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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자의 슬기로운 보디빌딩](2)완산칠봉 '산스장' 부담 없이 몸만들기

때는 오전 8시30분. 평소 같음 회사 사무실에 다다랐을 그 시간에, 초록 수림이 우거진 산 입구에 왔다. 편한 운동화에 꽉 달라붙는 탄력 반팔티를 입은 차림으로. 가방 안엔 카페인 음료와 닭가슴살이 즐비했고, 노트북과 수첩은 없었다. 입구 근처 민가에서 키우는 귀여운 강아지가 기자를 반겼다. 본인에겐 생명줄과도 같은 닭가슴살을 나눠주며 오늘 운동에 대한 밑그림을 대충 그린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상쾌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산 정상에 있다는 의문의 공간으로 향했다. △ 산에서 맞이한 아침은 따스했다 산을 올랐다. 하늘은 파랗고, 잎사귀는 푸르스름했다. 어느새 여름이 찾아왔다. 아침 등산은 오랜만이었다. 군대에서 매일 3km 구보로 산을 오를때가 생각났다. 그땐 이유없이 항상 활기가 가득했던 것 같다. 산속에서 맞이한 아침 햇살은 따스했다. 매일 아침 출근해서 사무실에 박혀 있다 점심에 맞이하는 햇살과는 분명 달랐다. 건강 전문가가 아침마다 산에 올라 운동하라고 매체에 나올 때마다 외치는 말이 헛말은 아닌 듯하다. 20분 남짓 올랐을까. 익숙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제 저녁에 봤던 풍경이다. 거친 숨소리와 활력을 더해주는 신나는 음악이 들려왔고, 중독성 강한 쇠 냄새가 진동했다. 아무리 봐도 헬스장이었다. 그것도 산 정상에 있는. △ 이 모든 것이 무료입니다 '산 속 헬스장'이란 뜻에서 흔히 '산스장'이라 불리는 이곳은 완산칠봉의 정상 장군봉(해발 200m) 바로 밑에 있었다. 보통 철봉과 평행봉만을 갖춘 일반적인 산스장과 달리, 완산칠봉 산스장은 무게를 조절할 수 있는 헬스 머신 4대가 설치돼 있었다. 바벨과 덤벨, 완력기 등 운동에 필요한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일반적인 동네 헬스장과 비견될 정도였다. 어떻게 산 정상에 이런 완벽한 공간이 생긴 것일까. 한창 가슴운동에 정진하던 한 어르신에게 물었다. 운이 좋았다. 그분이 산스장의 역사와 함께한 산증인이었다. 60년 째 완산칠봉에 올라 운동을 해왔다는 시민 김종선 씨(70)에 따르면, 이곳은 1960년대부터 운동을 좋아한 몇몇 시민에 의해 시작됐다. 산속 맑은 공기를 마시며 근력 운동도 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는 취지였다. 처음에 철봉 등 몇가지 맨몸운동 기구만을 갖췄던 이곳을 애용하는 시민은 점차 늘었다. 그러면서 이들이 기증한 운동 기구는 점차 늘었고, 지난 2014년엔 공단의 지원을 받아 4대의 헬스 머신이 들어와 그럴싸한 헬스장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오늘날에는 산스장에서 매일 운동을 즐기는 동호회 회원 몇몇이 매달 성금을 모아 시민들에게 제공할 물과 음료 등도 구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을 누리는 데 비용은 일절 들지 않는다. 그저 15분 정도 완산칠봉을 오르기만 하면 된다. 운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된다. 당신이 여기서 원판을 깔짝거리기만 해도, 60년 내공의 은둔 고수들이 알아서 운동을 알려줄 것이다. 누구나 부담 없이 이용 가능하다. 무릎이 아파 산을 오르는 것이 어려운 어르신이나 밀폐된 공간의 탁한 공기에 민감한 사람들도 문제없다. 이곳은 완만한 경사로에 해발 200m에 불과해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고, 탁 트인 산 정상의 맑은 공기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운동에 있어 완벽한 요건을 갖췄기에 완산칠봉 산스장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실제 이곳을 찾아 운동을 즐기는 시민이 하루 평균 2000여 명에 달할 정도라고 한다. △ 웬만한 헬스장보다 좋았다 그래도 야외에 갖춰진 운동 시설은 습한 날씨와 비로 인해 쉽게 부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개인 사업 공간도 아니기에 체계적인 관리도 어렵다. 산이 70%인 우리나라에서 유독 산스장이 드문 이유다. 이곳은 어떨까. 카페인 음료를 섭취한 후, 직접 운동해봤다. 가볍게 턱걸이를 해준 뒤, 등 운동을 할 수 있는 랫 풀 다운 머신에 앉았다. 놀라웠다. 케이블이 상당히 매끄럽게 유지돼있어 무게 날림이 없었다. 상당히 무거웠다. 나머지 가슴 운동 머신 2종과 어깨 운동 머신 1종도 마찬가지였다. 비록 외관으로 봤을 때 어느정도 녹슨 흔적이 있었지만, 운동감은 웬만한 고가 헬스 머신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 관리가 무척 잘 돼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운동 기구를 관리하는 동호회 회원들의 덕이었다. 맑은 공기와 수려한 자연 경관을 즐기며 만족스런 운동을 마친 뒤, 창고에 붙어있는 거울에서 펌핑된 몸을 한껏 뽐냈다. 거울 속엔 감출 수 없는 활기를 온몸에 가득 내뿜은 건강한 청년이 담겨있었다. 밀폐된 공간에 다닥다닥 붙은 운동 기구, 사방에 가득한 먼지로 가득한 실내 헬스장에서 담은 거울 속 모습과는 달랐다. △ 노병은 죽지 않는다 산을 오를 때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근처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몸짱이라는 점이다. 의문은 산스장에 도착해서 해결됐다. 흰 머리가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양쪽에 30kg이 넘는 원판의 바벨을 밀어 올리고 있었다. 운동을 마친 어르신의 가슴 근육은 기자의 것보다 더 우람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인정하기로 했다. 산 속에서 세월을 이겨내고 홀로 단련을 거듭해온 '노병'을 정크 푸드로 찌든 햇병아리가 어찌 당해낸단 말인가. 이곳의 어르신들은 운동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만나고 있었다. 다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과 호기심에 가득 찬 젊은이의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죽은 눈으로 커피를 마시며 한숨을 푹 내쉬던 20대 기자 본인보다 분명 젊어 보였다. 그렇게 운동을 마치고 하산했다. 기분이 썩 괜찮았다.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있다. 운동은 누구나,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기존 실내 헬스장만을 다닐 땐, 운동 중에서도 특히 근력 운동은 젊고 시간적 여유가 있는 사람만이 제대로 향유할 수 있는 분야라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헬스장을 찾는 연령은 대부분 20∼30대의 젊은 층이 대부분이었다.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기자에게 어르신은 공원에서 힘없이 앉아 조용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그게 아녔다. 이번 경험을 통해 새로운 면면을 봤다. 이른 아침부터 산에 올라 자신을 가꾸는 어르신의 모습은 분명 기자보다 젊었고, 활기찼다. 운동에 정답은 없다라고 했던가. 마음만 먹으면 나이가 어떻든, 무슨 상황이든지 간에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운동이었다. 삶이 지치고, 무료해질 때. 산에 올라 이곳에서 운동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아마 어느순간 더 젊어진 과거의 자신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기획
  • 이준서
  • 2023.06.01 18:10

[창간호 - 변화와 도약, 더 특별한 전북시대로] 장수군 -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미래농업 특화…새 성장동력 확보

최훈식 장수군수가 민선 8기 군정 목표를 ‘새롭게 도약하는 행복 장수’로 정하고 지역소멸 위기 속에서 장수군이 미래로 나아가고 군민의 소중한 꿈과 희망이 이뤄지는 행복한 장수군을 만들기 위해 지난 1년 곳곳을 누비며 군민과 소통을 공고히 다지고 있다. 최 군수는 1년의 짧은 기간 행안부 적극행정, 혁신행정 평가 등에서 대외적으로 긍정적인 평을 받은 것은 군민의 열렬한 응원과 위민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 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난 1년 동안 장수군 발전을 위해 성원해주신 군민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처음 취임했던 그 날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장수군 발전만 생각하며 1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며 “처음 공직생활을 시작한 순간과 장수군수 출마 선언한 순간, 그리고 민선 8기 장수군수로 취임한 순간을 항상 생각하며 군민이 행복한 장수, 군민이 자랑스러워하는 장수군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민선 8기 1주년을 맞아 최훈식 군수가 추진하고 있는 주요 현안사업을 살펴보고 장수군에 불어온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전망해 본다. 장수군 스마트팜으로 미래 100년 성장기반 구축 최훈식 군수는 장수의 미래는 농업에 있다는 신념으로 취임 초부터 미래농업을 준비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농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특화해 발전시키며 농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데 온 행정력을 집중하고 있다. 최우선으로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만들기 위해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사업을 추진 중이다. 또 농산물 가격안정기금을 조성해 농산물 가격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생산 농가의 소득안정을 도모하며 농업경영의 안정적 기틀도 마련했다. 특히 임대형 스마트팜은 정부의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 중 하나로 정부는 농업을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전환하고 청년층을 이끄는 스마트농업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인구유인책이 필요한 장수군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춰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을 조성해 청년 농업인을 유입시켜 지역소멸의 위기 속에서 기회를 발굴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군은 총 663억 원(기금 120억 원, 국비 159억 원, 도비 156억 원, 군비 228억 원)을 투입해 8㏊ 규모의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을 목표로 1단계 2024년까지 두산리 일원에 4㏊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2단계 올해 4㏊ 규모의 사업부지를 선정한 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그동안 스마트팜에 도전하고 싶지만 온실 조성 등 초기비용에 드는 막대한 예산이 부담돼 농업을 포기했던 청년 창업농들이 스마트팜을 적정 임대료로 임대해 안정적으로 농업경영을 이어가며 재배역량을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현재 농촌 고령화와 코로나19 장기화로 매년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 단계에 이르러 농가들의 불안이 심화되고 농민들의 삶까지 위협받고 있어 지난해 농식품부 공모사업인 공공형 계절근로사업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뤄 올해 5월부터 농가에 계절근로자를 배치해 일손 지원을 하고 있다. 더불어 결혼 이주민들의 가족과 친척으로 구성된 외국인 근로자와 JOB센터를 통해 모집한 도시민 유휴인력도 농가에 배치해 농촌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농가들이 적기에 영농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있다. 군민에게 활력이 되는 정책! ‘살고 싶어지는 장수’ 최훈식 군수는 민선 8기 출범과 함께 농촌공간 정비사업, 저탄소에너지 공동이용시설사업 등 각종 국가 공모사업 선정에 총력을 기울였다. 2023년 국가예산으로 전년 대비 557억 원(국·도비 등)이 증가한 1197억 원(국·도비 등)을 확보하는 등 행복 장수 건설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총예산 4600억 원 시대를 맞은 2023년을 대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고 포부를 밝힌 최훈식 군수는 “군민들께 약속드린 사업들을 신속하고 차질없이 추진해 행복 장수로 가는 지름길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민생, 교육, 복지, 경제, 관광 등 전 분야에서 모두가 행복한 장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최 군수는 올해 ‘동심동덕(同心同德)’을 신년 사자성어로 삼고 새롭게 도약하는 행복장수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에 2025년까지 농어촌 상수도 물 복지 확대사업으로 총사업비 60억 원(2023년 12억 원)을 투입해 농촌지역 물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장수군 마을단위 LPG 배관망 구축사업으로 42억 원을 투입해 도시가스 수준의 생활 편익을 제공, 취약한 에너지 분야 개선에 힘쓰고 있다. 이외 신·재생에너지 융복합 지원사업(33억 원)으로 기존 화석연료를 친환경에너지로 전환하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해 ‘클린 장수’를 만들고 주차환경 개선사업(87억 원)으로 장수중심지 주차타워와 장계면 소재지 공영주차장 조성으로 주차공간이 부족한 군 환경을 개선해 주민 생활 편익을 향상시키고 주민들에게 쾌적한 삶을 제공할 예정이다. 더불어 국도 19호선 장수~장계 도로시설개량공사(2025년 준공)를 335억 원을 투입해 군민은 물론 장수군을 방문하는 도로 이용객들의 편의를 도모하고, 산서면 농촌공간 정비사업(2026년)으로 154억 원을 투입해 농촌의 생활환경을 저해하는 유해시설 이전 및 정비를 통해 주민불편을 해소하고 농촌다움을 복원한다는 구상이다. 공존하는 장수의 문화관광으로 “문화관광도시 장수” 건설 최훈식 군수는 2023년 장수군 대표 관광지 조성과 100만 관광객 유치를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해발고도 500m 이상의 청정지역 장수군의 태고적 자연의 아름다움을 활용한 관광인프라 구축으로 누구나 인정하는 관광명소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청정자연에서 체험을 즐기고 힐링하면서 삶의 활력을 되찾고 돌아갈 수 있는 장수누리파크 농촌관광활성화사업, 유아숲 체험원 등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자원으로 매우 큰 가치가 있는 뜬봉샘 생태공원 내 1만 2000여 평 규모의 자작나무 숲 아래에 꽃단지를 신규로 조성하고 뜬봉샘 생태공원과 연계해 청정자연 속 힐링할 수 있는 ‘쉼’의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계남면에 위치한 벽남제 주변을 정비하고 둘레길을 조성해 다시 가고 싶은 공간으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여기에 작년 12월에 개관한 꿈꾸는 예술터를 연계해 지역 문화예술에 큰 활력을 불어넣을 예정이다. 더불어 여름철 천혜의 계곡을 활용한 ‘한여름 계곡문화축제’를 새롭게 개최해 피서철 장수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계곡과 문화예술 공연을 융합한 볼거리·즐길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상품권 지원과 숙박 연계를 통해 체류형 관광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방침이다. 소외와 차별 없는 교육 “희망을 키우는 장수” 민선 8기 장수군은 아이들이 정책에서 소외되지 않고 도시의 아이들과 차별 없는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교육예산을 거의 2배 가까이 확대했다. 학교 교육지원 12개 사업(7억 원)에서 17개 사업 12억 원으로 확대해 기존 교육사업비 추가 확보와 동시에 5개 신규 교육사업을 발굴 추진하고 있다. 또한 5월 장수군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 교육을 위해 장수군 풀뿌리 교육지원센터를 설립 운영해 관내 각 교육기관에서 개별 운영되고 있는 교육지원사업을 통합·관리를 통한 예산 누수를 차단하고 효율적인 교육 지원체계를 구성할 계획이다. 특히 풀뿌리 교육지원센터를 통해 교육과정 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한 맞춤형 성장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다양한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해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및 학생들의 문화감수성 함양을 지원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올해부터 대학생 주거비 지원 장학금이 신설돼 타지에서 생활하는 장수군 출신 대학생들에 대해 주거비 지원 장학금을 지급함으로써 생활비 걱정으로 학업에 집중할 수 없었던 대학생들까지 학업 기회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최훈식 장수군수 "행복한 변화 위해 흔들림 없이 노력" 취임 후 군민과 접촉면을 넓히기 위해 동치서주(東馳西走)한 최훈식 장수군수에게 1주년을 맞아 그간의 소회를 들었다. 최 군수는 “먼저 지난 1년 동안 ‘새롭게 도약하는 행복장수 건설’에 함께하여 주신 군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난 1년이 장수군 발전을 위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혁신 역량을 강화하며 기틀을 다지는 시간이었다면, 다가오는 미래는 더욱더 혁신해 행복 장수로 가는 길을 공고히 해야 하는 시간이다”고 강조하며 “행복한 변화와 발전을 위해서 장수군이 이뤄나가야 할 과제들이 매우 많다면서 앞으로도 공직자들이 하나로 화합해 우리 아이들에게는 희망을, 군민 모두에게 웃음과 행복을 줄 수 있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특히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발전하는 시대에 한발 앞서 대응하면서 군민만을 바라보며 혁신과 변화의 노력으로 초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흔들림 없이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최훈식 군수는 “군민 여러분도 그 발걸음에 동참하여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취임 후 최 군수는 군민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자문하며 지난 1년 논과 밭, 들녘과 산림, 각 삶의 현장에 종사하는 주민들을 찾아서 보고 들으며 답을 찾아가고 있다. 이런 그의 행보가 군민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며 군민들의 미래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는 이유이다.

