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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① 편견이 장애다 - 출근길, 그사람

강경희 사회복지사(사회복귀시설 전주 '아름다운 세상')

 

출근길, 낯익은 얼굴이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아침 햇살이 눈부신지 미간을 찡그린 채 앞만 보며 걸었다. 아는 체를 할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그가 내 곁을 지나쳐갔다. 얼핏 본 그의 얼굴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은 듯도 했다.

 

벌써 10년 전이던가? 당시 내가 근무하던 정신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그는 손재주가 좋았다. 그가 손만 댔다 하면 망가진 것들이 멀쩡해졌다. 직원들은 고장 난 것이라도 있을라치면 으레 그부터 찾고 봤다.

 

그뿐 아니었다. 그는 시설 내의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고 늘 열심이었다. 그런 그를 원장님을 비롯한 우리 직원들은 직원보다 더 직원같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를 칭찬했다. 나 역시 제 일처럼 시설 일을 거드는 그가 고마워 가끔씩 작은 성의를 표시 하곤 했다. 그래 봤자 그가 좋아하는 큼지막한 수제비를 떠 주는 게 고작이었지만….

 

내가 기억하는 창식(가명)씨의 또 다른 모습은 항상 깔끔하다는 거다.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구두를 반짝반짝 광이 나도록 닦았고, 하얀 바지에 빨간 티셔츠를 꼭 갖춰 입었다. 그런 창식씨를 보며 직원들이 "우리 시설에서 창식씨가 제일 멋쟁이라니까!"라며 칭찬을 하면, 그는 수줍은 듯 살짝 미소만 지었다. 평소에도 창식씨는 누가 말을 걸면 보일들 말듯 미소를 띄는 게 전부였다. 하지만 그는 성실했고, 모든 이들에게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후 창식씨는 지인의 소개로 직장에 취업하고, 시설에서 함께 지내던 순임(가명)씨와 결혼식도 올렸다. 양가 부모의 승낙을 받았음은 물론이었다. 우리 직원들은 정신장애인도 멋진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참 좋은 사례라며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창식씨는 결혼 후에도 순임씨와 함께 종종 놀러 왔다. 어떤 날은 아이를 낳았다며 세 식구가 인사를 하러 오기도 했고, 뜨거운 한여름에 버스를 타고 땀을 뻘뻘 흘리며 찾아온 적도 있었다. 우리들은 창식씨네 식구와 시원한 수박을 쪼개 먹으며 회포를 풀곤 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내가 직장을 옮기면서부터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다시 나타났다. 내가 근무하는 시설에서 직업재활에 필요한 물건을 주문했는데, 그가 그 물건을 들고 왔다. 알고 보니 물건을 납품하는 곳이 창식씨가 다니는 회사였다. 예전에 비해 조금 마른 것 말고는 거의 변한 게 없어 보였다. 무척 반가웠다. 그동안 잘 지냈는지, 날 기억하는지, 순임씨와 아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것도 많았다. 그러나 함께 온 직원이 있어서 물어볼 수가 없었다. 혹시나 동료 직원이 그가 정신장애인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챌까봐서 였다. 그렇게 잠깐 얼굴을 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아침, 우연히 출근길에 마주치게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달려가 반갑게 인사라도 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창식씨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뒤를 돌아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여전히 앞만 응시한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예전 기억을 잊고 사회에서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뿐이었다.

 

/ 강경희 사회복지사(사회복귀시설 전주'아름다운 세상')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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