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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⑭ 상생협약 후 광명시의 과감한 실천과 혁신적 변화

전통시장은 어느지역이나 주차난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그건광명시도 마찬가지였다. 코스트코 입점 이후 광명시는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과 ‘전통시장활성화및중소유통산업발전상생협약’을체결했다. 그 일환으로 광명시는 광명시장 이용객을 위한 주차공간확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우선 2012년 9월6일 광명시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광명전통시장주차장확보위원회를 구성해 주차장 조성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안경애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과 이상봉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과 광명시의원 2명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또한 광명전통시장에 알맞은 주차장 건립을 위해 ‘전통시장주차장 조성을 위한 타당성 용역’을 실시했다. 그 결과 77대를 주차할 수 있는 광명전통시장 주차타워건립이 결정됐다. 2015년 광명시는 전통시장주차타워 건립을 위해 국비70억8천만원을 포함한 118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2016년 6월 부지매입 완료후 7월부터 공사를시작하여 2017년 5월 1일에 개장했다. 광명로 938에 위치한 주차장은 부지면적989.8㎡에연면적2,819㎡의 지상4층의 철골구조로 조성되었다. 차량 77대 주차가 가능한 광명전통시장 주차타워는 낮에는 전통시장 방문객들이, 밤에는 인근지역 거주주민들이 이용하면서 주차난 해소에 기여했다. 대기업과 중소상인의 상생의 결과가 지역주민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간 것이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은 개장식에서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인근에 조성되는 시민건강증진센터와 광명전통시장 공영주차장은 대표적인 상생협력의 결과물입니다.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한 과감한 지원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안경애 이사장은 “꿈같은 일이 현실로 이뤄져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앞으로 위생, 서비스, 제품품질관리 등 모든 면을 개선해 나가며, 전통시장 이용객의 불편이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아울러 상생협약의 일환으로 광명전통시장에 시장상인과 시장이용객을 위한 고객쉼터도 건립하기로 했다. 공사는 쉽지 않았다. 공사현장이 광명전통시장 한복판이라 길이 좁아 공사장비 진입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인력을 투입해 철거를 진행했으며, 철거잔해는 전통시장 영업이 끝난 밤에 처리할 수 밖에 없었다. 2014년 4월 25일에 착공된 공사는 진행과정에서 여러 문제들이불거졌지만, 2015년 8월에 마무리될 수 있었다. 2015년 8월 20일 개소식을 한 고객쉼터 건립공사에는 국비13억원을 포함하여 총26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대지면적 356㎡에 건축연면적 395.24㎡로 건축된 고객쉼터는 지상2층 건물로 1층에는 카페와 모유수유실,이벤트 행사용 야외공간이 있으며, 2층에는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사무실과 회의실, 강당 등이조성되어 있다. 옥상에는 휴게쉼터 공간이 조성돼 있다. 고객쉼터는 전통시장을 찾는 이용객들에게 각종 편의를 제공하면서 전통시장 상인들의 휴게 공간과 문화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광명전통시장과 별개로 광명새마을시장에도 고객지원센터가조성됐다. 새마을시장에서는 상인들과 이용객들이 이용하는 공중화장실건물이 임차기간이 만료되면서 화장실확보 문제가 불거졌다. 화장실이 있는 건물은 자산관리공사소유로 자산관리공사는 광명시와 임대기간이 만료되자 건물매각을추진했다. 만일 이 건물이 제3자에게 매각되면 광명새마을시장은 화장실이 사라져 시장상인들과 이용객들이 불편을 겪게 된다. 광명시는 이 건물을 매입해 새마을시장 상인들과 이용객들을위한 고객지원센터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국비3억3천만원을 지원받았다. 2015년 1월 건물을 매입한 광명시는 리모델링 공사를 서둘렀다. 2015년 12월 24일 준공된 고객지원센터건물 1층에는 화장실과 고객지원센터가조성되었으며, 2층에는 상인회 사무실과회의실 등을 배치했다. 광명새마을시장에도 고객들을 위한 공간이 마련된 것이다. 개소식은 2016년 1월 21일에 열렸다. 아울러 광명시는 광명새마을시장에 2016년 4월부터 4개월간 새마을상가 먹자골목 현대화사업을 진행하였다. 국비10억원을 투입하여 낡고 보기 흉한 천막을 걷어내고 전동식 개폐가 가능한 최신의 구조물로 변경설치했다. CCTV와 LED조명 및 소방시설 등을 개선하여 시민들의 안전확보와 친환경장터의이미지로 변화시켰다. 또한 오랜기간 삼천리도시가스와 협의를 거쳐 시장내에 도시가스배관을 설치하였으며, 매월 첫째,셋째주 금요일 저녁에 소규모 야외공연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2016년 8월 19일 준공식에서 전덕배 당시 광명새마을시장상인회장은 시설현대화사업으로 우리전통시장이 기존재래시장의 이미지를 벗고 최신의 전통시장으로 거듭나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더욱 많은사람들이 방문하여 지역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상인들도 최선을 다할것이라고 말하였다. 광명시는 2017년 도비 3억원과 시비 3억원 등 총 6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광명새마을시장 2차시설현대화사업을 실시했다.시장 뒤편 아케이드 미설치구간 41m에 대하여 아케이드와 창호설치,바닥미끄럼방지공사와 간판교체사업을 완료하여 2017년 7월14일 준공식을 개최하였다. 이처럼 광명시는 상생협약 후 알맹이 없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내세우지 않기 위해서 진심으로 노력했다. 상생협약을 지키고자 최선을다했다. 코스트코 입점은 광명시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에게 엄청난 위기감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슈퍼마켓 공동물류센터가 꼭필요하다며 광명시에 건립을 요청했다. 공동물류센터는 슈퍼마켓들이 공동구매를 통해 원가를 절감하면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 중소상인들은 공동물류센터에서 저렴하게 상품을 공급받을 수 있고, 소비자들은 보다 낮은 가격으로 상품을 구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서민경제와 물가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됐다. 광명시는 슈퍼마켓협동조합의 건의를 받아들여 슈퍼마켓공동물류센터건립을 추진했다. 2012년 12월 26일 광명시는 중소상인단체와 상생협약을 위한 MOU를 체결하면서 공동물류센터건립을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 공동물류센터건립을 추진하면서 신세희 기업경제과장과 김남현 슈퍼마켓협동조합이사장 등은 공동물류센터를 모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수원시와 제주도를 방문하여 벤치마킹을 했다. 신세희 당시 과장의 말이다. “제주도 공동물류센터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시스템이 잘돼있다고 해서벤치마킹을 하러 갔습니다. 직접 눈으로 보고 우리는 어떤 규모로 어떻게 지어야할지 논의를 했죠.부지확보가 가장 큰 문제였는데, 다행히 소하동에 공용주차장부지가 있어서 그곳에 건축하기로 결정하면서 순조롭게 공동물류센터건립이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건립된 뒤에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중소상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기뻤습니다. 그 분들은 경쟁력을 갖춰서 좋고,저희는 보람을 느꼈습니다.” 2013년 1월 17일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슈퍼마켓협동조합공동물류센터부지확보위원회’가 구성되었고, 공동물류센터건립을 위한 부지물색에 들어갔다. 부지확보위원회는 소하동 상업지구 노외주차장 부지가 공동물류센터건립 최적지로 판단하여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2014년11월 25일, 공동물류센터 건축공사가 국비 14억원을 지원 받아 시작됐다. 공사 5개월만인 2015년 4월 23일 공동물류센터가 완공됐다. 슈퍼마켓협동조합 공동물류센터는 연면적 772.7㎡로 지상 2층의 철골조창고 형태에 첨단물류시스템과 물류장비, 판매시설을 갖추고 있다. 공동물류센터는 6월 2일 개소식을 열고 완공을 축하했다. 이날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이 개소식에서 축사를 했다. “그동안 KTX광명역세권 활성화를 위해 대형유통기업을 유치하였으나, 다른한편으로는 중소상인들이 겪는 어려움으로 인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중략) 광명시와 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은 공동물류센터관리운영에 따른 위탁협약을체결하고 조합에서 공동구매한 상품을 조합가입 유통사업자에게만 판매하도록 하여 중소점포들이 가격경쟁력을 갖도록 하였습니다. 공동물류센터개소를 계기로 광명시 중소점포들은 물건을 대량,공동구매할 수 있게 될 뿐만아니라 공동보관과 판매를 할수있게 되어 물류비절감을 통한 골목상권 경쟁력이 강화되는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공동물류센터를 통해 중소점포들이 시중가보다 10%저렴하게 상품을 공급받아 소비자들에게 저렴하게 판매하면서 서민경제와 물가안정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명시는 중소상인과의 신뢰관계를 중요하게 여겨 약속을 지키기 위해 혼신을 다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사례였다. 그런 가운데 상생과 신뢰의 꽃이 피어날 수 있었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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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7 21:52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과거 반면교사 삼아 통합의 성공시대 열어야