  • 기획
  • 이재진
  • 2023.06.01 16:02

[창간호 - 특별자치도 시대, 전북 변화와 도약] MZ세대, 특별자치도에 바란다

△양건 씨(23·전북대학교 국제인문사회학부 4학년) 제 친구들을 포함해 많은 청년들이 고향 전북을 떠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북도민으로서, 그리고 전북대 학생으로서 매우 안타깝습니다. 저는 졸업 후에도 앞으로 전북에서 살아가고 싶습니다. 남원에서 태어나고 자라 그저 익숙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지금까지 제가 어엿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나아갈 수 있도록 요람을 제공해 준 전북에 대한 자그마한 책임감이 아닐까 싶습니다. 젊은이들이 없다는 수많은 외침을 외면한 채 무책임하게 떠나고 싶지 않습니다. 대부분 전북을 떠나는 친구들도 마음은 저와 같을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전북을 떠나는 이유를 물으면 “여기에 직장이 있으면 나도 여기서 편하게 하고 싶지”, “이곳에는 내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직장이 아예 없어” 등 백이면 백 취업을 그 이유로 꼽곤 합니다. 이런 점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전북특별자치도는 청년들이 남아 일할 수 있는 곳이길 바랍니다. 모든 청년의 고민인 취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발한 기업 유치를 비롯해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위해 도와 지자체, 국회의원들이 힘을 합쳤으면 좋겠습니다. 전북 문제에서만큼은 단일대오를 형성해 어려운 지역 사정을 돌파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전북을 사랑하는 청년들이 이곳에 남아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줬으면 합니다. 또 이 문제는 지역뿐 아니라 중앙정부에서도 도움을 줘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 차원에서 해결이 안 돼도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중앙정부와 소통하는 모습을 임기 내내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석 씨(29·온라인 쇼핑몰운영, 블로그 마케팅 교육사업) 내년 새롭게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는 전북 청년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상부상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지원하고, 인적 네트워킹이 잘 형성된 지방을 만드는 데 힘써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토종 지방러’로 전북에서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성공하고자 합니다. 이곳에서 성공하고 싶은 이유는 특별하지 않습니다. 전북에서 나고 자랐고, 가족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는 이곳에 살고 싶습니다. 다른 전북 청년들도 저와 다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청년들이 전북을 떠나는 이유는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먹고 사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배들과 종종 만나서 얘기를 할 때면 취업이라는 이 한 단어에 갇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방법이 많은데 ‘취업’이라는 길 딱 하나만 정해놓고 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습니다. 그때 문득 “청년들이 공간 제약이 없는 온라인상에서 새롭게 시장을 개척한다면, 취업을 위해 전북을 떠나지 않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북 청년들이 온라인상에서 스스로를 브랜딩해 전북에서 발 딛고 있어도 충분히 전국을 상대로 먹고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전북 청년들이 상부상조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원하고 이를 통해 인적 네트워킹이 잘 형성된다면 청년들이 남고 싶은 전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기점으로 사람 냄새나고 풍경 좋은 고향에 청년들이 하나둘 돌아왔으면 좋겠습니다. 박상준 씨(29·지역농업네트워크 호남협동조합 연구원) 지역농업네트워크 호남협동조합에서 지자체 혹은 농협 단위 농업정책 컨설팅을 하는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박상준이라고 합니다. 내년 전북특별자치도 출범을 앞두고 많은 사람이 기업 유치를 통해 공장이 들어서거나 공공기관 등이 입주하는 이야기들만을 합니다. 하지만 저는 천혜의 환경과 우리 민족 농업의 가장 오랜 터전 중 하나였던 전북의 농업에 대한 생각하곤 합니다. 최근 저희 팀에서 컨설팅한 ‘익산형 일자리’가 정부로부터 지방 주도형 투자 일자리로 선정됐습니다. 전북의 전통 산업인 농업과 최근 성장 중인 식품산업의 장점을 결합한 대형 일자리 프로젝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농가와 기업이 계약재배를 통해 안정적인 수요처를 확보, 지역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저는 위와 같이 전북특별자치도가 지역 농가들을 보호하고 타 시·도와 밀리지 않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할 수 있도록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후진국이 공업 발전을 통해 중진국 문턱에 이를 수 있으나 농업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쿠즈네츠의 말입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선진국이 되길 바랍니다. 전북특별자치도의 발전을 위해서는 많은 기업 유치를 통한 성장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저는 전북특별자치도가 적극적으로 전북의 농업 경쟁력을 높이는 데 지원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이 튼튼한 선진국이 되는 근간을 확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되길 바랍니다. 김동진 씨(27·자영업) 전주에서 요식업을 하는 김동진이라고 합니다. 전북에 처음 오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북대학교 수시 면접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지리적 위치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습니다. 이후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전주에 거주하게 됐고 전공을 살려 취업하기보다는 전북에서 창업을 생각하고 꿈꾸게 되었습니다. 제 고향인 광주가 아니라 전북에서 창업하게 된 이유는 전주에서 8년 동안 생활하면서 이 지역에 여러 가지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전국 대표 관광지답게 놀거리, 볼거리, 먹을거리 등 여러 가지 관광 인프라도 형성되어 있고, 그 모든 것을 무엇보다 짧은 시간 내에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좋았습니다. 이곳에서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하면 전국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장사 초반인지라 전북 등 각 지자체에서 주관하는 지원 사업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았습니다. 새롭게 출발하는 전북특별자치도에 바라는 점은 여러 가지 지원책이나 지자체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소식지나 채널이 형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 창업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 청년들이 과감하게 창업할 수 있고, 창업하기 위해 찾아오는 기회의 땅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능력 있는 청년들이 전북특별자치도가 갖고 있는 관광 인프라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을 들고 창업해 전국적인 브랜드 본점이 살아 숨 쉬는 고장이 됐으면 합니다.

  • 기획
  • 송은현
  • 2023.05.31 20:13

[창간호 - 전북 '자치'의 역사: 근현대]일제강점기 '자존'을 위한 투쟁, 해방 이후 '자치'의 시작

전라북도는 2024년 1월 18일부터 0시부터 '전북특별자치도'라는 새 시대를 연다. 1896년 8월 4일 갑오개혁으로 전라도에서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되며 정해졌던 ‘전라북도’라는 명칭은 역사에 남고 ‘전북특별자치도’로 새역사를 쓰게 된다. 현재도 쓰이는 전라도라는 명칭으로 묶여 소외받아 온 전북으로서는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는 셈이다.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전북은 그 어느 곳보다 치열하게 '자치'를 향해 뛰어왔다. 역사적 혼란의 시기였던 일제강점기 전북은 '자존'을 찾기 위한 몸부림으로, 현대 들어서는 중앙 정부와 광주·전남으로부터의 철저한 소외 속에서도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부단히 노력했다. △일제강점기 '자존'을 위한 투쟁 일제강점기 '자치'라는 단어는 '자존', 그리고 '자주'를 위한 움직임으로 바뀌어 의병 등 전북의 항일 운동으로 나타났다. 전주와 삼례, 그리고 정읍, 김제를 포함하는 호남평야 일대는 비옥한 토지로 우리나라 미곡 생산의 거점이 되는 지역으로, 1899년 군산항 개항 이후 일제에 의한 경제 수탈이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일본 농업경영자들은 군산을 거점으로 옥구, 전주, 정읍, 익산, 김제 등 평야 지역 토지를 대규모로 매입한 후 농장을 설립하였으며, 이곳을 통해 우리나라의 경제적 수탈이 본격화됐다. 이때 떠오른 것이 전북의 의병과 항일운동이다. 스스로 다스리는 '자치'를 위한 투쟁이자 몸부림이었다. 1894년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1895년의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단발령 등에 항거해 봉기한 의병은 을사늑약 체결 직후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확대됐다. 호남, 그리고 전북은 동학농민혁명의 여파로 의병 운동이 적었지만 1907년 고종 황제 강제 퇴위를 시작으로 한일신협약, 군대 해산으로 이어지는 혼란한 상황에서 수많은 의병이 일어나면서 호남은 의병운동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호남 지역에서 의병운동이 처음 시작된 것은 을사늑약 체결 후 최익현을 중심으로 일어난 정읍 태인 의병이다. 태인 의병은 전북에서 일어난 최초의 항일 의병이라는 의미를 갖고, 의병운동이 상소 운동에서 무장 투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는 등 전국 의병운동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후 전북 지역에서는 수많은 의병이 무력 투쟁을 전개했다. 한국독립운동사에 기록된 전북의 의병 수와 교전 횟수는 1908년 219회 교전, 의병 수 9960명, 1909년 273회 교전, 의병 수 5576명으로 1908년에는 전국의 1/4, 1909년에는 전국의 절반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 지역 3·1운동은 3월 3일 천도교와 개신교 조직망을 통해 전주, 군산, 이리(현 익산) 곳곳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독립선언문이 배부되면서 시작돼 약 한 달 반 동안 지속됐다. 3월 4일 군산영명학교 교사와 학생들은 “일제는 물러가라, 조선은 독립했다”는 구호를 외치며 태극기를 들고 거리 시위를 전개했고, 그 뒤를 이어 전북도 14개 전 지역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났다. 3월 10일에 오수보통학교, 3월 15일에 고창보통학교, 4월 4일에 김제보통학교, 4월 18일에 줄포 보통학교 어린이들이 시위에 참여했다. 많은 전북 출신 인물이 3·1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 등 각 교단에서 추천받아 구성된 민족 대표 33인은 3월 1일에 낭독할 독립선언문과 일본 정부에 보낼 독립 통고서 등을 만들어 서명했는데, 전북 출신의 박준승, 백용성, 임규, 정노식 등이 여기에 참여했다. △해방 이후 본격적인 '자치'의 시작 본격적인 '자치'라고 볼 수 있는 지방자치 시대는 제헌헌법에 명문화되며 개막했다. 전북도 자치의 역사는 대한민국 자치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현재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 과정에서 전북이 전국을 선도하는 모습을 보여준 경우도 적지 않다. 대한민국 지방자치제도는 1948년 제헌헌법 제8장의 지방자치 규정으로 명문화됐다. 그러나 당시 국내 질서 불안과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지방의원 선거를 하지 못했고, 1952년에야 기초의원 선거(4.25)와 광역의원 선거(5.10)가 각각 처음으로 치러졌다. 치안 문제로 당시 전북도 4개 군(당시 남원군·완주군·순창군·정읍군)에서는 선거가 연기되기도 했다. 이마저도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지방의회를 해산하고 지자체장을 임명제로 바꾸며 중단됐다. 1972년 유신 헌법 부칙에 ‘지방의회는 조국 통일이 이뤄질 때까지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해 사실상 지방자치제 폐지를 선언하며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암흑기를 걸었다. 1961년부터 이어진 군사독재 기간 사실상 폐지됐던 지방자치는 1987년 민주화,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열망과 함께 부활의 신호탄을 알렸다. 1988년 헌법 제118조 지방의회 설치에 관한 규정을 유보한 부칙을 폐지했고, 1990년 10월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단식을 계기로 지방선거가 추진됐다. 1991년 제4대 지방의회 선거를 통해 30년의 암흑기를 깨고 새 역사가 시작됐다. 1991년에는 두 차례 선거를 통해 광역·기초의원을 선출했고, 전북에서도 52명의 도의원을 선출, 임기에 들어갔다. 당시 단체장은 임명직으로 유지됐지만, 1995년 단체장도 선거로 선출하는 통합지방선거가 실시되면서 외형적으로 온전한 지방자치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현재도 전국 지자체에서 시행하는 의원들의 5분 자유발언(당시 4분 자유발언)을 처음 시작한 곳이 전북도의회라는 것을 아는 인물도 많지 않다. 아쉬움도 크다. 전북 출신 정치인의 경우 소석(素石)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 등 전국에서 내로라했던 인물이 다수 포함됐던 곳도 전북이었지만 명맥은 이미 끊긴 상황이다. 소석의 현실 정치에서의 퇴장과 함께 호남의 정치는 광주·전남의 정치로 굳어졌다. 다만, 현재의 전북, 미래의 전북은 과거의 위상을 되찾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소외와 낙후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고자 전북특별자치도가 추진됐다. 전북 자치의 역사는 현재진행중으로, 전북은 새로운 변화와 비전을 품고, 새로운 출발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 기획
  • 천경석
  • 2023.05.31 18:15

