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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새해 벽두의 외출 - 송경태

송경태(전주시의원)

 

불어오는 바람결이 매섭다. 코트 깃을 곧추 세우고 걸었다. 다른 행인들도 나나 다를 바 없었다.

 

곁에서 함께 걷고 있는 작은아들의 손이 내 코트 주머니 안에 들어와 있었다. 녀석의 손은 동그랗게 뭉쳐져 있었고, 나는 잔뜩 힘이 들어가 있는 아들녀석의 손을 꼭 감싸쥐었다.

 

교동 군경묘지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게 참배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다. 아파트 입구에 자리잡은 포장마차의 휘장이 세찬 바람에 나부꼈다. '잔치국수 한 그릇 1000원'이라는 붉은 글씨가 새겨진 포장마차 앞에서 한사코 아들녀석이 손을 이끌었다.

 

포장마차에 들어서자 후루룩 국수가락을 빨아들이는 소리에다 얼큰한 국물 들이키는 소리, 그리고 주고받는 얘기 소리들로 비좁은 공간이 한가득 넘쳐났다. 좁은 틈을 비집고 나란히 앉은 우리는 국수 두 그릇을 시켰다. 사람들은 불어터진 면 가락보다 더 풍성한 얘기 다발들을 쏟아 놓기에 바빴다.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져 만신창이 꼴로 화해버린 지난 해의 경제 얘기며, 2009년 새해를 향한 기대에 이르기까지 오가는 말 가닥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것처럼 길게길게 이어졌다. 경쟁하듯 쏟아 내놓는 얘기들 속에서 나는 어렴풋이나마 희망을 건져 올렸다. 너나 할 것 없이 힘든 한 해를 어렵게 지나온 사람들이었다. 작은 자본으로 벤처기업을 시작했다는 김씨도, 건설 경기 불황으로 일거리가 없어 여러 날 째 놀고 있다는 최씨도, 그리고 세탁소를 운영하는 권씨도 진흙 구덩이에서 이제 막 빠져나온 그런 지친 모습으로 열변을 토해 냈다. 그들은 한결같이 2008 년을 성토했다. 그리고 경제 전문가 못지 않은 안목과 식견으로 위기에 처한 현 불황 경제의 근원 등을 논했다. 어느 한 소수의 계층에게만 몰아닥친 어려움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시기를 예견치 못했을 뿐이지 상상 못할 무게로 한 번은 들이닥칠 경제 파국이었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들은 또 얘기했다. 동전 하나의 크기가 전에 없이 커 보이더란 얘기에서부터 주머니 속에 든 천원권 한 장 무게가 그렇게나 무거울 줄 미처 몰랐다는 얘기, 절약에 힘쓰고 있다는 얘기까지, 그야말로 처절한 혈전이라도 벌이는 듯한 그런 형국들이었다. 바로 그 속에서 나는 가느다란 희망의 빛 하나를 낚아챘다. 작은 포장마차 안에서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가정들에서, 그리고 각각의 나라들에서 그 구성원들이 동일한 생각, 동일한 마음을 품고 난국을 헤쳐간다면 극복 못할 위기는 아닐 거란 기대였다.

 

포장마차를 나와 집을 향해 걸으며 나는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현실을 조심스럽게 더듬어 보았다. 분명 우리에게도 희망은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결집이었다. 한가지로 모든 이의 생각을 결합시키고, 지혜와 끈기 등을 모아다 불을 지핀다면 추진 에너지는 충분할 것이었다.

 

결단코 우리가 목표한 정점까지 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분열은 아니다. 독소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결단코 간과해선 안 될 것은 소소 구성원들의 생각의 향방일 것이다. 듣고자 하는 귀를 가져야만 한다. 지도자는 소수 구성원들의 생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심안을 가져야 한다.

 

옷섶을 파고드는 바람결에서 살을 에는 듯한 냉기를 느꼈다. 아직 겨울이 끝나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얼마 안 있어 겨울이 그 오만한 목을 꺾어 내리리라는 틀림없는 기대감이었다.

 

/송경태(전주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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