전북도를 비롯한 각 시·군이 민선 8기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여전히 전북을 둘러싼 환경은 녹록지 않다. 전북은 번번이 국정 현안마다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 이에 축소지향의 과거 전북을 벗어던지고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대변혁을 일으켜야 한다는 과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이에 지난 15일 전북일보 편집국에서는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란 주제로 좌담회가 마련됐다. 좌담회는 본보 김영기·조상진 객원 논설위원과 이경재 전북애향운동본부 기획처장, 이재규 우석대 교수가 함께하고 사회는 본보 위병기 편집국장이 맡았다. 과거 중앙으로부터 소외와 배제를 겪다 보니 축소지향의 전북이 됐다는 지적이 많다. △ 김영기 위원 “전북은 근대와 현대를 거슬러 올라오면서 성장이냐 낙후냐 문제의 갈림길에서 주어진 밥도 못 먹고 특히 전주는 낙후된 도시가 됐다.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있었고 제주 등 호남지역을 관할했던 곳이 전주였다. 토호 정치가들이 발전을 선도해야 하는데 지역의 발전을 막아섰다.” △ 조상진 위원 “역사적으로도 전라북도는 축소지향의 길을 걸어왔다. 금산군과 구례군이 과거 전북 땅이었지만, 충남과 전남으로 편입됐다. 전북은 면 단위 지역만 받아온 것이 전부. 인구도 262만 명까지 갔다가 178만 명으로 줄었다. 인구와 땅 모두 줄어들었지만 여기에 대해 항거하는 모습은 없었다.” △ 이경재 처장 “과거 전북이 실패한 사례들을 반추해 미래를 진단해 보고 성공 시대를 열어나가도록 복기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전북 인구와 경제력, 지역총생산량 등이 미미한 발전에 그치고 지난 30년간 지방자치시대에 한발도 못 나간 현실이다.” △ 이재규 교수 “기존에 정치와 언론이 지역에 던진 메시지 프레임이 소외와 배제다. 책임회피의 프레임이라 본다. 타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놓친 부분, 지나온 과거를 살피는 주체적인 기획이 중요하다.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놓친 것, 짚어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과거 전북은 주류가 아닌 변방이었다. 지금도 전북 정치가 중앙 정치의 맹주로 자리 잡는데 리더십의 한계를 보였다는 아쉬움이 남는데 이에 대한 평을 한다면? △ 김영기 위원 “과거 1970년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이끌었던 전북 출신의 고 이철승 전 신민당 총재가 있었지만 당시 당권파에 의해 이른바 사쿠라 논쟁에 휘말렸다. 전북에서 정동영 상임고문과 정세균 전 총리 등이 득세했으나 힘을 못 썼다. 공천을 걱정하는 정치인이 많아 자생하는 정치인이 없었다.” △ 조상진 위원 “단체장이나 리더십이 아주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 또한 문제에 대해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지역도 뺏기고, 인구도 줄고. 우리 지역 리더가 본인의 앞만 보고, 이익만 생각하고 자신이 당선되는 것만 생각했다. 앞을 내다보고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전북이 오늘날 쪼그라든 현주소의 배경이 그렇다. 역사가 그래왔다.” △ 이경재 처장 “지역 정치에 대해 말하자면 실사구시적인 판단을 하는 유권자 의식이 부족했다. 예전에 김제 백구로 KTX역 신설 주장이 있었지만 지역에서 삭발 투쟁을 하고 거센 반대가 일었다. 그러한 것을 극복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 이재규 교수 “역동적, 변혁적인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감한다. 동시에 우리 전북 지역에서 취약했던 점은 통합의 리더십이라 생각한다. 강력한 리더십뿐 아니라, 선두부터 중앙, 후미까지 아우르고 가는 통합 과정이 민선 8기 초반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과거 유림의 반대로 호남선 철길을 전주로 가져오지 못한 점이 지역 발전의 저해요소로 꼽히고 있다. 또 국제공항 사업도 2029년 완공 목표이지만 지지부진했었는데. △ 김영기 위원 “공항 문제는 전북의 비극이다. 전북은 근대화 과정에서 교통이 낙후됐다. 교통이 낙후되니 기업유치도 인프라가 없고 배후도시가 없다. 물류비용을 들여서 전북으로 공장을 세울 기업이 얼마나 되겠나.” △ 이경재 처장 “익산역이 있지만 그 주변으로 발전도 더디고 전북 혁신도시도 인프라가 크게 충족되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 김제 백구로 KTX역 신설 주장이 있었다. 전문가 용역에서도 백구가 제일 좋은 자리라는 평가가 있었고 채수찬 전 국회의원 등 일부 동조했으나 지역에서 특히 익산 정치권이 선거를 앞둔 시기여서 삭발 투쟁을 하고 거센 반대가 일었다.” 전북의 미래 먹거리인 새만금 사업의 성공적인 추진도 당면한 과제이지만 구체적인 실천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 김영기 위원 “새만금 사업의 경우 물은 고이면 썩으니까 신재생에너지 하는 판에 해수유통을 하고 그 위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새만금 구역 문제도 지자체간 땅따먹기만 하지 말고 어떻게 상생해서 발전시켜 나갈지 논의해야 한다.” △ 조상진 위원 “새만금 행정구역 문제는 시급히 풀어야 한다. 군산, 김제, 부안 단체장들이 양보와 대화로 풀기에는 어림도 없는 이야기다. 새만금 메가시티 어려운 문제다. 새만금은 속도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다. 빨리 만드는 것보다 명품으로 만드는 게 먼저다.” △ 이경재 처장 “새만금에 무슨 그림을 그릴 것인가 생각이 중요하다. 국제투자진흥지구 같은 그림을 제시해야 할 수 있어야 한다. 공항문제를 빼놓을 수 없는데 전북의 공항 건설은 1990년대 추진해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예타 면제로 어렵사리 성사한 새만금 국제공항인 만큼 완공 시기를 1년 정도 단축해야 한다.” △ 이재규 교수 “새만금의 경우는 길게 이어진 과정이다. 새만금 자체가 행선지 없이 왔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중앙이나 우리(전북)나 행선지를 제대로 말할 사람이 없다. 상당 기간은 막고 보자는 식이었고, 그런 전제는 이미 무너졌다. 새만금은 장기적인 호흡으로 우리 전북의 이익을 끌어내는 방향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조바심 낼 필요 없다.” 지역 단체장과 정치인들이 전주 완주 통합을 추진했으나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무산된 일도 있다. 최근 화두로 다시 떠오르는 전주 완주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견해가 있는지. △ 김영기 위원 “정부에서 군산, 옥구와 익산, 이리 등 강제 통합도 있었으나 전주 완주 통합은 정치권 반대에 성사되지 못했다. 한목소리를 내도 모자를 판에 다른 목소리를 내니 통합이 어려웠다.” △ 조상진 위원 “현재 전주에만 통합추진협의회가 마련돼 있는데 그것부터 개선해야 한다. 도지사와 전주시장, 완주군수, 국회의원 4명을 포함한 7명이 협의체를 만드는 방안도 고려해봐야 한다. 협의체를 통해 통합의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 이경재 처장 “전주 완주 통합 문제는 지난 1997년 맨 처음 시작해 2009년에도 무산된 사례가 있었다. 그 사이 청주는 인구 85만명이 되면서 몸집이 커졌다. 우범기 전주시장은 완주군 제안을 수용할 의사를 내비쳤다.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데 청주 통합은 자녀 교육문제, 부동산 가치 상승, 파격적인 인센티브가 주효했다.” 민선 8기가 지역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과거와 다른 리더십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권과 지역 차원에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 김영기 위원 “지역 정치인들이 자신의 영달 때문에 지역에 도움은커녕 해가 되면 안 된다. 정치뿐 아니라 대학 등 유관기관의 협조도 필요하다. 네트워크가 필요한 시점에 지자체와 대학이 거리를 둬서 되겠나. 광역지자체와 거점 국립대의 유기적인 협조가 이뤄져야 한다.” △ 이경재 처장 “정치인의 무능력과 무기력이 가장 중요한 문제다. 정치 구조의 틀도 문제다. 전북이 일당독주 속에 있어 공천을 받으면 되는 구조에서 도민들도 실사구시적인 시각을 가져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 △ 이재규 교수 “전북의 정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내부에서부터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동원 정치 구조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권리당원 문제를 포함해 박스 선거가 되니까 경쟁력 없는 사람들이 정치를 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 검증하거나 토론도 한 번 하지 않고, 조직만 관리하면 되기 때문이다. 지역의 내부 정치 구조에 관한 문제도 되짚어볼 만한 부문이다.” 김영호·천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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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2.07.17 17:56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축소지향 과거 반면교사, 대변혁 이뤄야”

