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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8) 관감치부책(關甘置簿冊)·관지책(官旨冊)·진안현각양상납월당전목수효납미납성책(鎭安縣各樣上納月當錢木數爻納未納成冊)

△관감치부책(關甘置簿冊) 관감치부책(關甘置簿冊)은 1894년 1월부터 6월까지 작성한 세금에 관한 장부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30×19cm이며 전체 34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부 산하 각 관청의 비용 징수와 지출 관련 내용 등이 수록되어 있는데, 1월 8일 전세(田稅)와 전운영(轉運營)의 세금 납부 관련 내용으로 시작한다. 징수 대상처별로 기술되어 있으며 전운영 징세 관련 내용이 비교적 상세하다. 전라도 동학농민군의 봉기와 관군의 농민군 체포 및 침학에 대한 단속 내용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관감치부책 1894년 1월. /고려대 도서관 제공 동학농민군에 대한 첫 기사는 1894년 4월 2일 등장한다. 호서(湖西), 호남(湖南), 영남(嶺南) 등지(等地)에서 협잡(挾雜)한 무리들이 작당(作黨)하여 기뇨(起鬧)한 수창(首倡)은 체포할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3월 20일 전라도 무장기포 이후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난 동학농민군의 활동을 두고 호서, 영남 지역까지 아우르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이미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밖에 같은 날 기사에서 부랑무뢰배(浮浪無賴輩) 천백(千百)이 군집을 이루어 농사를 그만둔 후 지경을 벗어나면 즉시 각 면의 유사(有司), 훈장(訓長)을 초치하여 효유(曉諭)할 것을 당부하는 주문도 있었다. 4월 11일에는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러 간 초토사(招討使)가 동도배(東徒輩), 즉 동학농민군을 체포한 수교(首校), 수형리(首刑吏)의 명단을 보고할 것을 명하였다. 4월 17일에도 각 면에서 민심을 선동하는 자를 체포하여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이때 패류배(悖類輩)를 동학당(東學黨)이라 칭하고 체포한 무리들은 결박하여 압송하라는 지시도 떨어졌다. 한편으로는 동도(東徒)가 취당(聚黨)하여 기뇨(起鬧)한 것 외에는 모두 평민(平民)이니 병정(兵丁), 보상(褓商), 관속(官屬)은 물론 이유 없이 체포한 자들도 보고할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 4월 26일에는 동학농민군의 활동에 대한 더욱 구체적인 정황이 알려졌다. 이날 초토사 전령(傳令)에 40~50명 혹은 60~70명이 무장(茂長) 굴치(屈峙)로부터 각자 부안(扶安), 흥덕(興德), 고부(古阜), 정읍(井邑) 등지로 나아간 정황이 포착되었다. 5월 6일에 이르러서는 귀화(歸化)한 백성은 구휼을 더할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 이미 동학농민군 중 귀화, 즉 투항한 이들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때는 완산 전투로 인하여 전주성도 큰 피해를 입었던 시점이었는데, 전주성 안에 있던 조경묘(肇慶廟), 경기전(慶基殿)의 위패(位牌)와 영정(影幀)을 위봉진(威鳳鎭), 즉 위봉산성에 옮기라는 명이 떨어지기도 하였다. 전주화약이 임박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관감치부책(關甘置簿冊)은 1894년 3~5월 간 동학농민군의 제1차 봉기 및 완산 전투의 정황을 알 수 있게 하는 점에서 매우 소중한 자료임을 알 수 있다. 관지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관지책(官旨冊) 관지책(官旨冊)은 전라도 임실현에서 1894년 10월경부터 1895년 1월까지 각종 업무 처리 상황을 순영과 병영 등 상급관청에 보고한 내용을 정리한 자료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서장되어 있다. 크기는 19×30cm이며 전체 26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서의 첫 시작일은 26일로 되어 있어 몇 월인지 명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다음이 11월 10일과 을미 정월 초6일 순서로 작성되어 있다. 문서 내용은 세금 관련 내용, 현감 부임건, 도망죄인건, 경내에 아이를 유기한 일이 없다는 보고, 소·술·소나무 3금(禁) 조치 이행건, 혼기 넘겨 결혼 못한 남녀가 없다는 보고, 사학(邪學) 금단 조치건, 동학농민군에게서 무기를 회수한 일 등을 순영에 보고한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임실현 향약장정이 수록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 군현의 행정업무와 동학농민군 대응책 등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면은 을미(乙未) 정월 초6일, 즉 1895년 1월 6일 이전의 기록으로 추정되는데, 임실현 경내에서 동도(東徒), 즉 동학농민군으로부터 몰수한 군기(軍器) 중 조총(鳥銃)이 20자루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다. 1895년 1월 6일 기사에는 죄인(罪人)들, 즉 동학농민군을 체포한 교졸(校卒)의 성명(姓名) 성책(成冊)을 수정하여 올렸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한편으로는 지난달, 즉 1894년 12월 내린 사학금단(邪學禁斷)의 조치가 강조되기도 하였다. 1월 7일 기사에는 비도(匪徒), 즉 동학농민군으로부터 몰수한 군기(軍器)의 성책(成冊)을 만들 것을 지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마지막으로 임실현 향약(鄕約) 장정(章程)이 수록되어 있는데 도약장(都約長), 부약장(副約長)부터 각 면의 약정(約正)에 이르기까지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 임실현이 동학농민군의 활동 직후 지역 사회를 어떻게 종래의 방식으로 재편성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진안현각양상납월당전목수효납미납성책 표지. /고려대 도서관 제공 △진안현각양상납월당전목수효납미납성책(鎭安縣各樣上納月當錢木數爻納未納成冊) 1894년과 1895년 전라도 진안현에서 작성한 것으로 상급기관에 납부해야 할 세액을 납부액과 미납액으로 정리한 자료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크기는 20×30cm이며 전체 17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갑오년(甲午年), 즉 1894년 정월 예방(禮房)이 선납한 의정부 약채전(藥債錢) 10냥 5전부터 기재되어 있다. 이때 납부 대상은 종친부, 중추원, 기로소, 중진영(中鎭營)이고 그 외에 속오색(束伍色)이 선납한 속오방번전(束伍防番錢) 14냥도 있다. 3월에는 호조, 사포서, 내수사, 균역청, 전주부, 중진영, 병조(兵曹) 등이 대상으로 납부액과 미납액을 각각 기록하였다. 4월에는 선혜청, 호조, 중진영, 순영(巡營), 호조, 5월에는 양향청, 중진영, 충익부, 병영(兵營), 6월에는 중진영, 속오방번, 순무영(巡撫營), 7월에는 기로소, 중추부, 군산진, 병조, 8월에는 순영, 사복시, 좌수영, 병영 등이 대상이었다. 10월에는 병조, 양향청, 어영청, 금위영, 공조, 군기시, 장악원, 선혜청, 수어영청, 균역청, 은언궁, 사포서, 순영, 병조, 11월에는 순영, 육상궁, 12월에는 병조가 대상이었다. 자료 말미에 을미년 2월 제사를 위한 전세미태(田稅米太) 마련기(磨鍊記)가 상세하기 기재되어 있고 이를 주관한 좌수와 호방, 이방의 이름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언급된 기관 중 중진영(中鎭營)은 전라도 전주에 설치된 중진영(中鎭營)을 의미한다. 중진영은 지금의 초록바위에 자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김개남을 비롯한 상당 수의 동학농민군이 처형당하였다고 한다. 중진영과 함께 병조, 병영, 순무영(순영) 등도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조선왕조의 군사기구였다. 동학농민군이 활동하던 시기에도 진안현의 이들 기관에 대한 상납이 이루어진 만큼 조선왕조 당국의 조세 행정은 그런대로 작동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바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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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6 15:52

박중석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북지사장 "장애인 인식개선 및 고용문화에 주력"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북지사는 1994년 7월 1일 전주사무소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도민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공단은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전북 지역 장애인 고용 확대를 위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다. 2018년에는 전주맞춤훈련센터와 전북발달장애인훈련센터를 개소하며 장애 유형별 맞춤형 직업훈련 체계를 구축했다. 박중석(55) 지사장은 취임 이후 전북 지역 장애인 고용 활성화와 복지 향상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전북일보는 그를 만나 장애인 고용 현안과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취임을 축하드립니다. 취임 후 2개월간의 소감과 주요 활동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전북지사장 박중석입니다. 2025년 2월 4일 자로 전북지사장으로 발령받아 약 2개월 정도가 지난 것 같습니다. 전북에서의 근무는 처음이어서 설렘과 각오를 다지고 왔습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전북지역 고용 현황을 파악하고, 도내 장애인 유관기관 방문을 통해 지역 현안이 어떠한지,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 마련을 위해 무엇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보낸 것 같습니다." -임기 동안 전북 관련해 중점적으로 추진하실 주요 현안은 무엇인지요.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 중 고용의무 미이행 기관에 대해 타 기관 고용우수사례 벤치마킹 등 공단의 서비스를 집중하여 고용 의무 미이행 기관이 모두 장애인을 고용해 의무이행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려고 합니다. 전북지역은 300명 이상 민간기업 비중이 전국의 1.57%(61개소, 2023년 기준) 공공기관 비중이 전국의 4.16%(33개소, 2023년 기준) 정도에 불과해 구직자들이 선망하는 대기업, 공공기관 등이 상대적으로 적은 상황입니다. 게다가, 장애인 일자리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부족해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소극적으로 하고 있는 실정인 점을 고려하면 장애인 일자리의 질적인 측면 향상을 위해서도 지자체와 공공기관의 장애인고용의무 이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올해는 전북지역의 장애인 고용을 선도할 공공영역에서의 모범사례를 만들어 고용의무 이행을 모두 이행할 수 있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확산하는 것이 주요 목표입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주요 역할과 기능에 대해 도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제43조에 의거 설립된 고용노동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장애인이 직업생활을 통해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사업주의 장애인 고용을 전문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사업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장애인에 대한 취업지원사업’은 직업상담, 직업능력평가, 고용지원 필요도 결정, 취업지원프로그램(지원고용, 인턴제, 취업성공패키지 등) 지원, 취업알선 및 취업 후 적응지도, 보조공학기기 및 근로지원인 지원 등이 있습니다. ‘장애인직업능력개발사업’은 장애인 직업능력개발훈련 과정 운영, 직업능력개발원, 맞춤훈련센터, 발달장애인훈련센터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업주의 장애인고용지원사업’은 사업주의 장애인고용환경개선, 장애인 표준사업장 설립지원, 사업주의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 및 고용관리 지원, 장애인 고용의무 초과이행 사업주에 대한 고용장려금 지급 등이 있습니다. ‘장애인 고용여건 조성사업’은 장애인 고용·직업재활에 관한 조사연구, 통계 정보의 수집·분석, 장애인 고용촉진을 위한 교육·홍보, 기능경기대회 관련 사업, 장애인 고용의무 미이행 사업주에 대한 고용부담금 징수,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지원 사업 등이 있습니다." -현재 전북의 장애인 고용현황과 특징에 대해 진단해 주신다면. "2023년도 말 기준 전북지역 인구는 176만 명이며, 등록장애인은 13만 명으로 장애인 출현율이 7.4%로 전국 출현율 5.1%보다 높은 수준이며 경제활동 참가율은 64.1%이며, 실업률이 4.0%로 전국 평균 수준보다 다소 높은 상황입니다. 장애인 고용의무 사업체는 817개소(전국 사업체의 2.55%)이며 300인 이상 민간기업은 61개소(전국의 1.57%)에 불과해 타 시·도 대비 기업규모가 작은 편입니다. 구체적으로 공공부문의 경우 2023년도말 지자체 및 교육청의 非공무원 부문은 각각 9.04%, 4.54%로 의무고용률(3.6%)을 달성했으나 공무원 부문과 공공기관은 각각 2.65%, 3.33%로 의무고용률(3.6%)에 미달했습니다. 다만, 민간부문의 경우 2023년도 말 50인 이상 고용의무사업체의 장애인 고용률은 4.07%로 전국 평균 2.99%보다 높은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전북만의 강점과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요. "전북지사는 2018년도 청사 이전을 하면서 발달훈련센터, 디지털(맞춤)훈련센터가 같은 건물 내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경쟁력있는 양질의 장애인을 양성하고, 장애인 개별 맞춤형 서비스를 신속하게 제공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특히 전국 최초로 장애인 공무원 오케스트라 창단을 전북교육청과 함께 준비하고 있는데 3~4월 맞춤훈련을 실시하고, 5~6월에 현장 적응지도 후 7월에 창단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 전주시 성덕동 옛 자림원 부지에 장애인복합타운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는 물론, 교육청, 전주시가 참여하고 있고 공단도 2027년 완공을 목표로 교육연수원을 건립 추진 중에 있습니다. 장애인 복합타운이 전북지역 장애인 고용복지의 허브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는 만큼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공단에서는 공단에 구직을 희망하는 장애인에 대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 실제 구직욕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는 장애인에 대해서는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전북지역의 장애인이 어떠한 환경에서 어떤 경제활동, 예를 들어 재정지원일자리 사업 등에 참여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면 지역 장애인에 맞는 적합한 서비스를 설계해 제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자체에서도 적극 공감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개인정보보호와 관련해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자체 장애인 정책 추진 시 공단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지난해 광역단체 최초로 전북자치도와 한국장애인고용공단, 한국장애인표준사업장협회가 체결한 업무협약의 기대효과는 어떤 게 있을까요. "지난해 8월 26일 도청 회의실에서 전북특별자치도·공단·(사)한국장애인표준사업장협회와 장애인표준사업장 생산품 우선구매제도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도내 장애인표준사업장 인증 사업체는 총 37개소로 장애인표준사업장의 장애인복지 및 고용확대, ESG경영 활성화를 통한 더불어 사는 상생 사회 만들기 협약으로 기관별 협력사항과 기관별 역할을 부여해 도내 장애인표준사업장 생산품 판로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한국장애인표준사업장협회와의 협력이 궁금합니다. 구체적인 목표와 비전이 있을까요. "(사)한국장애인표준사업장협회와의 협력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우선적인 건 도내 장애인 표준사업장 생산품 우선구매 활성화를 위해 상호 협력할 것이며 장애인 복지와 고용 확대를 위한 공동 행사를 추진하고 장애인 고용에 관한 인식개선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ESG경영을 바탕으로 동반성장을 위한 협력방안도 모색하려고 합니다." -장애인의 고용과 복지에 대해선 강조되고 있지만, 실천으로 이어지기엔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데. "장애인 고용과 복지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기업, 정부, 사회가 함께 노력하는 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단순한 법적 의무를 넘어 장애인도 동등한 기회를 갖고 자립할 수 있는 환경(근로지원인 지원, 보조공학기기 지원, 사내 장애 인식개선교육 등)을 만드는 것이 고용분야의 복지실천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인표준사업장 우선구매 제도가 잘 지켜지지 않은 점도 아쉬운 부분입니다. 장애인 표준사업장 우선구매제도의 목적은 장애인 표준사업장에서 생산하는 물품과 용역의 우선구매를 촉진해 판로 개척을 통한 경쟁력 강화로 장애인에게 안정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공공기관 우선구매 목표비율은 총 구매액의 0.8%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2023년 12월 말 기준 전국 장애인 표준사업장 생산품 우선구매 실적은 1.16%로 목표비율보다 높은 상황이지만, 전북의 경우는 목표비율보다 다소 낮은 0.72%입니다. 아울러, 장애인 표준사업장이 생산하고 있는 다양하고 경쟁력 높은 제품과 서비스를 공공기관, 대기업, 일반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찾고 구매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공단에서는 판매지원 홍보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장애인 고용 활성화를 위해 도민과 기업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공단은 장애인 일자리의 증대, 일하기 좋은 환경 조성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입니다. 기업이 원하는 인재가 실력을 갖출 수 있도록 직업능력개발훈련을 적극 실시하겠으며,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늘어날 수 있도록 대기업이 운영하는 표준사업장을 확대하고 표준사업장 우선구매 지원 등 장애인을 다수 고용하고 있는 기업지원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의 장애인 인식개선 확산을 위한 지속적 노력을 통해 장애인고용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앞으로 많은 성원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박중석 지사장은 박중석 지사장은 서울 출신으로 동국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서 사회복지 석사,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공단에 입사한 이후 본부 기획예산부, 감사실, 능력개발기획부 등을 거쳤으며, 대전지사 기업지원부장, 본부 능력개발국 건립추진단장, 서울남부발달장애인훈련센터장, 본부 근로지원부장 등의 보직을 역임했다.

