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선(우석고 교사)
한글은 1443년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는 이름으로 창제된 이후 오늘날까지 566년 동안 한국어의 역할을 하면서 한민족(韓民族)과 운명을 같이 해 왔다. 한글은 창제 이후 상당 기간 동안 ‘언문(諺文)’이니 ‘암클’이니 하면서 천대 받으며 한문의 위세에 눌려 지내다가 일제 시대에는 국권의 상실과 함께 몰락의 길을 걸을 뻔하였다. 해방 이후 국력의 신장이 신장함에 따라 한글의 위상도 높아져 한류 열풍과 함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한국어를 배우려는 붐이 일어나고 있다.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기록 유산" 으로 등록될 정도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언어학 대학에서 세계 모든 문자를 합리성, 과학성, 독창성 등의 기준으로 순위를 매기게 되었는데 한글이 1위를 차지했다. 한글은 과학적이며 체계적으로 창제된 글자이다. 한글은 소리 글자 중에서도 가장 발달한 음소 문자로서 배우고 쓰기에 아주 쉬운 문자이며, 풍부한 표현 능력을 지닌 문자이다. 특히 의성어, 의태어, 색채어에 대한 표현 기능은 어느 문자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뛰어나다. 또한, 한글은 글자 모양이 아름답다. 한글처럼 수십 가지의 글자체로 갖가지 모양을 낼 수 있는 문자는 없다. 영어와는 달리 세로쓰기도 가능하다. 한글은 만든 목적, 만든 사람, 만든 때가 분명한 글자이다. 한글은 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글자이다. 컴퓨터에서 한글의 업무능력은 다른 글자에 비해 엄청난 효율성을 가지고 있다. 이밖에도 학문적인 연구에 의하면 다른 나라 글자에 비해 우수한 점이 많이 있다.
한글이 이처럼 우수한 글자임에도 불구하고, 국제 공용어인 영어의 유입으로 어휘와 문법체계에 있어서 심하게 오염되고 있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영어 공용화’를 실행하여 세계화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2010년부터 모든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사실상의 영어 공용화 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어몰입교육’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가 반대 여론의 확산으로 백지화 했다. ‘영어 공용화론’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영어 몰입교육’이나 모두 다 공감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영어가 국제 공용어이기는 하지만 외국어일 뿐이다. 어떤 노력을 다해도 모든 국민이 외국어를 모국어처럼 유창하게 구사할 수도 없지만 그럴 필요도 없다. 쓸데없이 국력을 낭비하지 말고 국제 사회에서 영어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교육해서 제 역할을 다하게 만들면 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서서 영어 구사 능력이 최고의 가치인양 조장할 때 인성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이며 국가관 교육은 어떻게 할 것인가? 영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인성 교육, 과학 기술 교육, 국어 교육, 국가 정체성 교육이다. 한국어도 어법에 맞게 제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에게 영어 교육만을 강조한다면 뿌리 없는 나무에 거름을 주는 것과 같다. 국어는 그 나라 국민들의 정신과 영혼을 담고 있다. 자긍심과 정체성을 잃어버린 국민은 곧 몰락한다. 일제가 우리 민족을 영구 식민지화하기 위해 언어 말살 정책을 썼던 것을 뼈아프게 기억해야 한다.
한국인은 한국어로 생각하고 한국어로 말해야 한다. 한국인이 한국인다울 때 한국도 발전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위대한 한글을 가꾸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하기는커녕, 새 정부의 대통령 당선인이 미국 대사를 만나 “You are very welcome”이라고 인사를 하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아침 회의를 “Good morning”으로 시작하며 영어 광풍을 일으키고 있으니 산속의 보석을 캐려다 집안의 보석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김창선(우석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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