를 줄지어 달리는 풍경은 아름답고, 살맛나는 인생의 여유가 느껴진다. 전주 주변의 화산이며 모악산에 가면 자전거를 타고 산악을 누비는 마니아들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전거를 즐기며 스트레스를 날리고, 육체적 건강도 다진다. 세상은 자전거 라이더들의 천국이다. 그런데 광복 70년을 맞아 바라보는 자전거는 대한민국에게 씁쓸한 존재다. 국산 자전거의 자존심 삼천리가 1952년부터 자전거를 생산하고, 3000억 원 정도로 알려지는 국내 완성자전거 시장을 삼천리 등 3사가 과점하고 있지만, 세계 최고의 자전거 변속기 생산업체 시마노사의 변속기 등 대부분 수입부품을 조립생산하는 수준이라는 사실 탓이다. 한국이 조선업과 반도체 등 몇 몇 분야에서 일본을 넘어 세계 1위라고 큰소리치지만 자전거 변속기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요즘 한국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8.20 23:02

폭침된 귀국선 우키시마마루호

70년 전,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지 1주일 뒤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북동부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와 가족 8500여명을 태운 일본 해군 특별수송선 우키시마마루호가 부산을 향해 출항한다. 귀국선 1호인 우키시마마루호는 이틀 뒤인 24일, 돌연 선수를 돌려 교토부 마이즈루항으로 기항하던 중 큰 폭발과 함께 침몰하고 만다. 당시 마을 축제를 준비하던 마이즈루 주민들이 이 광경을 목격하고 어선 등을 이용해 구조에 나선 결과 1500여명을 구조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을 안고 귀국길에 올랐던 7000여명은 배와 함께 수장되고 말았다. 사건 발생 1주일 뒤, 오미나토 해군 사령부는 한국인 3725명과 일본 해군 승무원 255명이 우키시마마루호에 승선했으며 이 중 한국인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 등 549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선채 인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것도 승선자 명부도 공개하지 않은 채 사망자 숫자를 발표한 것은 엉터리 조작에 불과하다는게 생존자들의 증언이다. 더욱이 일본 정부는 정확한 폭발 원인에 대한 규명조차 하지 않아 의혹을 키웠다. 일본은 미군이 설치한 기뢰에 인한 폭침이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의문은 더 증폭됐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기뢰 폭침시 물기둥이 치솟아 올라야하지만 이 같은 현상이 전혀 없었던 데다 두동간난 선체가 안에서 밖으로 휘어져 있었고 배 밑바닥에 360톤에 달하는 돌더미가 쌓여 있었다는 것. 여기에 300여명에 달하는 일본 해군이 폭발 직전 보트로 탈출했다는 점도 고의적 격침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인 규명과 희생자 수습을 위해선 선체 인양과 사체 발굴이 중요함에도 일본 정부는 유가족들의 줄기찬 요구를 무시한 채 우키시마마루호를 바다 속에 방치했다. 그러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고철 회수를 위해 우키시마마루호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해체한 후 조각난 선체를 끌어올려 인양했다. 이 과정에서 배 안에 남아있던 많은 사체들이 유실되었으며 370구의 유골만 수습됐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들 희생자들의 위패를 일본 전범자들 위패가 보관된 야스쿠니신사에 함께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우키시마마루호 참사는 1912년 북대서양에서 발생한 타이타닉호의 희생자 1523명을 크게 웃도는 대사건임에도 세계 해난사고에 전혀 기록이 없다. 광복 70년을 맞았지만 우키시마마루호 폭침은 아직도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의 완전한 광복은 우키시마마루호 희생자 7000명을 비롯 600만 명에 달하는 강제징용자와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선결돼야만 가능하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8.19 23:02