부푼 기대로 출범한 민선 8기. 전북 도민들의 선택은 변화였다. 낙후와 쇠퇴를 떨치고, 다시 비상하는 전라북도를 꿈꿨다. 전북도민은 도지사와 시장, 교육감 등 기존 단체장의 대폭 변화가 이뤄진 민선 8기에 주목한다. 기존에 낙후됐던 전북이 반등할 수 있는 터닝포인트를 바로 '민선 8기 출범'으로 바라보고 있다. 전북일보가 축소 지향적인 전북의 과거를 반면교사 삼아 대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과제와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한 이유다. 전북일보가 주최한 '민선 8기 출범과 전북의 향후 과제 좌담회'가 지난 15일 본보 편집국에서 열렸다. 방담(放談) 형식으로 이뤄진 이날 첫 좌담회를 시작으로 전북의 과거를 되짚고, 미래를 구상할 다양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과거 전북은 중요한 전환의 시기에 잘못된 판단으로 변혁을 놓친 사례가 많다. 단편적으로 철도와 공항 등 교통 소외를 자초한 부분이 꼽히고, 30여 년 동안 지지부진하게 끌고 온 새만금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60년대 260만 명이 넘었던 인구는 180만 명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과거와 비교할 때 행정구역 또한 줄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전북의 축소 지향 역사라고 일컫는다. 현대사를 지나오며 변곡점마다 무수한 선택들이 전북을 낙후로 빠지게 만들었다는 취지다. 다만, 이러한 원인을 외부에서만 찾지 않는다. 핑계만 댈 수는 없다는 것. 기존 전북이 '소외와 배제' 논리에만 매몰됐다면, 이제는 그동안 내부에서 놓친 거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것은 없는지 되짚어야 할 시점이다. 이날 과거를 진단하고, 미래를 함께 논의할 전문가들의 시선도 한결같았다. 전문가들은 축소 지향에 머물렀던 과거에서 역동적이고 변혁적인 리더십, 더 나아가 통합의 리더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상진 객원 논설위원은 "역사적으로 전북도는 축소지향의 길을 걸어왔다. 인구와 땅 모두 줄어들었지만 여기에 대해 항거하는 모습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원인으로 "단체장의 리더십이 아주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 지역 공동체를 생각하는 모습이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전북이 오늘날 쪼그라든 현주소의 배경이 그렇다. 역사가 그래왔다"고 꼬집었다. 김영기 객원 논설위원은 "지역 정치 지도자들이 자신의 영달 때문에 지역발전에 해(害)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도움은커녕, 전북 역사를 기록하면 호적에서 지워야 할 사람도 많다"고 비판했다. 김 위원은 이들을 지주를 대리해 소작권을 관리하는 '마름'에 빗대 '마름 정치가'라고 칭하며 비난했다. 이경재 전북애향운동본부 기획처장은 "전북은 전국에서 볼때 인구와 경제 모두 3%대에 불과하다"면서 "지난 30년 동안 지역 개발을 이야기한 정치인들 모두 단 한 포인트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 처장의 분석도 정치인 리더십 부재가 꼽혔다. 이 처장은 "KTX와 공항 문제, 전주·완주통합, 방폐장 등 이러한 과거 문제들을 반추해보면 미래를 내다보는 리더십이나 정치력이 부재했던 것이 사실"이라면서 "지역의 미래를 위해서는 역동적 리더십이 민선 8기 단체장들에게 중요한 현안"이라고 분석했다. 이재규 우석대 교수는 "전북의 현안을 되짚어볼 때 이를 만들어가고 설득하는 것은 결국 정치력의 문제"라며 "결국 통합의 정치력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5일 진행된 전북권 예산정책협의회와 관련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한두 번의 정치 이벤트로 끝내선 안 되고, 이어 나가야 한다"면서 "전북이 자체적인 정치력을 강력히 가져야 한다. 이런 부분에 방점을 찍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기획
  • 천경석
  • 2022.07.17 17:56

[팔도축제] 전북 무주군 “무주 문화재 야행” 7월 29일부터 2일간 진행

전라북도 무주에서 새로운 콘텐츠로 진행하는 야간형 행사인 ‘붉은노을빛 역사거리를 걷다, 무주문화재야행(夜行)’이 7월 29일부터 30일까지 한풍루, 무주향교 일원에서 열린다. 무주군이 주최하고 무주문화원이 주관하는 문화재야행은 문화재청 사업으로 무주는 무주문화원에서 2022년, 올해 처음으로 선정되어 진행된다. ‘문화재 야행’의 더운 여름날 선선한 야간에 한풍루에서 무주향교에 가는 야행길 에서 곳곳의 야경을 감상하고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무주 문화재 야행은 야경(夜景)· 야로(夜路)· 야사(夜史)· 야화(夜畵)· 야설(夜設)· 야시(夜市)· 야식(夜食)· 야숙(夜宿)으로 구성된 8야(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체험·마켓은 100%전원 무주군민들이 참여하여 무주에 오는 관광객에게 무주의 맛과 멋을 보여주고, 공연은 문화재인근에서 퓨전국악, 전통타악, 마술공연 등 진행하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무주안성 낙화놀이도 함께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무주의 역사문화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볼거리, 놀거리, 체험거리를 준비했다. ‘야경’은 한풍루와 무주향교 대성전 등 무주 문화재 야간경관조명과 무주 문화원, 김환태문학관, 최북미술관, 무주전통공예테마파크 등 문화시설을 야간에 관람하는 것이다. 또한, 무주문화재야행의 시작을 알리는 대형 포토존 이 남대천교에 설치되어 추억을 기록할 수 있다. ‘야로’는 문화재 해설사와 함께 걸으며 문화재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거리 이야기꾼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무주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무주의 명물 반딧불이를 연상시킬 수 있는 ‘시크릿문화재 스탬프투어’는 어두운 구간에서 불빛을 이용하여 숨어있는 문화재이름을 찾아 스탬프를 찍고 모두 완료하면 소정의 기념품을 제공한다. ‘야사’는 무주향교에서 유생들이 즐겼던 전통놀이 화가투-저포놀이-용호쌍육을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향교 유생 의복 및 생활상 체험, 다양한 차와 다식 체험, 한지무드등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진행한다. ‘야화’는 야행 구간에 미치지 못하는 무주 문화재를 전시하며, 옛 무주의 모습과 무주 군민들이 직접 찍은 아름다운 무주의 풍경을 담은 사진도 볼 수 있다. ‘야숙’은 무주 문화재 야행 기간에 무주군 숙박업소(펜션, 리조트 등)를 이용하면 소정의 기념품(선착순)을 제공하는 것으로, 무주 문화재 야행 웹페이지 또는 무주 문화원 홈페이지에서 프로그램 참여 방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야설’은 무주무형문화재인 ‘무주안성낙화놀이’를 남대천교에서 볼 수 있고 태권도 퍼포먼스와 퓨전타악 등 공연을 볼 수 있다. ‘야시’, ‘야식’에는 군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프리마켓과 향토음식을 판매한다. 한편, 한국지방신문협회 9개 회원사 들은 대한민국의 지방축제활성화를 위해 각 지자체와 모두투어, 대구대관광축제연구소(소장 서철현교수) 등의 협조를 받아서 매주 진행되는 중요 축제 관련 기사게재, 금주에 진행되는 전국 모든 축제일정을 요약한 “팔도축제”를 게재하여서 지방 축제의 홍보와 더불어 직접적인 축제 관광객 모객을 통한 축제 활성화에 노력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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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북일보
  • 2022.07.15 08:00