[창간호 - 특별자치도 시대, 전북 변화와 도약] 장수군 - 미래 농업 실현 위해 스마트팜 조성

기후변화에 따른 각종 자연재해, 치솟는 농자재비와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농촌 인력 부족 문제까지 갈수록 어려워지는 농업 환경 속에서 해결 대안으로 스마트팜이 급부상하고 있다. 장수군은 지속 가능한 미래 농업 실현을 위해 전라북도 스마트팜을 가장 앞서 이끌어가고 있다. 일찍이 장수군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육성을 민선 8기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잘 사는 농촌, 행복한 농민 실현을 위해 박차를 가하고 있다. 임대형 스마트팜은 정부의 8대 혁신성장 선도사업 중 하나로 정부는 농업을 미래 신성장산업으로 전환하고 청년층을 이끄는 스마트농업을 활성화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인구유인책이 필요한 장수군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발맞춰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 농군사관학교 운영 등을 통해 청년 농업인을 유입시켜 지역소멸의 위기 속에서 극복의 기회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장수군은 ‘지역특화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사업’을 위해 기금 120억, 국비 159억, 도비 156억, 군비 228억 등 총 663억 원을 투입해 8ha 규모의 임대형 스마트팜 조성을 목표로 1단계는 2024년까지 두산리 일원에 4ha 규모의 스마트팜을 조성하고, 2단계로는 올해 4ha 규모의 사업부지를 선정한 후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사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최훈식 군수는 “최근 농업의 중요성과 가치가 재조명되면서 스마트팜, 농촌체험, 치유농장 등 다양한 농업 관련 사업들이 발굴되고 있다”며 “군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농업인들이 스마트팜을 활용해 경제적인 비용으로 스마트농업을 실현할 수 있도록 군에서 시설지원은 물론, 교육까지 그 기틀을 철저히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 기획
  • 이재진
  • 2023.05.31 17:58

[창간호] 창간 73주년 전북일보에 바란다

방향성과 중심 잃지 않고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언론 되길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도로마저 휘어가게 만들며 존재감을 발휘한 소덕동 팽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을 지켜온 역사의 산증인이며 공동체를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강한 상징적 의미로 등장합니다. 실제 500살 나이의 이 나무는 경남 창원 한 마을의 당산목이던 것이 이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이 마을의 새로운 자랑거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소식을 기록하고 주민의 권리를 대변해온 지역의 오랜 대표 신문 또한 역사의 산증인이며 공동체의 버팀목이라는 의미에서 이런 당산나무에 견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난 1950년 이래로 도민과 동고동락하며 지역 전통과 역사를 기록해온 전북일보가 오늘로 창간 73주년을 맞았습니다. 긴 세월 동안 우리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고 필요할 때 질타를 마다하지 않은 정론지의 존재는 소덕동의 그 팽나무처럼 전북인의 자랑과 든든함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북일보의 창간 7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한한 긍지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ICT 기술과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로 초래된 종이신문과 지역 언론의 위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 과감한 자기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이미 해외 언론시장에서도 지역 언론 간 네트워크 협업, 시장과 채널의 다양화, 쌍방향 소통 등 다채로운 발전의 길이 모색된 지 오래되었습니다. 이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를 때일수록 올바른 방향성과 중심을 잃지 않도록 매의 눈으로 바라보는 지역 대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 전라북도가 특별자치도로 거듭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갈 지금과 같은 시기에 그 책무는 더욱 큽니다. 오랜 세월 정론을 신념으로, 도민을 주인으로 여기며 변화를 거듭해온 전북일보가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성공적으로 부응해 나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도민의 든든한 버팀목으로서, 전북의 대표지로서 승승장구하기를 기원합니다. /임성진 전북일보 독자권익위원회 위원장 전북에 이익되는 뉴스 더 전해주길 평범한 대학생시절 전북일보는 전북의 각 지자체의 시보 군보 등을 전해주는 가장 빠른 언론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전북에서 제일 큰 전북일보의 뉴스가 가장 정확하고 빠른 뉴스를 전달한다고 믿었습니다. 나이가 들고 점차 세상을 보는 폭이 넓어질수록 많은 언론사를 접하게 됐고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언론사는 편집자가 누구냐에 따라, 쓰는 이가 누구냐에 따라 많은 견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됐습니다. 긍정적인 소식도 부정적이게 생각될 수 있고, 부정적인 생각도 긍정적이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전북일보는 한결같이 중립적인 의견과 최대한 전북에 이익이 될 수 있게 기사를 쓰는 것 같습니다. 이에 따라 20대의 관점에서 전북일보가 앞으로도 어떤 언론사보다 전북에 이익이 될 수 있는 뉴스와 소식을 많이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20대 회사원 이경서 씨 청년 관심 높이도록 디지털 분야 새 도전을 오래 전부터 전북일보를 봐왔는데 요즘엔 인터넷을 통해서 지역 곳곳의 소식을 새로 알아 유익하게 보고 있습니다. 최근 격변하는 디지털 시대에 전북일보는 인터넷 홈페이지 개편으로 다채로운 구성과 편집이 돋보인다고 느낍니다. 요즘 MZ세대들은 SNS를 통해서도 타인과 교류하고 교감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종이신문에 안주하지 않고 웹을 통한 전북일보의 디지털 소통 부분은 독자의 눈길과 손길이 가기도 합니다. 특히 요즘 사진과 영상을 통한 뉴스를 찾는 젊은이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전북일보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전북을 대표하는 정론지로서 청년층의 관심을 높이도록 디지털 분야에 있어 새로운 도전을 해나가길 바랍니다. /30대 경찰공무원 오성택 씨 소외된 이웃·소상공인 삶·어려움 적극 반영도 코로나19 이후 위축된 지역 경기가 되살아났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써왔던 마스크를 벗고 홀가분하게 일상으로 복귀를 한 대한민국의 저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전북일보를 보면 지역의 소식을 발 빠르게 전하고 앞장서서 소외된 이웃을 조명하는 부분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언론의 현장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가운데 다양한 소식을 전하기 위한 사명을 다하는 전북일보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아직까지도 코로나19의 어두운 부분이 많지만 내일의 희망을 품고 일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을 더욱 더 조명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전북일보가 앞으로도 도민들의 민의를 대변하는 지역사회 등불 역할을 하면서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주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도 지면에 적극 반영해주길 바랍니다. /40대 교사 김수정 씨 전북만 가진 문화·자연 등 콘텐츠로 채워줘야 눈을 뜨자마자 뉴스를 틀어 전국 소식은 방송 뉴스에서, 지역 소식은 지역 신문을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지역 방송 뉴스도 있지만 우리 지역 사회의 문제와 행정은 전북일보를 통해서 더욱 면밀하게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신문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창간 73주년을 맞이하는 전북일보에 보다 자세한 전북의 소식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전북의 소외된 이웃과 지역에 대해 더욱 관심을 가지고, 파헤쳐서 알리면 지역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전북의 이야기가 많아질 것 같습니다. 다른 언론에서 이미 접한 내용과 접할 수 있는 소식이 아닌 조명이 필요한 지역과 이야기로 채워진 지면을 바랍니다. 또 전북의 숨은 명인, 젊은 예술인 등 전북의 인적자원과 전북만이 가지고 있는 자연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더욱 재밌는 지면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50대 회사원 전용무 씨 오랜 세월 정론을 신념으로, 도민을 중장년 세대에게 고향 소식은 늘 궁금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점을 전북일보는 지속적인 기획 기사와 취재로 지역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효자손 노릇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북일보는 반세기 넘도록 지역에서 꿋꿋하게 자리매김을 하며 지역의 여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곤 했습니다. 앞으로 100년 동안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사로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랍니다. 무엇보다 도민과 함께 지역과 함께하는 신문이 되길 고대합니다. 전북은 인구 감소와 지역경제의 어려움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전북일보가 도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경제적인 어려운 요소들을 부각시켜 지역발전에 함께 앞장서주길 바랍니다. 도민과 전북일보가 함께 최선을 다한다면 더욱 발전된 전북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60대 농민 김흥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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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고
  • 2023.05.31 17:29

[창간호 - 전북 ‘자치’의 역사] 고대 이주민·토착민 결합 자치 실현⋯민족 융화의 장

'축소'와 '침체'. 1945년 해방 이후 전북의 역사를 함축하는 단어다. 그간 전북은 광주‧전남에 밀려 중앙의 철저한 소외와 배제를 받아 왔으며, 오늘날에도 낙후된 인프라로 인해 나날이 지역을 떠나는 청년들이 줄을 잇고 있는 암울한 형국에 놓여있다. 내년부터 출범하는 ‘전북특별자치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다. 전북 도민은 중앙 정부의 간섭없이 전북만의 자치를 통해 지역 발전과 성장의 달콤함을 처음으로 맛볼 수 있기를 염원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은 역사적 경험에 의한 기대심리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전북은 고대부터 수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독자적인 ‘자치의 역사’를 써왔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 고대 : 전북에 정착한 고조선‧고구려인들 '자치(自治)'는 주민들 스스로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의 정부가 직접 통제하고 주관하는 통치형태인 '관치(官治)'의 반댓말로 쓰인다. 고대 전북의 자치는 민족을 아우르는 '융화'의 역사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한반도 최초의 국가 고조선부터 다양한 민족이 이곳에 들어와 토착 세력과 결합해 새로운 자치 집단을 형성하는 과정을 수차례 밟아왔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 년 전, 고대 전북 지역에 고조선의 지배층이 바닷길을 통해 대거 유입됐다. 삼국지 동이전 등 중국사서는 기원전 194년경 고조선의 준왕이 신하인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후 이곳으로 이동해 스스로 '한왕(韓王)‘에 올라 '마한'을 건국했다고 전한다. 이때 준왕이 남하해 온 지역의 위치는 세종실록지리지 등의 고문서를 검증했을 때, 오늘날 익산과 부안 지역에 해당한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당시 준왕이 자칭한 '한'이란 명칭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기원이 됐으며, 전북을 기점으로 한반도 남부를 수백년 간 지배한 삼한 연맹체가 형성됐다. 이후 삼국시대를 거쳐 670년경, 전북 지역에 다시 낯선 이주민이 들어왔다. 668년 고구려가 당에게 멸망하자 왕족 고안승이 고구려인을 거느리고 익산 지역에 내려와 '보덕국'을 건국한 것이다. '전북의 고구려' 보덕국은 신라와 연합해 당나라와 맞서 싸우고, 매년 일본에 사신을 파견하는 등 엄연한 자치국가로서 존속했다. 그러나 676년 신라가 당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 보덕국은 존폐의 위기에 놓였다. 당나라의 위협을 물리친 신라가 보덕국을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보덕국은 684년 신라의 압력에 저항하고자 수 개월간 무력 봉기를 일으켰으나, 이내 진압돼 15년만에 완전히 소멸하고 말았다. 비록 나라는 멸망했지만, 보덕국의 고구려인은 전주와 남원 지역으로 이주해 그 명맥을 이어갔다. 신라는 수도를 대신해 지방을 관할하던 5소경 중 하나인 남원경에 대다수 고구려 유민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이들이 백제인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신라에 동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전북 지역이 고대부터 고조선 등의 이주민과 지역 토착민이 스스로의 자치를 통해 하나의 집단으로 동화하는 민족 '융화의 장'이었음을 보여준다. △ 중세 : 전국을 호령한 또 하나의 백제 '후백제' 중세 전북 자치는 '팽창'의 역사였다. 통일신라 말기, 전국은 여러 군웅이 할거하는 대 혼란기를 맞았다. 이때 전북지역은 전주를 수도로 하는 '후백제'가 자리잡았다. 후백제는 신라의 군인이었던 '견훤'이 900년에 건국했으며, 중국에 사신을 보내고, '정개(正開)'라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했다. 전북인이 중심이 된 후백제는 신라의 수도를 함락시키고 고려를 수 차례 격파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다. 당시 후백제는 신라의 9주 중 6주를 차지할 만큼 강력한 국력을 자랑했으며, 삼국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후백제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했다. 935년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고려에 귀순해버린 것이다. 나라의 창업자가 적국에 망명한 최악의 상황에 놓인 후백제는 급격히 무너졌다. 결국 후백제는 고려와의 '일리천 전투'에서 패해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후백제는 비록 존속기간이 36년에 불과한 단명 왕조라 존재감은 낮지만, 수도였던 전북 일대에서는 후삼국 시대 혼란기 속에서 전국을 호령하던 당당한 자치 국가, 후백제 계승 의식이 남아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다. △ 근세 : 이름없는 민초의 손으로 ‘집강소’ 근세 전북 자치는 '변혁'의 역사였다. 강력한 중앙집권국 고려와 조선의 행정력 아래 천년 넘게 이어지던 전근대적인 통치 질서가 전북에서 발발한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해 무너지고, 민중 중심의 자치가 실현된 것이다. 1894년 중앙에서 파견된 수령들의 횡포를 견디다 못해 봉기한 동학농민군은 순식간에 전라도 전역을 석권하고 조정과 '전주화약'을 맺었다. 전주화약 이후 전주성에서 철수한 농민군은 각 지역에 농민 자치조직인 집강소를 설치하고, '신분제 철폐', '토지개혁' 등 농민들이 염원하던 개혁 내용이 담긴 폐정개혁안을 실천하고자 했다. 전주와 김제 원평을 중심으로 전라도 53개 고을마다 설치된 집강소는 동학교도가 우두머리인 '집강'이 되어 지방의 행정과 치안 전반을 담당했다. 기존 군수나 현감은 이름뿐으로 형식상 존재할 뿐, 실질적인 지방 권력은 농민이 장악하게 됐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구성면에서 소농, 빈농에 신분면에서는 백정, 노비 등 천민이 대다수였다는 점에서 집강소의 등장은 양반 기득권 중심의 지방 권력이 피지배층인 일반 민중에게 넘어온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사실상 집강소 운영을 통해 전북에서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중 중심의 지방 자치권의 대변혁이 시작된 셈이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31 17:09

[지난 주 '핫클릭' : 5. 21~26] 원아 없어 문 닫는 어린이집들

△5월 21일~ 26일 5월 넷째 주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은 김태경 기자의 '전북 어린이집, 아이가 없어요'를 가장 많이 클릭했다. 이 기사는 저출산 현상 속 최근 5년새 전주 아파트단지 내 어린이집들이 원아를 못 구해 19곳이 폐업하는 등 전북 지역 어린이집 324곳이 문을 닫은 상황과 이유를 들여다봤다. 두 번째는 이환규 기자의 '군산에 제2의 서울 경리단길 조성 기대감'. 이 기사는 군산시가 2025년까지 200억 원을 투입, 사정삼거리∼옛 군산화물역 2.6㎞ 폐철도 철길숲을 따라 조성하는 '도시바람길 숲' 계획을 소개했다. 서울의 경리단길과 같은 지역 대표 관광명소로 기대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 다음으로는 문정곤 기자의 '새만금 재생에너지 현주소···장밋빛 청사진은 어디로'이다. 태양광·해상풍력 등 문재인 정부 때 야심차게 추진됐지만, '계약 불발'·'취소 소송' 등 잇단 암초에 걸려 난항을 겪고 있는 '새만금 재생에너지 사업'을 진단했다. 이밖에 송승욱 기자의 '싸이 흠뻑쇼 2023 익산 온다', 육경근 기자의 '전주 신흥학교 총동문회장 이·취임식 성료..신임회장에 이광연 원장', 김윤정 기자의 '부산 가덕도신공항 공단 설립 급물살, 새만금 국제공항은 감감무소식' 등이 관심을 끌었다.