박 대통령과 아베의 원형사관

백제 멸망은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에게 항복한 660년 7월18일이다. 하지만 백제부흥운동이 일면서 3년 동안이나 전쟁이 이어졌다. 부흥군은 본거지인 주류성을 공격하는 나·당연합군을 물리치고 한때 200여 성을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휘부 내부 분란과 지원군인 왜(倭) 병사 2만 7000명이 백강(동진강 혹은 금강 하류)전투에서 궤멸됨으로써 부흥운동은 막을 내렸다. 백강전투는 663년 8월 백제-왜, 당-신라연합군 간의 전투다. 주류성과 백강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부안지역 향토사학자들은 주류성을 부안군 상서면의 울금산성(위금암산성), 백강을 동진강으로 본다. 어쨌건 백강전투는 대륙과 반도, 열도의 지정학이 펼쳐낸 숙명적 전쟁이었다. 이 백강전투가 한·일 원한의 시초라는 주장이 관심을 끈다. 원형사관을 연구해 온 김용운 전 한양대 교수는 최근 펴낸 ‘풍수화(風水火)’에서 “백강전투는 한·중·일 갈등의 씨앗이 된 전쟁이고 백제와 왜로 하여금 신라에 대한 원한을 남겼다.”며 그렇게 주장했다. ‘풍수화’는 주변 국을 흡수하는 중국은 물(水)로, 섬에서 끊임없이 탈출을 시도하는 일본은 불(火)로, 그 원형을 파악하고 바람의 원형을 지닌 한국을 풍(風)에 빗댄 표현이다. 원형은 민족 집단무의식을 말한다. 백강전투에서 패한 백제인 일부는 대마도에, 일부는 일본 열도의 맨 서쪽인 지금의 하기(萩)에 당도했다. 하기지역 조슈(長州)의 번주(藩主)는 백제계인데 늘 신라와 당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웠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가장 존경한다는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은 조슈 번(藩)의 군사학 가문 출신이다. 조선과 중국 땅을 뺏어야 한다고 제자들에게 가르친 인물이다. 이토 히로부미와 명성황후 시해 지휘자인 미우라 고로,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등이 직·간접적 제자들이다. 아베 총리도 같은 계열의 인물이고 중대 결정을 할 때는 요시다를 신주로 모신 쇼인신사를 참배한다. 지금의 한·중-일본 간 대립도 ‘반 신라, 반 당(唐)’의 연장이고 ‘요시다 정신’에서 발원한다는 것이다. 김 전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고향이 옛 신라 땅이고, 아베 총리가 조슈 출신인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원형이 충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백강전투와 그후의 구도가 지금의 한·일 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두 영수가 앙숙인 것이 참 흥미롭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8.18 23:02

낙후 책임론

광복 70주년을 맞았지만 전북의 현실은 참담하다. 앞이 안 보인다. 지금까지는 그럭저럭 살아왔지만 앞으로 살아 가야할 후손들이 걱정이다. 지역발전에 대한 희망이 안보이기 때문에 그렇다. 지난 30년간 특정 정당 하나에 함몰된 것이 지역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썩은 물이 고여 있지만 그런 줄도 모른 것 같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지속되다 보니까 지금이 좋은지 안좋은지도 모른다. 문제의식마저 사라져 걱정스럽다. 전북이 건국 이후 발전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이었다.이 시기에 장·차관이나 국회의원 지사 등을 한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석고대죄해야 한다. 자신들은 나 만큼 지역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말하겠지만 모두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지금과 달리 일할 수 있는 인적네트워크가 충분하게 갖춰져 있었다. 정권을 잡았기에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었다. 당·정·청에 고루 전북 인재들이 포진해 있어 가능했다. 실무자부터 시작해서 층층마다 전북 인재들이 박혀 있어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전북 출신들은 광주·전남 실세들한테 미운털 박히지 않으려고 눈치나 살폈다. 광주·전남 정치인들은 그 당시에 대규모 프로젝트를 맘껏 추진했다. 섬마다 연륙교를 가설했다. 상전벽해란 말이 실감날 정도로 지역개발 사업을 많이 했다.이후 보수정권이 들어서면서 전북은 찬밥신세가 됐다.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MB정권 때도 찬밥이었지만 박근혜 정권 때는 더 심하다. 무장관 무차관이 이렇게 길게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은 목에다 방울 달 사람도 없다. 장·차관 정도는 없어도 불편함이 없는 사람들 같다. 만약 광주·전남이 그랬으면 가만히 있었을까. 전북은 고요하고 거룩한 밤만 계속 된다. 새만금사업이 마치 낙후된 전북을 구할 것 같지만 그렇게 녹록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맘 먹은대로 국가예산 확보가 잘 안된다. 삼성이 올해 평택에 15조를 투입, 반도체 공장을 착공했기 때문에 새만금에 20조를 투자하겠다는 것은 결국 공수표를 날린 셈이다.국무총리 산하에 새만금사업 지원단을 설치하는 내용을 담은 새만금특법법이 통과됐고 연구개발특구지정, 백제권 미륵사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2017년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개최지로 무주태권도원이 확정되는 등 잇달아 낭보가 쏟아졌지만 피부로 닿지 않는다. 지금 강원·충청도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 간다. 충청권은 수도권에 편입되면서 기업이 순조롭게 유치돼 살판났다. 우리와 딴 세상이다. 지역발전의 기회가 왔을 때 못살리고 지금와서 하려고 하니까 정치적으로 코드가 맞질 않아 허당이다. 내년 20대 총선은 싹쓸이 대신 어떻게든 여야 경쟁구도를 그래서 만들어야 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8.17 23:02