  • 기획
  • 김선찬
  • 2025.03.23 17:25

꽃바람 '살랑' 봄바람 '솔솔'⋯화정마을에 봄이 찾아왔다

봄이 왔나 봅니다. 4월 4일 김제 꽃빛드리·고창 벚꽃 축제, 5일 옥정호 벚꽃 축제⋯. 여기저기 봄 축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거든요. '청년 이장' 취재진들이 두 달째 지내고 있는 화정마을에도 봄이 왔습니다. 당장 한 달 전만 해도 아무 냄새도, 소리도 안 들리던 시골 마을이었지만 이제 거름 냄새, 관리기·경운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따스한 봄 햇살을 맞으며 산책하기로 했습니다. 최고 기온이 18도에 달하는 21일, 미세먼지가 꼈는지 앞이 뿌옇긴 하지만 날이 어찌나 좋은지 그냥 걷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갑니다. 괜히 이것저것 챙겨 소풍 가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입니다. 화정마을은 이름에도 '꽃'이 들어갑니다. 주위에 꽃이 많이 피어 화정마을의 '화'를 꽃 화(花)에서 따왔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마당에는 꽃을 심어 놨습니다. 모두 연로하신 탓에 관리가 힘들어 넓은 마당에 비해 정원이 소박하지만 잡초 하나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죠. 마을회관 앞을 지나던 중 조재신(87) 어머니 집 대문 틈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보이네요. 그 앞에 어머니가 서 계십니다. '청년 이장'이 가장 궁금했던 나무의 정체를 물어봅시다. "어머니, 이 나무는 뭐여요?" "이거 앵두나무여! 5월 되면 이거 솔찬히 달려. 먹으러 와!" 앵두나무였습니다. 빨갛고 작은 열매, 그 앵두 맞아요. 벌써 심은 지도 10년이 된 나무라고 하네요. 5월이 되면 주렁주렁 열린다는 앵두나무는 열심히 깨어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봄이 왔다는 거죠. 다시 산책을 시작해 봅니다. 마을 곳곳 오와 열을 맞춘 파, 마늘이 바람에 살랑살랑 흩날리고 호랑나비도 바람 따라 날아다닙니다. 알록달록한 색이 눈길을 뗄 수 없게 만드네요. 카메라를 들자마자 날아가 버린 나비, 이 정도면 사람인 것 같습니다. 찍으려고만 하면 바로 날아가 버리네요. 아쉽지만 다음 기회를 노리기로 했습니다. △부녀회장님 취미는 '화단 가꾸기'? 화정마을의 평화로움에 반해갈 때쯤 마당에서 화단을 가꾸는 부녀회장님, 이복순(73) 어머니를 마주쳤습니다. 잡초를 뽑고 계시네요. 어머니, 뭐 하셔요? "아유, 뭐 하긴 봄 왔으니까 풀 뽑지!" 사실 어머니의 봄철 취미는 '화단 가꾸기'입니다. 꽃이 피기 전 잡초를 모두 박멸하기로 결심하신 듯합니다. 일단 '청년 이장'도 호미를 들었습니다. 어색하지만 한참 땅을 파헤치다 보니 어머니가 잘 가꿔 놓은 화단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며칠 전 내린 눈 때문에 아직 꽃망울이 터지진 않았지만 저마다 뿌리께 뿌려진 촉촉한 비료를 보니 이건 무조건 예쁘게 잘 필 것 같습니다. 팔·다리부터 허리까지, 성한 데가 없어 화단 가꾸는 것도 잠깐입니다. 마을회관에 갈 준비하고 나온 어머니의 옷에도 봄이 왔네요. 바지에는 귀여운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고 조끼에는 빨갛고 노란 꽃이 피었습니다. 안에 휘황찬란한 꽃이 핀 티셔츠까지 완벽합니다. △매년 식구 먹여 살린 '냉이' 저기 멀리 보행 보조기 위에 냉이를 캐기 위해 칼·바구니를 싣고 가는 박복순(88) 어머니와 마주쳤습니다. 걷기는 힘들어도 봄 냉이는 캐야 한다는 어머니입니다. 마을 곳곳에 냉이가 한가득 올라왔기 때문에 집에만 앉아 있을 순 없습니다. 박 어머니는 매년 봄이 되면 냉이를 캐서 가족들의 밥을 해 먹였습니다. 이제는 모두 타지로 떠나면서 아들 한 명과 함께 살지만 지금도 버릇처럼 냉이를 캡니다.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청년 이장이 하나 캘 때 이미 어머니의 손과 바구니에는 냉이가 한가득입니다. 심지어 다 똑같이 생긴 냉이인 듯하지만 어머니는 먹을 수 있는 냉이, 먹을 수 없는 냉이를 척척 구별합니다. 무려 80년 넘게 냉이를 캤기 때문이죠. "아이고" 소리가 절로 났습니다. 어머니와 헤어지고 아지트에 쉬고 있으니 손님이 찾아옵니다. 벌써 '청년 이장'이 냉이를 캤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나 봅니다. 손님은 신옥리(82) 어머니와 우리의 '영화 언니' 마을 주민 이혜례 씨입니다. 두 분도 봄이 되면 '냉이'를 꼭 캤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배추가 흔하지 않아서 김장하는 양도 많지 않았기 때문이죠. 지금은 배추를 '포기'로 셀 수 있지만 그때는 속이 차지 않아 김장이라고 하기도 어려웠거든요. 심지어 식구가 많다 보니 김치를 담가도 금방 똑 떨어집니다. 그래서 된장에 무쳐 먹으려고 봄만 되면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냉이를 비롯해 쑥, 머위 등 나물을 캐러 다녔다고 합니다. 냉이 캐는 마을 주민마다 다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냉이를 볼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고. 지금은 식재료가 없어 굶는 시절이 아니지만 화정마을 어르신들은 항상 그랬듯 오늘도 옆구리에 바구니 끼고 냉이 캐러 갑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문채연 기자

  • 기획
  • 박현우외(1)
  • 2025.03.22 12:50

[팔도 핫플레이스] 봄이 스며드는 비밀의 숲, 영양 죽파리 자작나무숲

"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나요?" 누군가는 꽃 피는 거리를 걷고, 누군가는 따스한 햇살을 창문 너머로 바라본다. 하지만 이곳 경북 영양군 죽파리의 자작나무숲에서는 계절이 조금 다르게 흐른다. 겨울의 마지막 눈이 수피(樹皮)에 내려앉아 있고, 봄의 첫 기척이 바람 끝에 머물고 있다. 그리고 이 숲은 아무 말 없이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당신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제 그 고요한 순백의 숲으로 함께 들어가 보자. △30년 기다린 숲⋯꽃말 '당신을 기다립니다' 봄은 아직 머뭇거리지만, 숲은 먼저 계절을 품기 시작했다. 영양 자작나무숲에는 겨울의 마지막 숨결과 봄의 첫 기척이 동시에 머물고 있다. 경칩(만물이 잠에서 깨는 시기, 3월 5일)이 지났지만 자작나무숲 곳곳엔 소복한 눈이 아직 녹지 않았다. 그러나 그 위로 내리쬐는 햇살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봄이, 지금 이 숲으로 향하고 있다고. 숲에 발을 들이는 순간 한 편의 동화 속으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 든다. 하얀 자작나무들이 쭉쭉 뻗은 채 하늘을 향해 자라 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수피에 햇살이 닿을 때마다 은빛이 번쩍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가지마다 걸린 눈꽃은 아직 겨울의 흔적을 품고 있지만, 그 사이로 올라오는 새순의 파릇함은 분명히 봄이다. 이 숲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다. 30년 넘게 숨어 있던 비밀의 숲이다. 1993년 조성된 이후 깊은 산속에 묻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던 이곳은 오랜 시간 세상과 단절된 채 그 자체로 숲의 시간을 쌓아왔다. 주변을 둘러싼 금강소나무 군락이 장벽처럼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었고, 불편한 접근성은 오히려 이 숲을 고요하게 지켜주는 방패였다. 그러나 이 숲도 때를 기다려왔다. 지난 2019년부터 영양군과 산림청이 자작나무숲을 대중에 공개하고 본격적인 관광자원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숨어 있던 이 숲은 마침내 사람들을 맞이하게 됐다. 팬데믹 이후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마음마저 지친 시기, 자작나무숲은 고요히 그 존재를 드러내며 새로운 힐링 공간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마치 고요히 기다리던 친구가 "이제 와도 괜찮다"고 말하듯, 자작나무는 '당신을 기다립니다'라는 꽃말처럼 사람들을 품기 시작했다. △걷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치유 영양 자작나무숲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전체 면적 30.6㏊, 축구장 40개에 해당하는 공간에 자작나무 12만여 그루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처음 심을 당시 고작 30㎝ 남짓하던 묘목은 지금은 키 20m가 넘는 거목이 돼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나무 둘레도 60㎝에 육박한다. 나무 하나하나가 마치 숲속의 귀부인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줄지어 서 있다. 자작나무숲은 두 개의 메인 코스로 구성돼 있다. 1코스는 1.49㎞, 2코스는 1.52㎞다. 노란 리본을 따라가면 1코스, 파란 리본을 쫓으면 2코스지만,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괜찮다. 마음 가는 대로, 발길 닿는 대로 걸어도 좋은 곳이 바로 이 자작나무숲이다. 길은 평탄하고 아늑하며, 숲 사이로 이어진 오솔길 곳곳엔 포토존이 마련돼 있어 누구나 인생 사진을 남기기에도 제격이다. 연접한 전나무숲길과 임도도 탐방객들의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킨다. 고도 800m가 넘는 숲길 끝자락에는 전망데크가 설치돼 있다. 여기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그야말로 숨이 멎을 만큼 장관이다. 자작나무 우듬지가 한 폭의 은빛 융단처럼 산 사면을 수놓고, 그 위로 흐르는 바람마저 시적인 울림을 준다. 그냥 걷기만 해도, 말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이 숲은 사람을 치유한다. 자작나무는 자기 몸을 줄이고자 스스로 잔가지를 버린다. 그 옹이 하나하나가 성장의 흔적이고 숲의 철학이다. 필요 없는 것을 버리고, 더 높이 자라기 위한 결단. 인간의 삶에도 닮은 점이 많다. 그래서일까. 이 숲을 다녀간 사람들 대부분은 '많은 걸 느끼고 돌아간다'고 말한다. △나무가 들려주는 고요한 전설 자작나무는 특유의 백색 수피로 '빛의 나무'라고 불린다. 기름기가 많아 과거 촛불이 없던 시절에는 '화촉'(樺燭)의 재료로 쓰였고, 껍질이 얇고 질겨서 종이 대신 사용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 껍질에 연애편지를 쓰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속설도 있다. 그래서인지 숲 곳곳에는 나무껍질에 연인의 이름을 새긴 흔적이 남아 있다. 하지만 숲 입구에는 '나무가 아파요'라는 안내 푯말이 붙어 있다. 이 숲이 얼마나 사랑받고 있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얼마나 소중히 지켜야 할 공간인지를 일깨운다. 자작나무는 그저 아름다운 나무 그 이상이다. 수세기 전부터 인간의 삶과 문화, 전설과 연결됐다.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말안장의 재료, 북유럽 신화 속 자연의 정령, 영화 속 마법 빗자루의 소재 등 자작나무는 시대를 넘나드는 순수함의 상징으로 통한다. 자작나무 수피는 단순한 나무껍질이 아니다. 얇고 질기며 썩지 않기 때문에 과거에는 종이로, 불쏘시개로, 촛불의 재료로도 활용됐다. 하얀 수피에 연애편지를 적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말도 그렇게 전해졌다고 한다. 지금도 이 숲에는 '빛'이 흐른다. 햇살을 반사하는 수피는 숲 전체를 환하게 만든다. 자연조명 아래에서 걷는 이 기분, 직접 마주한 이들만이 알 수 있다. △모두를 위한 숲⋯산림관광 명소로 진화 영양군은 이 숲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림청·경북도와 함께 '국유림 명품 숲' 지정 이후 ▷힐링센터 ▷숲 체험원 ▷임산물 카페 ▷탐방로 ▷에코로드 전기차 운영 기반 조성을 꾸준히 확대해 왔다. 총 28억원이 투입됐고, 현재는 대부분 완료 단계에 접어들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자작나무숲에는 주말마다 2천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숨겨진 숲'이 아닌, 전국에서 손꼽히는 인기 힐링 여행지로 발돋움한 셈이다. 걷는 여행을 즐기는 트레커들과 가족 단위 관광객, 사진작가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작나무숲을 찾아오고 있다. 접근성 개선도 한창이다. 이전에는 진입로가 험하고, 숲 입구까지 3.2㎞를 걸어야 했지만 이제는 전기차 셔틀이 일부 구간을 운행하고 있다. 통신기지국도 개통돼 휴대폰이 터지지 않던 불편함도 해소됐다. 앞으로 더 많은 탐방객들이 보다 쉽게 숲을 찾고, 보다 안전하게 자연을 누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경북도는 '영양 자작도(島)'라는 이름으로 이 숲을 산림관광 거점으로 개발하고 있다. ▷산림관광 상품화 ▷체류형 관광지 조성 ▷주민 참여형 프로그램 개발 등을 통해 죽파리 자작나무숲을 국내 대표 웰니스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최근에는 해외 언론사 팸 투어를 유치하며 국제적인 산림관광 자원으로 도약하기 위한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 이곳은 단순히 사진을 찍고 가는 숲이 아니다. 걷고, 머물고, 느끼고, 쉼을 얻는 공간이다. 오랜 시간 세상에 숨겨졌던 이 비밀의 숲은 이제 봄바람을 타고 사람을 부르고 있다. 그저 마음만 비우고 찾아오면 된다. 자작나무숲은 말없이 그 자리에 서서,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속삭인다. 매일신문=김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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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0 15:13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7) 〈춘당록(春塘錄)〉, 〈의산유고(義山遺稿)〉

