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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징게 맹게 외에밋들'

“…걸어도 걸어도 끝도 한정도 없이 펼쳐져 있는 들판을 걷기에 지쳐 있었다. 그 끝이 하늘과 맞닿아 있는 넓디나 넓은 들녘은 어느 누구나 기를 쓰고 걸어도 언제나 제자리에서 헛걸음질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그 벌판은 ‘징게 맹게 외에밋들’이라고 불리는 김제 만경평야로 …. 호남평야 안에서도 김제 만경 벌은 특히나 막히는 것 없이 탁 트여서 한반도 땅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이루어 내고 있는 곳이었다”

 

왜놈 돈 20원 받아먹고 팔려나갈 신세에 처한 김제 죽산의 방영근과 그 어미 등이 목적지인 군산으로 가던 도중의 금만평야를 작가 조정래는 소설 '아리랑'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징게 맹게는 김제 만경의 사투리 발음이고 ‘외에밋들’이란 이 배미 저 배미 할 것 없이 모두 한 배미로 연결돼 있어 그만큼 넓다는 뜻이다.

 

‘외에밋들’로 표현될 만큼 넓디 넓은 금만평야는 그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땀과 눈물로 가득 찬 공간이다. 이 곳 들녘에 아스람히 펼쳐진 지평선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하늘과 땅, 사람을 연결짓는 고리의 선이다. 방영근이 어미와 함께 걸었던, 들판 속의 신작로는 군산항처럼 이 들판에서 생산된 쌀을 실어나르기 위한 수단이었다.

 

소설 ‘아리랑’ 은 금만평야를 배경으로 암울했던 격동기의 민초들이 겪는 고초와 민족적 상황, 일제의 수탈과 착취, 그리고 반민족적 행위를 일삼은 친일파들의 실상, 자신과 가족을 내던진 애국지사들의 삶을 그리고 있다.

 

2003년 ‘아리랑’ 출간 10주년을 맞아 개관한 아리랑문학관(김제시 부량면 용성리)이 ‘문학을 통한 역사의 조망’을 주제로 오는 29일까지 특별전시를 열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통일시대민족문화재단, 김제시 등이 주최한 ‘징게 맹게 외에밋들’ 전(展)이 그것인데, 역사가 미처 기록하지 못한 민초들의 고난과 좌절, 눈물겨운 투쟁의 과정이 담겨있다.

 

외에밋들의 한복판인 죽산면사무소∼성덕면 남포∼광활면에 이르는 코스모스 길은 수채화처럼 아름답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쬐는 청명한 가을날, 일제시대엔 쌀을 실어나르는 신작로였을 이 코스모스길을 따라 황금빛 ‘징게맹게 외에밋들’을 경험하고, 특별전시전도 관람하면서 지난 시기의 아픈 역사를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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