평화의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것은 지난 2011년 12월이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시작된 것이 1992년 1월 8일, 이 날은 수요집회가 1천회를 맞는 날이었다. 부부조각가 김운성 김서경씨가 제작해 기증한 소녀상은 열서너 살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했던 소녀의 슬픈 사연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들 부부는 1991년, 일제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가 고통의 삶을 살아야했던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대하며 큰 충격을 받았다. ‘미술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갔다. 관계자들은 수요집회 1천회 되는 날에 평화의 비석을 세우고 싶다고 들려줬다. 위안부 할머니의 꿈 많던 소녀시절을 돌려주자는 의미를 담은 소녀상은 그렇게 세상과 만났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소녀상’ 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해외에 건립된 소녀상은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시가 처음이다. 소녀상 건립은 일본군 위안부문제가 반인륜적 전쟁 범죄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활동해온 한인 동포 단체 ‘가주한미포럼’이 주도했다. 그러나 그 과정은 지난했다. 글렌데일 시립도서관 공원에 소녀상이 건립되자 재미일본인 극우세력들이 반발하며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10만명 청원을 받아 백악관에 전달하고 소송을 제기하면서 한일 갈등이 격화됐기 때문이다. 결과는 다행히 소녀상의 승리로 돌아왔다. 광복 70년을 맞은 올해 소녀상 건립이 더욱 활발하다. 전북에서도 군산과 전주에 ‘평화의 소녀상’이 건립됐다. 모두 시민들이 주도하고 시민들의 성금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군산의 소녀상은 그 의미가 각별하다. 일제시대 수탈의 상징 도시에 건립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군산 소녀상 건립에 과거 역사를 반성하며 용서를 구하는 일본인들의 성금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각 도시마다 건립되는 소녀상은 참혹했던 역사를 고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으면서도 형상은 조금씩 다르다. 더러는 비장하거나 더러는 고통스럽거나 혹은 밝은 표정의 소녀들이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위안부로 살아야했던 할머니들의 모진 생애가 거기 있다.“고향 꿈도 꿀 수 없는 어두운 날 문득 보이는 뒤란의 작은 소녀야/ 하얀 감꽃 주워들고 웃음 짓는 어쩌면 나였을지도 모를 어린 소녀야/ 눈 뜰 수 없는 잔인한 날들 피로 물든 다 찢긴 치마 나의 몸/ 옥이 순이 분이라는 그 이름들 이 세상에 없지만 기억하노라.”(김현성 곡)광복 70년. 청산해야할 역사적 과제는 더 무거워졌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8.14 23:02