〈춘당록(春塘錄)〉 : 여산 유생이 겪은 동학농민혁명 〈춘당록〉은 전라도 여산의 선비 양평(楊枰)의 남긴 문집이다. 여기에는 동학농민혁명과 관련한 흥미로운 기록들이 적지 않다. 저자의 내력은 문집 내용 속에 단편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나 분명하게 기재되지 않았다. 본문의 내용을 통해 그의 아버지 양재우(楊在佑)는 철저하게 이단을 배척한 전통적 유교지식인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양평 자신도 유학자로서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면서 동학과 서학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글은 “갑오년에 읊다[甲午吟]”, “학술에 대한 변[學術辨]”, “성지를 받들며 감격하는 말[奉旨感激辭]”, “소모를 위해 쓴 격문 초고[爲召募草檄辭]”, “호남의 여러 읍에 보낸 통문[湖南列邑通文辭]” 등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춘당록〉에 실린 이 글들은 체계적으로 수집되거나 정리된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사실과 희귀한 문서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어 자료로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동학농민혁명 관련 주요 내용을 보면 “갑오년에 읊다[甲午吟]”에서 그는 전주성이 농민군에게 점령당할 무렵, 여산 부사 유제관이 군사를 삼례에 보내 전주 외곽을 방어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어 농민군이 장성 황룡강 전투에서 관군을 격파한 사실과 전주성을 점령한 뒤 홍계훈과 공방전을 벌인 과정을 기록하였다. 또 신임 감사 김학진이 전주로 들어가지 못하고 여산에 머문 사실과 순변사 이원회가 파견된 일, 자신이 전주로 달려가서 장군봉에 올라 직접 전주 성내가 불타는 모습을 보고 그 감상을 적은 시를 남겼다. 그 다음 “학술에 대한 변[學術辨]”에서는 동학을 포함하여 이단을 설파하는 장문의 글을 실었다. 이어 “성지를 받들며 감격하는 말[奉旨感激辭]”에서는 1894년 8월 자신이 소모사 이건영의 종사관으로 임명된 사실을 기술하면서 이건영에게서 전달 받은 임금의 유지(諭旨)를 옮겨 놓았으며,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에 대해 그는 ‘소모사를 보낸 건 바로 도적의 무리를 보듬어 회유하여 그들로서 몽둥이를 만들어 섬나라 왜적들을 매질해 내쫓기 위함이고 소모사가 온 것 또한 왕실에 충성을 바치고 도적의 무리를 교화하기 위함일 것입니다.’라고 밝혔다. 또 여기에는 여산 부사 유제관도 이건영이 포섭했음을 시사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다음에는 그가 소모사의 종사관으로 군사 모집을 위해 쓴 글인 “소모를 위해 쓴 격문 초고[爲召募草檄辭]”를 실었다. 이 글은 소모사 이건영의 부탁을 받고 쓴 초안이다. 무엇보다도 ‘섬나라 오랑캐’들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하여 임진왜란을 겪은 사실,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와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 등이 개화파와 음모를 꾸며 갑신정변을 일으키고, 1894년에는 경복궁을 강점한 사실을 설명하였다. 또한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파 3적의 행패를 지적하고 개화 정권의 수립을 비판하였다. 철저하게 일본 침략 세력과 이에 동조한 개화파를 매도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1894년 8월에 호남의 여러 고을에 보낸 통문인 “호남의 여러 읍에 보낸 통문[湖南列邑通文辭]”이라는 글을 실었다. 이 글은 여산향교에서 작성해 호남의 모든 향교에 보낸 것이다. 이 통문에서는 동학농민군 토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것은 동학농민군을 끌어들이려는 이건영의 의사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소모사 이건영이 동학농민군과 연합작전을 모색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의산유고(義山遺稿)〉 : 동학농민군 진압 선봉에 섰다가 의병을 창의한 인물의 기록 〈의산유고〉는 문석봉(文錫鳳, 1851~1896)이 남긴 문집으로 동학농민혁명과 을미‧병신의병에 관련된 내용이 많이 담겨있다. 문석봉은 1894년 양호소모사로 임명되어 진잠, 금산, 고산, 회덕 일대의 동학농민군 진압에 앞장섰으며, 그 이듬해인 1895년 8월에는 일본 낭인들에 의해 명성왕후가 시해되자 가장 먼저 을미의병을 창의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문석봉은 경상도 현풍군의 한미한 집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무과를 준비하였던 것으로 보이지만, 40이 넘은 1893년에 무과에 급제하여 곧 경복궁 오위장(五衛將)이 되었으며, 같은 해 12월 충청도 진잠 현감이 되었다가 모친상을 당해 집으로 돌아왔다. 1894년 11월 양호소모사(兩湖召募使)가 되어 충청도 연산, 고산, 진잠, 회덕 일대의 농민군 토벌에 나섰다. 〈의산유고〉상순영.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의산유고〉에는 소모사로 임명된 다음 관찰사와 도순무영(都巡撫營)에게 올린 글들이 실려 있다. 특히 문집의 권1에 실린 〈토비략기(討匪略記)〉에는 공주 우금티 전투 이후 퇴각하여 곳곳에 둔취해 있던 연산 고산 완주 금산 일대의 동학농민군들을 진압한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는 동학농민군의 최후 전투로 알려진 대둔산 정상 남서쪽 형제바위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 상황이 비교적 상세하게 실려 있다. 대둔산 전투에 대해서는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실린 내용이 알려져 있었으나, 〈의산유고〉는 그 내용을 다시 확인해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대둔산 전투는 동학농민전쟁 최후의 전투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 어린 아이와 임신한 여성 등 가족까지 데리고 피신한 농민군과 그 가족에 대한 일방적 학살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 기록된 이들의 최후는 매우 참혹하기 짝이 없다. 고산 완주 일대의 동학농민군과 그의 가족들은 대둔산 정상 남서쪽의 형제바위(720m)에 초막 3개동을 구축하고 1894년 12월 중순부터 진지가 함락되는 이듬해 1월 24일(음력)까지 이곳에서 피신해 있었다. 일본군 3개 분대와 조선 관군 30명으로 된 특공대(모두 60명)가 이들에 대한 대대적 최후의 공격을 시작한 것은 1895년 1월 24일(음력) 새벽 5시였다. 이들은 세 방면으로 나누어서 사다리 등 장비를 이용해 형제 바위로 진격하며 맹렬히 사격을 퍼부었다. 완연한 화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농민군은 지형지물을 활용하여 9시간 동안이나 버틸 수 있었지만, 결국 어린 소년 1명만 남고 25명이 전사하는 비극적 최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피신해 있던 농민군 가족 가운데는 28~29세쯤 되는 임신한 부인이 있었는데, 일본군과 관군이 난사한 총알에 맞아 죽었다. 또 접주 김석순은 한살쯤 되는 핏덩이 어린 딸을 안고 깎아지른 바위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다 암석에 부딪쳐 즉사하였다. 그 참상은 이루 형언할 수 없었다. 일본군은 이런 참상을 뒤로하고 ‘천황폐하 만세’를 삼창하고 퇴각하였다. 의산유고에는 거짓으로 귀화한다고 한 김공진을 이용하여 대둔산에 주둔해 있던 농민군 사이를 이간질하여 내분을 일으킨 다음 일본군과 함께 공격하여 쉽게 진압할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그러나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없다. 고산, 진잠, 금산 일대의 농민군 지도자 최공우에 대해서도 〈주한일본공사관기록〉에는 별다른 내용이 없고, 전사한 농민군 명단 가운데도 최공우의 이름이 없다. 그러나 〈의산유고〉에는 최공우가 대둔산 농민군을 지휘하고 있었으며, 도중에 피신하여 고산 염정동으로 피신한 후 거기서 다시 농민군을 규합하여 활동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둔산 전투에 대한 사실은 〈주한일본공사관기록〉, 〈의산유고〉 등에 기록되어 있었지만 현장이 확인되지 않다가 1999년 원광대 사학과에서 현장을 발견하여 일반에 공개되었다. 2001년 10월 10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에서 최후의 항전을 기념하여 기념비를 건립하였다. 배항섭 성균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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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20 00:30

[작지만 강한 우리마을]③임실 방동마을의 역발상…공동체 정신으로 농촌의 미래를 꽃피우다

작은 농촌마을이 위태로운 지방소멸 시대에 강력한 공동체의 힘으로 새롭게 일어나고 있다. 임실군 관촌면 방동마을 주민들은 농촌다움복원사업을 발판 삼아 마을의 정체성을 되찾고, 모두가 공동체의 주인이 되어 자립형 마을을 만들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임실군 관촌면에 위치한 방동마을은 약 70여 가구가 살고 있는 평범한 농촌이다. 하지만 이 작은 마을이 특별한 이유는 공동체의 가치와 마을 고유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지키고 가꿔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막대한 재정적 지원 없이도 자발적인 주민 참여와 공동체 의식으로 모범적인 농촌 재생의 길을 열고 있다. △공동체 혁명의 출발, 농촌다움복원사업 방동마을이 공동체로 거듭난 핵심은 바로 농촌다움복원사업이다. 이 사업은 단순히 마을의 물리적 경관을 정비하는 차원을 넘어 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보존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이를 지켜가자는 자발적인 의지가 결합하면서 마을의 공동체 역량이 눈에 띄게 강화됐다. 민병택 방동마을 이장은 “농촌다움복원사업을 통해 마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문화가 확산됐다”며 “외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주민들 스스로 마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우리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방동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방수8경'이라는 독특한 마을 문화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방수8경은 메타세콰이어길, 장제무림, 구절초길, 송대백조 등 방동마을만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뜻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들 속에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주민들은 방수8경을 보존하고 이를 활용한 마을 축제와 문화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며 지역 문화의 자부심을 키워가고 있다. △주민 스스로 지켜가는 전통문화 '방수8경' 방동마을 주민들은 스스로 '방수8경'이라는 독특한 마을 문화 보존에 앞장서고 있다. 방수8경은 메타세콰이어길, 장제무림, 구절초길, 송대백조 등 방동마을만의 독특한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뜻하는 이름이다. 이 이름들 속에는 마을의 역사와 주민들의 삶이 녹아 있다. 특히 메타세콰이어길은 마을로 들어오는 입구에서부터 방문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대표적인 경관으로, 마을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장제무림은 오랜 역사를 간직한 숲으로, 마을 주민들에게 사랑받는 산책로로 자리매김했다. 울창한 숲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이 길은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부 방문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계절마다 각기 다른 매력을 선보이며 자연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구절초길과 송대백조 역시 방동마을의 자랑거리로 꼽힌다. 구절초길은 가을이 되면 만발한 구절초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고, 송대백조는 겨울철마다 철새들이 찾아와 주민들에게 따뜻한 정취를 선사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길을 정기적으로 관리하며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방수8경을 더욱 의미 있게 가꾸기 위해 매년 정기적인 축제와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축제 기간 동안에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기획한 다양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해 외지인들이 마을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이러한 행사들은 단순히 즐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마을 공동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마을 주민 이정옥 씨(65)는 “방수8경 축제를 열면서 주민 간 소통과 결속력이 강화됐고 마을의 자부심과 애향심도 크게 높아졌다”며 “젊은 세대들도 마을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지켜나가는 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방수8경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농촌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알리고 마을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활동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가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도 더욱 강해지고 있다. △마을 주민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전통숲 방수8경을 비롯해 방동마을 주민들의 자부심 중 하나는 바로 마을 전통숲이다. 이 전통숲은 주민들의 생활복지와 휴식의 공간으로 활용되며 공동체 문화를 더욱 단단하게 다져가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전통숲을 관리하고 정비하면서 마을의 경관을 아름답게 유지하고 있다. 특히 전통숲은 주민에게 휴식 공간뿐만 아니라 세대 간 소통의 장으로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전통 놀이와 이야기를 전수하며, 젊은 세대와 아이들은 자연 속에서 다양한 체험을 통해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있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세대 간의 이해와 유대를 강화하며, 공동체의 결속력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전통숲은 외부 방문객들에게도 개방돼 있어 마을의 문화를 알리는 창구 역할도 한다. 방문객들은 숲에서 열리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농촌의 삶과 문화를 직접 경험할 수 있다. 이는 마을의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하며, 주민들에게는 자부심을, 방문객들에게는 특별한 추억을 선사한다. 민 이장은 “전통숲은 마을의 역사가 담긴 공간으로 주민들이 휴식과 소통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마을의 중심”이라며, “이곳에서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며 마을의 현안을 공유하고 미래를 계획한다”고 설명했다. △지속 가능한 마을의 핵심, 주민의 자발적 참여 방동마을이 농촌 재생의 성공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바탕이 됐다. 주민들은 마을 경관 정비, 문화 행사, 환경보호 캠페인 등 각종 마을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특히 민 이장을 중심으로 주민들이 마을의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지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스스로 기획하고 추진하고 있다. 방동마을 주민들은 전통문화 체험과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외지인들과의 소통 기회를 넓히고 있다. 도시에서 온 방문객들이 방동마을의 전통문화를 경험하며 다시 찾고 싶은 마을로 기억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최근에는 마을의 전통 음식과 놀이를 중심으로 한 체험 프로그램이 도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미래를 향한 주민들의 끊임없는 도전 방동마을은 앞으로도 공동체의 역량을 더욱 확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지속하며 고유 가치를 전승할 계획이다. 마을에서 생산하는 농특산물을 활용한 제품 개발과 온라인 판매 등 경제적 자립을 위한 새로운 전략도 준비 중이다. 마을 브랜드 개발을 통해 외부와의 소통도 더욱 활성화할 방침이다. 민 이장은 “우리 마을의 미래는 결국 주민들의 지속적인 참여와 관심에 달려 있다”며 “앞으로도 마을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아 농촌의 진정한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방동마을이 만들어가는 이러한 변화는 농촌이 위기 속에서도 공동체의 힘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방동마을의 성공적인 모델은 다른 농촌 마을에도 커다란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넣고 있다. 작지만 강한 방동마을의 이야기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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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준서
  • 2025.03.16 17:58