[문화&공감 2022 시민기지가 뛴다] 우주와 자연의 질서를 담은 나침반, 윤도(輪圖)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상의 묏자리가 집안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믿었다. 조상은 죽어서도 자손을 지키는 ‘신적인’ 존재로 여겨졌기에 조상이 묻힌 묘는 혈연집단의 시초이며 보금자리와 같았다. 선조가 영면할 자리를 정할 때 지관이 동행했다. 이들은 묏자리의 위치가 적절한지, 주변의 환경과 여건은 조화를 이루는지, 자연스러운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지 등 우리 특유의 전통적 우주관에 입각하여 지세를 살폈다. 이 때 자리의 방향과 특성을 가늠하는 도구를 썼으니 이를 바로 윤도라고 한다. 윤도는 자침(磁針)을 활용하여 지관들이 풍수를 보거나 항해자와 여행자들이 방향을 보기 위해 쓰던 일종의 나침반을 말한다. 윤도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로, 영조 18년(1742)에 천문학을 담당하던 관상감(觀象監)에서 윤도를 만들어 천문과 지리를 살피는데 쓰고자 했다는 기록이 나오며, 정조 13년(1789)에는 윤도 제작에 기본이 되는 분금법이 매우 복잡하고 정밀하여 이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음을 한탄하는 기록도 보인다. 윤도의 제작이 천문과 음양오행의 법칙에 능통한 자만이 가능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윤도는 사회 각계에서 다양한 용도로 이용했다. 조선시대에는 대부분의 휴대용 해시계에 윤도를 달았다. 사대부들은 개인부채에 12방위 또는 24방위를 표시한 소형 나침반인 선추(扇錘)를 휴대용으로 매달고 다녔다. 윤도는 자침을 중심에 두고 24방위를 기본으로 하여 음양·오행·팔괘·십간·십이지·절후·28숙(宿) 등이 방위를 이루어 구성되어 있다. 24방위는 ‘정침(正針) 24산(山)’이라 하여 정간과 분금·각자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된다. 8괘는 음과 양의 부호를 결합시켜 만든 것으로 자연현상, 인간관계, 신체부위, 성질, 짐승, 방위 등을 아우른다. 간지는 달력과 길흉화복의 판단 준거로 쓰이며, 24절후는 춘하추동을 이루는 스물네 개 절기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어 기후와 풍토에 대한 해석이 가능하다. 28숙은 황도 부근의 별을 28개의 구역으로 나누어 본 천문지식이다. 이 모든 법칙이 여러 개의 층으로 구획되어 하나의 윤도를 이루는데, 오늘날 9층 윤도가 가장 많이 쓰인다. 1·2층은 묏자리나 집터를 잡을 때 등지고 있는 방위인 좌(坐)와, 자리 잡은 위치에서 바라보는 앞면인 향(向)을 본다. 3층은 만물을 주관하는 수·금·화·목·토의 합을 본다. 즉, 다섯 원소 중 세 개를 연결하여 정삼각형의 합을 이루면 길지로 본다. 4층은 24방위를 가리키며 생기가 모여 있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다. 5층은 산의 지형을 보는 것으로 가장 왕성한 혈맥의 모양새를 파악한다. 6층과 7층은 땅의 산수 형태와 생기를 보며, 8층은 물의 방향을 살펴 해를 줄 수 있는 요인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9층은 망자의 관이 하관하는 방향을 결정하는데 쓰인다. 무엇이 옳고 그르냐의 문제를 떠나, 우리 조상들이 터를 잡는데 있어 윤도를 통해 얼마나 다양한 우주의 구성요소들을 기준에 두고 자연환경을 바라보았느냐를 알 수 있다. 즉, 우주의 형상에 맞게 질서에 순응함으로써 복된 기운을 누린다는 세계관이 이 윤도에 들어있다. 전북 고창군 성내면 산람리 낙산(洛山)마을에는 약 300여년에 걸쳐 오늘날까지 윤도를 제작하는 기·예능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 윤도를 제작하는 사람을 윤도장이라 한다. 이곳 윤도를 일컬어 ‘흥덕 패철’이라 하는데 이곳이 조선시대에 흥덕현(興德縣)에 속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하며 예로부터 나침반의 방향이 정확하고 견고하기로 유명하였다. 윤도 제작은 극도의 정밀함을 요구한다. 먼저 톱과 작두를 이용해 나무의 모양을 결에 따라 원형으로 세밀히 다듬는다. 이어 윤도의 중심을 잡아 동심원을 그린 후 분금(分金)하는 것을 정간(定間)이라 한다. 이 때 동심원 하나를 최소 1도의 각을 이루도록 360개로 분금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 수반된다. 각자(刻字)에서는 분금해 놓은 각 칸들에 해당된 글자들을 새겨 나간다. 만약 하나의 획수라도 잘못 그어 실수하면 분금된 윤도판을 전부 갈아서 다시 만들어야 하므로 엄청난 집중력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한 층을 각자하는데 보통 한나절이 걸리고, 글자 수가 많은 층은 꼬박 하루가 걸리기도 한다. 수일에 걸쳐 각자가 끝나면 먹, 옥돌가루, 주사 등으로 분금과 글자에 색을 입히고, 자침을 만들어 앉힌다. 이렇게 원통형 나침반인 평철이 완성되면 자침의 작동 여부와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수백 년에 걸쳐 내려오는 윤도 제작은 오늘날 국가무형문화재 김종대 명예보유자와 그의 아들인 김희수 보유자에 의해 명맥이 이어져 오고 있다. 이들이 쓰는 생업 도구들은 족히 200~300년이 넘은 것들이 무수히 많다. 재료를 취하는 과정부터 제작 과정의 세세한 기법들까지 수대를 이어 내려온 것들이다. 모두가 스마트폰 하나를 패용하고 다니며 주변을 검색하는 시대가 왔다. 이후의 세대들은 무엇을 휴대하며 세상을 재단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선조들의 전통지식이 총망라된 생활용품 윤도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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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3 18:03

[카드뉴스] "이웃집 다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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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재용
  • 2022.07.11 18:37

[참여&소통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사회 갈등 해결과 관리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이 절실하다