과학의 명암

흔히 로켓을 두고 국가 과학기술의 결정체라고 한다. 장기간에 걸쳐 천문학적 돈이 투입돼야 로켓이 우주선에 장착된다. 2013년 1월 30일 한국이 고흥 우주센터에서 나로호를 우주로 쏘아 올리는데 성공했지만 1단 액체연료로켓은 러시아 기술이었다. 우리가 1992년 이후 14개의 위성을 쏘아올리고, 이를 군사·경제·생활에 유용하게 운용하고 있지만, 위성을 우주 상공에 올려 놓는 데 반드시 필요한 1단 액체로켓은 아직까지 자체 기술이 없다. 우리는 2020년을 목표로 액체연료를 쓰는 우주로켓을 개발 중인데, 미래부는 지난 달 말 한국형발사체개발사업 1단계 목표를 달성했다고 밝힌 상태다. 앞으로 2단계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2019년에는 인공위성 시험발사가 이뤄지고, 2020년쯤에는 명실상부한 우주강국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로켓기술이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미래 우주시대를 선점할 수 있고, 또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지구촌 곳곳에 날릴 수 있는 핵심 군사기술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우주기술을 보유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1964년 핵실험에 성공하고, 이어 우주개발에 나선 것이 계기가 됐다고 알려진다. 중국의 힘이 커지자 미국은 일본에 로켓기술을 전수해 견제하고자 했다. 일본의 우주 기술 획득은 이런 국제 무력의 역학관계 속에서 수월하게 이뤄졌다. 한국의 우주로켓 독자개발도 당장 북한이 1998년 대포동 로켓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우주 밖으로 쏘아올릴 수준의 고성능 로켓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군사적 위협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로켓기술이 원거리의 적을 효과적으로 제어할 핵심 기술이라는 점에 모두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로켓과 우주과학 기술과 인간의 일상 생활은 한층 밀접해졌다. 로켓 기술은 지구인들이 지난달 14일 태양계 끝 명왕성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확인할 수 있게 했다. 과학 기술이 첨단을 걷지만 사람들 마음은 우주시대라는 희망과 지구 멸망이라는 불안 사이에 있다. 과학 기술은 인간 생활을 살찌우지만 비극도 생산한다. 70년 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이 터져 20만 명이 사망했고 두 도시는 폐허가 됐다. 당시 핵폭탄 개발에 나선 미국과 독일, 일본 가운데 미국이 핵폭탄 개발에 성공했고, 전쟁에 미친 일본은 핵폭탄 홀쭉이와 뚱뚱이를 맞고 항복했다. 핵폭탄에 전쟁이 끝났지만 당시 한국인 피폭 사망자도 7만 명에 달했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8.13 23:02

이름 없는 400여 농민 의병

이달 초 종영된 TV드라마 ‘징비록’이 광복 70주년을 맞는 우리들에게 교훈과 자성과 많은 생각들을 남겨주었다. 징비록은 서애 유성룡이 7년간의 왜란을 돌아보면서 참회와 경계의 뜻으로 기록한 내용을 각색한 드라마다. 무능한 선조가 백성을 내팽개친 채 도망치는 모습, 이에 분노한 민초들이 궁을 불태우는 장면, 20일 만에 도성을 빼앗긴 조선 관군의 무기력함, 사리사욕과 당파 싸움에 나라와 백성을 도탄에 빠트린 조정 대신들, 왜군에 짓밟힌 강토와 무참히 도륙당하는 백성들의 참혹함. 화면을 통해 비쳐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실상에 분노와 한탄이 저절로 새어나왔다.그럼에도 전란의 참화 속에서 나라를 지켜냈던 것은 충무공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과 전국 방방곡곡에서 분연히 일어난 의병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무엇보다 곡창지대인 전라도를 침탈하려던 왜군의 조총에 맞서 창과 낫 곡괭이 등으로 대적했던 1만2000여명에 달하는 전라도 농민 의병의 희생이 호남을 방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파죽지세로 조선을 침략한 왜군이 군량미를 조달하기 위해선 호남평야를 반드시 선점해야했던 만큼 전라도에 병력을 집결하고 웅치(熊峙·곰치재)와 이치(梨峙), 두 곳에서 일대 결전을 치른다. 각각 2만명과 1만명에 달하는 주력부대를 투입한 왜군은 그러나 우리 의병과 관군의 항전으로 인해 패퇴하면서 전주성 공격을 포기하고 말았다. 특히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와 충남 금산군 진산면 묵산리를 잇는 이치고개 전투는 한산·행주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대 전투 가운데 한 곳이다. 당시 1만명의 왜군 주력부대는 금산성에서 조선 관군과 의병장 고경명 조헌이 이끄는 의병을 격퇴하고 이치(梨峙)를 거쳐 전주를 공략하려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이보와 소행진이 익산에서 농민 의병 400여명을 일으켜 이치에서 죽창과 낫 등으로 왜군과 맞서 백병전을 펼쳤지만 모두 순국하고 만다. 왜군들도 농민 의병의 결사항전에 큰 타격을 입었고 얼마 뒤 권율 장군의 이치고개 지형을 이용한 복병전에 걸려들어 왜군은 육지전에서 첫 패배를 당하고 만다.현재 이 곳 운주면과 진산면에는 권율 장군과 동복현감 황진의 전승을 기리는 이치 전적비와 이치 대첩비가 각각 세워져 있고 금산군에선 매년 기념행사를 개최해오고 있다. 하지만 400여명에 달하는 이름 없는 우리 농민 의병의 순국은 역사속으로 묻혀져 가고 있다. 남원 만인의총과 금산 7백의총과 같이 이 곳 400명의 농민 의병 순국현장도 하루빨리 역사공원으로 조성하고 기념비를 세워 그 충혼을 기려야 한다. 관군 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민초들의 순국정신도 기록해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있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8.12 23:02