"여그 버스가 없어요"⋯화정마을 '발'이 된 사연은

"에고, 내 정신 좀 봐! 약을 놓고 와 부렸네. 버스도 없을 텐디." 어느 날 우연히 화정마을 경로당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이덕순(80)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병원에서 지어온 약을 식당에 놓고 왔다는 말씀이었죠. 찾아와야 하는 건 알지만 버스는 없고 택시비만 1만 4000원 들어가는 탓에 고민하는 듯했습니다. 그래도 금방이라도 택시를 부를 것 같았죠. "아휴, 어깨 아퍼 저녁에 잠도 못 잤네." 화정마을 초입에서부터 보행 보조기를 끌고 오는 이장순(90) 할머니가 보입니다. 오늘따라 몸이 불편해 보이네요. 장순 할머니는 '청년 이장' 취재진과 이야기하던 중 아파서 잠을 못 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조기 없이는 거동이 힘들어 버스 타기 어려운 데다 아플 때마다 택시를 타기에는 비용이 부담이죠. "진짜 선상님이 나 데려다 주려고? 진짜 부탁해도 될랑가?" 다른 날 이칠월(87) 할머니 댁에서 놀던 중 매일 게이트볼장에 가는 경구(87) 할아버지가 집에 계셔야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유는 차가 없어서였죠. 그동안 게이트볼장까지 차 있는 다른 할아버지와 이동했지만 농사 준비 때문에 못 간다는 말을 들었죠. 어쩔 수 없이 유일한 낙인 게이트볼도 포기했습니다. 경구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해 보였습니다. 그래서 취재진이 작은 차를 가지고 쌩쌩 달려 읍내까지 모셔다드렸습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이 돈이 없어서 택시를 못 부르는 게 아닙니다. 돈이 아까워서, 버스가 없어서. 버스로 왕복 3000원이면 충분한데 택시비는 4배가 많은 1만 2000원에서 약 5배가 많은 1만 4000원이 들면 고민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사는 데에 왜 버스가 없냐고요? 있어요. 도보 5분 거리의 마을 정류장에 오는 버스는 하루 6대뿐. 이마저도 절반이 이른 새벽이거나 늦은 저녁에 다니는 버스입니다. 심지어 옆에 있는 봉동만 갈 수 있을 뿐 고산으로는 갈 수도 없습니다. 고산을 가려면 1.3km, 도보 20분 거리 정류장으로 가야 합니다. 아니면 방법은 버스 환승뿐이죠. 취재진이 화정마을의 발이 된 이유입니다. 다들 미안해하셨지만 취재진 입장에서는 이게 더 마음 편한 일이었습니다. 자가용으로는 겨우 5분밖에 걸리지 않거든요. 저희가 오기 전에는 더 어려움이 많았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아파도, 읍내에 나가야 해도 참았던 이유가 다 있었던 겁니다. 말로만 설명하면 '교통 사막'을 겪는 시골 마을을 이해하기는 어렵죠. 취재진들이 화정마을에서 버스를 타 보는 체험기부터 완주군의 교통편 문제까지 모두 짚어 봤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3.15 09:31

버스 오를 때마다 '악 소리'⋯ 어르신 몸 체험해보니

Interactive content by Flourish Interactive content by Flourish 지난 1월 말 '청년 이장' 취재진과 처음 만난 화정마을 주민이 툭 던진 말이 있습니다. "면허 있어? 시골짝에서 살고 싶으믄 차부터 사야 혀." 그때는 속도 없이 웃어넘겼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화정마을에는 그 흔한 마트, 구멍가게도 없어 읍내에 나가야만 합니다. 문제는 그나마 가까운 봉동읍으로 가려 해도 버스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운행되는 버스는 6대뿐. 배차 간격은 짧으면 1시간, 길면 4시간에 달합니다. 주변에 버스가 많이 다니는 정류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화정마을에서 성인 기준 도보 20분 걸리는 거리에 있죠. 보행기에 의지하는 어르신에겐 버거운 거리입니다. 택시를 타면 되지 않냐고요? 화정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인 봉동읍에 가려면 왕복 1만 2000원을 내야 합니다. 이것도 운이 좋았을 때입니다. 시골 벽지에 있어 택시가 안 잡히면 1만 4000원까지 낼 때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르신들은 아플 때도 참는 게 일쑤입니다. 병원이 있는 읍내로 향하는 택시비가 부담스럽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은 보행 보조기가 필수인 탓에 버스를 타는 것도 쉽지 않거든요. "버스는 1500원만 내믄 타. 근디 내가 다리가 아퍼, 마음대로 버스를 못 탕게 택시로만 가야 허는데 비싸잖여. 아파도 두 번 갈 거 고냥 한 번에 갈라고 참지." 손가락부터 무릎, 어깨까지 성한 곳이 없는 이장순(90) 어르신은 계단을 올라가는 큰 버스를 타지 못해 택시를 주로 이용합니다. 문제는 돈, 병원비보다 택시비가 더 나가는 탓에 아파도 참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화정마을을 비롯한 시골마을은 다 똑같은 문제를 겪고 있습니다. 읍내에 나갈 일은 많아도 버스가 없어서, 택시비가 비싸서, 거동이 불편해서 한 번 나가려면 혼자만의 싸움 끝에 외출하는 것이죠. 교통이 불편한 건 여러 보도를 통해 접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년 이장이 도전했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사회서비스원 전북노인보호전문기관에서 노인 체험 보조 기구를 대여해 준다는 말에 문의했습니다. 허리를 빳빳하게 고정하는 허리 보조기, 온몸을 무겁게 만드는 모래 주머니, 손과 다리 움직임을 제약시키는 관절제한보조기구까지. 모든 기구를 착용해 봤습니다. 온몸이 마비된 듯합니다. 무게 중심을 잡으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고 지팡이를 짚지 않으면 걷기도 힘들었죠. 그냥 길을 걷기도 힘들었죠. 양손과 발목에 찬 모래 주머니 때문에 숨까지 가빠졌습니다. 마치 땅이 온몸을 끌어당기는 듯했죠. 평소에 아무렇지 않게 하던 행동이었지만 노인의 몸으로는 하나하나 계산해야만 가능했습니다. 버스가 왔습니다. 막상 버스 앞에 서자 계단이 커다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장순 어르신 말대로 버스 위로 다리를 올리지 못했습니다. 땅과 버스 높이는 고작 30cm 남짓한 계단, 노인의 다리는 그 높이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악!' 소리를 질렀죠. 버스에서 내리는 것도 똑같았습니다. 왕복 10분이면 이동하는 거리를 노인의 몸으로 한 시간이나 걸려 다녀왔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마을에서 박복순(88)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여기는 버스가 와도 못 탄다니께. 버스도 몇 대 없고 나갈라면 시간 맞춰야 하니께 여간 힘든 게 아녀! 그냥 비싸도 택시 타지 어쩌겄어. 한 번 나가는 게 일이여. 다른 데는 마을 버스도 있고 500원 택시도 있담서." 복순 어르신이 말하는 버스는 완주군에서 운영하는 공영제 마을버스 '부름부릉'입니다. 이는 교통 취약 지역과 읍면을 연결하는 마을버스로 현재 이서·소양·구이·상관·삼례 등 5개 읍면서 운행 중입니다. 화정마을이 있는 고산면은 아직 운행되지 않고 있죠. "인쟈 버스 안 탄 지가 벌써 10년이 됐네? 타고 싶어도 못 타능 게 슬프지." 복순 어르신의 바람은 언젠가 혼자 힘으로 버스를 타고 마을을 벗어나 읍내로 향하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의 불편을 온몸으로 경험한 우리는 그 작은 소망이 이뤄지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봅니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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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3.15 09:31

이름만 빛난 완주 '부름부릉'⋯교통불편 호소 여전

교통 취약 지역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운영하는 완주 공영버스 '부름부릉 버스'가 정작 시골 마을에는 들어오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주시를 동그랗게 감싸고 있는 지형을 가진 완주군은 그간 시내에서 읍내를 거쳐 외곽까지 오가는 시내버스가 운영됐다. 농어촌 인구가 감소하고 운송 수입금 재정 상황이 악화하면서 운행 대수가 줄어들어 주민들의 불편이 커졌다. 이에 완주군은 지난 2021년부터 전주시와 시내버스 지간선제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마을버스 완전 공영제'를 도입했다. 완전 공영제는 시내에서 읍면을 오가는 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노선은 줄이고 군 외곽으로 향하는 지선버스를 운영하는 제도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부름부릉 버스다. 줄어든 인구 수에 맞춰 기존 시내버스보다 크기가 작은 마을버스를 투입해 교통 취약 지역의 이동 편의를 높이겠다는 취지로 마련했다. 완주군은 주요 읍면에서 마을로 가는 지선버스를 직접 운영해 기존 전주시 시내버스 운수 업체에 지급하던 보조금을 절감하고 원가가 낮은 마을버스를 운영하기로 했다. 버스 요금도 기존 1500원에서 500원으로 낮췄다. 전국에서 인정받아 농림축산식품부의 2023년 농촌형 교통모델 사업 우수 지자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교통 불편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완주군청 군민 참여 게시판에는 부름부릉 관련 민원이 제기됐다. 글 작성자는 "인구가 많은 지역은 수시로 운행하고 인구가 적은 아예 운행을 안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닌가?"라며 "지역 어르신들은 읍내를 가려고 하면 승강장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는 일이 다반사다"고 했다. 그러면서 "버스 노선이나 시간대 증대는 해 줘야 한다. 교통 취약 지역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인구 수에 따라) 차별하지 말고 제대로 운행해 달라"고 호소했다. 실제로 부름부릉 버스는 현재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는 이서·삼례·소양·구이·상관을 중심으로 총 31대 운행되고 있다. 전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산 북부 등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외 버스 벽지노선 및 대중교통 미운행 지역 등 교통 취약 지역에서 운영하는 '행복콜버스'도 상관·이서·소양·구이·동상에서만 운영 중이다. 시내버스 승강장과의 거리가 500m 이상이면서 대중교통이 운행되지 않는 산간·오지·벽지마을을 다니는 농촌형 택시인 '으뜸택시'는 삼례·봉동·용진·고산·비봉·운주·화산·경천 등 8개 읍면 38개 마을에서만 운영하고 있다. 완주군청 관계자는 "마을버스 한 대 운영에 약 1억 5000만 원이 소요된다. 버스 한 대당 실질적인 탑승자의 수는 적어 예산이 한정돼 지금 모든 수요를 받아들여 증차하기는 힘든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봉동·용진 방면으로 부름부릉 버스 7대를 증차할 예정이다. 하반기에는 고산 북부 지역 노선을 정비할 계획이다"며 "전화 요청 시 마을 정류장으로 향하는 행복콜버스 제도와 벽지 마을에 전담 택시 1대를 배정해 주민이 요청한 시간대에 운행하는 으뜸택시 제도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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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채연
  • 2025.03.15 09:30

[전홍철 교수의 ‘영상과 함께 하는 실크로드 탐방’] (8) 신성한 모성의 변용: 이집트 여신에서 성모 마리아로

얼마 전 이집트를 다녀왔다. 이집트 남동부 아스완(Aswan) 누비안(Nubian) 박물관에는 이집트 여신 이시스가 어린 호루스(Horus)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표현한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조각상(그림1)이 있는데, 설명판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시스 여신이 어린 호루스 신을 젖먹이는 조각상은 고대 이집트에서 모성의 개념을 상징한다. 후대에 콥트 예술가들은 이 개념을 활용하여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에게 젖을 먹이는 모습을 표현했다.” 무슨 소리일까? 과연 사실이고,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 콥트 미술로 본 성모 마리아와 이집트 여신의 관계 초기 기독교 미술사에서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과 고대 이집트 여신이 아기를 안고 있는 조각상 간의 관계는 미술사학자와 종교학자들 사이에서 지속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일부 학자들은 두 도상 사이의 직접적 영향 관계를 강조하는 반면,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유사성이 과장되었거나 우연의 일치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학술적 논쟁의 맥락을 염두에 두고, 특히 콥트 미술(Coptic Art)이 두 전통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을 중심으로 이 관계를 살펴 보자.(그림2) 그림2. 안티노에(Antinoe) 출토 ‘수유하는 이시스’, AD 4세기, Dahlem Museum, Berlin △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모성과 재생의 이집트적 상징 고대 이집트 미술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모자 이미지는 여신 이시스가 아들 호루스를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은 형상이다.(그림3) 기원전 3000년경부터 헬레니즘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제작된 이 이미지에서 이시스는 왕좌 형태의 머리 장식이나 태양 원반을 쓰고 있으며, 호루스는 매의 머리나 인간 아이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특히 이시스가 호루스에게 젖을 먹이는 '수유하는 이시스(Isis Lactans)' 도상은 모성과 풍요, 보호와 재생의 상징으로 이집트 전역에서 숭배되었다. 특히 신성한 존재에서 나오는 젖은 생명과 신성의 양분을 나타냈다. 이 모자상은 단순한 예술적 표현을 넘어 신화적 서사(오시리스의 죽음과 재생)와 왕권 계승의 정당성을 시각화한 정치-종교적 상징체계의 일부였다. 그림3. 수유하는 이시스, BC 664-332, THE MET △ 초기 기독교 성모자상의 양식적 발전 초기 기독교 예술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형상은 4세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기독교 공인 이후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5세기 에페소 공의회(431년)와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마리아가 '테오토코스(Theotokos,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식 인정받은 후 성모자상은 기독교 도상학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초기 성모자상(그림4,5)은 카타콤(catacomb)과 비잔틴 아이콘에서 발견되며, 마리아는 후광을 두르고 긴 로브를 입은 채 예수를 무릎에 앉히거나 한쪽 팔에 안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표현은 점차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길을 보여주는 성모, 그림6)'나 '엘레우사(Eleusa, 자비로운 성모)' 등의 특정 양식으로 정형화되었다. 그림4. ‘수유하는 마리아(Maria Lactans)’, AD 3rd, Catacomb of Priscilla, Rome 그림6. 예수가 구원의 길임을 나타내는 호데게트리아(Hodegetria) △ 콥트 미술(Coptic Art): 이집트 전통과 기독교의 만남 이시스-호루스 형상과 마리아-예수 도상은 모두 어머니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거나 품에 안은 형태를 취하며, 정면성을 강조한 엄숙한 분위기와 위계적 구도를 공유한다. 또한 신성한 모성, 보호, 중재의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두 전통 사이의 잠재적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로 콥트 미술을 들 수 있다. 콥트 미술은 이집트에서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형성된 독특한 예술 양식으로, 고대 이집트 전통과 기독교적 요소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그림7) 예컨대, 콥트 미술은 앙크(ankh) 십자가와 같은 이집트 상징을 기독교적 십자가로 재해석하는 등 기존 시각 언어의 의미를 변형시키는 경향을 보인다.(그림8,9) △ 결론: 종교 도상의 문화적 융합 BBC에서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이시스 락탄스(Lactans)와 마리아 락탄스의 연결성은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어 초기 기독교 아이콘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이시스와 호루스의 이미지가 당시 지중해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새로운 종교인 기독교가 익숙한 시각적 언어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이집트에서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존 이집트 문화의 시각적 언어와 상징체계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며, 동시에 단순한 모방을 넘어 새로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는 창조적 재해석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성모자상의 도상학적 전통은 이러한 문화 간 대화와 융합의 복잡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전홍철 교수 우석대 경영학부·예술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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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10 18:51

