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재훈 사회복지사(사회복귀시설 익산'둥근마음재활원')
공연 순서를 보니 뒤에서 두 번째였다. 행사장 안에서 박수와 함성소리가 들릴 때마다 내 심장도 함께 뛰었다. 회원들 또한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며 회원들과 함께 공연할 춤 동작을 연습해 보지만 긴장은 여전했다.
판이 만들어진 건 대략 한 달 전, 아침 조회 때였다. 공동 작업장 환경 개선을 위해 일일호프를 열자는 얘기가 나왔고, 행사의 재미를 살리자면 공연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덧붙여졌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난데없는 불똥이 나한테 튀었다. 공연 중 하나로 회원들과 함께 댄스를 준비하라는 거였다. 오마이 갓!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나 이 상황을 벗어던지고 싶었지만, 나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또 이 역할을 떠맡게 되는지라 어쩔 수 없이 공연를 준비했다. 인터넷으로 음악을 검색해 춤동작을 따라해 봤다. 쉽지 않았다. 동영상을 다운받아 회원들과 함께 연습을 시작했다. 절망이었다. 다들 유연성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는 '목석'에 '몸치'에 '박치'들 뿐이었다. 공연은 한 달도 채 안 남았지, 연습 시간은 하루에 고작 두 시간밖에 없지, 난감할 따름이었다.
결국 회원들 가운데 '그나마' 자세가 좀 되는 정예멤버를 구성했다. 하나씩 하나씩 동작을 익혀나가자 회원들도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땀에 절어가며 연습에 열중하는 그들의 모습이 전문 댄스팀 못지않게 훌륭해 보였다.
"눈 좀 살짝 감아 보세요. 그렇게 꽉 감지 말고 살짝만 감으세요, 살짝. 그래야 눈 화장이 예쁘게 되요."
앞 순서가 진행되는 가운데 자원봉사자들이 준비해 온 메이크업 도구와 무대 의상으로 회원들의 변신이 시작되었다. 화장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남자 회원들은 서로를 가리키며 눈이 멍들었다며 장난을 쳤다. 남자회원 중 한 명은 짧은 치마를 배까지 끌어올리는 바람에 속옷이 치마 밖으로 훤히 드러났다.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나름 재미가 있는지 대기실은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그 덕에 모두들 긴장이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무대 위로 올라가 순서대로 자리를 찾아갔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하고 준비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스피커에서 '브라운아이드걸즈'의 '아브라카타브라'가 흘러나왔고, 회원들의 춤이 시작됐다. 허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회원, 리듬과는 상관없이 제멋대로 몸을 흔드는 회원, 나온 배를 앞으로 더욱 내밀며 춤을 추는 회원 등 완벽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공연장이자 일일호프 행사장인 웨딩홀이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관객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물티슈를 휙휙 돌리며 카메라를 꺼내 회원들 모습을 연신 찍어댔다. 어떤 이들은 휘파람을 불고, 어떤 이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까지 올라와서 박수를 쳐주었다. 그런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공연을 하는 회원들은 그 순간을 즐겼다. 노래가 흐르는 4분여 동안 그곳엔 장애인, 비장애인이 아닌 오로지 공연자와 관객만 있을 뿐이었다.
※ 이 캠페인은 전라북도·전북일보·국가인권위원회 광주인권사무소가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 차재훈 사회복지사(사회복귀시설 익산'둥근마음재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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