익산 서동선화축제

어린 시절 마(麻)를 팔아 연명했던 서동이 왕위(백제 무왕)에 오르게 된 결정적 요인은 선화공주와의 결혼이었다. 신라 진평왕의 셋째 공주 선화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들은 서동은 마를 주면서 사귄 서라벌 아이들에게 이런 노래를 부르게 했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이를/ 밤이면 몰래 안고 간다네.” 시집도 가기 전에 사통(私通)한 공주를 신하들은 용납할 수 없었다. 내치라는 요구가 격렬하자 진평왕은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면서 그녀를 귀양보냈다. 이때 서동이 호위를 자청했다. 공주는 마음이 끌려 이를 허락했다. 남몰래 관계를 맺은 후에야 그가 서동이란 사실을 알게 됐고 노래말이 맞았음을 깨닫게 된다. 이런 내용은 삼국유사에 실려 있다. 선화공주는 과연 신라 진흥왕의 딸인가. 백제 왕자 서동이 신라 서라벌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게 맞는 말인가. 역사학자 이덕일은 그렇지 않다고 지적한다. “선화공주는 익산지역 토호의 딸이었다. 서동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역은 신라 수도 서라벌이 아니라 선화공주의 친정인 익산이었다. 혈통은 왕자지만 몰락한 서동을 도와 임금(무왕)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나아가 자신의 친정인 익산에 미륵사를 세우고 도읍까지 옮겨 백제의 권력축을 이동하려 했다.”( ‘그 위대한 전쟁’) 당시 백제는 전쟁에서 패해 허약했다. 왕족인 서동이 마를 팔았다는 것이 백제 왕실의 처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신라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성왕이 신라 진흥왕에 의해 전사한 뒤 백제와 신라는 원수지간이 됐다. 무왕이 재위 42년 동안 13차례나 신라와 공방을 벌인 것이 이를 증명한다. 무왕과 진평왕이 장인과 사위의 관계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야기는 ‘세기의 로맨스’로 잘 알려져 있다. 설화로서의 가치도 있고 스토리텔링의 좋은 소재다. 없던 것도 만들어 내는 세상 아닌가. 그런데 서동선화축제 개최를 놓고 시끄럽다. 익산시와 축제제전위가 저마다 10월 중 제각각 축제를 열겠다고 밝혔다. 축제 하나 의견조율을 못하고 있다. 마침 백제역사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관광객이 두배로 늘고 있다. 인프라 구축에 힘을 합해야 할 때다. 지역발전의 호기다. 이런 호기를 살리지 못하고 티격태격 하고 있으니 한심할 노릇이다. 익산지역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자성해야 할 일이다.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8.11 23:02