대한민국 사회 곳곳에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념·정치성향 혹은 입장 차이가 진영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최근에는 세대·젠더 간 갈등이 특히 심화되고 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코로나19로 인해 소득·자산 격차는 더 심해지고 있으며 세대별로는 혐오 표현까지 서슴지 않으며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정치권은 국민들을 ‘편가르기, 갈라치기’ 하면서, 정치혐오와 국민 분열을 초래하였다. 문제는 이런 양상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정치가 타협과 조정 대신 극단적인 대립과 적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더 가속화 된 ‘팬덤정치’와 맞물려, 정치권의 갈등이 국민들의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가 실시한 ‘제9차 한국인의 공공갈등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88.7%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의 이러한 인식은 센터가 조사를 시작한 2013년 이래로 9년간 변함이 없다. 또한,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우리나라가 세계 갈등 1위로 '공인'을 받았다는 주장이 지난해 6월 영국 킹스컬리지가 여론조사기관인 입소스(Ipsos)에 의뢰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제기되었다. 전북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각 지역의 현안 사업을 놓고 인접한 지자체간의 갈등부터, 우리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서의 갈등까지 그 규모와 종류도 다양하다. 갈등의 골이 깊어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는 행정절차와 지방의회 등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대의민주주의 시스템보다 직접 참여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구제하고자 하는 선택적 경향이 강해졌다. 시민들의 민원이 일선 책임자 선에서 해결되지 않는 것을 직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윗사람 나와!’가 문제 해결의 시작처럼 되어 버렸다. 결국 소송까지 가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탓에 개인 ‘SNS’가 적극 활용되고, 그런 흐름을 반영한 ‘청와대 국민신문고’가 국민들의 호응을 얻어낸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한다. 너무도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는 지금 시민의 직접 참여를 보장할 수 있는 있도록 하고, 적극적으로 정부, 광역, 시·군 지자체가 갈등관리 해결주체로 나서야 한다. 숙의민주주의 방식으로 지역 현안을 해결한 첫 지역 사례로, 대구광역시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새 시청사 터를 정했다. 2019년 12월 시민참여단 250명이 현장답사와 토론을 거쳐 대구시 새 청사 후보지 4곳 가운데 옛 두류정수장을 새 자리로 결정했다. 이로써 15년 동안 결론을 내지 못하던 해묵은 과제를 시민 스스로 풀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직접 시청 터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함으로써, 부지 결정 과정에 대한 신뢰와 결과에 대한 깨끗한 승복이 뒤따랐다. 시민들의 직접참여로 만들어진 숙의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보다 더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는 첫 걸음의 토대가 될 것이다. 이처럼 갈등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는 제도(조례나 법 제정)가 필요하다. 사회적 기준을 제대로 세우고, 민주적 절차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북도는 2013년 ‘공공갈등 예방 및 조정·해결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이에 따른 갈등조정위원회를 2019년 3월까지 상설기구로 운영해오다 비상설기구로 전환했다. 위원회는 도내 자치단체 간 갈등발생으로 인한 과도한 사회적 비용의 지출을 막고 통합을 이바지해 전북발전에 힘을 모으자는 의미로 설치됐다. 하지만 도내 지자체 대부분은 갈등이나 분쟁을 행정심판이나 소송으로 해결하려고 하고, 소송의 결정에 따르기는 하지만 지자체 간 앙금이 남아 있어 갈등의 불씨가 계속 남아 있게 된다. 이처럼 법과 제도를 만들어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능사가 아닐 수는 있다. 하지만 법과 제도가 있어야만, 분쟁 당사자 간에 절차대로 합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된다. 정부도 2020년 9월에 ‘갈등관리기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 하였고, 이후에도 법 제정을 위한 논의들이 진행되고 있다. 갈등관리의 제도화를 통해서 정부와 지자체가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고 해소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갈등 관리를 주도하는 정부나 지자체의 역량이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제도를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교육을 통해서 관련 전문가를 양성하고 길러내야 한다. 또한 새롭고 다양한 해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다수결 혹은 합의 등 사안의 성격과 내용,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갈등은 다양한 가치와 철학들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이상할 것도, 놀라울 것도 없다. ‘갈등’은 다원화되고 민주화된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사회현상이고, 어떤 면에서는 사회발전을 촉진하기도 한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갈등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고 수많은 고소고발과 법정 공방으로 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내로남불’ ‘네 탓 공방’만을 하면서, ‘너 죽고 나 죽자’는 파국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 특히 한국사회 갈등지수는 OECD 국가 중 ‘매우 심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5년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1년에 적게는 80조원에서 많게는 246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우리사회의 갈등관리는 미흡했다는 평가를 할 수 있다. 사회 갈등을 어떻게 대하고 해결해 갈 것인가는 현 시점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리더는 중장기적인 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함에 있어, 구성원들과 함께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좌고우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회문제로 부각된 갈등관리가 법 제정을 앞두고 있는 만큼,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우선 과제로 삼고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양병준 전북희망나눔재단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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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1 16:11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⑬ 3대 대형유통기업 입점 ‘상생’의 진심이 통했다

2012년 12월 15일, 코스트코가 입점하면서 허허벌판이었던 KTX 광명역세권이 건물들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코스트코에 이어 2014년 12월 5일에는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이 개점했고, 뒤이어 12월 18일에는 이케아가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면서 개점했다. 이들 3대 대형 유통기업 입점으로 한 때 허허벌판이나 다름없었던 KTX광명역세권 개발은 탄력을 받으면서 빠른 속도로 진행될 수 있었다. 현재 이곳에는 AK플라자, 테이크호텔, 아이백스스튜디오 등이 포함된 광명 미디어&아트밸리 유플래닛과 중앙대 광명병원이 들어섰다. 몇 년전에는 라까사호텔이 문을 열었다. KTX광명역세권은 광명동굴과 함께 광명시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관광사업 활성화 등을 한꺼번에 이뤄내면서 광명시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뿐 아니다. 3대 대형유통기업 입점 과정에서 광명시 중소상인들은 큰 아픔을 겪었지만 한 마음으로 뭉쳐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안경애 당시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은 코스트코, 이케아 입점 저지 투쟁을 통해 중소상인들이 똘똘뭉쳐 나름대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설명한다. 안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자긍심이 높아졌습니다. 저와 광명시 중소상인들이 똘똘 뭉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입점 저지 투쟁을 한 거죠. 우리는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고 중소상인 전체에게 합리적인 이익이 돌아가도록 상생협상을 진행했거든요. 우리 중소상인들이 코스트코, 이케아, 롯데프리미엄 아울렛과 경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고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요구한 겁니다. 주차장이나 고객쉼터, 슈퍼마켓 공동물류센터 같은 게 바로 그런 거였어요. 다른 곳과 달리 공동의 이익을 위해 투쟁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다행히 시에서 적극적으로 우리 요구를 받아줬고, 힘이 되어주어서 우리가 원하는 게 다 실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투쟁 결과가 좋게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광명시민으로 KTX 광명역세권 개발은 찬성이었어요. 그로 인해 피해를 보는 중소상인들에 대한 대책이 처음부터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투쟁한 건데, 그 과정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시에서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유리하게 상생협약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정말 고맙게 생각합니다.” 안 이사장은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과 신세희 기업경제과장, 민문식 중소상인지원팀장이 중소상인들의 편에서 애를 많이 썼고 실제로 힘이 되어주었다고 평가한다. 광명시는 대형 유통기업 입점 후폭풍을 막기 위해 골목상권과 중소상인 보호에 주력하면서 이들에게 유리하게 상생협상을 이끌어 중소상인들과 견고한 신뢰관계를 구축했다. 이는 다른 곳에서는 전례를 찾기 어려운 특별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중소상인들은 한 때 광명시의 대형 유통기업 유치를 맹렬하게 비난했지만 그런 분위기는 3대 대형 유통기업이 입점을 완료하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후 광명시는 그 어느 때보다 중소상인들과 깊은 신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중소상인들이 대형 유통기업의 입점으로 매출에 타격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과 담당 공무원들은 코스트코와 이케아,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 반대를 외치면서 격렬한 시위를 벌였던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슈퍼마켓협동조합,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 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는 골목상권과 중소상인 보호에 적극적으로 앞장선 것에 대한 감사와 신뢰의 표현이었다. 김남현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광명시와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이 코스트코와 이케아를 유치했을 때 정말 미웠다고 말한다. 그의 입장에서는 광명시는 병을 주고, 약도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뒤 뒤돌아보니 병이 아니었다. 중소상인들의 면역력을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하면서 중소상인들을 단련시키는 예방주사였다. “상생협약 과정을 거치면서 광명시 공무원들이 진정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 입장이 이해가 된 거죠. KTX 광명역세권을 개발해야 되고, 소상인들도 살아야 하니까 공통분모를 찾아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무원들을 한 번 믿어보자고 했던 거고, 결과가 상당히 만족스럽게 나왔습니다. 말만 하고 약속을 잘 지키지 않는데 광명시 공무원들은 달랐던 거죠. 밥상을 둘러엎지 않고 잘 차려서 같이 나눠먹자는 것이었고, 지금 그게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패션문화의 거리는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입점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 양승조 광명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을 들어보자.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온다고 했을 때 광명시를 많이 원망했는데, 시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상생협상 과정에서 중재하느라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처음에 롯데쇼핑은 우리 요구를 들어주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저희도 나름대로 대응하려고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이 들어와 있는 다른 지역을 많이 돌아다니면서 정보를 수집했어요. 그런데 상세한 내용을 알려주지 않아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지역마다 협상 내용이 달랐다고 하더군요.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이럴 때 시가 우리 편에 서서 상생협상에 적극적인 도움을 주면서 상황이 반전될 수 있었습니다.” -양승조 광명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과 김선태 미래전략실장은 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 중소상인들 편에 서서 상생협상을 중재했다. 양승조 이사장을 포함한 패션조합원들은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 김선태 실장 덕분에 상생협상에서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고 입을 모은다. 물론 협상 과정에서 이해관계가 다른 조합원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어려운 과정을 함께 겪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결속력이 더 강해지는 반사이익도 얻을 수 있었다. “롯데와 상생협약이 끝났을 때 상당히 후련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 롯데 입점을 반대하면서 롯데에서 우리의 요구를 얼마나 받아들여줄까 걱정했는데, 다른 지역에 비해 유리하게 상생협약이 마무리되어서 만족할 수 있었죠. 광명시가 가장 상생협약을 잘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합니다.” -양승조 광명패션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 양승조 이사장의 말이다. 롯데쇼핑과 상생협상을 통해 16명의 조합원들은 전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에 좋은 조건으로 입점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광명시 중소상인들과 대립관계였던 코스트코, 이케아, 롯데프리미엄 아울렛 역시 상생협상 과정을 통해서 중소상인들과 신뢰 관계를 쌓을 수 있었다. 특히 코스트코 측이 상생협약을 통해 영업종료시간을 오후 10시에서 오후 9시로 조정한 것이 획기적이었다. 김남현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은 코스트코와 이케아 입점으로 광명시 슈퍼마켓들은 심각한 매출 하락을 우려했지만, 실제로 매출 감소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30% 이상의 매출 감소를 우려했어요. 코스트코 입점으로 30% 정도까지만 매출이 준다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만 그 이상으로 하락하면 생존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하락하지 않았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물론 코스트코 입점 초기에는 영향을 받아 매출이 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회복세를 보여 코스트코 입점 이전으로 돌아갔습니다.” - 김남현 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아울러 전통시장이나 슈퍼마켓협동조합 등 중소상인들이 축제를 포함한 다양한 행사를 열면 이들 3대 대형 유통기업은 앞장서서 행사를 후원하거나 지원했다. 양쪽이 함께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 역시 광명시만의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만일 대형 유통기업 입점으로 골목상권이 무너지면서 중소상인들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몰렸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광명시는 감당하기 어려운 후폭풍에 시달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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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10 18:00