  • 기획
  • 이용수
  • 2023.05.27 13:44

[기획] 동아시아문화도시 일본 시즈오카현에 가다

최근 일본 시즈오카현에서는 공항과 현청 등 도심 곳곳에서 전주 맛집 등 관광정보가 담긴 지도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2023동아시아문화도시'에 함께 선정된 인연 덕분이다. 전주시를 비롯해 일본 시즈오카현, 중국의 청두·메이저우시가 함께 선정됐는데, 이 3개국 4개 도시는 '동아시아 문화권'이라는 공통 분모를 가지고 문화교류의 장을 이어 나가고 있다. 지난달 부터 각 나라에서는 2023 동아시아문화도시 개막식이 연이어 열렸다. 전주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26일에도 한·중·일 3개국이 모여 전주에 모여 우호관계를 다졌다. 3개국 중 마지막 순서로 지난 2일 일본 현지에서 열린 시즈오카현 개막식에서는 각 도시의 전통예술공연이 펼쳐졌다. 전주시 공연단으로 참석한 합굿마을의 기접놀이 무대에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일본 최초의 공립극장을 갖추고 문화예술을 육성해 온 시즈오카현 무대예술센터(SPAC)의 작품도 전주의 마음을 두드렸다. 동아시아 문화의 진한 향기로 채워지는 5월, 전주와 교류의 꽃을 피우고 있는 일본 시즈오카에 다녀왔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10주년 맞은 후지산 지난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후지산은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이를 알리기 위해 만든 후지산 세계유산센터는 후지산 전경 뿐 아니라 '후지산의 모든 것'을 담은 시설로 세계인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후지산을 거꾸로 놓은 듯한 외관 디자인이 시선을 먼저 사로잡고, 내부를 살펴보면 후지산에 담긴 신앙심과 미술작품과 고서적 속에 녹아든 후지산의 진면모도 두루 살펴볼 수 있다. 일본 중심부에 자리한 산 답게 높이 3776m로 가장 높은데, 그래서인지 예부터 일본인의 정신과 문화의 원천이었다. 사진애호가들과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방문객들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패러글라이딩 체험도 있다. 후지산은 7~8월 두 달간 만 등산이 가능하다. 정상 주변에는 눈이 쌓여 있어 낮은 기온 등에 대비해야 하지만, 다양한 등산코스가 있어 사전에 준비를 하고 적당한 휴식을 취하면서 걸으면 초심자도 도전할 수 있다. △녹차·와사비 등 풍부한 미식자원의 향연 일본에서 가장 깊은 만인 스루가만을 품고 있는 시즈오카현은 온난한 기후로 일조량이 많고 수원이 풍부해 '식재료의 왕국'으로 불린다. 특히, 차 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생산기술이 발달해 일본 전체 녹차의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덕분에 시즈오카현 곳곳에는 녹차 수확과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녹차에 대해 보다 깊이 알고 싶다면 '후지노쿠니 차 박물관'에 가보면 좋다. 세계 각국의 찻잎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차의 역사와 일본 전통의 차실과 정원을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다도부터 다양한 체험코너도 인기다. 흐르는 깨끗한 물에서만 자란다는 와사비도 세계농업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시즈오카현의 자랑으로 꼽히고 있다. 이와 함께 잘 어울리는 장어, 벚꽃새우도 봄철 입맛을 돋우는 효자 식재료다. 특히, 가다랑어, 금눈돔, 시라스(치어) 등 해산물이 풍부하고 검은 국물이 특징인 '시즈오카 오뎅'도 현지인과 관광객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손에서 탄생하는 장인의 혼을 느끼고 싶다면 후지산의 정기를 받은 맑은 물과 장인의 기술이 더해진 니혼슈(술)는 맛이 달콤하고 마시기 쉽다. 시즈오카 사케는 풍부한 물과 쌀, 선조들의 노력이 더해져 맛 좋기로 이름이 났다. '후지 다카사고 주조'는 시즈오카현에 자리한 100년 역사의 전통술 주조공장으로 후지산 지하수와 엄선된 지역산 쌀로 사케를 만들어 사랑받고 있다. 양조공장과 주류 숙성 창고를 둘러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제조한 술도 구매할 수 있다. 프라모델의 천국 '반다이 하비센터'는 건담을 비롯한 다양한 캐릭터 프라모델의 생산과정을 견학할 수 있는 친환경 공장이다. 일본 전통공예 체험시설인 '순푸 다쿠미슈쿠'에는 염색, 대나무 공예, 도예, 목공 등을 체험할 수 있는 공방이 모여있다. 시즈오카산 차를 사용한 차 염색과 우아한 곡선미가 돋보이는 대나무 공예품이 눈길을 끈다. 체험공방을 지나면 민속 공예품을 판매하는 갤러리와 지역 특산품으로 만든 먹거리를 판매하는 카페도 운영 중이어서 많은 발길을 불러모은다.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 운영, 교류 활기 코로나19로 멈췄던 후지산 시즈오카 공항이 3년 만에 운행을 재개했다. 인천공항에서 직항으로 시즈오카현을 방문할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열린 것. 접근성이 확대된 데다 이 공항을 통하면 후지산의 풍광을 보면서 비행기가 착륙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공항에 내리면 렌터카를 빌려 시내 곳곳을 여유롭게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시즈오카현은 서울 사무소를 두고 있어 사전에 관광정보를 얻기에도 용이하다. 동아시아문화도시 교류는 이제 시작이다. 내달 중에는 '한중일 문화도시의 세 울림'을 주제로 온라인 교류행사가 예정돼있고, 동아시아 청소년이 함께하는 문화축제도 추진 중이다. 오는 10월 28일에는 한국문화의 날을 맞아 주일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한국문화체험행사도 예정 돼있다. 전통놀이, 현재미술, 무형유산, 음식문화, 음악공연 등 도시의 특색이 담긴 문화자원을 알리면서 그 멋을 나누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김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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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경
  • 2023.05.25 17:08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와 지속가능한 도시관리

최근 전주시의 주거 상업용지의 용적률 대폭 상향과 한옥마을과 역사도심 대규모 개발허용 등 원도심 규제 완화를 두고 찬반 의견이 뜨겁다. 한쪽에서는 도시의 정체성과 난개발로 인해 망가지는 도시의 모습을 우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규제완화로 각종 개발 사업을 통해 지역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 어느 방향이 되었든 우리가 살아갈 도시를 위해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올바른 방향이 어디인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건폐율과 용적률이란 이번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개념들이 있다. 바로 건폐율과 용적률이다. 건축분야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일반 시민들에게는 다소 낯선 단어이다. 간단하게 용어의 의미를 살펴보면 건폐율이란 대지 면적에 대한 건축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즉 대지 위에 얼마나 많은 면적의 건축물이 들어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예를 들어 100평짜리 대지에 50평짜리 건물을 짓는다면 건폐율은 50%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건폐율 규제를 통해 대지 안에 최소한의 공간을 확보하여 건축물의 과밀을 방지하여 일조, 채광, 통풍 등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또한 화재나 재해 발생시에 불길을 차단하거나 피난등에 필요한 공간을 확보하는데도 목적이 있다. 용적률이란 대지 면적에 대한 연면적의 비율을 말한다. 여기서 연면적은 건축물 각 층의 바닥면적의 합계(지하층 제외)를 말한다. 즉, 용적률은 대지 위에 얼마나 높은 층수의 건축물이 들어가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예를 들어 100평짜리 대지에 바닥면적이 50평인 건물을 4층으로 짓는다면 연면적은 200평이고 용적률은 200%가 되는것이다. 이러한 용적률의 규제를 통해 도시 내 인구 밀도와 교통량 등을 조절하고 도시 경관과 조망권 등을 보호한다. 이러한 도시의 건폐율과 용적률은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규정되어 있으며, 각 지방자치단체 특성과 상황에 맞게 조례로 정해놓았다. △ 전주시의 도시계획 조례는 어떠한가? 전주시는 지난 3월 '주거지역, 상업지역용적률을 상향 정비하여 재개발·재건축 등의 활성화를 통한 도시정비 및 발전 도모'를 이유로 주거지역은 법정 최고치로, 상업지역의 용적률은 대도시 수준으로 대폭 상향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전주시 도시계획 조례 일부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전북환경운동연합은 '전주시 주거·상업지역 용적률 대폭 상향 중단촉구' 기자회견을 열었으며, 도시의 환경과 경관 훼손, 주거 불평등 심화 등 도시난개발을 우려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에 전주시 건축사협회와 재개발 재건축조합은 상업지역 용적률 상향에 따른 주거시설 확대를 규제하기 위한 장치인 '용도용적제' 신설에 반발하고있다. △개발 규제 완화 정말 필요한 일인가? 이번 '전주시 도시계획조례 일부개정(안)'에 대하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지난 5월11일 전북환경운동연합과 한승우 전주시의원 주최로 '전주시 도시계획 이슈와 지속 가능한 도시관리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주거· 상업지역의 용적률 대폭 상향과 원도심 규제 완화를 중심으로하는 개발 정책이 주거환경과 경관, 도시 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조 발제에는 도시설계와 도시 재생 분야에서 연구와 현장 경험이 풍부한 서울 시립대 도시공학부 정석 교수가 맡았다. 정석 교수는 미국 시애틀과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도시혁신 사례를 들면서 "아름다운 도시경관은 엄격한 용적률 규제와 공공 기여에 따른 용적률 보너스로 사업자를 유도하고, 아래로부터의 시민 참여를 통해 만들어졌다"라며 "도시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도시가 제대로 된 도시이고 아름다운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주제발표는 전주지속협 도시계획협의회 박정원 위원장과 장우연 독립연구자가 맡아 각각 '주거환경을 고려한 용적률 관리방안'과 '전주 한옥마을과 역사도심의 도시관리 이슈와 과제'에 대하여 발표하며 도시계획의 방향성과 도시의 정체성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지정토론이 이어지며 각 토론자들은 섣부른 도시의 규제 완화가 불러올 여러 문제점들을 이야기했다. 좌장을 맡은 원광대 이양재 명예교수는 "도시의 용도 변화와 높이를 올리는 도시계획은 기후위기, 인구 감소 등 시대의 변화에 부합해야 하고, 규제완화와 개발 위주의 정책이 전주시의 바람직한 미래상과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전주'라는 도시 오래된 역사문화 도시라는 정체성을 살리며 시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천만 관광도시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획적인 도시관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묻지마식 상향', '획일적인 상향'보다는 심도 있는 논의와 토론 등 투명한 절차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보완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도시의 모든 공간에서 높이와 경관을 규제할 필요는 없다. 다만 도시를 지탱하는 다양한 기능에 맞춰 개발과 보존이 조화롭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도시전체를 저층 빌딩으로 규제할 필요가 없듯이 도시 전체가 고층 빌딩으로 덮여 빌딩숲을 만들 이유 또한 없는것이다.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다른 도시와 다를바 없는 건물과 빌딩을 보러 오는것은 아닐것이다. 전주만의 멋과 맛, 뚜렷한 정체성을 가진 '전주다움'을 보고, 느끼기 위해 찾아 오는것이라 생각한다. 1500만 관광객 유치가 목표라면 도시의 규제 완화와 개발중심의 도시계획이 아닌 다른 도시들과는 다른 전주만의 도시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장진호 전북환경운동연합 활동가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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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4 15:47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헌사료로 본 후백제] ⑦익산지역 마한∙백제∙후백제 역사 유적