나경균 새만금개발공사 사장 “새만금 수변도시 첫 분양⋯완판이 목표”

새만금개발공사가 새로운 비상을 하고 있다. 지난 1991년 11월 28일 공사를 시작한 뒤 지금도 새만금 개발은 진행 중이지만 새만금 수변도시 조성사업과 육상태양광 발전사업을 비롯해 도시개발, 관광, 산업기반과 관련된 다양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이는 공사 임직원 모두가 함께 움직이고, 노력한 결과물이라는 평가다. 특히 그 중심에 지난해 3월 취임한 나경균 사장이 있다. 그는 지난 1년간 오직 새만금 개발의 성공만을 위해 현장 곳곳을 찾아다니며 지역사회와 호흡하고 다양한 사업 구상 및 발판 마련에 앞장서왔다. 나 사장은 그동안 수변도시 조성 및 육상태양광 사업 등에서 성과를 내는 등 궤도에 올랐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리고 앞으로 20년을 넘어 천 년의 새만금을 이끌어나갈 공사로 도약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에 나 사장을 만나 취임 1주년 소감과 향후 공사 운영 방향 및 계획에 대해 들어봤다. -취임 후 1년을 맞았습니다. 소감과 함께 그동안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요. “지난 1년 동안 새만금이 지속 가능한 미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왔습니다. 특히 지역 개발과 경제 활성화에 중점을 두고, 새만금의 대표적인 미래 도시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데 주력했습니다. 가장 집중한 사업은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조성입니다. 도시 내 교육·의료·관광·정부 청사 등 필수 시설을 유치해 정주 환경의 질을 높이고, 글로벌 수준의 도시를 만들고 있습니다. 도시 조성 초기에는 민간 자본이 쉽게 유입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를 보완할 방법을 여러 가지로 고민해 왔습니다. 그래서 초기 민간 자본 유인책으로 ‘새만금 사업법’에 토지의 취득·개발·관리·공급 및 임대관련 내용을 포함해 법적 기반을 제대로 갖추는 데 주력했습니다. 이를 위해 정부, 지자체, 지역 사회와도 긴밀하게 협력해 왔습니다.” -취임하면서부터 ‘2040 비전’과 ‘알파 경영’을 선포하셨는데, 어떤 의미가 있나요? “새만금개발공사는 2018년 설립 이후 새만금 개발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기존의 틀을 넘어 보다 적극적이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사업을 확장해야 할 시점이라 판단했고, 이에 맞춰 새로운 비전을 수립했습니다. 2040 비전은 ‘대한민국 영토를 넓히는 새만금의 KEY PLAYER’입니다. 새만금 사업은 단순한 매립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국가 경쟁력을 키우는 중요한 프로젝트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또한 새만금 사업을 전담하고 현장에서 직접 뛰는 기관으로서, 공사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했습니다. 또한 ‘알파(α)경영’이라는 경영 철학을 도입했는데요, 세 가지 핵심 전략을 의미합니다. 로마자의 첫 글자인 ‘α’는 ‘처음’을 뜻합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선구자 정신으로, 새만금 내부 개발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또한 ‘최고’를 의미하기도 하는데요, 공사가 축적한 새만금 지역의 경험과 데이터를 소중한 자산으로 삼아, 최고 수준의 전문성을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α’는 ‘추가적인’ 의미도 갖습니다. 공공기관으로서 국민의 높아진 기대에 부응하며 청렴과 안전 기준을 더욱 강화하겠습니다. 이러한 경영 철학을 바탕으로 새만금을 선도하는 기관으로 도약하겠습니다.”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 분양은 잘 준비되어가고 있나요. “스마트 수변도시는 약 600만㎡(189만평) 규모의 대규모 도시개발 사업입니다. 우리 공사는 급변하는 새만금사업지역의 사업환경에 따라 늘어나는 기업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통합개발계획 변경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기업과 함께하는 새만금의 ‘첫 도시’로서 수변도시가 경쟁력을 갖출수 있도록 창의복합ㆍ업무복합ㆍ문화복합ㆍ기업복합 등 다양한 복합개발 공간으로 구성될 것입니다. 수변도시의 다양한 공간을 통해 기업맞춤형 지원이 가능한 도시 생태계가 구현될 수 있도록 단계별 분양계획을 마련해 새만금형 공급전략을 도출했습니다. ‘첫 분양’은 수변도시 흥행을 유도할 수 있는 ‘주목성‘을 갖춘 토지를 우선 공급하고자 합니다. 지난 해 말, 국내 부동산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을 통해 검토도 이미 마쳤습니다. 우리 공사는 새만금개발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통합개발계획 변경 인허가를 신속하게 완료한 뒤 수변도시의 ‘첫 분양’을 추진할 예정입니다.” -1공구의 단독주택용지를 올해 첫 분양한다는 이야기인데 구체적인 분양 시기, 면적이 나와 있나요. “올해 하반기에 단독주택용지와 근린생활시설용지를 중심으로 첫 분양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시장 환경과 행정구역 미확정 등 여러 변수를 고려하면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재 통합개발계획 변경이 진행 중인데요. 승인이 나면 신속하게 절차를 마무리하고, 수변도시 1공구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용지를 우선 공급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단독주택용지 약 6500평(2만1482㎡) 규모로 총 65개 필지를 공급하고, 근린생활시설용지는 약 2700평(8820㎡) 1개 필지를 공급할 계획입니다. 이 분양이 새만금 내 첫 도시형 주거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고, 앞으로 새만금의 정주 기반을 다지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새만금에 조성되는 첫 (수변)도시인만큼 지역에서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새만금 스마트 수변도시는 전통적인 토지 공급방식과는 다르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른 도시처럼 공동 주택용지를 먼저 분양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료·관광·첨단산업 같은 정주 환경의 핵심 시설을 먼저 유치해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자리잡도록 하는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먼저 살고 싶은 환경을 만들고, 그 다음에 공동 주거시설을 공급해서 시장의 자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첫 분양 대상지는 교육 특화시설과 가까운 단독주택용지인데요, 추첨방식으로 공급해 실수요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미래 성장 거점에서 누릴 수 있는 장점이 많기 때문에, 첫 분양이 성공하면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첫 분양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새만금 수변도시의 가치가 더 높아질 수 있도록 단계별 전략을 추진할 예정입니다.여기에 △글로벌 기업과 인재를 유치할 수 있는 교육 특화시설 조성 △안정적인 의료 환경을 위한 종합의료시설 유치 △대규모 민간 개발사업 추진 △공공기관 입주를 위한 복합(합동)청사 조성 등을 진행할 계획입니다. 단순한 신도시 개발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도시’,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 -투자 기업이 늘면서 새만금 산단에 이어 2산단 조성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네. 맞습니다. 새만금 국가산업단지가 ′23년도에 ‘투자진흥지구’로 지정되고, ‘이차전지 특화단지’까지 지정되면서 기업들의 관심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기업들이 새만금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단연 넓은 부지와 좋은 입지 조건 때문입니다. 기반시설 공급도 용이하고, 향후 확장 가능성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업단지를 새로 조성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다 보니, 저희도 빠르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공사에서는 작년부터 새만금 산업용지 확대 방안을 면밀히 검토해 왔고, 그해 8월에는 예비사업시행자로 선정이 됐습니다. 지금은 제2산업단지 사업화 계획을 신속하게 마련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만금청, 지자체 등 관계기관과 적극적으로 협의해서, 3월에 사업시행자 지정 신청을 하고 본격적으로 추진할 계획입니다. -끝으로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제 임기 중 꼭 이루고 싶은 목표는 단연 새만금 수변도시 첫 분양 완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올해 처음으로 새만금 수변도시 1공구가 국민과 기업을 대상으로 분양을 시작하는데요, 이건 단순한 분양이 아니라, 새만금 사업에서 굉장히 의미 있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1991년 새만금 사업이 시작된 이후 방조제 내부에 처음으로 탄생하는 도시가 바로 새만금 수변도시거든요. 쉽게 말해, 이제 새만금에서 일하고, 거주하고, 여가를 즐기는 진짜 도시 시대가 열린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저희도 책임감을 갖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한 우리 공사 임직원들은 새만금을 삶의 터전으로 삼은 분들이 편리하고, 쾌적하고, 스마트한 미래 도시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새만금 수변도시에 산다는 것 자체가 프리미엄’이 될 수 있도록 만들겠습니다. 새만금 사업은 전북의 미래이자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입니다. 새만금개발공사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도민과 함께 발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 기획
  • 이환규
  • 2025.03.09 17:02

'붓 한번 안 잡았던' 시골 할매들 작가로 데뷔하다

전북일보가 장기 프로젝트 <청년 이장이 떴다>를 진행 중인 화정마을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평균 나이 81세에 달하는 우리 할머니들이 작가로 데뷔했거든요. 1명도 아니고 무려 12명에 달하는 작가님이 나왔다니, 이거 마을 입구에 플래카드라도 내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 달여 전 흥미로운 제안이 오갔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그림 공부하는 할머니들의 작품을 옛 도지사 관사인 '하얀 양옥집'에서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이죠. 무려 2025년 하얀 양옥집 첫 번째 기획 전시에 할머니들의 그림을 걸고 싶다는 말에 '청년 이장' 취재진은 고민도 없이 "네!"를 외쳤습니다. 그렇게 화정마을 할머니들이 작가로 데뷔했습니다. 데뷔작은 오는 11일부터 4월 27일까지 전시됩니다. 전문 예술인 박상규·이동근·이종만·조현동·최분아 등 5명 작가의 작품과 함께 걸릴 것을 생각하니 벌써 기대되네요.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 조금은 투박하지만 할머니들의 행복이 담긴 꽃 그림이 전시될 예정입니다. 지난 5일 김삼열·이일순 부부 작가의 도움을 받아 꼬박 반나절 동안 완성한 작품입니다. 새싹과 꽃망울이 앞다퉈 피어날 봄을 담은 작품들이기도 하죠. 할머니들이 그린 꽃에는 행복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담겨 있습니다. 우리 할매들의 데뷔작, 기대해도 좋습니다. 기대 이상, 상상 이상의 작품이 나왔거든요. 할머니들이 그린 꽃과 꽃에 담긴 사연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여러분께만 특별히 공개하겠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 기획
  • 박현우
  • 2025.03.08 08:12