전북의 고질병

언제부턴가 전북은 말하기 조차 부끄러운 일이 많은 지역이 됐다. 자살률 이혼률 성폭력 무고사범 등이 인구 대비로 제일 많다. 농업이 주를 이뤘던 60·70년대만해도 전북은 인심 좋아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졌다. 이후 산업화가 미진하면서 돈 없는 지역으로 전락하며 쇠락을 거듭해왔다. 사람과 돈이 모이지 않는 곳이 되면서 빈곤의 악순환만 되풀이 됐다. 가진자도 불편하고 없는 사람은 더 살기 힘든 곳이 됐다.이 문제는 그냥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심각하다. 이 문제를 그냥 방치했다가는 회복불능 상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과 직결돼 있어 지금부터라도 모두가 관심을 갖고 치유책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앞서 지적한 자살률이 많은 것은 경제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대인의 삶은 기본적으로 경제를 떼고는 생각할 수가 없어 경제문제에서 파생된 1차적 문제라는 것이다. 전북은 다른 지역에 비해 산업화가 미진해 젊은층 일터가 없다. 최근 건설경기 악화로 막일 할 곳도 없다. 여성 일자리에 비해 남성들의 일자리가 없어 가정적으로 주눅든 남자가 많다.예전 같으면 자녀들 때문에 이혼하지 않고 여성들이 가정을 지켜줬지만 지금은 자신을 희생해가며 가정을 지키려는 의식이 약하다. 여성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상승해가면서 이혼률이 높아졌지만 전북이 유독 심하다. 전주만해도 여성들 일자리가 많다. 음식점이 많아 부지런하면 쉽게 일할 수 있다. 여성들은 조금만 노력해도 돈벌 수 있지만 남성들은 쉽지가 않다. 남자들은 일당벌이 할 곳도 마당치 않다. 남성들의 일자리가 없다는 게 사회적 문제다. 일자리가 없어 실직상태로 지내다보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가장으로서 지위가 흔들리면 본인 스스로가 자신감을 잃고 상실감에 빠진다. 술에 의존하다 보면 결국 자포자기로 파국을 맞는다.무고사범이 많아 사업하기도 힘들다. 지역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을 그대로 반증한다. 무고사범이 많은 것은 파이에 비해 숫가락 든 사람이 많아지면서 나타난다. 자기 몫이 적어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뒷통수에다가 총질을 가한다. 도시인구가 100만이 넘으면 익명성이 보장되므로 남 하는 일에 별로 관심이 없다. 하지만 전주는 옆집의 숫가락이 몇개인가부터 시작해서 밤에 누구와 술 마신 것도 꿰뚫어 사생활 보장이 안된다. 파이를 키우는데는 노력치 않고 남의 몫만 빼앗으려는데서 문제가 생긴다. 사회병리현상이 고착화 되면 사회안전망이 흐뜨러질 수 있다. 지금 전북은 건강하지 않고 병리현상이 심각하다. 오늘날 전북이 이렇게 된 것은 정권 탓도 크지만 일부는 우리 잘못도 있다. 지금부터라도 선출직들을 잘 뽑아 예전의 건강성을 되찾았으면 한다. ·백성일 상무이사 주필

  • 오피니언
  • 백성일
  • 2015.08.10 23:02

발우공양

여러해 전 한 여름 산사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다. 스님은 모여든 중생들을 향해 마음을 비우라 하셨다. 산사체험은 사찰마다 특징을 갖고 행해지지만 발우공양은 기본 의식이다. 발우공양은 스님들의 전통적인 식사의례를 이른다. 발우(바루)는 스님들의 밥그릇이다. 사전에는 ‘옛날 부처가 가섭이 모시던 용을 밥그릇에 가둬 항복을 받아낸 일이 있는데, 그 밥그릇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항용발(降龍鉢)이라고도 한다’고 소개되어 있다. 그릇은 4개로 구성되는데 작은 그릇이 큰 그릇 속에 차례로 들어가 종국에는 하나가 된다. 큰 그릇이 밥그릇, 두 번째가 국그릇, 세 번째가 물을 담는 청수그릇이고 가장 작은 그릇이 반찬을 담는 찬그릇이다.산사체험에서 대중들의 발우공양 시간은 특별했다. 두 줄씩 서로 마주 보고 앉은 수행자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스님은 이르신다. “제대로 공양하지 않으면 청숫물을 다 먹게 됩니다.” 발우공양은 소리 나지 않게, 음식 씹는 입도 보이지 않게, 꼭 먹을 만큼만 덜어서 먹어야 한다. 절집에서는 다도와 발우공양 같은 일상도 수행의 과정이다. 공양은 소박하지만 초라하지는 않다. 발우공양은 모든 사람이 같은 음식을 같이 나누어 먹는 공동체 정신을 담고 있다. 조금도 넘치지 않게 나누는 절제와 겸양의 정신이 담긴 공양은 평등사상의 실현이다. 스님들은 네 개의 그릇으로 발우공양을 하지만 체험으로 만나는 발우공양은 그릇 하나로 이뤄진다. 반찬은 서너 가지, 나물과 함께 단무지 한 조각이 주어진다. 일상에서 익숙한 단무지가 반갑다. 그런데 발우공양에서 단무지는 반찬이 아니다. 발우에 붙은 찌꺼기를 닦아내는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니 반찬으로 여겨 먹어버리고 나면 나중에 찌꺼기를 닦을 수단을 잃게 된다. 마지막까지 깨끗이 헹구어낸 물과 단무지는 물론 마시고 먹어야 한다. 이 단무지 한 조각이 전해준 깨달음(?)이 크다. 사람에 따라서는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일상의 교훈이 될 수도 있다. 세계적인 채식 홍보가 윌 터틀 박사가 발우공양을 했다. 그가 전한 발우공양의 의미가 흥미롭다. “발우공양은 맑은 음식과 그 음식 속에 담긴 수많은 인연에 감사하는 기도, 물 한 방울까지 비우는 낭비 없는 식사 그리고 모든 존재를 향한 연민까지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모든 가치가 담겨 있다.”이즈음 TV예능프로그램에서도 발우공양 체험이 인기란다. 이유가 있을 터다.