△견훤은 왜 익산에 주목했는가 조선 18세기 중반 읍지인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다음과 같이 전한다. "견훤이 까치재 고개에 진을 치고 있을 적에 … 갑자기 기(旗)가 쓰러져 넘어졌다. 이를 보고 견훤은 자신이 반드시 패망할 것을 알고 좌우에 이르기를 내가 죽으면 모악산이 보이는 곳에 묻어 달라고 하였다. … ." <여지도서>. 현재 견훤왕릉은 논산군 연무읍 금곡리 산 17번지에 있다. 견훤의 희망에 따라 그의 릉은 남쪽으로 미륵산이 보이는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만경강을 넘어서면 모악산도 보인다. 미륵산은 백제 금마저(金馬渚)의 중심산으로 미륵산, 용화산 등으로 불리었고 정상에는 전라북도의 최대 규모의 기준성 또는 미륵산성으로 알려진 산성이 자리한다. 견훤은 인생을 마감하는 자리에 왜 이곳을 선택했을까? 익산은 견훤 백제의 시작이자 종착역이었다. 견훤은 900년 완산주인 전주를 순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견훤이 서쪽으로 순행하여 완산주(完山州)에 이르니 … 견훤이 인심을 얻을 것을 기뻐하여 좌우에게 말하기를, '내가 삼국의 시초를 찾아보니, 마한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혁거세가 일어났다. 그러므로 진한과 변한은 그를 뒤따라 일어난 것이다. 이에 백제는 금마산(金馬山)에서 개국하여 600여 년이 되었는데 총장 연간 당 고종이 신라의 요청으로 … 백제를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지금 내가 감히 완산에 도읍하여 의자왕의 오래된 울분을 씻지 않겠는가?'라고 하였다. 마침내 후백제왕을 자칭하고 관부를 설치하고 관직을 나누니 이때는 당 광화 3년(900)이며 신라 효공왕 4년이었다. … ." <삼국사기> 견훤전. 백제의 개국왕인 온조를 모를 리 없는 견훤이다. 그럼에도 백제를 금마와 연결하는 견훤의 의향은 무엇인가. 견훤은 삼국의 시초를 마한으로 이를 계승한 백제는 금마산에 후백제는 완산에 세우고자 하였다. 삼국 통일에 외세를 빌린 신라도 비판하고 있으며 시기적으로 마한-백제-후백제를, 지역으로 익산(금마산)-완산을 계승한다는 관념을 보여준 선언이다. 더하여 일통삼한(一統三韓)의 의지도 강하게 나타낸다. △준왕이 자리잡은 곳, 금마의 마한 견훤이 주목한 후백제의 원류인 마한은 한반도 서남쪽에 자리잡았던 고대의 연맹체 국가이다. 중국사서인 <삼국지(三國志)> 위지 동이전, <후한서(後漢書)> 동이열전, <진서(晉書)> 동이열전에 54개국 또는 56개국으로 소개되고 있다. 특히 익산의 금마는 <제왕운기>와 <고려사>에 고조선 준왕이 기원전 194년에 위만의 난을 피해 남천하여 마한을 세운 곳으로 나타난다. "위만이 조선을 공격하자 조선의 준왕은 … 바닷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와 한의 땅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마한이라 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준왕이 금마군으로 옮겨가 정착하여 도읍을 세우고 군인이 되었다." <제왕운기>. 마한의 고지는 준왕이 남천하기 이전 한지(韓地)로 소개되고 있다. 그 물질문화는 세형동검과 점토대토기문화로 대변된다. 토광묘가 등장하고 유력한 수장들은 적석목관묘를 사용하는데 대략 기원전 3세기 경이다. 금강 유역의 대전 괴정동을 비롯하여 전남의 화순 대곡리, 전북의 익산 다송리, 군산 선제리, 전주 여의동·원만성·효자4, 김제 대동리유적 등에서 이 적석목관묘를 살펴볼 수 있다. 또 하나 고대국가의 성립에 중요한 한 축은 치수(治水)와 관련된 행위이다. 세계의 고대문명 대부분은 범람하는 강의 물을 조절함으로서 안정적인 국가 체계와 도시 구조, 잉여 생산물을 가능하게 하였다. 여기에서 호남평야의 익산 황등제(黃登堤), 김제 벽골제(碧骨堤), 정읍 눌제(訥堤)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김제 벽골제호를 경계로 전라도를 호남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문헌비고(文獻備考)>에도 나라의 가장 큰 제언으로 호남 3호를 언급한다. 17세기 실학자였던 반계 유형원도 <반계수록(磻溪隧錄)>에 김제의 벽골제와 고부의 눌제, 그리고 황등제를 나라 안에서 가장 큰 제언이자 가장 중요한 조세의 근원으로 밝혔다. 황등제는 2019년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기원전 5세기~3세기에 축조되었다. 벽골제는 330년 축조 기사가 전한다. 눌제도 <정읍군사(井邑郡史)>에 마한~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후 일부 발굴조사에서 황등제나 벽골제와 비슷한 공법이 확인되었다. 위의 고대 수리시설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앞서 고조선 준왕은 위만의 세력에 밀려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남으로 향하였다. 남쪽에는 일찍부터 풍요로운 땅과 바다와 산이 있는 호남평야를 바탕으로 중국 전국이나 전한, 고조선과 교류하는 세력이 있었다. 한 나라를 옮기거나 세우는데 기반이 전혀 없는 곳으로 가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준왕의 남천에는 불모지 익산이 아니라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이미 고도화된 정치체를 고려하지 않았을까. △마한과 백제·후백제의 땅, 만경강 익산과 완주, 전주는 공간적으로 만경강 중상류를 점유하고 있다. 마한 소국의 정확한 위치와 지명 비정은 사료의 음가에 의하고 있으나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는 이러한 작업에 신중을 기하게 한다. 분명한 것은 고고학 자료의 집중도가 소국의 위치를 어느 정도 말해주고, 그렇다면 완주 상운리·봉동 수계리, 전주 여의동·만성동, 익산 사덕유적 등 이 일대가 하나의 소국을 형성할 만큼 동일한 문화권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완주 상운리 분구묘를 중심으로 마한시기부터 백제 영역화 이후까지 고도의 철기제작 기술을 소유한 유력집단이 그 문화적 전통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나타난다. 나아가 백제 한성말기~사비기에 조영된 완주 배매산성·삼례토성·구억리산성 등의 군사시설로 보아 익산 백제 이전에 만경강을 중심으로 고대문화의 맥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도 익산 백제와 견훤 백제 무왕은 600년에 즉위하여 금마에 새로운 수도를 기획하였다. 금마에는 백제의 지방군 치소인 금마저(金馬渚)가 있었으며 무왕과 관련된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금마를 중심으로 궁성인 왕궁성과 오금산성, 미륵산성, 금마저토성, 낭산산성, 용화산성 등의 성곽 유적, 미륵사지, 제석사지, 사자사, 왕궁사, 석불사, 오금사, 태봉사 등의 사찰 유적, 그리고 무왕의 능으로 알려진 쌍릉과 무왕의 탄생 설화가 있는 용샘이 존재한다. 이 유적들은 고도 익산 백제에 대한 명백한 증거이며 ‘백제가 금마산에서 개국하여 600년이 되었다’는 견훤의 시각은 마한을 이어 백제의 후예임을 자처하고 이를 계승하겠다는 분명한 뜻이었다. 특히 미륵사는 무왕이 어려운 세상을 극복하고 정토인 미륵의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세운 사찰로 이곳에도 견훤의 행적이 담겨있다. "6년(920)에 견훤이 보병과 기병 10,000명을 거느리고 대야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진례성(進禮城)으로 군대를 옮겼다." <삼국사기> 견훤전. "3년이 지나 금산사 의정(義靜) 율사의 계단에 나아가 구족계를 받았다. … 용덕 2년(922) 여름 특별히 미륵사(彌勒寺) 개탑(開塔)의 은혜를 입어, 이에 선운산의 선불장(選佛場)에 나아가 단에 올라 설법했을 때 천상의 꽃이 이리저리 날렸다. 이로 말미암아 도의 명예가 더욱 빛났다." <갈양사혜거국사비문>. 견훤은 무왕의 노력에도 성공하지 못한 합천의 대야성을 920년에 함락하고 김해의 진례성까지 진격하였다. 이어 922년에는 이곳 미륵사에서 개탑의식을 갖고 고창 선운사에서 승려를 뽑는 과거인 선불장을 열었다. 미륵사 개탑은 백제의 신라 공략에 대한 오랜 한을 풀었다는 상징적인 의미이며 선불장은 신라 쇠락의 가장 핵심 요소인 골품제의 폐단을 극복하고 승과를 통해 공정한 세상을 만들겠다는 통치이념을 나타낸 것이다. 개탑의 행위는 실제 탑의 중수로도 볼 수 있으나 국가의 큰 행사를 맞이하여 부처님의 사리를 대중에 공개하는 영불골(迎佛骨) 의식과 같은 정치적 행사로도 볼 수 있다. 익산 왕궁리 석탑에서도 후백제와 유사한 시기인 10세기 초 경의 금동불상과 함께 유리병, 금제사리함, 금강경 등의 사리장엄구가 일괄 출토되었다. 최근의 연구에 금강경의 문구와 경판의 사용흔을 바탕으로 백제 제작설이 제기되는데 이 또한 기존의 왕궁탑을 다시 세우는 의식이 있었을 가능성도 유추해본다. 금마저에 위치한 많은 유적에서는 토기, 자기, 기와, 금속공예품 등 수 만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백제유물보다는 통일신라 이후의 것들이 더 많다. 시기별, 제작 주체별 연구 또한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550여 편의 중국자기를 2023년에 새롭게 정리하고 있다. 중국자기에는 견훤과 밀접한 오월의 월주요도 포함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후백제 문화상을 밝히는 작업은 이제 시작이다. /최흥선 국립익산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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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3 15:56

[한국전쟁 정전 70년] 최후의 전쟁, 백마고지 전투

1951년 5월16일부터 22일까지 인제군 현리에서 6·25전쟁기 중 국군의 가장 큰 패배로 일컬어지는 ‘현리전투’가 벌어졌다. 9사단을 포함한 우리 국군과 중공군 사이에 벌어진 현리 전투에서 국군은 별다른 교전도 벌이지 못하고 와해되고 동부전선은 위기를 맞는다. 다음해인 1952년 10월초, 현리전투에서 중공군에 패했던 우리 국군은 철원 서쪽의 이름없는 395고지(백마고지)에서 또다시 중공군과 맞선다. 이 때 395고지를 지키고 있던 국군은 9사단. 하지만 395 고지의 9사단은 1년 전 중공군의 공격에 물러선 부대가 아니었다. 중공군 3개 사단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시종일관 유리하게 전황을 이끌었고 결국 395고지에서 중공군을 완전히 몰아낸다. 백마고지 전투 승리로 국군과 유엔군은 군사 요충지를 확보하고 휴전회담에서 유리한 입장에 설 수 있었다. 또 백마고지 전투 승리는 드넓은 평야를 품은 철원지역 일대를 우리 땅으로 만드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시작된 휴전회담 그리고 예고된 혈전=유엔군과 공산군은 6·25전쟁이 시작된 후 1년여 만인 1951년 7월부터 전쟁 휴전과 포로교환 등을 위한 회담을 시작한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없이 시간은 지나가고 공산군은 휴전회담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마련한다. 그 중 눈에 띄는 것이 중공군이 주도하는 고지 쟁탈전이었다. 당시 고지 쟁탈전은 중공군이 국군과 유엔군이 장악한 고지를 먼저 공격해 차지하고 이후 국군과 유엔군은 이를 다시 되찾는 형태의 전투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1952년 가을께 포로문제에 대해 유엔군과 공산군의 협상이 난항을 겪었고 한반도 중앙의 최고 요충지 '철의 삼각지대'로 관심이 집중됐다. 국군 9사단이 주둔 중인 395고지, 철원평야와 평강고원을 한 눈에 담을 수 있는 한반도 중부의 심장부인 이곳에서의 치열한 전투는 피할 수 없었다. △철의 삼각지대=철원과 김화, 평강을 잇는 지리적 삼각지대를 ’철의 삼각지‘라 부른다. 이 지역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과 역시 원산으로 향하는 국도 5호선이 지나는 교통의 중심지로 지리적, 군사적으로 피아 간 절대 빼앗길 수 없는 중부 지역의 가장 중요한 요충지다. 철의 삼각지의 확보 없이는 중부전선 전체를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이는 곧 6·25전쟁 중 최대 혈전이 벌어지게 된 이유가 된다. 철의 삼각지는 평강으로 향할 수록 지대가 높아져 수비를 하는 국군과 유엔군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이고 공세에 나서는 북한군과 중공군에 있어서는 유리한 지형이다. 이에 중공군은 유리한 지형과 우세한 병력을 앞세워 군사·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철원 일대를 확보하기 위해 395고지를 노리고 대규모 공세를 감행한다. 당시 국군과 유엔군은 395고지를 비롯한 철원평야 일대를 장악하고 있었고 9사단은 395고지 일대에 주둔해 중국군 3개 사단에 맞선다. △열흘 간의 격전, 백마고지 전투=1952년 10월6일 새벽, 395고지 주봉에 대한 중공군의 공격이 시작됐다. 6일부터 9일까지 9사단과 중공군은 주로 포격전을 벌였다. 중공군은 유엔군에 비해 화력의 열세를 절감하면서 포병화력을 대대적으로 증강시킨 상태였다. 물론 유엔군에 비해서는 무기와 장비 등에서 열세를 보였지만 중공군의 화력 보강은 국군과 유엔군에게는 분명 부담으로 다가왔다. 미군은 9사단이 지키고 있는 395고지 사수를 위해 항공기를 투입, 중공군 포병부대에 대해 대대적인 폭격을 실시했다. 인근 국군과 미군의 포병부대도 중공군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중공군도 9사단이 사수하고 있던 395고지 정상에 집중적으로 포격을 가하며 한편으로는 국군의 증원 및 군수지원 등을 방해하기 위해 395고지 북쪽에 위치한 봉래호의 수문을 폭파해 국군의 후방에 위치한 역곡천을 범람시켰다. 7일부터 11일까지는 국군 9사단과 중공군과의 직접적인 전투, 즉 고지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화력에 열세를 보이던 중공군은 야간에 공격을 감행해 9사단이 방어하는 395고지를 점령했고 밀려난 9사단은 신속하게 예비대를 동원, 반격에 나서 고지를 재탈환 하기를 반복했다. 395고지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가 벌어졌다. 총성과 포격이 멈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만큼 치열한 공방이 계속됐다. 당시 9사단장 김종오 장군과 주요 지휘관들은 395고지 쟁탈전에서 적절한 시기에 강력한 예비대를 투입하는 등 효율적인 부대 운영과 작전을 펼쳤고 전체적으로 전황을 유리하게 이끌어갔다. 395고지에서는 12차례의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고 7번이나 고지 주봉의 주인이 바뀌는 혈투가 벌어졌다. 11, 12일 이틀동안은 395고지 주봉을 차지한 9사단의 방어전이 진행됐다. 9사단의 계속된 방어에 중공군은 많은 병력을 잃었고 화력에서도 유엔군에 열세를 드러냈다. 결국 9사단은 395고지 북쪽의 낙타능선상의 전초진지를 탈환하면서 중공군을 완벽하게 몰아내는데 성공하며 백마고지 전투의 신화를 만들었다. △백마고지 전투 승리 요인=9사단은 1951년 8월부터 8주동안 국군 사단 중 처음으로 미 제1군단이 주관한 FTC(the Field Training Center) 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를 통해 지휘관들의 부대 지휘역량이 크게 강화됐고 전투원들의 전투수행능력도 높아졌다. 또 사단 자체 교육훈련도 꾸준히 진행했다. 백마고지전투 승리는 유엔군의 막강한 화력 지원과 함께 9사단 지휘관들의 신속한 예비부대 투입 등 탁월한 부대지휘, 전투원들의 전투수행능력 등이 맞물리며 중공군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 끝내 백마고지를 지켜낸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물론 백마고지를 지켜내야 한다는 부대원들의 불굴의 투지도 한 몫한 결과였다. △집중된 화력과 병력…너무 컸던 피해=국군과 유엔군은 열흘 동안 이어진 395고지전투에서 무려 22만여발의 포탄을 발사했다. 중공군도 5만5,000여발의 포탄을 395고지에 퍼붓는 등 피아간 총 28만여발의 포탄이 집중 사용됐다. 유엔군은 9사단을 지원하기 위해 항공기를 750여회 출격시키는 등 395고지 사수에 집중했다. 치열한 백병전과 함께 수십만발의 포탄이 395고지를 타격하자 고지의 수목은 사라졌고 하얗게 된 민둥산의 모습은 흡사 하얀 말이 누워있는 것 처럼 보였다. 이에 국군은 이때부터 395고지를 백마고지로, 9사단은 백마부대로 부르게 됐다. 당시 전투에서 9사단은 3,500여명의 사상자를 냈지만 중공군은 무려 1만4,000여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백마고지 전투로 중공군 제38군 예하 3개 사단은 와해됐다. △기억해야 할 백마고지전투=휴전선 남쪽, 철원읍 산명리에는 백마고지전투를 기리는 백마고지 전적지가 조성돼있다. 전투 승리를 기념하는 전적비와 충혼비, 위령비, 백마고지전투 현황 등이 기록된 기념관, 대형 태극기 계양대 등이 설치돼있다. 전적지에서는 서쪽으로 백마고지와 함께 드넓은 철원평야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백마고지 전적지를 찾은 관광객과 모내기에 나선 농부들, 불과 수㎞ 거리의 DMZ초소의 모습이 교차되면서 평화는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이름없던 395고지에서 적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우리 군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강원일보=김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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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22 16:11

