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일영(기업은행 부행장)
주말 나들이 인파의 모습을 전하는 뉴스의 오프닝 영상이 눈길을 끈다. 새하얀 종이에 무수한 점이 박혀있는 모습의 이 영상은 다름 아닌 화천의 산천어 축제를 하늘에서 찍은 것이다. 올해 8번째 열리고 있는 이 축제엔 매년 100만이 넘는 인파가 몰린다고 한다. 북한강의 최상류 지역, 상수원 및 군사시설 보호구역 등 각종 개발금지 구역으로 묶여 있는 인구 2만 4천의 작은 군에 이토록 전국각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모처럼 직원들과 함께한 점심시간. 얼마 전에 거제도로 가족여행을 갔다 온 송과장이 여행 후일담을 들려주었다. 여행지에서 볼만한 곳은 어디어디이고, 거기에 가면 무슨 식당에서 어떤 걸 먹어야 하고… "송과장은 어쩌면 그렇게 잘 알아? 그 동네에 살았었어?"라고 누군가 묻자, 송과장은 "아뇨. 이번에 처음 갔었죠. 하지만 몇 개 유명 블로그를 통해 미리 가볼만한 곳과 맛집을 알아보았어요. 여행을 앞두고 장만한 네비게이션 덕도 톡톡히 보았죠. 길찾기와 운전에 대한 부담 없이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어요."
바야흐로 스토리의 시대다. 스토리가 있는 집은 깊은 산속에 있어도 흥하고 스토리가 없는 집은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어도 망한다. 스토리가 있는 집은 차도 못 들어가는 후미진 골목길 허름한 인테리어에도 대박을 내고 스토리가 없는 집은 넓은 주차장에 비싼 인테리어로도 사람을 끌지 못한다. 화천을 찾은 100만 인파는 무수한 스토리를 만들어내어 내년에도 다시 많은 사람들을 화천으로 부를 것이다. 송과장의 여행 후일담을 들은 몇몇 직원들은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거제도를 몇몇 블로그와 네비게이션에 의지해서 방문할지도 모른다.
세계적인 석학 다니엘 핑크는 정보화사회 이후 도래할 사회를 개념과 감성이 강조되는 하이터치의 시대라고 명명하고 스토리의 중요성을 역설한바 있다. 스토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사실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고 정보, 지식, 문맥, 감정 등을 하나의 패키지로 압축하여 중요한 인식작용을 하게 한다. 그래서 스토리는 요즘 비즈니스에도 점점 중요해 지고 있다. 기업들은 공급과잉 시장에서 자신의 상품과 서비스를 차별화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스토리를 이용하고 있다.
다가올 하이터치시대에 전북이 발전하려면 스토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전북은 이야깃거리를 많이 가지고 있다. 내장산, 변산, 고창 등 예부터 유명한 관광지에서부터 지리산둘레길, 임실치즈마을, 정읍한우마을 등 몇 해 전부터 새롭게 부상한 신흥관광지, 그리고 앞으로 스토리를 만들어 가야할 새만금개발사업 등등.
타향에서 고향을 생각할 때 항상 아쉬웠던 부분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산업화였다. 몇 해 전 필자가 은행 본부장으로서 전북을 담당할 때도 이는 항상 아쉬웠던 부분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스토리가 중요한 지금, 전북은 새로운 기회를 맞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도민 모두가 협력하여 '찾아오는 전북', '살고 싶은 고향'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재미있고 풍성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고일영(기업은행 부행장)
▲ 고일영 부행장은
1977년 기업은행에 입사해 전자금융부장, e-business부장, 종합기획부장, IT본부장 등을 거쳐 현재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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