[전주한지로드] ③ 전주한지 그리고 서예·공예: 한국 서단의 뿌리 전북⋯바탕엔 부드럽고 질긴 종이

"고려에 면견지가 있는데 색이 하얀 것은 마치 무늬 있는 비단 같고 강하고 질긴 것은 마치 명주와 같다. 그것으로 글씨를 쓰면 발묵이 매우 좋다." -고렴의 '준생팔전' 중에서 예로부터 한국의 전통 종이인 한지는 종이의 역사가 깊은 중국에서도 최고로 꼽을 만큼 우수한 품질을 자랑했다. 중국문헌 '박물요람'에도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종이가 먹을 먹는 품이 고려지만큼 겸손한 것이 없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고려지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그 당시 상류사회의 사치이자 자랑이었다. 이처럼 한지는 연약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강한 종이다. 한지가죽이란 한지를 가죽 대용으로 만든 소재로 <인조실록>에 "종이옷은 가볍고 따뜻하고 얇고 부드럽지만 여러 겹이면 화살도 뚫지 못할 정도로 강하다"라고 기록돼 있을 만큼 조선시대에도 한지가죽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또 한지는 흡수력이 우수해 예로부터 서예가나 화가들이 널리 애용한 재료이다. 이처럼 때론 부드럽고 때론 질긴 한지의 특성은 다양한 분야와 어우러지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게 했다. 특히 한지의 고장인 전주와 전북에선 서예와 공예가 발달했는데, 이 바탕에는 전통한지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서화 발달' 전북 ⋯서단 거목들 전주한지에 많은 작품 남겨 질 좋은 전주한지가 많이 났던 전북에서는 오래전부터 서예가 발달했다. 전북은 조선 말기에서 근대 초기에 이르기까지 한국 서화 미술이 가장 발달했던 지역이기도 하다. 한국 서예의 명맥을 지켜온 전북 서예는 송재 송일중(1632∼1717), 창암 이삼만(1770∼1847), 석정 이정직(1841∼1916), 벽하 조주승(1854∼1903), 유재 송기면(1882∼1959), 설송 최규상(1891∼1956), 석전 황욱(1898∼1993), 강암 송성용(1913∼1999), 남정 최정균(1924∼2001), 여산 권갑석(1924-2008) 등에 이르기까지 오래전부터 탄탄한 서단을 형성해 왔다. 창암 이삼만, 석정 이정직, 석전 황욱, 강암 송성용 등 한국 서단의 거목이었던 서예술가들이 대거 배출되면서 전북 서단은 한국 서단의 뿌리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서화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1997년부터 격년제로 열리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도 전북 서예의 명맥을 이어주는 귀한 통로다. 한지의 고장으로 이름을 알렸던 전북의 전통은 '실과 바늘' 같은 한지와 서예라는 조화로운 문화유산을 만들어냈다. 지역에서 작품 활동을 한 서예가들은 자연히 전주한지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창암은 전주한지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에 걸맞은 글씨를 연구해 작품으로 남겼는데, 200여 년이 흘러도 오늘날 그의 작품이 잘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전주한지의 우수성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한지의 본래 용도는 무언가를 '쓰거나 그리는' 데 있다. 한지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서화 용지로 각광받았으나, 펄프를 사용해 양지 제조기법으로 만들어진 화선지가 유행하면서 점차 서화 용지의 자리에서 밀려나게 됐다. 1990년대 이후 중국에서 값싼 화선지가 대량 수입되는 등 중국산 화선지가 시장을 점령하며 한지의 쓰임새가 크게 위축됐다. 이러한 복합적인 영향으로 최근에는 한지의 본래 용도가 퇴색되고, 응용한지가 더 활발하게 발전하는 양상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응용한지도 중요하지만, 순수 한지산업이 살아나야 응용한지도 활성화된다"며 서화용 한지 개발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전주한지 이용한 부채·우산 '지역 대표 명물'⋯장인들 명맥 이어가 예로부터 전북은 질 좋은 한지와 곧고 단단한 대나무에 장인들의 예술 정신이 덧붙여진 '전주부채'가 유명했다. 부채는 한자로 선자(扇子)라고 하는데, 부채를 만드는 기술을 가진 장인을 '선자장'이라고 불렀다. 전주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선자장 김동식 선생을 비롯해 전북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선자장 박인권·방화선·엄재수 선생, 낙죽장 이신입 선생 등 수많은 장인이 부채를 만들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던 전주 전라감영에 '선자청'을 두고 부채를 생산·관리하게 했다. <이조실록>에 따르면 이조시대 선자청이 있던 곳은 전라감영이 유일했다고 전해진다. 이곳에서 생산된 부채는 임금에게 진상됐는데, 임금은 이를 '단오선'이라 이름 붙여 여름 더위를 대비해 신하들에게 하사했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선자청에서 부채를 만들던 장인들은 지금의 전주 중앙동에 터를 잡기 시작했다. 해방 후 중앙동이 발전하며 장인들은 반석리(현재 서학동)와 가재미골(현재 인후동)로 자리를 옮겼고, 이곳에 일종의 공방촌이 형성되기 이르렀다. 이렇듯 전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대표 특산품으로 전주부채를 만들어왔으며, 현재도 전국에서 부채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부채 명산지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전주부채의 명맥이 이어져 온 것은 장인들의 기술력도 있지만, 부채에 사용되는 우수한 전주한지의 질에도 그 공이 일정 부분 있다. 또 전주에는 선자장뿐만 아니라 한지장, 한지발장, 지우산장 등 한지와 관련된 무형문화재 장인들이 여럿 존재한다. 특히 전주에는 국내에 단 한 명뿐인 지우산(종이우산) 장인이 있다. 전북무형문화재 지우산 장인인 윤규상 선생은 전주에서 번성했지만 산업화에 밀려 사라질 뻔한 지우산을 되살려 현재까지 제작해오고 있다. 윤 명인은 17세인 1957년부터 진우봉, 엄주학 장인으로부터 지우산 만드는 법을 배웠다. 25세에 독립해 지우산 공장을 세웠지만 1970년대 이후 값싼 비닐우산, 천우산 등이 보급되면서 1985년 사업을 접었다. 이후 그는 2005년 한지발 명인인 유배근 선생을 만나 전통 공예의 맥을 잇기로 결심하고 3년에 걸쳐 옛날 방식의 제작 도구들을 복원해 전주한지를 이용한 전통 지우산을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또 전주한지를 이용한 한지공예도 전주의 자랑이다. 한지공예는 제작 기법에 따라 지승공예, 지호공예, 지화공예, 전지공예 등으로 구분된다. 지승공예는 한지 색지를 길게 꼬아 엮어 생활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예술의 한 분야다. 전지공예는 한지를 칼로 잘라 문양을 내는 공예를 말한다. 한지공예 부문 전북무형문화재로는 색지장 김혜미자, 지승장 김선애 선생이 있다. 문화재 보존·복원, 교과서, 수의 등 전주한지 산업화·실용화 노력 한지는 기록유산의 보존적 측면에서도 중요하지만 실용적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대표적인 것이 문화재 보수·복원 분야다. 2017년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은 일본의 화지, 중국의 선지를 제치고 '기록 유물 복원용 종이'로 한국의 한지를 채택했다. 이탈리아 국립기록유산 보존복원 중앙연구소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전통 한지 5종에 대해 문화재 보수·복원 용지로 적합하다고 인증한 바 있다. 전주시는 전주한지의 대중화, 활성화를 위해 문화재 보수·복본 외에도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일례로 전주, 완주, 임실, 부안 등에 전주 전통한지를 삽입한 지역사회 교과서를 배포하는 것이다. 전주시는 2016년부터 전통한지를 교과서에 공급하고 있다. 김천종, 강갑석, 김인수, 최성일 등 전주한지장 4인이 직접 제작한 전통한지, 색한지를 활용했다. 이 한지는 지도와 편지지 형태로 지역 사회교과서에 각각 삽입됐다. 이외에도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과 연계해 수료증과 임용장, 표창장 등 상장을 제작할 때 전통한지를 사용하고 있다. 친환경 전주한지 벽지, 한지장판 등도 사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전주한지로 만든 수의도 그 예다. 전통한지 수의는 전주한지장이 '줌치 한지' 형태로 종이를 떠서 수의디자인 업체에 납품해 제작한다. 한지수의 1벌 당 A4 크기 전통한지 약 550장이 사용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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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민주
  • 2022.07.10 17:33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상상하는 힘, 살아가는 힘