  • 오피니언
  • 김은정
  • 2015.08.07 23:02

나의 발자국

비서실장은 우두머리의 업무를 총괄해 보좌한다. 과거의 비서 또는 비서실장은 장의 잔심부름 정도나 하는 직책으로 하대시 되기도 했지만, 현대사회에서는 비서직의 전문성과 창의성을 알아준다. 조직의 전체 업무를 그 누구보다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는 그들은 장의 지시를 곧이 곧대로 따르기만 하는 획일적 존재를 넘어서 장에게 적극적으로 건의와 조언을 ‘드리는’ 적극적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 비서실장은 장의 눈빛만 보고도 속마음을 알아챌 줄 아는 민첩함과 센스까지 고루 갖추고 있고, 어떤 중대한 일의 결정적 키를 쥐고 있기도 하다. 그런 측면에서 김완주 전 도지사의 전주시장 시절 비서로 일하다 비서실장과 전라북도 정무부지사에까지 발탁된 여세를 몰아 1년 전 민선 6기 전주시장에 도전해 담박에 당선된 김승수 시장의 사례는 단연 돋보인다. 항상 마음 속에 큰 꿈을 꾸고 살았기에 시장 수행비서 일을 하던 젊은이가 40대에 전주시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비서 업무를 수행 하면서부터 끊임없이 업무를 파악하고, 지근거리에서 선배 정치인들과 공직자들의 성공과 실패, 허물을 벤치마킹하며 스스로를 다듬었을 것이다. 그가 지난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요인은 빈틈없는 준비일 것이다. 김승수 시장은 최근 길을 버리고 산을 선택했다. 그동안 논란이 컸던 종합경기장 개발 방식을 전임 김완주 송하진 시장이 선택했던 ‘기부 대 양여’ 민간투자개발이 아닌 전주시 재정투자 방식으로 뒤집는 모험 항로를 선택했다. 이미 살은 시위를 떠났다. 사실 김 시장의 결정은 10년 전 김완주 전주시장이 강현욱 도지사에게 기부 대 양여방식을 제시하며 종합경기장 개발권을 얻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장으로서 아름답고 살기좋은 도시를 만들어 낼 의무와 책임이 있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시장의 몫이다. 어렵고 험난해도 산을 깎고, 터널을 뚫어 살기좋은 전주시를 만들어내면 된다. 하지만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해서 여반장 하듯 하는 것은 가히 권고할 게 아니다. 김완주 시장이 선택한 기부대 양여방식은 불과 1년 전까지 거의 10년 가까이 유효했고, 김완주 곁에 분신처럼 항상 붙어 있었던 김승수 시장은 그 결정과 추진, 관리 과정에서 책임 위치에 있었지 않은가. 우리는 때때로 주변 요인 때문에 선택을 강요받지만, 현재 상황 뿐 아니라 걸어온 자신의 발자국을 꼼꼼히 살펴보고 결정해야 한다.

