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전주와 자매도시인 일본 가나자와(金澤)시 축구협회 초청으로 우리 선수 35명을 인솔하고 그 곳에 갔었다. 양 도시의 협정에 따라 1년에 한 번씩 오가며 하는 친선경기이다. 일본 선수들이 이 곳에 왔을 때의 답례로 그곳 선수들 가정에서 홈 스테이를 했다.
그 곳에 도착하니 시(市) 전체에서 우수 선수를 선발하여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고 신문·방송에서는 요란하게 보도하고 있었다. 우리도 열심히 준비했지만 내심으로는 걱정이 많았다. 범 가나자와시 우수선수 선발 팀이라는 부담도 있지만, 얼마전 천안초등학교 동료 선수들이 당한 불행한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기전략이야 감독이 알아서 하겠지만,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에게 책임자로서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고민을 했다.
운동장에 나서는 선수들에게 책임자의 비장한 마음을 전달했다. '선수 여러분! 여러분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꼭 이기기 위해서 온 것은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축구 경기를 통해서 두 나라가 더욱 친해지고 같이 힘을 합하여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입니다.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 여러분들이 일으켜 주십시오. 여러분이 넘어지면 괜찮다고 웃으면서 사인을 보내세요. 그렇지만 최선을 다하는 경기를 보여 주기 바랍니다.'파이팅을 외치고 운동장으로 뛰어가는 늠름한 양국 선수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때의 기분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리라.
경기마다 밀고 밀리는 상황이 전개되었지만, 승리의 여신은 우리 선수들의 손을 들어 주었다. 8전8승이라는 개가를 올렸다. 승패의 요인이 여러가지 있었겠지만 갑자기 만든 선발 팀의 개인기보다는 우리의 조직적인 팀 플레이가 더 힘을 발휘했다고 우리는 평가했다. 축구 시합 뿐 아니라, 기업 경영이나 나라 경제도 똑 같은 것이 아닐까? 조직원 모두가 힘을 합해 정진해 나갈 때 그 조직의 힘은 극대화 될 수 있으리라. 국가도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 설정한 지표를 향해 함께 나아갈 때 국가 경쟁력은 극대화되지 않을까? 축구경기를 통해서 얻은 교훈을 학교경영에 반영하리라 생각하니 그간의 어려움도 한 순간에 가시는 것 같았다. 어려움을 통해서 얻은 이 같은 행복을 선인들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 했으리라.
어른들은 보이지 않는 위선이란 너울을 쓰고 살지만, 어린이들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누구나 상관없이 금방 친해진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관습이 달라도 그런 것들 때문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며칠 안되는 홈스테이를 통해서 양쪽 선수들이 형제처럼 친해진 모습을 보면서 교육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떠나오던 날, 그쪽 선수들 뿐 아니라 부모들도 공항까지 배웅을 나왔다. 너무나 고마웠다. 지도자들은 출국 수속하느라 바쁜데, 아이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워 공항이 온통 시끌벅적 했다. 대 여섯살쯤 된 그쪽 선수의 동생 녀석 하나가 우리 선수를 따라간다고 떼를 쓰며 울어댔다. 그렇게 시작된 울음이 양쪽 선수들을 모두 울게 해버렸다. 부모들까지 울어버리고, 나도 덩달아 찔끔찔끔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영문을 모르는 여행객들에게는 큰 볼거리를 제공해 버린 셈이 되었다.
아파서 보인 울음이 아니요, 분해서 보인 눈물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름다운 만남을 오래 하지 못해 아쉬워 흘린 눈물이었다. 그 때 양국선수들이 흘린 눈물이 먼훗날, 한·일간의 우호는 물론 세계평화에 크게 기여하리라. 이러한 기대가 나 혼자만의 헛된 꿈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상기(전주삼천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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