최근에 책방에서 하는 독서모임에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읽었다. 우주에 대한 방대한 대서사시라 할 수 있는 ‘코스모스’는 읽는 우리들에게 ‘우주적인 시각’을 선물했다. 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지구는 작고 창백한 푸른 점에 불과하고 우리는 그 별에 사는 아주 작은 미물에 불과하다. 우주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우리가 겪는 매일의 사소한 일과들이 떠도는 먼지만큼이나 가볍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사소한 일과 속에서 우리는 매일 전쟁을 치른다. 어떤 이는 주식에 투자한 게 잘못되어 고통 속에 살고, 어떤 이는 아직 받지 못한 임금 때문에 투쟁을 하고 누군가는 뜨거운 태양 아래 깃발을 나부끼며 불평등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왜 태어나서 이런 고통들과 마주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아름다워 보이는 밤하늘의 별들에게 질문을 던져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우리가 우주를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코스모스’책을 번역한 옮긴이의 말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주인이 달나라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현대 과학과 공학의 눈부신 발달 때문만은 아니라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저는 달을 두고 노래한 시인들이 더 중요하고 큰 역할을 했다고 믿습니다. 우리네 삶에서 소망 없이 이루어진 일이 어디에 있습니까? 따지고 보면 시인이 우리 가슴에 심어 준 꿈의 위력이 과학자들로 하여금 달나라 여행을 설계하게 했을 것입니다.’ 즉, 옮긴이는 우리에게 우주를 상상하는 힘이 없었다면 굳이 로켓을 쏘아 올리지도 달에 갈 일도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상상하는 힘’은 결국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일을 상상해야만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얼마 전 제주에 한 달 살기를 간다고 해놓고 결국 완도 바다에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인 가족이야기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 가족들이 그 동안 어떤 고통 속에 살아왔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삶을 내려놓기까지 그들에게 ‘내일’은 어떤 존재였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하려해도 결코 좋은 것이 상상되지 않는 ‘내일’이라는 것은 얼마나 그들을 지치게 만들었을까. 주변에 그 어떤 도움을 청할 사람도, 그 어떤 제도도 그들의 곁에는 없었던 것일까. 내내 마음이 쓰였던 가족의 마지막이었다. 아주 작게라도 희망을 상상할 수 있는 내일이 있다는 것은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되지만, 개인만의 의지로만은 안 된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 국가가 있는 이유도 그런 내일을 함께 만들어가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지구를 이대로 두고 볼 수 없기에 어떻게든 이 위기를 극복할 상상을 하고, 다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19에 대비해 우리는 다시 접종을 하고 마스크를 여민다. 그러나 우리가 감히 상상해도 안 되는 현실이 지금 시대에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서울의 집값을 보자, 상상할 수 있는 금액을 넘어섰다. 금수저가 아닌 이상, 2030들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에 불과한 내 집 마련의 꿈이다. 그들의 상상 속엔 ‘서울에 집’은 없다. 이상한 나라다. 평생 열심히 살아도 집을 살 수 없는 나라. 그렇다면 내가 사는 전주의 내일은 어떤가. 어떤 상상을 하게 만드는가. 전주는 상상하기 좋은 도시다. 아직은 여백이 많아 보인다. 그만큼 어떤 면에선 낙후돼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러나 최근 수많은 도서관들이 생겼다. 도서관을 반기는 시민들이 많아졌다.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지는 않지만, 상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덕진공원 안에 새로이 생긴 연화정도서관과 서학동 예술마을안에 새로 자리한 서학동예술도서관만 봐도 그렇다. 그냥 누구라도 들어갈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훌륭하다.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반겨주는 곳이 돈 한 푼 없이도 갈 수 있는 도서관이며, 우리는 그 안에서 무한하게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전주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한 도시이기도 하다. 이제는 인문도시로서 질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주어졌으니 전주시민들이 함께 더 좋은 내일을 상상하고, 그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다양한 판을 짜야 한다.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상상, 좋은 기업이 들어오는 상상, 전주만큼은 모두가 내 집에서 사는 상상, 기후 위기에서 벗어나 에너지를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도시가 되는 상상, 다른 도시와는 다른 개발이 이뤄지는 상상, 전주만의 모습을 가지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상상. 전주에 살면서 이런 내일을 상상한다면 지금 하는 일이 조금은 버겁고 힘들더라도 버티게 하는 힘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나에게 세상을 구할 수 있는 단 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55분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에 사용하고 나머지 5분은 그 문제를 푸는 데 쓸 것이다’고 말했다. 답보다 문제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전주 시민이라면 이제 전주의 문제를 파고들자.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것이 불필요한지를 직시해야 한다. 문제가 뭔지 알면 해결도 쉽다. 그것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지역의 내일을 보다 더 낫게 상상하는 힘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이지선 잘 익은 언어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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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7.06 17:17

[단체장에게 듣는다] 우범기 전주시장 “전주 바꿀 마지막 기회, 속도 내겠다”

