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 앞에 서면 마음이 평안해져요"
손톱 밑이 거뭇거뭇하다. 쉴새없이 먹 작업을 하는 까닭이다.
짜투리 시간엔 한지를 알기 위해 견학을 다니느라 바쁘다. 입에 "빨리, 빨리"를 달고 살 정도.
7일 오후 4시 전주 팔복동 천일한지 공장에서 만난 화가 투이야 토이바넨씨(40·제네바미술관 직원)는 기자를 보자 씨~익 웃으며 반겼다.
그는 스위스 바젤대학에서 만난 광자양씨와의 인연으로 동양화에 매료됐다.
"광 선생님이 제 그림을 보시더니, 여백이 많다고 동양화를 권유하셨어요. 물론 어려웠죠. 발묵도, 단필도 쉽지 않았어요. 포기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꿈속에 제가 그럴싸한 단필을 그리는 거예요. 아, 이건 운명이구나 했어요, 운명."
그가 전주에 발을 디딘 것은 3주 전. 한지를 비롯한 종이에 관한 석사 심화과정 논문을 쓰면서, 전주 한지를 직접 보고 익혀야겠다는 욕심으로 이곳을 찾았다. 이날 그는 천일한지 대표인 김천종씨로부터 흘려뜨기(외발뜨기)와 가둠뜨기(쌍발뜨기)를 통한 한지 제조과정 설명을 들으면서, 한지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지는 정말 뛰어난 종이 같아요. 이렇게 오래가고, 질기고, 얇은 종이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런데 다 팔리지 않아 재고로 쌓여있다니요? 맘 같아선 제가 다 사가고 싶네요."
한국에 와서도 그의 붓질은 계속됐다. 욕심껏 사놓은 한지만 일주일 사이에 100장을 넘게 썼을 정도.
"한국화가들은 정말 열심히 작업하는 것 같아요. 전 7년이나 했다고 자신감을 가졌는데, 15년, 20년, 30년도 더 하신 분들이 많아 놀랐습니다. 어떻게 하나 했는데, 종이 앞에 서면 설수록 마음이 평안해져요. 그래서 계속 작업하게 되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현재 제네바미술관에서 그림의 탈색과 변질을 막기 위한 보존·보수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 전주도 첫 방문이지만, 너무 편안하게 다가와 마치 모국같다는 그는 이번달에 일정을 마무리하고 다시 스위스로 돌아갈 예정.
"좀 더 열심히 해서 한국화 개인전을 하고 싶다"며 "돌아가면 깻잎 반찬과 된장찌게가 그리울 것 같다"는 것을 보니 영락없는 한국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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