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그분이 가신지 꼭 2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1주기때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세계’라는 주제의 학술대회 후 그분 묘역에 가서 술한잔 따라서 묘지에 뿌렸는데, 벌써 일년이 지나 버렸다. 그때만 해도 필자는 그분의 높은 문학적 세계를 흠모하는 한 사람의 팬이었는데 지금은 그분을 기념하고 널리 알리는 사업회의 운영위원이 되었으니 참으로 감개가 무량하다.
혼불기념사업회 운영위원회가 탄생하게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전주시민의 장’으로 최명희선생을 모교인 전북대학교 교내 건지산 중턱에 모신 이후 전북대학교와 전주시, 그리고 문화계인사, 유족들이 선생을 보다 더 오래 기억하고‘혼불’이 더 많은 이들에게 이해되길 바라는 뜻에서 이를 추진하기 위한 모임이 제안되었다. 그후 올해 2월부터 월2-3회씩 꾸준히 회의가 열렸고 6월초 현재의 운영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이 모임을 꾸려야 할 것인가.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많은 고민이 토로되었다. 그러던 중 ‘혼불’의 한 애독자로부터 "최명희 선생의 묘역이 너무 쓸쓸하지 않은가"라는 말을 들었고, 이에 우리는 가장 시급한 일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었다. 최명희 선생의 묘역을 문학공원화 하여 일찍 가신 그분이 그분을 좋아하여 찾아오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실제로 건지산 중턱에는 고인의 묘만 덩그러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는 고인 최명희와 혼불에 대한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래서 올해는 전주시, 전북대학교, 유족 측의 협조를 받아 전주시 풍남동에 위치한 생가터에는 표지석을 세워서 위대한 소설가 최명희가 태어난 곳임을 알리도록 하였고 묘역은 시민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게끔 다시 가꾸게 된 것이다. 묘역입구에는 「혼불문학공원」이라는 표지석과 큰 책모양의 돌로된 안내판을 세웠다. 묘를 향하는 길은 발이 닿는 느낌이 좋게 통나무로 바닥을 깔았다. 주변에는 살구나무와 단풍나무를 심었고 길가에는 철쭉과 동백을 심어서 사시사철 꽃과 푸르름이 함께 하도록 하였다. 묘앞에는 묘비와 와비를 세우고 최명희 선생의 글을 넣은 조각 물을 묘역주변에 배치하였다. 크고 작은 벤치를 여러 개 설치하여 이곳을 찾는 이들의 편안한 쉼터로서의 역할을 하도록 배려하였다. 이제 혼불 문학공원은 단지 소설가 최명희의 묘역이 아닌,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이면서, 한국문학의 살아 있는 혼불들이 모여 함께 어우러지는 곳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그분에 대한 추모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전북대학교와 함께 전국규모의 고교, 대학생 등 예비문학도를 대상으로 소설과 시를 공모하는 최명희기념 백일장 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또한 ‘혼불’에 대한 학술적 가치를 이해하는 혼불 논문상,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하는 혼불문학상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아직 발표되지 않은 고인의 소설 등을 담은 유고 작품집도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혼불을 비롯한 단편, 수필, 강연록등과 혼불 및 최명희와 관련한 논문(평론), 신문기사, 혼불에 사용된 우리말에 대한 풀이 사전 등 모든 자료를 웹공간에서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데이터 작업할 예정이다. 아울러 이러한 모든 자료들을 보관하고 전시할 수 있는 혼불 문학관 건립에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물론 현재의 혼불기념 사업회 운영위원회는 이제부터 더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할 것을 준비하는 모임에 불과하다. 이러한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요구되는 것이다.
남원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혼불마을사업, 서울에서 모이는 최사모(최명희를 사랑하는 모임)등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은 퍽이나 바람직한 일이고 차제에 그 분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
오늘 최명희 선생의 2주기를 추모하는 행사가 있다. 오후2시부터 전북대학교 인문대학에서는 혼불기념사업회의 경과보고와 더불어 전북출신 후배소설가 신경숙선생의 추모강연이 있고 3시 30분부터는 묘역(혼불문학공원)에서 추모제와「혼불」의 한 대목을 소리로 표현하는 전북도립국악원 김연 교수의 판소리 한마당이 펼쳐질 예정이다. 이지면을 통하여 많은 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리고 싶다.
철저한 자료 수집과 고증, 현지답사 등을 통하여 전라도의 우리말과 우리 풍속을 완벽하고 아름답게 재현한 혼불은 문학적인측면에서뿐만 아니라 민속학, 언어학적인 면에서도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다.
"동구밖 길가의 나무장승처럼 서서" 한국인의 보이지 않는 넋을 달래려 했던 소설가 최명희. 그분은 갔지만 그분의 혼불은 살아 남아서 우리 곁에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두재균(전북의대 산부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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