우범기 제40대 전주시장이 지난 1일 취임식을 갖고 본격적인 업무에 돌입했다. 우 시장은 취임식에서 “이제는 강한 경제가 이끄는 대변혁을 통해 전주가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 우뚝 설 때”라면서 “전주의 큰 꿈, 전주시민 여러분과 함께 꾸고, 만들고, 나누자”며 전주의 대변혁을 피력했다. 민선8기를 시작하는 우 시장에게 포부와 시정 방향,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전주시장으로서 직무를 시작하셨습니다. 앞으로의 포부는. “전주는 강한 경제를 꿈꾸고 있습니다. 탄소, 수소, 드론 등 미래산업이 꽃피는 전주를 시민과 함께 만들어 가겠습니다. 과감한 규제 완화와 공격적인 투자유치는 꿈이 이뤄지는 속도를 앞당길 것입니다. 대학이 인재를 육성하고, 행정이 기업을 뒷받침해서 기업이 신바람이 나 적극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겠습니다. 전주의 일대 도약은 교통 중심지로 거듭나는 전주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천안, 아산, 세종, 전주로 이어지는 직선 철도를 꿈꾸고 새만금, 전주, 김천으로 이어지는 철도 역시 그리고 있습니다. 새만금, 전주, 대구, 포항으로 뚫리는 고속도로 등 전주가 전라북도, 특히 전북 동부권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교통 중심지로 거듭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의 도시인 전주의 문화산업을 다른 산업과 연계해 무궁무진한 응용 영역을 만들어 문화적 자산이 실물경제의 흐름으로 이어져 문화적으로 부강하고 경제적으로 튼튼한 전주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민선8기 전주시정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 계획인가요. “민선8기 전주시정의 목표는 ‘전주, 다시 전라도의 수도로!’입니다. 세부적으로 ‘천년 미래를 여는 전주의 큰 꿈’, ‘시민이 부자 되는 강한 경제’, ‘글로벌 산업으로 우뚝 서는 문화’, ‘일상에서 누리는 신바람 복지’의 네 가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전주의 대변혁은 시민의 명령이고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입니다. 4년 임기 동안 자리에 연연해 좌고우면하는 일은 결단코 없을 것입니다. 전주를 우뚝 세우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가슴에 새기고 전진할 것입니다.”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앞으로 일자리 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전주형 일자리 5만 개’를 창출해 떠나는 도시가 아닌 돌아오고, 찾아오는 도시 전주를 만들겠습니다. 대기업 유치, 금융공공기관 이전, 중소기업 육성, 전주만의 문화자산을 활용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나갈 계획입니다. 이를 위해 기업의 이전·창업 보조금을 지원하고 투자유치보조금 지원, 지방세 감면 등 다양한 혜택으로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습니다. 또 전주 입주기업에 대한 투자 확대 등을 적극 뒷받침해 지속적인 투자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전주-완주 통합을 공약으로 내세우셨습니다. 어떻게 추진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주-완주 통합에 있어 중요한 두 가지 시각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왜 필요한가’이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입니다. 필요성에 대해서는 전주와 완주의 통합 없이는 전주와 완주뿐 아니라 전북의 발전이 어렵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도시의 팽창 과정을 겪지 않고서 제대로 발전한 도시는 없습니다. 광주광역시가 전라도 제일의 도시가 된 것은 광산군과 송정시를 통합해 개발했기 때문이고, 청주시도 청원군과 통합한 이후 인구 85만 시대를 연 데 이어 100만 도시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전주-완주가 통합되면 대기업 유치 속도가 상당한 탄력을 받을 것이고, 하나 된 전주-완주는 새만금과 함께 전북의 발전을 이끌 양대 축이 될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축이 경쟁하면서 발전하는 과정이 진행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북이 독자권역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고 그래야 타 시도와의 협상 또는 경쟁도 가능해집니다. 추진 방향은 전주의 통 큰 양보를 통한 두 지역의 상생발전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완주지역은 통합시청 건립을 비롯한 복합행정타운을 구축해 ‘강소형 세종시’ 모델로 조성하겠다는 구상입니다. 과감하고 속도감 있게 개발된 세종시처럼 완주지역을 통합시의 행정중심지로 집중 개발해 국제공항과 신항만이 들어서는 새만금의 배후도시로, 나아가 행정수도 세종시의 배후도시 역할을 할 수 있게 육성할 계획입니다. 현재의 전주시 청사 자리에는 융복합 초고층 빌딩을 건설해 전주 구도심의 랜드마크로 조성하고자 합니다. 이 융복합 초고층 빌딩에는 전주완산경찰서 등 공공기관을 이전해 입주시키고 아파트형 공장을 비롯한 창업과 창작의 공간,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할 계획입니다. 기업 유치도 통합 전이라도 기업의 입지나 요구가 완주지역에 적합하다면 전주나 완주를 가리지 않고 유치해 나가겠습니다.” KTX 천전선 노선 신설을 공약하셨습니다. “전주는 한때 5대 도시로 불렸지만 6대 도시, 다시 7대 도시로 밀렸고 지금은 도시의 순위에서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7대 도시에서 순위권 밖으로 사라진 쇠락은 불과 40여 년 만에 진행된 일입니다. 이제 전주는 꿈을 크게 가져야 합니다. ‘천안아산~세종~전주’로 이어지는 천전선 KTX 직선 노선 신설 공약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습니다. 현재의 KTX 전라선 노선이 오송역을 우회하면서 호남은 접근성과 비용 등에서 지속적인 불이익을 받고 있습니다. 천안과 세종, 전주로 이어지는 KTX 노선이 신설되면, 전주, 세종 간 30분 생활권이 실현됩니다. 여기에 서울과의 접근성도 획기적으로 높아져 관광객 유입, 기업 유치 등 산업성장의 마중물 역할이 가능해집니다. 인구소멸의 시대에서 KTX 천전선은 전주와 전북 동부권을 살릴 수 있는 대안입니다. 또한 KTX 천전선은 남원~구례~순천으로 이어지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대한방직 부지와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에 대한 입장은. “이른 시일 내에 관계자들을 직접 만날 생각입니다. 비공식적인 만남이 아니라 공식적인 만남이 될 것이고 투명하게 논의를 진행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민간이 투자하겠다는데 발목을 잡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특히 전주는 민간을 찾아다니며 투자해 달라고 해야 하는 상황인데 제재만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얼토당토않은 수익을 챙기는 건 안 되지만, 기업이 투자했을 때 수익은 인정해 줘야 하고, 그 수익의 일정 부분은 시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법적으로 기부채납 비율이 정해져 있지만 별도의 논의는 가능합니다. 그런 부분들까지 종합적으로 논의할 생각입니다. 대한방직 부지와 전주종합경기장 개발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컨벤션을 각자 지어서 작은 컨벤션 2개가 전주에 있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종합경기장에 컨벤션이 들어서면 대한방직 터에는 컨벤션을 짓지 않아도 된다는 식입니다. 다만 광주의 김대중컨벤션센터 1관과 2관을 합한 크기만큼은 지어야 장기적으로 효용이 있습니다. 개발은 시민의 편의와 혜택을 보장하고 전주발전에 기여하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진행하고자 합니다.” 규제완화와 재개발·재건축을 강조하셨습니다. “도시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보면 구도심에서 외곽으로 확장했다가 다시 구도심이 개발되는 패턴을 보입니다. 이를테면 구도심이 좁은 데 비해 땅값이 올라가면 행정과 민간이 도시 외곽을 개발하고 이 과정에서 도시는 확장되지만 구도심은 낙후하고 슬럼화됩니다. 또 외곽 확장이 한계를 드러내면 재개발, 재건축 과정을 거쳐 구도심이 다시 발전하게 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전주는 외곽 개발은 느리게 진행되고 있고 구도심의 재개발, 재건축은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구도심이 층수 제한으로 묶여 있으니 기업은 수익을 낼 수 없어서 투자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놔두면 전주는 성장, 발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규제완화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전주의 주택보급률이 110%니까 그만 짓자’고도 하지만 이는 시민의 욕구를 간과한 이야기입니다. 30년 이상 된 아파트, 작은 규모의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은 큰 아파트,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하고 싶은 바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재개발, 재건축은 미래형 주택으로 선순환하고 시민의 욕구에 부응하는 것입니다. 시장 직속으로 재개발·재건축팀을 꾸려 직접 챙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주는 역사, 문화, 경제적으로 자랑스러운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산업화시대를 거치면서 30~40년 만에 낙후된 도시의 오명을 쓰게 됐습니다. 이제 우리는 20~30년 미래를 보고 전주를 설계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민주주의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의 정신이 있고 다양한 문화자산을 갖추고 있습니다. 지금 전주는 큰 그림, 큰 뜻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자치단체장도 임기 내에 할 수 없으니까 시도조차 하지 않는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30년 안에 자랑스러운 도시, 전주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비전을 가지고 정진해야 합니다. 때로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소통하고 협의하면서 한뜻을 모아서 전주를 발전시켜 나가겠습니다. 그 길에 전주시민들이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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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정원
  • 2022.07.04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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