  • 오피니언
  • 김재호
  • 2015.08.06 23:02

야권 신당의 성공 조건

야권 신당을 추진하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어제 국회의원 당선이후 공식적으로 처음 전북을 찾아 신당 세결집에 나섰다. 천 의원은 지난 4·29 재보선때 광주에서 새정치민주연합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호남발 신당 창당의 도화선이 됐다.친노패권주의로 2차례나 당 공천에서 제외됐던 천 의원이기에 와신상담(臥薪嘗膽), 야권 개조에 대한 의지가 남다를 것이다. 더욱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뼛속까지 뿌리내린 마당에 호남중심의 신당은 상당한 파괴력을 가질 전망이다. 실제 새정치민주연합 전북도당과 전남도당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직 실체도 없는 신당이 새정연보다 15%포인트 이상 앞선 것으로 나왔다는 후문이다. 도내 11개 지역구 의원 가운데 무려 10곳이 이름도 없는 신당 후보에 뒤쳐지는 것으로 나타나 새정연에 충격을 던져주었다.새정치민주연합의 기반인 호남이 흔들리다보니 당내 이탈세력도 나오기 시작했다. 새정연 당직자 출신 모임인 국민희망시대가 집단 탈당을 선언했고 박준영 전 전남지사도 탈당과 함께 신당 창당 논의에 불을 지폈다. 여기에 정대철 상임고문과 박주선 김동철 의원 그룹 등 대여섯 개 그룹이 비노 연합 신당론에 군불을 떼고 있다. 이처럼 야권 신당론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이유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각종 선거에서 잇따라 참패하면서 수권능력을 상실한 탓이다. 특히 친노-비노간 계파 싸움에 국민들의 실망감과 호남사람들의 혐오감이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 혁신위원회를 구성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얻을만한 새로운 비전과 혁신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국회의원 의석수 늘리기 등 국민정서와는 반대로 역주행하고 있는 상황이다.그렇지만 야권 신당이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국민적 반감만 가지고서는 성공할 수 없다. 더욱이 야권 신당이 호남중심의 지역당으로 전락한다면 충청권의 자민련이나 자유선진당의 전철을 밟을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정당이 성공하려면 명분과 인물, 재정 등 3가지가 필수조건이다. 이 가운데 인물, 즉 확실한 대권주자와 세력이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한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 연합을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룩한 것이 그 선례다. 천정배 의원이 어제 전주 방문에서 밝힌 것처럼 전국적 개혁정당과 2017년 대선에서 수권정당의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신당이 뜰 수 있다. 호남에 안주하거나 그 나물에 그 밥으로는 절대 신당이 성공할 수 없다.

  • 오피니언
  • 권순택
  • 2015.08.05 23:02

가맥 축제

“가맥이나 한 잔 하지.” “가맥 집으로 가지 뭐.” 전주가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른다. “가맥이 뭐여?” ‘가맥’은 가게에서 파는 맥주를 줄인 말이다. 소형 상점의 빈 공간에 탁자 몇 개 놓고 오징어 등 간단한 안주에 맥주를 파는 곳이다. 가맥은 1970년대 전주 중앙동의 홍콩반점 맞은 편에 있던 영광상회를 원조로 친다. 이 가게에서 오징어나 북어포, 과자 안주에다 맥주를 팔기 시작하면서 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광상회는 없어졌지만 도일슈퍼, 초원슈퍼, 경원상회, 전일슈퍼, 임실슈퍼 등이 나름대로 맛을 개발하면서 꾸준히 명맥을 이었다. 가맥 집은 전주에서만 300여곳에 이른다. 가맥 집이 뿌리 내린 건 부담 없는 가격에다 독특한 맛의 양념장 때문이다. 맥주 한 병에 2500원으로 저렴하다. 저렴한 가격으로 맥주를 즐길 수 있어 직장인이나 대학생들이 가맥 집을 선호한다. 안주는 갑오징어나 황태, 계란말이, 땅콩 등 간단하게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것들이다. 이 중 백미는 단연 갑오징어다. 갑오징어는 오징어보다 질겨서 망치로 두드려 살을 부드럽게 하는데 양념장을 찍어 먹는 맛이 오묘하다. 가맥 집마다 다른 양념장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술꾼들의 양념장 품평도 날카롭다. 야외에는 탁자가 비치돼 있고 실내에는 에어컨이 갖춰져 있어 요즘처럼 열대야에 잠 못 드는 주당들에겐 인기 짱이다. 최근에는 한옥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늘면서 가맥 집은 이들이 찾는 단골 명소로 부상해 있다. 전주만의 독특한 음주문화인 가맥이 이젠 축제로 승화되고 있다. ‘2015 가맥축제’가 7·8일 이틀간 한옥마을 인근인 한국전통문화전당 일대에서 개최된다. 가맥축제는 송하진 지사의 주문이 계기였다. 지난해 10월 하이트진로 공장 방문 당시 하이트진로 활성화 대화 중 가맥 이야기가 나왔고, 민간 중심으로 주도해 보라고 권유한 것이 발단이었다고 김정두 축제조직위 사무국장이 전했다. 가맥 집 대표와 경제살리기도민회의 등 순수한 민간단체 중심의 축제다. 4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가맥은 이제 전주만의 독특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비빔밥, 콩나물국밥, 막걸리와 함께 전주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됐다. 축제를 통해 매출 증대로 이어지고 새 콘텐츠로 뿌리내린다면, 그리고 체류형 상품으로 진화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창조경제가 아니겠는가. 이경재 수석논설위원

  • 오피니언
  • 이경재
  • 2015.08.04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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