[뉴스와 인물] 양오봉 전북대총장 "해현경장(解弦更張) 자세로 '대학혁신' 줄 고쳐 매겠다"

오는 27일 취임 100일을 맞이하는 양오봉 전북대 총장은 매일매일을 새로운 의욕을 다지며 '대학혁신'을 위해 업무에 임하고 있다. 학령인구 급감 등 사회변화 속에서 대학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으로의 변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양 총장은 “해현경장(解弦更張), 거문고 소리가 맞지 않으면 줄을 풀어 새롭게 매야 하는 것처럼 대학 교육이 사회의 요구에 맞게 혁신하지 않으면 안된다"며 "학령인구가 급감하는 현 상황에서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고 강조했다. 양 총장이 단과대학을 순회하며 역설한 학사구조 개편안에서도 그 목적이 확연히 읽힌다. 학과 간 벽을 허물어 학생들의 전공 선택 폭을 넓히고 산∙학∙연∙관 협력의 허브화를 통해 지역산업의 수요에 맞는 인재양성 등 학생을 중심에 둔 대학 운영과 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대학 혁신에 방점을 두었다. 취임 이후 글로컬대학 사업 유치를 위해 학사구조 개편안과 지역사회와의 상생 전략 마련에 동분서주하고 있는 양오봉 총장을 19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27일, 취임 100일을 맞는다. 소회가 남다를 것 같다. "벌써 취임 100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기간 동안 내∙외부의 많은 분들을 만나 대학혁신을 위한 정책과 비전을 설명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려 노력했다.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써가며 많은 분들을 만나 고견을 듣고 추진하고자 하는 정책을 설명했다. 지금 변화하지 않으면 소멸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놓인다는 절박함에 마음이 급하다. 그러나 바늘허리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는 일이기에 지속적인 소통과 공감대 형성에 나서고 있다." 긴밀한 소통을 하신 것으로 안다. 구성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나. "천원의 아침밥이나 중간시험 간식나눔, 호프데이 등을 통해 학생들과 가깝게 소통하려 했고, 최근엔 17개 단과대학을 돌며 변화의 당위성과 정책을 설명했다. 좋은 얘기도, 쓴소리도 있었지만 모두 대학발전을 위한 고견이라 생각한다. 총장 이전과는 확실히 시각 자체가 달라졌다. 그래서 더 많이 들으려 한다. 특히 겸손한 자세로 동료 교수님들이나 직원 선생님들, 우리 학생들과 소통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니 마음과 마음이 맞닿고 있다는 것도 느꼈다." 최근 대외적으로도 매우 역동적인 전북대를 접할 수 있는 것 같다. "전북대가 글로컬대학으로 나아가기 위해 구성원뿐 아니라 지역의 여러 기관들에 변화와 혁신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글로컬대학 30 사업’을 준비하면서 지자체나 국내 최고의 연구소, 기관, 기업, 해외 대학에 이르기까지 14건의 공식 협약을 체결했다. 수치로만 보면 취임 이후 우리대학이 일주일에 한번 꼴로 여러 기관들과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다. 이 사업을 위해 전북대가 얼마나 과감하고 열정적으로 움직이는지, 이 사업이 얼마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취임 100일 동안 성과도 많았을 것 같다. 대표적인 성과를 소개해준다면. "취임 초부터 개혁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고, 짧은 기간에도 불구하고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3월 초 2145억 원이 투입되는 RIS 사업 선정은 우리대학뿐 아니라 지역 전체에 큰 성과였다. 지역발전의 대전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지역이 K-푸드의 메카로 도약할 ‘푸드테크 계약학과 공모사업’, 비수도권 대학 유일의 6년 연속 ‘실험실 특화형 창업선도대학 사업’ 선정, 베트남 대학에 수의학과를 설립하는 ‘국제협력선도대학 육성지원사업’ 등 정부 사업에도 잇달아 선정됐다. 최근엔 필리핀 마닐라 시의회와 한인회, 최고의 사립대학 등과 긴밀한 협력을 하기로 했고 한옥도 수출했다.특히 수요가 급증할 2차전지 분야 인력양성을 선점하고, 배터리 분야 특성화를 내건 우리 지역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내년 ‘배터리융합공학 전공’을 신설, 첨단 분야 5개 학과에서 96명(순증 71명, 편입학 여석 활용 25명)의 정원이 증원된 것도 좋은 소식이었다." 수도권 쏠림과 학령인구 감소 등 지방대학이 매우 어려운 시기다. 이를 타개할 방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대학 입학자원이 당장 내년부터 40만 명 아래로 떨어진다. 2031년부터는 급격히 가속화 되어 2040년엔 18세 인구가 26만 명 수준에 놓인다. 신입생 2000명 규모의 대학 100개가 문을 닫아야 하는 대학붕괴의 거친 파도가 밀려오는 것이다. 혼자서는 파도에 휩쓸리기 쉽지만, 함께 손을 맞잡으면 파도를 극복하고 당당한 걸음을 옮길 수 있다. 위기 극복을 위해 대학과 지자체, 연구기관, 지역기업 할 것 없이 범지역적인 공유와 연대가 필요하다. 때문에 지역과 상생하는 대학의 기반을 닦는 것이 당면 과제다. 우선 지역거점대학인 전북대가 구심점이 돼야 한다. 지역의 씽크탱크로서 지자체나 지역기관, 기업 등과 협력을 강화하고 지역 내 타 대학들과도 상생을 모색해야한다. 우리가 추구하는 ‘플래그십 대학’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총장님이 강조하시는 ‘플래그십 대학’, 생소하다. "플래그십(Flagship)은 본래 해군 함대의 기함을 뜻하는 말이다. 군함 중에 지휘관이 타는 배에 깃발(Flag)를 걸었는데, 이를 플래그십이라고 했다. ‘플래그십 대학’은 이 군함처럼 전북대가 지역발전을 이끌고 나가겠단 의미다. RIS사업이나 이달 본격 착공하는 산학융합플라자사업, 캠퍼스혁신파크 등의 사업들이 다 플래그십 대학으로 나아가는 데 큰 자산이 될 사업들이다. 우리대학이 미래 수송기기 등 지역 성장 동력산업 분야에서 지역 혁신의 허브가 되고, 미래형 대학교육 혁신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지역의 대변혁을 주도할 ‘혁신셀’의 위치에 서 있다. 대학 내부 정책적으로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서기 위해 지역의 씽크탱크 역할을 할 ‘JBNU 지역발전연구원’을 설립하려 하고 있다. 14개 시군의 특화산업을 중심으로 지역발전연구소 14곳의 설립도 추진 중이다. 이미 3월 남원시와 협약으로 남원발전연구소를 설립하기로 했고, 익산발전연구소도 추진 중에 있다. 전북대를 지역 발전을 이끄는 플래그십대학으로 육성해 최종 목표인 세계적인 글로컬대학으로 나아가려 한다." 대학 내에선 어떠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나. "학생들이 오고 싶고, 다니고 싶고, 공부하고자 하는 전공을 폭넓게 선택할 수 있는 방향으로 대학의 체질을 확 바꾸는 학사개편안을 마련했다. 융·복합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적극 대응하고, 학과나 단과대학 간 벽을 허물어 우리 학생들이 전공을 더욱 폭넓게 선택하도록 하는 데 방점이 찍혔다. 전체 정원은 줄이지 않는 방향에서 유사 교과목을 통합 운영해서 교육 효율성을 높이고, 특히 통합 학부 내에서 사회 수요에 대응하는 유연한 맞춤형 전공도 운영할 수 있다. 학제 간 협력과 집단연구가 활성화 되어 세계 100위권에 진입하는 학문 분야 육성에도 가시적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 전북대가 글로컬대학으로 더 큰 걸음을 걸어 나가는 데 꼭 필요한 변화다." 학생들이 다니고 싶은 대학을 만들겠다 하셨다. 남다른 계획도 들려달라. "우리대학이 시대의 흐름에 맞는 미래형 교육을 선도하려 한다. AI와 반도체, 그린에너지 등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 양성을 위해 ‘인공지능 교육원’을 설립하고,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입학에서 졸업까지 학생 맞춤형 지원을 해줄 ‘AI 선배’ 멘토링 시스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성과형 장학금, 학·석사 연계 과정 장학금, 전일제 대학원생 장학금 등 학생 재정 지원과 단과대학 스터디카페 운영, 이미 시행 중인 천원의 아침밥, 반값 커피 등 학생 밀착형 지원책을 세심하게 마련하고 있다. 유학생들이 가장 복잡하게 생각했던 재정 보증 문제를 해결하고, 상담 및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확대 운영해 우수 외국인 유학생을 5000명 이상 유치하겠다." 대학 지탱의 또 하나의 핵심 축인 연구 분야 경쟁력 방안은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우리대학엔 1100여 명의 최고급 두뇌들이 있다. 이들이 신나게 연구할 수 있는 좋은 환경이 제공돼야 좋은 연구가 나온다. 올해 적극적인 연구개발 과제의 수주를 독려하기 위해 ‘연구과제 추진비’와 함께 ‘국제 학술연구발표 경비’ 지원을 신설해 국제적 연구 교류 촉진에 나서겠다. 세계 최고 연구소나 연구자들과 최근 연구 동향을 공유하고, 공동 연구를 수행하면서 더 좋은 연구들이 이뤄지는 기반이 될 것이다. 또한 교수님들의 논문 게재 경비 지원을 늘리고, 업적 평가제도나 연구년 총량제 도입 등의 지원책을 늘려 탄탄한 기반을 만들어 나가겠다. 특히 교수님들의 우수한 연구가 대학에만 머물면 안되고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게 연결돼야한다. 그 방안으로 ‘JBNU 지역 지식선도 네트워크’를 구축해 외부기관에서 지원하는 연구 사업에 대한 수주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여러 사업 추진을 위해 재정이 필수다. 재정, 어떻게 늘릴건가. "취임부터 줄곧 ‘세일즈 총장’이 되겠다고 했다. 대학회계 규모를 대폭적으로 늘리고, 1500억 규모의 연간 연구비를 2500억 원으로 확대하려 한다. 발전기금도 수도권 명문대학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기업의 기부를 늘리려 한다. 취임 이후에만 12억 원이 넘는 발전기금이 모금됐다. 특히 대형 국책사업 유치는 대학재정 확충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좋은 사업들을 따내기 위해 지역발전연구소를 통한 14개 시군의 특화산업과 관련된 국책사업을 발굴하고 이를 추진하겠다. 대학과 지역에 모두 도움이 될 것이다. 특히 RIS사업 이후 최대 정부 지원사업인 ‘글로컬대학 30 사업’ 유치를 위해 대학뿐 아니라 범 지역적 역량을 결집하고 있다. 이를 위해선 총장의 발품이 반드시 필요하다. 뛰고 또 뛰며 적극적으로 우리대학을 세일즈 하겠다." 임기 마지막에는 어떤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나. "대학과 지역의 긍정적 변화를 이끈 총장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를 위해선 화합을 통해 구성원 각자가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총장의 가장 큰 역할이라고 확신한다. 임기를 마치는 날 교수님들에게는 ‘가르치고 연구할 맛 나는’, 직원 선생님들에게는 ‘일 할 맛 나는’, 학생들에게는 ‘공부할 맛 나는’ 환경을 만들어 준 총장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역민들에게는 대학과 지역의 상생 발전의 기반을 닦아 살기 좋은 지역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총장으로 기억된다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양오봉 총장은 전주고와 고려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북창조경제혁신센터장과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에너지-AI융합대학원 인력양성사업단장, 에너지신사업 혁신공유대학사업단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전북 지역혁신협의회 위원, 전북특별자치도 국민지원위원장, 대통령직속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 국무국무총리 산하 새만금위원회 토지개발분과위원장 등 정부 정책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140편의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고, 38건의 국내외 특허를 보유하는 등 에너지 분야 국내 최고 수준의 연구력도 보유하고 있다. 그간 지식경제부 장관상과 모로코 에너지자원환경부 장관 표창, 국제태양광컨퍼런스(CPVC) 대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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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육경근
  • 2023.05.21 17:26

[지난 주 '핫클릭' : 5. 14~19] '모두의 축제, 아태'⋯영탁도 팬들도 멋졌다

△5월 14일~ 19일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5월 셋째 주, 전북 지역은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마스터스대회'로 뜨거웠다. 전북일보 홈페이지 방문자들도 지난 13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3 전북 아시아·태평양 마스터스대회' 개회식 축하공연을 다룬 이준서 기자의 '아·태 마스터스 개회식 흥행 주인공 가수 영탁'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 이날 대회 개회식에서는 가수 진성, 국악인 김주리, 가수 나태주, 걸그룹 오마이걸 등이 축하공연을 선보였으며, 특히 가수 영탁의 흥겨운 무대는 압도적. 본부석 좌측 관람석을 채운 6000여 명 팬들의 응원과 일사불란한 모습도 호평을 받았다고. 두 번째는 박정우 기자의 '임실 옥정호 붕어섬, 작약꽃 만발'이 차지했다. 이 기사는 붕어섬 생태공원 5만 4000㎡부지에 심은 2만 4000여 본의 작약꽃이 최근 만개, 관광객 기념촬영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는 내용을 전했다. 세 번째는 이환규 기자의 '군산에 제2의 서울 경리단길 조성 기대감'으로, 군산 사정삼거리∼옛 군산화물역 2.6㎞ 폐철도를 따라 철길숲을 따라 조성하는 '도시바람길 숲'을 담았다. 군산시는 2025년까지 200억 원을 투입할 계획으로, 원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특색 있는 녹지공간으로 주목. 네 번째는 김보현 기자의 '전주 부동산 스터디하자⋯억대 투자사기에 전주시민들 피눈물'가 주목을 받았다. 피해금액은 소액부터 8000만 원대까지 다양한데, 오픈채팅방을 매개로 소시민의 ‘내 집 마련’ 꿈을 악용한다는 점에서 피해 확산 우려가 크다는 점을 짚었다. 이밖에 김종표 논설위원의 '베드타운 전주의 인구위기', 송은현 기자의 '비위 백화점 전북경찰 왜 이러나' 등이 홈페이지 방문자들의 시선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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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용수
  • 2023.05.20 13:44