"우리 그림 어뗘?"⋯'평균 나이 80대' 할매들 작품 첫 공개

화정마을에 행복이 찾아왔습니다. 평균 나이 80대의 멋쟁이 할머니들이 그림 작가로 데뷔했거든요. 먹고살기 바빠 누리지 못했던 기쁨을 이제라도 누릴 수 있어 행복하다는 할머니 작가님들의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습니다. 그림 수업이 진행된 지난 5일 화정마을 '청년 이장' 아지트. 손가락이 아파서, 손이 떨려서, 어깨가 아파서, 그림이랑은 인연이 없어서⋯. 며칠 전만 해도 "나는 못 혀!"라고 외치던 할머니들은 온데간데없고 다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막상 해 보니 그림의 즐거움에 푹 빠진 듯합니다. 그림 그리기부터 인터뷰까지 꼬박 반나절이 걸렸지만 지친 내색도 없네요. '청년 이장' 취재진이 화정마을 할매들의 데뷔작을 단독 공개합니다. (이름 가나다 순.) 김정자(86) 작가 "선상님들이 시키는 대로 그렸는디 안 예쁜 것 같어. 그냥 그렸어. 뭔 꽃인지도 모를 거여. 해당화라고 그렸는디 해당화 같지도 않혀. 해당화는 그냥 예쁘잖어. 노래도 있고 얼마나 좋은 꽃이여? 잘 못 그렸는디 그려도 제목은 '해당화'로 할라고. 꽃도 있고 새도 있고 어뗘? 그림 보면 그냥 행복혀." 박복순(88) 작가 "이 나이 먹어 갖고 대우를 받아요. 화정마을이 호강한다니까? 꽃 그린다는 건 상상도 못 혔지, 얼마나 좋은지 몰러. 우리 집에 달래꽃이 있어. 시방 이게 가을까지 피어. 고거시 그렇게 예쁘다고. 그거 그린 거여. 그게 참 예쁘더라고. 밑에 작은 꽃은 우리 아들들이여. 이 아들도 잘허고 저 아들도 잘허고, 그래서 우리 아들들 생각하는 마음으로 그렸네." 신옥리(82) 작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림 그릴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 나는 이거시 무궁화꽃이라고 그렸는디 안 같고 매화 같으네. 집에 무궁화 나무가 있어, 그놈 생각하면서 그렸지. 옛날에 살던 사람이 키웠던 것 같어. 지금은 내가 키우지, 뭐. 아래에 꽃밭도 만들고. 기냥 이렇게 그리면 멋있을까 해서 그려 봤네." 오율례(74) 작가 "처음에 그리라고 혔을 때는 양 엄두도 안 났는디 허니까 또 되네? 나는 인자 어려서부터 백합을 좋아혔어. 해마다 피고 지고 피고 지고를 반복혀. 그래서 백합을 그렸는디, 그리고 본게 백합이 아니네? 이걸 그리니까 꼭 소녀 때로 돌아간 기분이여. 기분이 요상하단 말이지. 우리 집에 백합은 벌써 싹이 올라왔다고." 이덕순(80) 작가 "좋았응게 그리지 어쩌겄어. 옛날에 회관에서 그림 배울 때는 다 그림을 그려서 주드만. 그래서 그냥 색칠만 혔어. 그런디 여기는 하얀 종이만 준 게 기억이 안 나. 아고, 한참을 머뭇거렸다니께? 어떤 것 그려야 할지 오래 생각혔네. 생각도 없이 그냥 매화꽃이라고 그렸어. 딸 따라서 매화축제에 가 봤는데 요래 생겼더만?" 이복순(73) 작가 "시방 집에 철쭉이 네 그루가 있고 흑장미, 매화까지 있어. 그래서 내가 그대로 그린 거여. 아고, 살구나무도 있는디 그건 안 그렸네. 젊을 때는 화단도 많이 만들었는디 지금은 나이 들어서 힘들어. 그래도 가꾸기는 혀. 보면 얼마나 기분 좋아. 화단 보면서 나도 장미처럼 항상 남을 웃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겄다 생각혀." 이장순(90) 작가 "나 헐 줄도 모르고 팔뚝이 아파서 힘들었네. 선상님이랑 같이 그림 그리니께 재미있었지, 뭐. 손 떨리는 거 잡아주느라 선상님이 욕봤제. 해바라기 그려 봤어. 그냥 젊었을 적 산악회 다니면서 본 것 그렸당게. 이 나이에 이런 거 하라고 하니께 얼마나 재밌어. 안 그려? 그냥 몰러, 나는 너무 재미있었어. 항상 감사허지." 이칠월(87) 작가 "내가 그린 것은 장미여요. 다른 꽃은 많이 그렸다는디 장미는 안 그렸담서? 그래서 그렸지. 장미는 언제 봐도 색깔이 참 예뻐. 넝쿨도 예쁘고 흑장미도 예쁘고. 그냥 한 폭의 그림 같잖어? 집에 철쭉도 있고 동백도 큰 놈 있어. 피면 얼마나 예쁜데. 그런데 나이가 먹응게 그래 꽃이 좋아도 다 못 키우겄더라고." 조복현(80) 작가 "내가 원래 꽃을 좋아혀. 근데 그림을 못 그려. 다른 건 몰라도 꽃은 엄청 좋아하거등? 꽃은 다 예쁘고 좋잖어. 다 좋아해서 고민하다가 쉽게 그리려고 튤립을 선택혔어. 그랬는디 다 그리고 보니께 별로 안 예쁘네? 내 생각으로는 나도 어릴 때는 참 잘 그렸는디 지금 보니 못 허네, 고냥 그런 생각이 들어." 조재신(87) 작가 "고냥 해당화 그려 봤어. 자식들 생각허면 살아야겄고 아픈 거 생각하면 죽으면 끝 아닌가 생각하고 살았는디 그림 그리면서 잃었던 희망 찾았어. 마음으론 다 하고 싶은데 몸이 아파 못 하니께 우울증이 오는 것 같더라고. 나도 60대 되고 취미활동 좀 하나 했더니 다쳐서 지팡이랑 23년을 같이 지냈어. 그렇게 아흔이 다 됐네?" 최은주(77) 작가 "이거시 무궁화라고 그렸는디 그냥 엉터리 박사여. 옛날 무궁화는 전통이 있는디 내가 그린 것은 신식 무궁화여. 잘 그리진 못 했어도 완성을 시켜 놓으니께 참 흐뭇허네? 평소에 꽃을 엄청나게 좋아혀요. 그렁게 꽃이 집에 겁나게 많았는디 허리가 아파서 다 없앴어. 꽃 키우긴 힘들어도 보면 예쁘고 얼마나 좋아?" 최장금(78) 작가 "우리 집 마당에 수선화가 그렇게 많어. 가운데 큰 꽃은 엄마, 아빠. 아들 둘은 아래 꽃, 딸 셋은 윗 꽃. 그냥 그렇게 그렸어. 꽃을 보니께 생각 나네. 아저씨가 일찍 하늘나라로 갔어. 벌써 가신 지 30년이 넘었잖어. 우리 아들은 다리를 많이 다쳐서 6년을 아무것도 못허고 있네. 그러니께 내가 마음 고생이 많지. 그냥 그렇게 살어요." 정리=디지털뉴스부 박현우·문채연 기자 사진=조현욱 기자

  • 기획
  • 박현우외(1)
  • 2025.03.08 08:12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6) <시문기>와 <기문록>- 충청지역 유생이 바라본 동학농민혁명

<시문기(時聞記)>와 <기문록(記聞錄)>은 충청지역 유생이 작성한 기록물이다. 당시 유생들의 동학농민혁명 시대인식과 충청지역 동학농민혁명 관련 여러 사실 등이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이 두 기록물은 각각 1862-1895년, 1894-1897년에 걸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큰 시대적 흐름 위에서 전개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적 위상을 엿볼 수 있는 점에서 동학농민혁명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크다. <시문기>는 충남 공주지역에 살던 유생 이단석(李丹石)이 동학농민혁명의 배경과 혁명의 진행과정에 대해 듣고 경험한 바를 기록한 글이다. 필사본 1책으로 서문과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이 기록물을 작성한 것은 1896년 7월이다. 서문에 의하면, 그 이유가 1862년부터 시작되어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 절정을 이룬 국난을 기록하여 후대 증거로 삼고자 한데 있었다. 그런 만큼 이 기록물은 한 시골 지식인의 시대인식과 관련 사실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록물로서의 가치가 높다. 〈시문기〉 1894년 1월.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시문기>의 시간범위는 삼남 농민항쟁이 일어난 1862년부터 1895년까지 편년체 형식으로 매년 연월일별로 기록하였고(8개년 누락), 공간범위는 충남 공주지역을 중심으로 한 충청도지역이다. 주요한 내용은 1862년 삼남 농민항쟁을 시작으로 사학의 폐단, 천주교의 탄압과 병인양요, 당백전의 폐해,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을 기술한 뒤, 갑오년 동학농민혁명 관력 사실을 정리해 놓았다. 특히 5월에 이미 공주지역에 동학 접이 수십개 설치되어 있었다는 점, 공주, 이인, 금산 등 충남 일대에서 벌어진 동학 접주들의 부민 수탈에 대해 기록한 점, 7월 5일 이인 반송에 설치된 동학 도소의 활동 등이 주목된다. 특히 7월 이인 반송에 설치되었던 동학농민군 도소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엿볼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 당시 이인 반송 도소는 흰 포장을 넓게 펼쳐 더위를 피하였고 수백명이 모일 정도로 큰 규모였는데, 동학농민군 지휘부가 있는 곳은 병풍을 두르고 돗자리가 깔려 있었다. 반송 도소를 이끌던 동학농민군 대장은 임기준이었다. 이를 통해 7,8월 충청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던 동학농민군의 도소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 도소는 동학농민군들의 활동 거점이자 지휘부 역할을 한 곳이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8월초에는 보은집회를 주도한 서병학이 경병에 잡혔다는 사실, 충청감사가 이헌영에서 박제순으로 변경된 내용, 10월 이후에는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의 전투와 사상자 등이 주목된다. 전봉준이 이끄는 남북접 연합군이 본격적으로 공주성을 공격하기 시작한 10월 23일에는 동학농민군 1만여명이 신소마을에 유숙하면서 소 12마리를 도살하고 다음 날까지 마을 주민들이 2만개의 밥상을 제공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0월 24일에는 동학농민군의 행렬이 물고기를 꿴 것과 같이 몇 리까지 길게 연이어 이어졌다고 한다. 그 규모도 10여 만명에 이르고 효포, 태봉, 오곡, 이인 등지에 주둔하면서 일본군 및 정부군과 전투를 벌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11월 9일 있었던 공주 우금치전투 때의 상황으로 보이기도 하는 만큼 사료 비판이 요구된다. 특히 종일 접전하였고 콩을 볶는 소리처럼 들린 총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질 않았다고 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금치전투 때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월 24일 이인에서 있었던 동학농민군과 정부군·일본군과의 전투는 밤낮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그밖에 금산군수의 동학도 처형, 청주병영군 73명의 전몰, 김개남부대의 청주성 공격, 7, 8월 공주지역 동학농민군을 이끌던 임기준의 체포 등 단편적인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다. <시문기>는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지만, 사실 오류도 많아 주의해서 보아야 한다. 예를 들어 홍계훈이 전주에서 동학농민군과 싸운 시기를 3월에 기술해 놓거나, 전봉준을 김봉준으로 표기하고 서일해(서인주)와 손화중이 김개남과 같이 청주성전투에 참여한 것으로 기록한 부분 등은 모두 오류인 만큼 자료 내적 비판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 저자는 충남 일대 동학농민군의 동향에 대해, ‘곳곳에서 봉기하니, 봉기하지 않은 고을이 없었다. 모두 척왜(斥倭)를 명분으로 하지만 실은 화적이었다’고 하듯이, 지방 유생의 비판적인 입장에서 경험한 바를 직접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이 기록물을 남긴 이단석은 동학농민군을 ‘천한 도적떼’에 비유할 정도로 동학농민혁명에 비판적이다. 당시 보수적인 지식인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시문기>가 1862-1895년에 걸친 편년체 역사기록물인 반면에, <기문록>은 1894-1897년에 걸쳐 작성된 일기이다. 저자는 본문에서 나오는 지명인 용산과 초강 등이 충북 영동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충북 영동에 살던 어느 유생으로 보인다. 작성된 일기 내용은 일기체 형식으로 그날 그날의 날씨나 일상생활과 농사일, 그리고 시국에 관해 견문한 내용을 날짜별로 기록하였다. 1894년 6월 7일부터 1897년 4월 13일까지 근 3년에 걸쳐 있으나, 전체 분량의 절반은 동학농민혁명이 전개된 1894년 6월부터 12월까지이며 내용도 자세하다. 1895년부터는 내용이 소략하다. 1894년 기록은 6월 27일자에 6월 21일 있었던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 관련 내용을 시작으로, 6월 28일 대구에 온 일본인들이 소를 팔지 않는 두 부녀를 살해한 사실을 언급하였다. 또 7월 14일 마을 주민과 동학도들이 충돌한 사건, 7월 18일 동학도들의 옥천 이원집회, 7월 19일 이씨 집의 노복이 동학도를 때려죽인 사실, 7월 22일 동학도들이 초강에 집결한 뒤 전곡을 거두어간 사실, 7월 25일 동학도 천여명이 검촌 민씨 집의 사랑채를 부수고 주민들을 결박한 사실 등을 전하고 있다. 이처럼 7월에 들어와 사실상 영동지역은 동학도들이 장악한 상태였고 그 때문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다투어 동학에 가입하였는데, <시문기>의 저자가 살던 마을 주민들도 8월 1일경에는 모두 동학에 들어갔고 자신도 8월 17일 동학에 입도하였다. <시문기>에 따르면, 충북 영동은 9월 26일 대대적인 첫 기포가 있은 뒤 몇 차례 더 기포가 있었으며, 10월 14일 동학농민군 대군이 해월 최시형이 있던 청산으로 이동함에 따라 마을에서 밥상 700개를 준비하였는데, 실제 10월 16일 진천과 충주 등지에서 온 동학농민군들이 마을로 들어왔다. 10월 18일에는 동학 지도자 청주 출신 손천민이 부녀를 겁탈한 동학도를 직접 징계하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11월에 들어와 상황은 역전되었다. 정부군과 일본군이 영동에 들이닥치고 남아 있는 동학도들을 색출하여 처형하기 시작하였다. 심지어 경북 상주의 민보군도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영동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12월 17일 동학농민혁명기 마지막 대전투였던 보은 북실전투에 관한 일기를 끝으로 동학농민혁명 관련 기록은 거의 모두 일본군이나 민보군 등에 의해 동학농민군이 체포, 처형된 내용만 일기에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시문기>는 갑오년 6월부터 12월까지 충북 영동지역 동학농민혁명의 실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기록물이다. 특히 이 기록은 저자 자신이 보고 듣고 경험한 내용을 요일별로 정리해 놓아 진정성이 있을 뿐 아니라, 역사 사실을 정확히 보여주고 있어 사료로서의 가치도 매우 높다. 반면에 <기문록>은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1896년에 저자가 1862년 이후 30여년의 사실을 보수적인 시각에서 편향적으로 기술해 놓았기 때문에 활용시 주의를 요한다. 김양식 전 청주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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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5 20:20

[청년 이장이 떴다] 젓가락도 내려놓고⋯'올림픽' 후보지 선정에 환호

2월의 마지막 날 일일 농부를 위해 푸짐한 밥상을 차려 주신 최은주(79) 할머니 댁. 오후 6시쯤 결과가 발표될 것이라는 전망을 알고 있었던 본보 식구들은 한창 밥을 먹다가 휴대폰부터 꺼내 들었습니다. 2036 하계 올림픽 유치 국내 후보지 선정 모습을 실시간으로 시청하기 위해서죠. 숨죽인 채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의 목소리에 집중했습니다. 이렇게 화정마을이 조용한 것도 처음입니다. 유 회장이 A4용지를 만지작거리고 있어 금방이라도 발표할 줄 알았지만 조금 시간이 걸리면서 다들 목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때 유 회장의 발표가 시작됐습니다. "1위는 49표를 득표한 전북특별자치도이며⋯." 잠깐 손에 들고 있던 젓가락마저 내려놓고 같이 만세를 외쳤습니다. 놀라움 반 기쁨 반이었습니다. 투표 결과 유효 투표 수 61표(무효 1표) 중 전북이 49표를 획득했다는 소식에 더 놀랐죠. 다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면서도 손뼉을 쳤습니다. 이중 가장 크게 행복해 했던 것은 최 할머니였습니다. "전북이 됐다고? 아휴, 잘했네!" 최 할머니는 "내가 2036년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잘됐어! 잘됐네!"라며 좋아하셨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셔요. 당연히 건강하셔야지!"라고 말하는 청년 일일 농부들에도 "내가 10년 뒤면 아흔이어요. 살면 좋고 그렇지, 뭐. 그래도 참 잘됐네. 축하하네, 전북특별자치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정마을에서도 함께 '올림픽' 국내 후보지 선정에 환호하며 기뻐했습니다. 또 이렇게 하나의 추억을 만들었고 또 하나의 이야기를 함께하게 됐습니다. 꼭 10년 뒤 최 할머니와 같이 하계 올림픽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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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2 17:33

[청년 이장이 떴다] '농사 경험 無' 청년 10명이 시골 마을에 모인 사연은?

