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기고] 새해 만경강을 거닐며 - 안세경

안세경(전주시 부시장)

70년대 중반 대학시절, 유일하게 암송할 정도로 좋아하던 시가 신동엽 시인의 '껍데기는 가라'였다. 허름한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시국에 대해 울분에 찬 토론을 벌이곤 했던 그 때, '껍데기는 가라'는 사회변혁을 꿈꾸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멋진 건배사가 되기도 했고,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진 골목길 가로등 아래 홀로 서 있을 때에는 만취한 정신을 퍼뜩 차리게 하는 주문이 되어 주었다. 또한 젊은 시절 매너리즘과 패배의식에 휩싸여 있을 때에도 열일곱 줄에 지나지 않는 이 시 한편은 나를 잡아매는 고삐이기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채찍이기도 했다.

 

수십 년이 흐른 지금에도 '껍데기는 가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함께 한 시로 여전히 애송시의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아니 올해 새해 벽두에는 전북의 젖줄이자 내 고향인 만경강 자락에서, 대한민국의 보고(寶庫)가 될 새만금 한 복판에서, 20대 무렵의 열정과 패기를 다시금 꺼내 '껍데기는 가라'라고 크게 외치고 올 참이다. 지금이야말로 호남 제일의 지역에서 전국 최고의 낙후지역이라는 결과를 낳게 한 껍데기를 일소하는 사자후를 외치고 지역의 미래를 위해 다 함께 뛰어야 할 때라 믿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과 전북발전을 견인할 새만금사업이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전주, 군산, 익산, 김제, 부안 등 새만금 주변부 지역을 중심으로 도민 모두가 미래로의 도약과 비상을 준비해야 하는 중대한 전환의 시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변혁의 시기에 구습을 벗어버리지 않는다면 그 즉시 도태되기 십상이다. 가속도가 붙은 새만금 사업의 발전에 발맞춰 도시 전 부문의 경쟁력과 지역가치를 높이는데 전력하지 않으면 낙후의 그림자는 진해지고 민생회복은 요원해질 것이다.

 

도민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본다. 오랜 기간 지속된 지역차별로 내성처럼 자리 잡은 패배의식과 열등감, 그리고 보수적 성향에서 비롯된 변화에 대한 거부감은 지역발전의 잠재력을 가장 두껍게 감싸고 있는 껍데기 중 하나로 꼭 극복해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 안에 있는 알맹이는 얼마다 다양하며 또 소중한지도 떠올려본다. 전북인은 전란의 포화와 온갖 역경 속에서도 태조어진과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낸 굳은 의지와 신념을 지닌 사람들이다. 이순신 장군은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라며 호남인의 애국심을 칭송했고, 보국안민(輔國安民)을 외친 동학농민군의 활동지로 불의에 당당히 맞선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 전북이다. 또 예로부터 먹을거리가 풍부했던 지역 사정은 시민들의 DNA에 예술과 문화를 즐길 줄 아는 풍류를 깊게 새겨 놓았고, 따뜻한 인정과 배려 역시 전북인이 지닌 고유한 미덕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경인년, 새해가 밝았다. 호랑이처럼 역동하는 기운으로 패배의식과 열등감, 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모두 떨쳐버리자.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굳은 의지, 문화적 감수성, 나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전북정신으로, 꾸준히 가꿔나가야 할 '향그러운' 알맹이임을 잊지 말자. 지역에 대한 꾸준한 성찰이야말로 지역발전의 가장 힘찬 원동력이 될 것이며 빛나는 내일을 열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더불어 도민 여러분께서도 개개인의 삶을 무겁게 감싸던 껍데기는 모두 벗어버리고 더 멀리, 더 높게 비상하는 한 해를 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안세경(전주시 부시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기획[팔팔 청춘] 우리는 ‘늦깎이’ 배우·작가·가수다⋯"이 시대에 고마워"

익산[딱따구리] 불법을 감내하라는 익산시의회

문화일반[안성덕 시인의 ‘풍경’] 모닥불

사건·사고정읍서 외국인 근로자 폭행 신고⋯경찰 조사 중

금융·증권李대통령 “금융그룹, 돌아가면서 회장·은행장 10년·20년씩 해먹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