[동행, 2023 전북지플] (3) 협약식-실행의제 본격 가동

2023 전북지역문제해결플랫폼(이하 전북지플)이 올해 실행 의제 사업의 본격적인 가동을 시작했다. 전북 도민이 직접 지역의 문제를 발굴하고, 지자체와 각계 기관 등과 공동 협력체를 구축하는 등 민‧관‧공이 협업해 최적의 해결방안을 모색해 나간다는 것이 핵심이다. 전북지플은 18일 오후 2시 전주대학교 본관에서 의제 실행팀과 대학 전문가‧공공기관 관계자 등 30명의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실행 의제 협약식 및 설명회를 열었다. 이날 협약은 전북지플과 지난달 25일부터 진행된 도민 의제 공모를 통해 선정된 의제 실행팀 간 공동 협약으로, 지역사회 발전을 견인하고 전북에 산재한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등 사회적 가치 실현의 장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적극적인 협업 체계 구축의 장이었다. 올해 전북지플이 선정한 신규 실행 의제는 총 14건으로, 도내 취약계층의 난방환경 개선을 위한 탄소섬유 지원 사업을 비롯해 자립 청년 창업 지원 프로젝트, 민간거점을 활용한 재활용폐기물 수거체계 구축 사업, 스마트 건강 장수 마을 만들기 등 일상생활에서부터 복지와 환경 분야까지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다. 전북지플은 지난해에 이어 연속 추진되는 △무장애 도시 진안만들기 △민관공 협력 제로플라스틱 운동 △커피찌꺼기 활용 수거체계 구축 등 공통 의제 3건을 포함한 총 17건의 의제를 도내 7개 시군에서 참여 기관과 함께 진행하며 점차 지역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행사에서 참석자들은 도민 주도로 발굴한 실행의제의 취지와 계획 등을 설명하며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한 원활한 사업 추진을 다짐했다. 지역‧도시재생 관련 의제를 제안한 김진경 간람록 관계자는 “전주 시내 버려진 빈집을 활용해 이곳을 방문한 여행객에게 지역을 소개할 수 있는 관계안내소로 조성할 계획”이라며 “이를 통해 체류 시간과 관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역을 찾는 관계인구를 적극 유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주거‧커뮤니티 관련 의제에 참여한 민형선 하이하우징 대표는 “여전히 100여 년 전, 일제시대부터 사용하던 연탄 난방시설에서 벗어나지 못한 도내 취약계층이 많다”며 “그간 1000건이 넘는 다양한 사회적 지원 활동을 통해 에너지 취약계층에게 친환경 소재인 탄소섬유 난방을 지원해왔다. 이번 사업을 통해 난방 지원을 더욱 폭 넓게 추진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한편, 전북지플은 지난해 8월 출범하여 도민이 발굴한 17개 의제를 실행한 바 있다. 올해 선정된 신규 의제는 계획을 고도화하고 전북도 등 연계 기관과 힘을 모아 6월부터 10월까지 5개월간 실행에 옮길 예정이다.

  • 기획
  • 이준서
  • 2023.05.18 17:52

내일을 준비하는 든든한 학습 파트너 '평생학습도시' 김제

평생학습도시 김제시는 모두가 누리는 학습의 일상화를 목표로 지역평생교육활성화를 위한 김제시 평생교육 4대 지표를 설정, 평생교육을 통한 전북권 4대 도시로의 웅비를 기약했다. 2006년 평생학습도시로 지정된 김제시는 시민 누구나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는 평생학습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지역의 열악한 평생교육 인프라를 극복하고 학습의 일상화를 위한 평생학습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노력해 오고 있다. ‘내일을 배우는 학습문화 정착의 해’가 되기 위해 미래를 준비하는 든든한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하여 모두에게 평등한 열린학습도시 육성에 중점을 두고 시민 누구나 학습을 통한 미래설계가 가능하도록 지역 평생교육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습 일상화 위한 '중단없는 학습지원' 확대 김제시는 거주지 가까운 곳에서 언제든 학습이 이루어지도록 ‘근거리학습망’ 구축해 누구나 생활 반경 내에서 원하는 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다양한 학습 참여 경로를 만들고 주민의 학습 수요와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교육과정으로 구성, 학습패턴과 선호에 맞는 학습을 선택하여 배움이 일상화 될 수 있도록 폭넓은 학습지원에 나섰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빨라진 비대면형, 디지털학습으로의 대전환 시기를 맞아 지역내 누구든 시・공간적 제약을 벗어나 원하는 학습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국가-광역-지역의 온라인 학습과정을 연계, PC와 스마트폰을 이용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365 상시학습시스템'을 운영해 K-MOOC 등 수준높은 전문강의를 비롯하여 지역강사가 참여하는 로컬-MOOC 학습콘텐츠 등 디지털학습시대를 맞이하여 중단 없는 학습참여가 이루어지도록 비대면 학습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 평생교육 거점기관인 “김제시 평생학습관”은 미래설계를 지원하는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하는 모두배움터로 조성, 전문자격취득을 위한 직업능력향상과정을 비롯하여 생활문화, 인문교양, 직장인을 위한 야간과정 등 정규과정이 연간 운영하고 있으며 특히, 2023년도에 새롭게 설치될 디지털 모두배움터 조성과 옥외실습장 증축으로 정보화 분야 및 실습형 교육이 더욱 쾌적한 학습환경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고른학습기회 제공 '통합적 학습복지' 실현 모두에게 평등하고 공정한 학습기회 제공을 위한 통합적 학습복지실현을 위해 김제시는 단 한 명의 학습자도 놓치지 않도록 ‘능동형 평생교육사업 확대 시행’ 계층별, 대상별 맞춤형 학습설계를 통한 평생교육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비문해학습자가 평생교육 참여를 통한 교육기본권 확보, 기초학력증진 및 학력인정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추진하는“성인문해교육”과정을 비롯하여 모두가 누리고 배울 수 있는 시민의 자율적 학습권리가 실현될 수 있도록 학습소외계층을 위한 찾아가는 평생학습교실을 학습형/체험형/공연형의 테마형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시민의 지식충전소 역할을 하고 있는 김제지평선아카데미는 시민의 지적 호기심과 배움의 갈증을 풀어주는 김제시 대표 학습브랜드로 현재 660여 회차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주민참여포인트제 연동, 읍면동 IPTV 실시간 강연송출 및 사이버학습센터 내 강연 탑재로 시민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주고 있다. 동반성장 '협력형 평생교육사업' 추진 학습을 통한 지역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김제시에서는 평생교육기관・동아리의 우수 프로그램을 발굴 육성하여 시민이 중심이 되는 풀뿌리 평생학습 역량 강화를 지원하고, 배움이 이웃을 위한 지식나눔의 매개체가 될 수 있도록 학습자원활동과 연계하여 학습참여-지원육성-학습자원활동으로 이어지는 순환형 학습 생태계를 형성, 시민이 주도하고 이끌어가는 자생적 학습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이를 위해 김제시에서는지역의 열악한 학습인프라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배움터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학습하기 좋은 환경 조성과 동반성장을 위한 협력형 공유 학습시대를 열어갈 계획이다. 자생적 학습이음 보람 있는 학습지원체계 구축 김제시는 주민이 학습의 중심이 되고 나를 위한 학습에서 이웃을 위한 배움 나눔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평생교육사업 참여자들의 학습자원 활동을 교육활동에 포함하여 교육을 실행하여 자생적 학습지원 순환체계를 유도,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배움으로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학습교류의 장인 “김제시 평생학습한마당”을 개최하고 있다. 지역 내 120여 평생교육관련 기관·단체가 참여하여 학습교류를 통한 자생적 학습이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학습체험, 전시, 발표로 구성, 시민과 함께하는 상생의 학습네트워크 장이 되고 있다. 김제시는 이밖에도 지역 내 가속화되고 있는 인구 고령화와 독거노인 증가에 따라 “안전”이 지역주민 정주여건 조성의 필수조건이 되고 있어 생명을 지키는 학습도시 조성을 위해 김제시에서는 거주지 중심의 생활안전망 구축을 목표로 “민주시민교육-생활안전교실”을 운영, 학습을 통해 나 자신과 이웃을 위한 생명지킴이 활동으로 이어지게 지속적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정성주 김제시장 “평생학습 내일를 준비하는 또 다른 삶의 기회와 미래” 정 시장은 "김제시 평생교육사업의 목표는 배움이 있는 일상이 행복한 평생학습도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시민 모두가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평생교육사업 추진으로 평생학습이 내일를 준비하는 또 다른 삶의 기회와 미래를 열어가는 모티브가 될 수 있도록 학습파트너 역할을 수행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 기획
  • 최창용
  • 2023.05.18 17:10

[참여&공감 2023 시민기자가 뛴다]왜 환경인가? 기후혁신 통해 탄소중립 이끌어야

“날씨가 좋은데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기후변화로 인한 대응의 필요성과 절박함에 공감하지 못하는 이른바, ‘기후악당’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보여지는, 느껴지는 날씨가 아니다. 날씨만을 느끼며 기후를 놓치고 있는 것이다. 그간 발전에만 초점을 둔 정책을 줄이고, 미래를 준비하는 정책들이 절실하다. 우리는 잠시 빌려 쓰고, 살고 있다는 생각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래세대를 위한 충분한 배려가 있어야 우리의 시계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최근 들어 대한민국은 ESG 열풍에 휩싸여 있다. 기관·단체는 물론 공기업, 사기업 모두가 ESG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하고 있다. 환경문제, 사회문제, 지배구조 문제를 건강한 사회 작동으로 사회공동체적 가치와 조화를 이뤄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달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오는 2040년 안에 지구 표면 온도가 산업혁명 전보다 1.5℃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IPCC에 따르면 산업혁명이 가속화된 1850년부터 2019년까지 누적 탄소 배출량은 2160~2640 기가이산화탄소톤(GtCO₂)에 달한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경우 2019년 한 해 동안 52.4~65.6 기가이산화탄소톤(GtCO₂-eq)으로, 2010년보다 12% 증가했다. 특히 IPCC는 온난화를 1.5℃로 제한하기 위해선 2030년까지 2019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43%, 2℃로 제한하기 위해서 27% 감축할 것을 주문했다. 탄소중립(넷제로) 달성을 위해서는 2030년까지 메탄가스 배출량을 34%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경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한 도시의, 한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인류가 생명과 존속을 위해 풀어야 할 숙제라는 것이다. “가깝게는 10년, 멀게는 30년 이내에 우리가 멸종위기종이 되지 않게 해달라” 가까운 미래의 주인이 될 세계 수백만 명의 10대 청소년들도 이렇듯 목소리를 높였다. 기후변화의 주범인 환경오염의 원인행위를 범하고 있는 주체가 어른임에도 그 결과에 대해서는 청소년들이 감수해야 한다. 이는 청소년들이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고민, 그리고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어른들을 향한 경고로 해석된다. 탄소 감축이 가야 할 길이 상수라면 그 실천은 인류 생존을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다. 이에 대해 2023 UN청소년환경총회 청소년대표단으로 활동 중인 최재유(전주신흥중 3학년) 학생은 “지금은 기후 위기 골든타임이라고 생각한다” 며 “골든타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특히 “홍수와 가뭄, 해수 온도 상승에 따른 해양 생태계의 변화 등 자연 생태계는 우리에게 이미 신호를 줬다” 면서 “우리는 잠시 이 터전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미래 세대에게 물려줘야 한다. 이러한 터전을 지키려는 노력,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도 없다면 미래는 멈추게 된다”고 하며 “전 세계 국가들의 기후 위기 극복을 위한 온실가스 감축 등 다각적인 이행계획을 내놓고, 실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과 주변에서부터 변화를 넘어선 혁신적인 삶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나의 생활환경의 변화에서 시작된 ‘기후혁신’이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기후혁신’을 위한 노력은 있을까? 대표적으로,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비대면 음식 배달, 카페 1회용품 허용 등으로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이 폭발적으로 늘어 생활폐기물 처리가 지역의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정부는 2050년까지 탈(脫) 플라스틱 사회 전환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키로 했다. 우선, 2030년 중간목표까지 끌어 올리겠다고 발표하면서 저(低) 탄소생태계 작동을 예고했다. 전북도 역시 탄소중립 기본계획 수립 및 실행과제 발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에너지 사용량 절약 시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탄소포인트제와 자동차 탄소포인트제 사업을 하고 있다. 일상에서 탄소중립 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사업이다. 또한 전북도의회,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등과 손잡고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전북형 실행과제 발굴을 위해 긴밀한 협력체제를 갖췄다. 전라북도 지속가능협의회의 경우 시대와 세대를 공감하는 지속 가능한 탄소중립 생활 실천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전환을 주도할 수 있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다음달 3일 전북도청에서 열리는 ‘그린웨이환경축제’가 바로 그것이다. 크고 작은 기업들도 ESG 경영 가속으로 사업구조가 친환경적으로 전환 중이며, 자기 신념을 잘 표현하는 MZ세대의 경우 가치 소비의 중심축이 되어 삶의 소비트랜드로 변화 중이다. 전북 자활사업도 2050 탄소중립을 위한 상생협력 사업들을 진행하고 있다. 전북지역 내 공공기관과 공기업, 자활센터와 자활기업 등 민·공·관이 함께하는 자활 자원순환경제 조성사업이 그것이다. 이 사업을 통해 카페에서 나오는 1회용 컵을 수거해 자원으로 활용하고 쓰레기로 버려지는 커피 찌꺼기는 화분, 연필 등으로 재순환하고 있다. 1회용 종이컵을 비롯해 PET컵, 우유팩은 자활기업에 납품하고, 아이스팩은 재자원화를 통해 소상공인에게 무료로 지원했다. 친환경 아이스팩을 제작해 판매하기도 한다. 특히 이 사업은 버려지거나 불태우는 과정에서 치명적 환경오염원으로 작용하는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모델을 지향한다. 쓰레기를 자원화하는 모델은 네 가지의 굵직한 사업효과를 기대하고 있는데, 쓰레기에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취약계층의 안정적인 일자리 창출과 공공기관과 자활센터 카페 사업장 시민단체 함께 하면서 사회적 가치를 드높이고 지속가능한 친환경 상생협력 사업을 선도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다회용기나 다회용컵(TURN블러) 사용을 통한 1회용품 줄이기 사업도 진행 중이다. 장례식장에서 사용하고 있는 1회용품을 줄이기 위해 장례식장에 다회용기를 제공하고 수거 세척하는 사업이다. 다회용컵(TURN블러)은 카페에서 사용하고 있는 종이컵 및 1회용컵 사용을 줄이기 위한 사업을 진행 중이지만 관련 법이나 조례 등이 없어 사업에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고은하 전주지역자활센터장과 박준홍 전주덕진지역자활센터장은 “하루빨리 관련 법령이나 조례 등이 만들어서 탄소중립을 실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으면 한다” 며 “민·공·관이 함께하는 자활 순환경제 조성 및 상생형 일자리사업으로, 자원 선순환체계구축, 사회적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업모델 제시, 공동선 실행을 위한 사회가치 창출, 일자리를 통한 저소득층 자립지원 등 사회적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영규 전북광역자활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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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7 17:16