"이거 맞아?" 오늘 하루 가장 많이 하고, 많이 들은 말입니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 자주 쓰는 말이죠. 평소 불평불만 없이 일만 하던 우리가 왜 이러한 말을 썼냐고요? 힘들어서요. 너무 힘들어서요. 3주 전 신옥리(83) 할머니 댁에 놀러갔다가 마을 고충(?)을 하나 들었습니다. 봄 되기 전에 농사 준비하려면 비료 포대를 다 날라야 하는데 몸이 예전같지 않아 고민이 많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미래의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청년 이장' 취재진은 "그러면 저희 회사 청년들 초대해서 한 번 같이 나를까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렇게 약속이 성사되고 2월의 마지막 날 화정마을에 전북일보 식구들이 모였습니다. '청년 이장' 디지털미디어국 디지털뉴스부 박현우·문채연 기자, 영상제작부 김지원·조현욱 기자부터 편집국 문화교육체육부 전현아 기자, 제2사회부 남원 주재 최동재 기자, 심지어 경영기획국 이상규 사원까지 본보 청년 7명이 화정마을에 모였습니다.(사실대로 말하면 '청년 이장'들의 강요로⋯.) 도착하자마자 면 장갑부터 끼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습니다. 완전무장(?)을 하고 도착한 신옥리 할머니 밭. '일일 청년 농군' 7명의 입이 모두 떡 벌어졌습니다. 한쪽에 덮혀 있는 천막을 걷어내자 무려 60포대에 달하는 비료 포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농사 경험 0회, 無지만 일단 20kg에 달하는 포대를 손으로 들었습니다. 후배들이 힘들어 보였는지 영상제작부 선배님들마저 카메라를 내려놓고 장갑을 꼈습니다. "이건 진짜 안 돼." 이렇게 단호한 모습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첫 집이라 그런지 힘들지만 다들 으샤으샤 하면서 해냈습니다. 한쪽은 수레에 싣고 한쪽은 경사진 흙길 위로 포대를 올리고 말 안 하고 여차저차 분업도 됐습니다. 찬 바람이 부는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게 아니라 여름 한낮 때처럼 땀이 주르륵 흐릅니다. 참고로 지금은 여름이 아닙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시골 어르신들도 하는데 그리 힘들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던 때를 후회했습니다. 일단 지친 몸을 이끌고 두 번째 집인 최은주(79) 할머니 댁으로 향했습니다. "우린 20포대여!"라는 말을 들은 청년 7명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네요. 웃음은 1분도 안 갔습니다. 저기 마을 길 건너까지 걸어가야 밭이 나온다네요. (하하하) 하지만 우리는 7명입니다. 못 할 일은 없습니다. 땀이 식기도 전에 20포대를 싣고 나르기 시작했습니다. 진짜 울고 싶었습니다. 땀을 어찌나 흘렸는지 여기저기서 땀냄새가 폴폴 나네요. 이건 진짜 힘들다는 증거입니다. 더 멀리 가야 합니다. 이번에는 오율례(76) 할머니입니다. 목적지까지 무려 도보 5분이 넘습니다. 우리가 믿을 건 '외발수레'뿐. 이마저도 처음 운전해 보는 터라 비틀비틀, 외마디 비명과 함께 옆으로 쓰러진 수레도 적지 않습니다. 청년 7명이 모였는데도 고요합니다. "나 진짜 못하겠어. 이거 아니야." "한 집만 하면 돼요! 서두르자고요." 큰일났습니다. 아직도 끝이 안 났거든요. 김정자(87) 할머니 밭이 마지막인데 이게 왠걸 이번 비료 포대는 물을 한껏 머금었습니다. 물을 먹기 전 20kg였을 테지만 지금은 40kg입니다.(아마 체감상 40kg는 되는 듯했습니다.) 다들 걸음도 느릿느릿, 쉬는 시간이 더 길어졌습니다. 다들 힘들었는지 짜증도 늘어났죠. "누가 비료 포대를 가까운 데서부터 내려 놓은 거야." 지친 탓에 멀리까지 비료 포대를 가지고 갈 힘이 없는지 다들 바로 코앞 거리부터 비료 포대를 채우기 시작했죠. 그래도 누구 할 것 없이 하얀색이었던 목장갑은 어느덧 검은색이 됐고 깨끗했던 옷은 여기저기 흙이 묻을 정도로 열심히 했습니다. 오후 내내 함께 땀 흘리며 무려 110포대를 나른 오늘, 웃음도 사라진 채 말 없이 일만 했지만 모두 이 말만은 똑같이 했죠. "우리가 너무 쉽게 봤어. 너무 힘들다. 이걸 그동안 할머니 혼자서, 아니면 할머니·할아버지 두 분이서 했다는 거야? 진짜 대단하시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할 것 같아." 오늘 농번기를 앞둔 시골 마을에서 제대로 농사의 고단함 배우고 느끼고 반성하고 퇴근합니다. 함께해서 즐거웠지만 힘들었고 힘들었고 힘들었습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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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2 12:53

[청년 이장이 떴다] "고생했응게 많이 먹어"⋯따뜻한 '저녁 한 상'

긴 겨울이 지나고 오랜만에 따뜻한 햇살이 내리쬡니다. 그 아래에서 본보 청년들이 구슬땀을 흘립니다. 한참 일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넘어갈 시간. 땀을 닦으며 잠시 숨을 돌리는 사이, 어디선가 최은주(79)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이고, 고생들 많다니께! 밥은 먹고 혀야지!" 최 할머니가 마당 한쪽에서 사용감이 느껴지는 바비큐 그릴을 꺼내 옵니다. 자식들이 집에 찾아올 때 쓰던 물건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특별한 손님을 위해 꺼냈습니다. 손에는 큼지막한 삼겹살 덩이도 들려 있습니다. 직접 재배한 싱싱한 상추도 큼직한 채반에 한 가득. 거기에 신옥리(83) 할머니의 명이나물과 고추 장아찌, 매콤한 고추와 마늘까지. 금세 저녁 한 상이 뚝딱 차려졌습니다. ”얼른 와! 고기 탄다. 먹고 혀! 고생했응께 많이 먹어야 혀." 푸짐한 한 상이 차려지고도 한참을 안 오는 청년들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집니다. 뒷정리에 매진하다 헐레벌떡 달려간 최 할머니의 집 앞 마당은 앉을 자리도 없었죠. 고기 그릇이 바닥 나기가 무섭게 끊임없이 채워집니다. 너무 많이 먹었다는 말도 소용없습니다. ”어르신, 저희 많이 먹었어요! 이제 그만 굽고 같이 드셔요.” 그만 굽고 드시라는 말에 어르신은 손사래를 칩니다. 꼭 고생한 저희에게 직접 구운 고기를 먹여야겠다는 겁니다. ”안 다쳤어? 많이 힘들지?“ 함께 고기를 굽기 위해 그릴 곁에 함께 선 청년 이장을 향해 신 할머니가 말합니다.(사실 신 할머니도 치킨을 준비했다가 너무 많은 고기 양에 급하게 주문을 취소했답니다. 다음에 사 주기로 약속했죠.) 맛있는 고기 냄새가 마을에 퍼진 듯 주변에서 운동하던 마을 주민들까지 모였습니다. 이장순 할머니부터 청년 이장들도 '영화 언니'라고 부르는 동네 주민 이혜례 씨까지 다 모였죠. 그리고 귀여운 시골 똥강아지도 왔습니다. 명절에나 다 모일 것 같은 인원이 한 자리에 모여 왁자지껄 하하호호 한바탕 놀았습니다. 뒷정리까지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간다는 청년들의 말에 할머니들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고마워!"라는 말을 반복하셨죠. 사실 오늘 고생한 사람은 저희만이 아닙니다. 화정마을 어르신들도 마음고생이 컸답니다. ‘젊은 청년들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다치면 안될 텐데.‘ 걱정이 함께 걷는 걸음에서, 함께 수레를 잡아 주던 주름진 손에서, 한숨처럼 흘러나온 말들에서 묻어났습니다. 그 마음을 알기에 배가 불렀지만 내어주신 음식을 남김없이 비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어르신! 디지털뉴스부=문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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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3.02 12:53

[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35) 우금치 전투 이후 지방통제의 실상을 보여준 북하면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북하면보(北下面報)〉는 총 12건으로 현재 모두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소장하고 있다. 북하면장 홍순철은 1894년 11월 10일부터 12월 15일까지 북하면의 상황을 상부인 청양현에 보고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정정해야 할 내용이 있다. 그동안 북하면이 충청도 예산에 속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북하면은 충청도 청양현에 속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1757)에 북하면이 청양현에 속해있으며, 〈호구총수(戶口總數)〉(1798)에서도 역시 북하면이 청양현에 속해 있음이 확인된다. 이후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청양현 북하면과 북상면이 운곡면으로 합쳐졌다. 1894년 당시 북하면은 현재 운곡면 영양리, 미양리, 광암리, 추광리 및 신대리 일부 지역이다. 이는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북하면보〉가 12건이지만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이외의〈북하면보〉가 더 있다고 짐작된다. 이 〈북하면보〉의 작성자 또는 보고자는 북하면의 면장 홍순철이었고, 수급자는 청양현이다. 먼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바로 작성 시점이다. 이 〈북하면보〉는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으로 보면 1894년 11월 10일부터 12월 15일까지 작성되었다. 가장 빠르게 작성된 것은 바로 11월 10일(음력)에 작성된 〈북하면보〉이다. 이 시기는 바로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농민군 주력이 공주 우금치에서 패배한 직후이다. 즉 우금치 전투에서 동학농민군이 패배 하자마자 행정단위의 기본조직인 면의 책임자가 고을 현감에게 해당 면의 상황을 매우 상세하게 보고하고 있다. 이는 우금치 전투 이후 조선정부의 지방통제책이 강화되고 있는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생각된다. 즉 동학농민군을 색출하여 토벌하는 동시에 5가 작통제와 향약을 통해 향촌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상황에서 작성되었다고 보여진다. 청양현 북하면은 공주 우금치와 매우 가까운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농민군 토벌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특히 보고가 빈번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이루어졌다고 보여진다. 12건의 〈북하면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북하면보〉 현황 <북하면장 홍순철이 작성한 보고(1894년 11월 15일)> 북하면의 첩보[北下面報] 다음과 같이 면(面)에서 첩보합니다. 그간 찾아서 얻은 병기는, 길이 1장 5척인 장창(長鎗) 1개로, 위아래가 구리로 장식되어 있고 고리를 잇닿아 꿴 사슬이 달려 있어 쟁쟁하게 울리니 창 가운데 특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환도(環刀) 한 자루, 등자(鐙子)가 없는 말안장 1건입니다. 지금 이에 관아에 납부하기 위해 이날 보냅니다. 추동(秋洞)에 거주하는 최원재(崔元在)는 바로 동도(東徒)들의 수괴로 이른바 ‘대정(大正)’의 직임을 맡은 자입니다. 일전에 대흥(大興) 백성들에게 잡혀갔는데, 무슨 교묘한 언변으로 별난 농간을 부렸는지 처벌을 피하고 나와 끝내 징계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추동에 사는 백성들을 위협하여 장차 재앙의 그물 가운데에 묶어 던져 버리려고 하여 추동의 백성들이 장차 버티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잡아와서 자백하게 하니 스스로 말하기를, “10여 년간 동학 수백 명에게 포덕(布德)하였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일삼은 것을 캐 보니, 다른 사람의 무덤을 파고 다른 사람의 집을 훼손시키며 다른 사람을 묶어 놓고 돈을 바치게 하는 등의 일에 매번 앞장섰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밟아 죽이네, 불을 지르네 하는 말로 위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동(洞)의 민가(民家)에 감시하에 잡아 두고서 관아에서 어떻게 처분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제 미시(未時)쯤에, 공주(公州) 신촌(新村)의 백성들이 배대일(裵大一)을 마을 안에 잡아 두고 사람을 시켜 급히 기별하기에 면의 백성을 보내 데려와서 또 동의 민가에 묶어 두고 또한 어떻게 처분할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유로 첩보합니다. 갑오년(1894, 고종31) 11월 15일 묘시(卯時) 북하면장 홍순철(洪淳喆) [제사] 보고한 것 중에 창 한 자루는 잘 도착했는데, 환도, 말안장 그리고 수동(受洞)에서 옮겨 온 화포(火砲) 한 자루는 무슨 이유로 오지 않는 것인가? 동도(東徒)들이 혹여 오면 즉시 첩보한 대로 조사하여 찾아내 들여보내라. 그리고 최원재와 배대일에 관한 건은, 착실한 군인을 따로 정해서 모조리 속히 압송하고, 여러 가지 사무들은 모두 이전의 영칙(令飭)의 내용대로 별도로 자세히 살펴서 실행하되, 촌마을 사람들과 반드시 의지하면서 안정되기를 힘쓰도록 할 것. 15일 관(官) (서압) (『동학농민혁명신국역총서』11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2019, 81∼82쪽) 위의 내용은 1894년 11월 15일 묘시(오전5시∼7시)에 북하면장 홍순철이 청양현감에 보고한 내용이다. 주요 내용은 북하면에서 수거한 병기인 장창 1개, 환도 1자루, 말안장 1건을 청양현에 보낸다는 것과 추동에 거주한 동도 수괴 대정 최원재와 배대일을 잡아 두고 어떻게 처분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즉 북하면 차원에서 과거 동학에 참여했던 수괴 최원재와 배대일을 임의로 잡아 그 잘못을 따지고 있다. 당시 면 조직 차원에서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고 색출하는 일을 자체적으로 자발적으로 진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보고서를 받은 청양현은 제사(백성이 관부(官府)에 제출한 소장(訴狀)·청원서·진정서에 대하여 관부에서 써주는 처분)를 통해 병기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최원재와 배대일을 압송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는 청양현이 북하면에서 자발적으로 동학농민군을 토벌하고 색출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밖에 중요한 내용은 동학농민군으로 참여한 사람들에 대해 그 재산을 몰수하고 있다. 1894년 12월 15일 〈북하면보〉에 따르면 “동적(東賊)의 물건은 관아에서 몰수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이다”라고 하여 동학농민군의 재산을 몰수하는 것이 매우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에서 〈북하면보〉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토벌하는 상황에 대한 보고,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성된 유회군의 활동, 북하면의 동학농민군 토벌 활동, 동학농민군의 재산을 몰수하고 그것을 사용한 현황 등이 〈북하면보〉의 주요 내용이다. 당시 동학농민군 토벌과 진압활동이 지방행정조직을 통해 매우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당시 지방행정조직이 체계적으로 운용되고 있음도 알 수 있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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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6 22:13

[팔팔 청춘] 초등학교 졸업한 80대 할머니?⋯"건강만 된다면 고등학교도"

