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유일의 규방가사 작가인 소고당 고단 여사(81·전주시 덕진구 거성고속2차아파트)가 전주객사에 관한 감회를 담은 가사 ‘ 豊沛之館(풍패지관)’을 지어 전북일보사에 보내왔다.
소고당은 연우회 회장, 연묵회 부회장, 예림회전북지부장 등을 지냈으며 77년 3인 공저로 규방가사집을 낸 이후 소고당가사집을 2권 발간했다.
豊沛之館(풍패지관)
漢高租 劉邦의 出生地는 江蘇省/ 沛縣의 豊邑이라 漢以後 임금의/ 고향을 豊沛라 했네 우리나란 예로부터/ 各地方 方伯守令 治所에 客舍세워/ 主館北壁 감실에는 大闕을 상징하는/ 闕牌를 奉安하여 每月朔望에 觀察使가/ 焚香하며 國家慶弔에 官民이 서로모여/ 儀式을 擧行하고 觀察使 判官등도/ 到任하자 이곳을 奉審하고 朝令띠고/ 내려오는 官員은 이곳에 머물며/ 外賓接待 實場으로도 쓰였다오 唯獨/ 全羅監營 全州客舍를 豊沛之館이라 함은/ 朝鮮을 開國한 李太祖의 貫鄕이/ 全州이기 때문이라 全州客舍 創建年代/ 명확하지 않으나 朝鮮初에 세워서/ 主館과 兩翼軒을 南向으로 앉히고/ 正面에는 솟을大門 세웠으며 後園에는/ 鎭南樓 梅月堂등이 있었으니 國家寶物/ 第五八三號로 지정되었네 益山市王宮 場岩里는/ 鎭川宋氏 世居地라 宣祖때 號瓢翁/ 謂宋英국 一五五六年生 一六二十年卒 成渾門人/ 文科하여 慶尙監司 後任後 歸京길에/ 쥐고있던 合竹扇을 洛東江에 던져버려/ 投扇江이라 부르기도 한다네 淸白吏오/ 諡號는 忠肅公 이어른이 聖節使/ 從事官으로 燕京使行 때일이다 客館에서/ 체류중에 한通引 글읽으며 불지침이/ 奇特하여 물었다오 南京사람이 北京와서/ 과거낙방 또보려 고생하고 있다는/ 대답이라 瓢翁은 그에게 科擧공부/ 하는법 알뜰하게 일러줬네 그는그후/ 壯元及第 吏部侍朗에 올라사 우리朝鮮/ 使臣을 自願하여 자주나온 朱之蕃바로/ 그였다네 詩書畵에 能하며 忠肅公의/ 恩惠에 執贄禮를 올리고 門人이/ 되었다오 當時朝鮮에 온明使臣中 선물은물론/ 賂物까지 貪한者가 많았으나 朱公은물론/ 거절함은 스승나라에 대한예우 였으리/ 표옹卒후 使臣왔다 場岩里에 찾아가서/ 표옹이지은 望慕堂의 扁額글씨 전해오며/ 全羅監營 客舍들려 豊沛之館 명필적또한/ 남겼다네 忠肅公의 異邦人에게 베푸신/ 따뜻한情 장할시고 朱公의 報恩義理/ 또한장하구려 국적다른 사제지간 그義理를/ 欽慕하는 내가슴에 훈훈한정 일렁이네/ 임진란때 전라감영 수호한어른 세분이니/ 의병장에 召募使 李廷란公 左翼將에/ 黃褒公 右翼將에 鄭협公이라 市民의/ 잔치마당 豊南祭典委 주최로 해마다/ 藝術分野는 화려해 지는데 의병출정/ 行事는 결여됨이 섭섭터니 二千二年/ 월드컵 축구경기에 맞추어 三十五師團/ 兵力지원과 제전위의 資金으로 義兵出征/ 行事가 豊沛館에서 成功裡에 이루어짐/ 前忠景司 都有司 金煥在翁의 周旋한功을/ 잊을손가 이후로도 年例行事 되겠으니/ 全州市로의 긍지또한 더한층 높아지리
二千二年 월드컵 끝난 다음달 七月 紹古堂 高단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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