[후백제 역사, 다시 일으키다-문헌사료로 본 후백제] ⑥후백제의 군사력과 고려와의 전쟁

△후백제 군대가 강성한 이유 진훤 왕은 지금의 순천만 일원에서 신라 조정에 반기를 들고 거병했다. 필자가 1998년에 출간한 <진훤이라 불러다오>에서 언급하였다. 그는 “장성하면서 체격과 용모가 뛰어나게 기이했고, 뜻과 기상이 빼어나서 평범하지 않았다”고 한 특출난 자질의 소유자였다. 진훤 왕은 “서남해로 부임하여 수자리를 지켰는데, 창을 베고 적을 기다렸다. 그 용기가 항상 사졸의 으뜸이 되도록 일하였기에 비장이 되었다”고 했다. 비장은 조선 후기 희극소설 <배비장전>에 등장하는 아전 류와는 다르다. 진훤 왕은 북원경(강원도 원주)을 거점으로 예하에 국원경(충주)과 서원경(청주)까지 장악한 대호족 양길에게 비장 직을 수여했다. 비장은 고위직임을 알 수 있다. 거병 당시 진훤 왕은 해적 소탕을 통해 실전 경험이 풍부한 정규군을 거느렸다. 그는 한 달만에 5000에 달하는 병력을 결집시켰다. 이들이 후백제 군단의 주축이 되었다. 진훤 왕이 파죽지세로 서남부 지역을 장악한 데는 잘 훈련된 관군 장악과 무관하지 않았다. 게다가 인구와 물산이 풍부한 호남 지역을 기반으로 했다. 후백제 강성 요인이었다. △후백제와 고려의 격돌 조물성 전투 후백제와 고려는 918년~924년까지 전쟁이 없었다. 궁예를 축출하고 집권한 왕건은 시급한 내정 문제에 급급했다. 그렇기에 화호(和好)를 요청하며 궁예 때와는 달리 전쟁이 없는 시대를 열었다. 왕건은 웅진(공주)과 운주(홍성) 등 10여 주현(州縣)을 후백제에 넘겨 주었다. 급한 불을 끄기 위해서는 외적 상황이 안정되어야 했었다. 이후 양국은 격돌이 없었다. 대신 진훤 왕은 신라 지역으로의 진출을 시도했다. 924년 7월 진훤 왕은 왕자 수미강을 시켜 조물성(경북 의성 금성산성)을 공격하였다. 구원 요청을 받은 왕건은 장군 애선을 보냈지만 후백제군에 살해되었다. 이듬해 925년 10월 진훤 왕이 3천 기병으로 내려오자 왕건 역시 정예 병력을 이끌고 몸소 내려와서 대적했다. 국왕으로서 두 사람 간의 첫 대결이었다. 이때의 전황을 “그때 진훤의 군사가 매우 날래서 승부를 내지 못하였다. 태조는 임시로 강화를 해 그 군사를 지치게 하려고 편지를 보내 강화를 빌었다(<삼국사기>진훤전)”고 했다. 이와는 달리 “유검필이 군대를 이끌고 내려와 합치자 진훤이 겁을 먹고 강화를 빌었다(<고려사>태조 8년 10월)”고 하였다. 강화를 요청한 주체를 서로 다르게 기록했고, 인질을 교환하고 전쟁을 마무리했다. 이로 보면 무승부처럼 비치지만 실마리가 잡힌다.<고려사>박수경전에는 고려의 상군과 중군은 패했고, 하군만 승리했다고 한다. 왕건이 속한 중군을 포함해 고려군 3분의 2가 패하였다. 왕건은 이때 진훤 왕을 존칭인 상보(尙父)로 일컬었다. 열세인 왕건이 자신의 장기인 립서비스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다. 강화를 요청한 주체가 왕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왕건의 패배였고, 이후 양국은 격렬하게 격돌하였다. △공산 전투 927년 가을 진훤 왕은 신라 경애왕이 왕건과 내통해 사직을 넘기려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경주를 급습했다. 진훤 왕이 왕건에게 보낸 격서(檄書)에서도 신라의 종묘사직이 고려로 넘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경주에 왔음을 밝혔다. 경애왕의 비극을 듣고 왕건은 5천 기병을 이끌고 내려왔다. 그는 후백제군의 귀환로인 공산(대구 팔공산)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려군은 오히려 후백제군에게 역포위되고 말았다.<고려사>와 <고려사절요>는 한결 같이 “심급(甚急)”이라고 했다. 왕건은 몹시 위급한 상황에 놓였고, 대장 신숭겸과 김락이 몸으로써 막다가 모두 전몰하였다. 공산 전투와 관련해 생겨난 지명인 ‘파군치(破軍峙)’는 동화사와 파계사(把溪寺)로 갈라지는 길목의 재 이름이다. 후백제군이 고려군을 격파한데서 연유했다. 그리고 양군이 격전을 치를 때 화살이 쌓여 강을 이루었다는 ‘살내[箭灘]’가 있다. 그리고 왕건이 밤에 포위망을 뚫고 도망칠 때 한밤 중에 새벽달이 떠 있기에 ‘반야월(半夜月)’로 불렀다고 한다. 도망치던 왕건이 얼굴이 밝아졌다는 ‘해안’, 왕건이 도망치다가 안심했다고 하는 ‘안심’ 등의 지명이 보인다. 그 밖에 대구광역시 앞산 공원 일대 여러 사찰에는 왕건이 숨었거나 쉬어갔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이때의 전장은 대구 팔공산 뿐 아니라 영천 및 칠곡과 성주 일원까지 미쳤다. 공산 대첩 이후 진훤 왕의 정치적 위상은 한껏 고양되었다. 그가 왕건에게 보낸 격서에서 “··· 강하고 약함이 이와 같으니 승패는 알만함이니, 기약하는 바는 평양 문루에 활을 걸어두고 패강(대동강)에 말의 목을 축이는 데 있도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훤 왕의 위세는 “전주왕 진훤이 수십주(數十州)를 쳐서 병합하고 대왕을 칭했다”고 일본에까지 알려졌다. 공산 대첩 이후 나주를 비롯한 숱한 세력들이 고려에서 이탈해 후백제에 붙었다. 공산 대첩은 키가 크고 지략이 많았다는 진훤 왕의 넷째 아들 금강 왕자의 작품으로 보인다. △강주 점령 진훤 왕은 지금의 경남 진주에 치소를 둔 강주를 점령하려고 군사력을 쏟았다. 일진일퇴가 거듭되었다. 928년 1월 강주를 구원하기 위해 파견된 고려군이 패하였다. 후백제군이 강주를 포위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진훤 왕은 그해 5월 강주에서 지금의 경남 고성으로 양곡을 옮기려 떠난 틈을 타서 기습했다. 고려군은 급히 회군했지만 패했고, 강주장군 유문은 항복하였다. 이후 진훤 왕의 둘째 아들 양검 왕자가 강주도독이 되었다. 진주 촉석루 의암 부근에서 출토된 오월국 연호 ‘보정寶正’(926~931) 명문 기와는 후백제 통치의 산물이었다. △영남 북부 지역에서의 전투 928년 10월 진훤 왕은 부곡성(군위)을 함락했다. 그리고 진훤 왕은 11월 고려의 오어곡성(예천군 하리면)을 함락시켜 1천 명을 전사시키고 고려 장수 6명의 항복을 받았다. 이때 왕건은 전군을 집결시켜 6인의 처자를 군사들 앞에서 조리돌리고 기시(棄市)했을 정도로 격분했다. 이어 진훤 왕은 5천의 중무장한 정예 병력을 이끌고 의성부(경북 의성)를 공격해 성주 홍술을 전사시켰다. 비보를 접한 왕건은 “내가 양쪽 손을 잃었다”고 말하면서 통곡했다. 왕건의 충격이 컸음을 뜻한다. 진훤 왕은 여세를 몰아 안동과 예천의 중간에 소재한 순주(안동시 풍산면)를 공격하였다. 장군 원봉은 성을 버리고, 그것도 야반도주했다. 진훤 왕은 순주의 주민들을 붙잡아 전주로 이주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왕건은 분노하여 후백제 영토가 된 순주의 이름을 하지현(下枝縣)으로 격하시켰다. 왕건의 심기가 무척 불편했음을 뜻한다. 929년 12월 진훤 왕은, 고창군(안동)에서 고려군 3천 명을 포위했다. 그러자 왕건이 직접 구하러 왔다. 이듬해 1월까지 이어진 전투에서 후백제군은 8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물러섰다. 이후 안동과 청송을 비롯한 30여 군현과 동해변 110여 성이 고려에 항복했다. 신라 지역 호족들이 고려로 대거 넘어갔다. △새로 찾아낸 쾌거, 발성(勃城) 전투 932년 9월 후백제군 선단은 고려의 수도인 개성과 접한 예성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후백제 수군은 3일간 예성강에 머물면서 염주(황해도 연안)와 배주(황해도 배천)·정주(개성 풍덕), 이 세 고을의 선박 100척을 불사르고 저산도(황해도 연안)의 목마 300필을 빼앗아 개선했다. 후백제군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해 10월 진훤 왕은 해군 장수 상애를 시켜 대우도(평북 용천)를 공격했다. 후백제 수군은 압록강 하구까지 강타하였다. 고려군은 패하여 쫒겨갔다. 후백제군은 왕건이 출동시킨 사촌 동생 만세의 군대마저 밀어냈다. 후백제군은 고려의 해군력을 궤멸시키다시피 했다. 근심했다고 할 정도로 왕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였다. 진훤 왕은 통쾌하게 보복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발성의 싸움에서 태조가 포위당하자, 박수경이 온힘을 다해 싸운 덕에 힘입어 (빠져) 나올 수 있었다(<고려사>박수경전)”는 전역(戰役)을 주시해 본다. 고려 왕궁을 이루는 성벽 발어참성의 '어참(禦塹)'은 '방어하기 위한 참호' 즉 해자가 있는 성을 뜻한다. 발어참성은 곧 '발성'을 가리킨다. 그러한 고려 수도에서는 한 시대를 진동시킨 전투가 벌어진 것이다. 932년 9월 예성강을 거슬러 온 후백제 선단이 개성에 상륙해 고려 왕궁을 덮쳤다. 왕건 생애에 다시금 찾아온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는 부하 장수의 분전에 힘입어 겨우 탈출하였다. 그랬기에 귄위를 실추시킬 수 있는 발성 패전은 공식 편년 기록에서는 지웠다. 부하의 충성심 현양과 관련한 자료를 통해 우연히 드러난 것이다. 박수경의 딸이 왕건의 제28비(妃)가 되었다. 발성 위기에 대한 보은이었다. 후백제군은 고려 심장부를 강타해 왕건을 전율하게 했다. 이때의 전장은 개성 만월대 일원뿐 아니라 예성강유역 풍덕, 황해도 연안과 저산도 및 배천까지 포괄했다. △마지막까지 웅강한 국가 후백제 후백제는 933년 제2차 경주 진공 작전을 펼쳐 신라를 다시금 공포에 몰아넣었다. 934년 9월 진훤 왕은, 중무장한 병력 5천을 이끌고 운주(홍성)에서 왕건과 싸웠으나 패하였다. 그 여파로 웅진(공주) 이북의 30여 후백제 성들이 고려에 항복했다. 후백제와 고려의 마지막 전투는 936년 9월 일리천(선산‧구미)에서였다. 이 전투에서 진훤 왕은 고려군 진영에 있었다. 그랬기에 대통합이 이루어졌다. 후삼국 역사의 시작과 끝은 진훤 왕이었다. 후백제 왕국은 시종 웅강함을 잃지 않았다. 진훤 왕의 사위 박영규 장군이 자신의 아내에게 “대왕께서 근로한 지 40여 년에 공업(功業)이 거의 이루어지려 했는데 하루 아침에 집안의 화(禍)로 나라를 잃고 고려에 가서 의탁하였소”라고 했다. 멸망 시점까지도 여전히 후백제는 강성했었고,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했음을 뜻한다. 현전하는 후백제 관련 기록의 왜곡을 반증한다. /이도학(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백제와 후백제 군사력의 바탕, 최강 국력 군사력은 자고로 인구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들의 사기와 숙련도로 판정난다. 이와 관련해 후백제는 사비성 도읍기 백제 영역이나 주민 상황과 겹친다. 동일한 시기 백제 인구는 고구려 말기 인구 69만 7천 호를 상회하는 76만 호였다. 게다가 경제력은 백제가 고구려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조선시대인들의 백제 국력에 대한 평가와도 다르지 않았다. 예조참판에도 올랐던 이승소(李承召)는 1478년에 “옛적에 백제는 삼국 가운데 가장 강한(强悍)하였고, 전투를 좋아했다(<三灘集>)”고 했다. ‘강한’은 용맹하고 사납다는 뜻이다. 1623년(인조 1) 인조는 정경세(鄭經世)와의 경연(經筵)에서 “삼한시절에 백제가 가장 강했다(<經筵日記>)”고 단언하였다. 저명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도 “삼한 가운데 백제가 가장 강하였다(<與猶堂全書>)”고 했다. 삼한 즉 삼국 가운데 고구려를 제끼고 백제가 ‘가장 강했다(最强)’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삼국 중에 가장 군사력이 강대한 나라가 백제였다. 백제의 유산을 물려받은 후백제 진훤 왕은 말년에 자신의 군사가 북군 곧 고려 군대보다 갑절이나 더 많았다고 회고했다. 이조참판을 역임한 유계(俞棨. 1607~1664)도 “삼한을 침탈하기 40여 년 동안, 그 재력의 부유함과 갑병(甲兵)의 막강함은 족히 신라와 고려보다 뛰어나서 먼저 드날렸다”고 평가했다. <오하기문>에서도 “호남 한 도(道)는 우리나라의 남쪽 울타리로 자연 경관도 빼어나게 아름다울 뿐 아니라 생산물 또한 풍부하다. 국가는 이용후생에 필요한 전체 재원의 절반을 호남에 의존하고 있다. 호남 지역에는 재주가 있고 민첩하며 여러 가지 일에 능숙한 인물이 많아 옛날부터 지략과 지모를 갖춘 걸출한 선비가 종종 배출되었다. 그래서 백제가 그들을 기용해 신라‧고구려와 병립하는 구도를 만들어냈고, 진훤도 그들을 발탁하여 왕건에게 지지 않고 맞설 수 있었다”고 설파했다. /이도학(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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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5.16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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