수년 전 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신조어(?)가 생겼다. 바로 "라떼는 말이야"다. 같은 말을 들어도 누군가는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누군가는 '인생 선배'라고 칭한다. 결국 듣기 나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단순히 인생 선배가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후배한테 하는 조언도 '라떼'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진짜 인생 조언이 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이러한 안타까운 현실에 <팔팔 청춘의 인생 이야기>라는 기획을 구상하게 됐다. 과연 인생 선배인 기성세대는 어떤 삶을 꿈꿔 오면서 살았을까. 그 안에서 '희로애락'을 겪으며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후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조언은 무엇일까. '평균 나이 81세'지만 영화 촬영하고 사진집 낸 화정마을 멋쟁이 할머니 이야기에 이어 구순을 앞둔 조옥선 할머니를 만나봤다. 구순을 앞두고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중·고등학교까지 바라보는 조 할머니는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을까? "새장은 참 예뿌다/새장 속에 새가 있어야 참 예뿐대/새가 없음니다 날아다니는 새야/예뿐 새장이 있으니 날아다니다 힘들면/언제든지 차자와 쉬었다 가렴"(조옥선作 '새장' 전문) 글씨가 삐뚤빼뚤하고 한글 맞춤법에 맞지 않아 더 울림 있는 이 시는 조옥선(86) 할머니의 작품이다. 조 할머니의 창작 실력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져 있다. '문해교육' 초등 과정 재학 기간 6년 중 3년 동안 익산시가 주최한 성인문해학습자 문해 백일장 대회에서 익산시장·한국문해교육협회 익산지부장상을 받기도 했다. 조 할머니는 지난주 익산행복학교 황등 2반에서 초등 과정을 마친 '늦깎이 학생'이다. 여기서 말하는 익산행복학교는 2024학년도 기준 문해교육 프로그램 학력인정 기관으로 지정된 도내 6개 지역 10개 기관 중 한 곳이다. 조 할머니는 매주 3회 연간 240시간에 달하는 수업을 받으며 꼬박 6년을 공부했다. 학업 성적이 우수한 데다 품행이 단정해 6년간 반장은 물론 익산행복학교 졸업식 당시 졸업생 대표로 답사를 전하기도 했다. "제 나이 팔십에 머리는 희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세상살이 외롭고 힘들 때 학교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6년을 배워 마침내 졸업장을 받았습니다. 익산행복학교 이름처럼 학교에 오면 행복해지고 젊어집니다. 봄에는 봄 소풍, 가을에는 체육대회, 저에게는 정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함께 공부했던 반 친구들도 떠오릅니다."(졸업식 답사 중 일부) 조 할머니는 10여 년 전 남편을 떠나보내고 외로운 시간을 보냈다. 마음이 한창 힘들 때 지인을 통해 익산행복학교를 알게 됐다. 공부를 가르쳐 준다며 같이 가보자는 지인의 말에 못 이기는 척 따라갔는데 졸업까지 하게 됐다. 항상 배움에 대한 갈증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6·25가 발발하면서 저학년 때부터 일찍이 엄마 따라 돈을 벌러 다닌 조 할머니는 평생 공부를 못 했다는 것에 대한 한이 있었다. 그래서 누구보다 더 열심히, 진심으로 학교에 다녔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고 배운 것은 꼭 집에 가서 몇 번이고 복습하는 게 조 할머니의 일상이었다. 그날 배운 거라도 문 앞만 나오면 기억이 가물가물해지는 탓에 남보다 한 번 더 보고 복습했다. 이제 시 쓰기는 기본 전자 제품에 써 있는 영어 또한 술술 읽을 줄도 알게 됐다. 실제로 조 할머니에게 특별한 일이 있었다. 인터폰이 고장 나서 고객센터에 전화하니 상담원이 영어로 적힌 모델 넘버를 불러 달라고 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읽을 수 없었을 테지만 조금은 느려도 한 글자 한 글자 정확히 불러 준 탓에 인터폰 고장도 뚝딱 해결했다. 조 할머니는 "이 나이에 공부 안 했으면 어떻게 내가 영어를 읽고 이름을 쓰겄어. 선생님 덕분에 다 가능했지. 전에 큰 영어 말고 작은 영어(소문자)는 못 배우겄다고 했다니께? 근데 해 보니께 괜찮더라고"라고 말했다. 이렇게 평생 조 할머니의 등에 있던 짐 보따리 같았던 '배움'에 대한 한이 해결되면서 자신감도 생기고 행복해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입학했지만 이제는 어엿한 중등 과정 입학을 기다리는 학생이 됐다. 그의 도전은 끝이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조 할머니는 배움에 때는 있지만 나이가 없다고 말한다. 보통 늦깎이 학생이라면 배움에는 때가 없다고 말하지만 조 할머니는 조금 다르다. 조 할머니는 "배움에는 때가 있지만 해 보고 나니까 나이는 없는 것 같어. 제때 배우는 게 중요하지. 나이 들면 아무리 가르쳐 줘도 몰라. 그래도 하니까 돼!"라며 웃어 보였다. 나이에 맞는 교육이 중요하긴 하지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못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할머니에게는 꿈이 있었다. 때에 맞게 교육을 받았더라면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그 꿈, 바로 선생님이다. 초등학교도 몇 년 다니지 못했지만 선생님이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여느 어린 아이처럼 꿈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어릴 적 꿈을 꾸는 일은 사치이고 욕심이었다. 조 할머니는 "선생님들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러. 못 배웠는데 꿈꿔서 뭐 하겄어요. 그냥 꿈으로 가지고 있는 거지, 배웠다면 할 수 있었을 텐디. 꿈도 다 욕심이지, 뭐"라고 했다. 할머니는 또다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중학교를 넘어 고등학교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다. 한 번 도전해 보니 나 자신이 너무 뿌듯하고 할 만하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도전하기로 한 조 할머니다. 그는 "중학교 가면 초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잖어. 그래서 가고 싶어. 우리 같은 할머니들은 고등학교는 함열여고로 갈 수 있어. 내가 그때까지 살겄어? 건강이 허락한다면 하고 싶지. 건강만 된다면 무조건 갈 거여"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리가 살던 때는 이렇게 멍청하게 살았지.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세상이 밝고 좋지 않어? 못 배워도 노력만 하면 살 수 있어!"라며 "내가 공부도 하고, 도전도 해 보니께 알겄더라고. 자식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 혀. 더 배우라고 하지. 그리고 해 보니께 그냥 나 자신이 너무 뿌듯혀. 자랑스러워"라며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디지털뉴스부=박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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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02.24 14:46

[뉴스와 인물] 최주만 전주시의회 부의장 “2036 하계올림픽 유치, 완주‧전주 상생 발전 최선”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라는 슬로건으로 제12대 후반기 전주시의회를 이끄는 최주만(동서학, 서서학, 평화1·2동) 부의장은 시민과 호흡하며 현장 속에서 민생을 해결하기 위한 의정활동에 여념이 없다. 특히 2036 전주올림픽 유치라는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최 부의장을 비롯한 전주시의회 소속 의원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최 부의장을 만나 2036 전주올림픽 유치 전략과 각종 의정 현안 등을 들어봤다. 후반기 부의장으로서 의회를 이끌고 계십니다. “동료, 선‧후배 의원님들과 협력하고 지역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매우 뜻깊고 보람찬 일정을 보내고 있습니다. 특히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이를 반영하는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큰 책임감을 느낍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며,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회를 이끌어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여기에서 오는 뿌듯함 또한 큽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앞으로의 정치적 여정에도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현장 속에서 시민과 함께 소통하며 전주시의 발전과 시민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전북특별자치도와 전주시가 2036 하계올림픽 유치에 나서고 있습니다. 유치 전략은. “전주는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 신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친환경 도시 개발로 지속 가능한 올림픽 개최가 가능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습니다. 올림픽 어젠다 2020 핵심 가치인 비용효율성, 지속가능성, 사회적 영향에 완벽 부합한 전주는 지방 도시 연대 전략을 통한 IOC와 세계에 올림픽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며 유치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히 신재생에너지 생산량 전국 1위 도시로, 그린 올림픽을 실현해 신재생에너지를 기반을 둔 친환경 대회 개최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거둘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올림픽 투자유치 과정에서 구축한 투자환경과 신뢰를 바탕으로 상생 협력관계를 구축하면서 올림픽 스폰서십 확보가 용이합니다. 이미 전주는 문화와 역사, 미래가 공존하는 도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단순 올림픽이 아닌 풍부한 무형문화재(106건)와 판소리·태권도·비빔밥 등 K-컬처 열풍의 원동력이자 뿌리인 전북의 전통문화와 연계한 올림픽을 선사하며 세계인들의 문화 올림픽으로 폭을 넓힐 수 있습니다. 또한 전주는 유네스코 음식창의 도시, 스페인 유력 언론 ‘엘페리오디코’가 선정한 세계 미식 도시로 전주가 맛으로 세계를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전주는 비용효율성, 지속가능성, 사회적 영향 등 IOC 핵심 가치를 전략으로 2036 하계올림픽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2036 하계올림픽을 유치하게 되면 어떤 기대 효과가 있나요. “2036 하계올림픽 유치는 전주와 전북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할 절호의 기회입니다.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등 다방면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오는 것은 물론, 특히 관광, 서비스 산업 활성화와 대규모 인프라 확충을 통해 지역 발전의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실제 전주시의회의 검토에 따르면 올림픽 유치는 경제적 측면에서 약 9조 1781억 원의 투자로 생산 유발 28조 원, 부가가치 유발 13조 원, 취업 유발 37만 명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가 경제 성장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며, 인프라 확충과 교통망 개선을 통해 장기적으로 관광 및 물류 산업의 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 관광객 유입, 신재생에너지 기반 시설 확충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지역 발전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나아가 수도권에 집중된 자원과 인프라를 지방으로 분산함으로써 국가 균형발전과 지방 활성화를 실현하는 상징적 계기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시의회 차원에서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전북자치도와 전북자치도체육회 등 관계 기관들과 긴밀한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기본으로 전방위적인 유치 활동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먼저 지난 12일 전북자치도지사와 올림픽 유치를 위한 간담회를 갖고 범시민 홍보 대사 역할을 수행하는 등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습니다. 2036 하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원동력은 시민들의 열정입니다. 올림픽 유치를 위한 시민들의 의지와 열기를 끌어 모으고 결집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또한 전주시의원들은 정계와 체육계 등의 두터운 인맥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림픽 유치를 위해 발로 뛰겠습니다. 여기에 전주시의회 송영진·이성국 의원이 2036 전주올림픽 유치 성공 기원 범도민 지원위원회 사무총장과 사무국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습니다. 두 의원은 전주올림픽 유치를 위한 중앙과 지역의 가교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기대됩니다.” 올림픽 유치와 함께 완주‧전주 통합 문제도 뜨거운 관심산데요. “전국이 통합 분위기고 지방분권을 이루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도시가 돼야 합니다. 완주·전주 통합을 위해서는 많은 대화와 관계 기관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의회는 완주·전주 통합과 관련해 찬·반 입장보다는 양 지역이 함께 상생발전 할 수 있는 토론회를 지난해부터 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토론회와 같은 소통의 장을 마련해 통합이 지역 발전과 주민 이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양 지역 주민들의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완주·전주 통합 움직임이 10년 만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온 만큼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한 뜻으로 모아 완주군민과 전주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안을 도출해 우리 지역이 미래 도시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전주시의회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이나 과제가 있다면. “복지, 교통, 일자리, 환경, 주택 등 다방면에서 해결해야 할 현안들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고령화 문제와 농업 위기는 우리 지역뿐만 국가 차원에서 선제적인 대책과 방안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이에 우리 의회는 올해 첫 회기인 제417회 임시회에서 이보순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고령친화도시 조성 지원 조례를 제정했습니다. 이로써 노인인구 증가와 고령화에 따른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정책을 수립해 나이와 관계없이 모든 세대가 살기 좋은 고령친화도시 전주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 김성규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전주시 스마트농업 육성 및 지원 조례가 통과되면서 전주시 농업 경쟁력 강화는 물론 농업인 소득증대, 농업인 고령화‧노동력 부족 등을 해결할 수 있게 되면서 지역경제 발전과 미래 농업 발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도 집행부와 함께 숙원사업은 머리를 모아 해결하고 전주를 지켜낼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해서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전주시의회의 정책 결정 과정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요소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시민의 목소리가 적극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간담회, 공청회 등을 통해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며 소통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또한 정책 과정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의회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와 직결되며, 의회는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의회를 운영할 수 있습니다. 동료, 선‧후배 의원들, 행정기관, 시민단체 등과의 협력과 소통을 통한 정책 다양성과 실효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반영해 전주시 발전과 시민 삶의 질 향상에 이바지하는 정책 발굴 등 노력하는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앞으로 의정활동 계획과 목표는 무엇인가요. “후반기 전주시의회 슬로건이 ‘현장 속으로! 시민과 함께!’입니다. 시민과의 소통을 중심으로 주민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의회가 되는 것이 저를 비롯한 모든 의원의 궁극적 목표일 것입니다. 주민이 필요로 하고 필요한 현실적인 정책 개발과 의정활동을 펼쳐나가겠습니다. 또 주민 삶의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역구 활동과 주민에게 꼭 필요한 숙원사업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대의기관으로서 미래 기초의회의 모습은 민의를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주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주민참여예산, 주민발안조례, 주민감사, 주민투표, 주민소환 외에도 여러 제도와 창구를 확실하게 넓혀 갈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전북일보 독자를 비롯한 전주시민과 동료의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주시의회는 64만 전주시민을 대표하는 의결기관이면서 시민의 뜻에 따라 집행부를 견제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시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의원 스스로 높은 도덕성을 유지하고 우리의 책무를 다해야 합니다. 시민으로부터 존경받고 신뢰받는 의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하며, 부의장으로서 의원들의 원활한 의정활동을 위한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전주시의회가 제 역할을 해나가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지가 중요합니다. 시민들께서 직접 뽑은 시의원들인 만큼 지켜봐 주시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뜨거운 관심 부탁드립니다.” 최주만 전주시의회 부의장은 최주만 부의장은 지난 2022년 6월 치러진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당선되면서 12년 만에 전주시의회로 돌아왔다. 그는 “제12대 전주시의회 의원들 중 초선의원이 상당히 많은데, 모두들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초선의원들이 열심히 해주니 나 자신부터 열심히 의정활동을 하게 되는 등 중진의원들 모두 열심히 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면서 선배의원으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동료, 선‧후배 의원들과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현장을 발로 뛰고 있는 최 부의장은 올해 신설된 긴급현안질문에 이어 주민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와 창구를 마련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최 부의장은 “시민을 대변하고 시민에게 꼭 필요한 전주시의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최 부의장은 완산고와 원광보건대, 전주대 경찰행정학과, 전북대 법무대학원 지방자치학과(석사)를 졸업했으며, 제7·8대 전주시의회 의원을 지냈다.

  • 기획
  • 강정원
  • 2025.02.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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