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호령 발판 만든 선구자…중3때 전국체전 우승…은퇴 후 은행원으로 제2인생
요즘 정구는 비인기종목이어서 웬만한 사람들은 몇명이 경기를 하는지, 구체적인 경기룰이 어떻게 되는지조차 잘 모른다.
하지만 한때 정구는 매우 인기있는 경기여서 학생들은 물론, 지역 유지들이 즐기는 멋진 종목이었다.
근근히 명맥만 이어오던 전북정구를 전국 최정상에 올려놓으며, 12년동안 국가대표를 지냈던 정구인 엄용옥씨(64)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전주가 고향인 전북정구협회 엄용옥 고문은 전주동중, 전주상고를 거쳐 전매청과 전북은행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전국 무대를 석권했다.
그는 특히 전북은행에 행원으로 입사해 대리, 차장을 거쳐 지점장을 지내는 등 은행원으로서도 나름대로 성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곤 한다.
지금은 전주시 삼천동 해성고 앞에서 공인중개사로 활동하면서 조용히 지내고 있으나, 자신이 정구인이란 생각은 한번도 떨쳐본 적이 없다.
12년간 국가대표를 지낸 그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 등에도 출전했고, 도 정구협회 전무이사와 기획이사를 역임한 뒤 현재는 고문을 맡고 있다.
엄용옥씨가 전주동중 1학년에 막 입학했을때다.
하루는 체육교사가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 등을 내주며 학생들에게 맘껏 뛰놀도록 했다.
한, 두시간 학생들을 지켜보던 김종섭 당시 체육교사는 단 한명의 학생을 콕 찝더니 "너, 이따 수업끝나고 교무실로 와" 하더란다.
"다른 친구들의 공을 빼앗아 혼자만 오래 드리블해서 혼내려나"하는 걱정을 하면서 교무실에 가자 "너 운동 잘하는데 정구해라"한 것이다.
혼날까봐"예, 알았습니다"한 것이 인연이 돼 엄 씨는 평생 정구인의 길을 걷게된다.
그날부터 엄용옥씨는 전주 남부시장 중앙극장 근처에 있던 정구전용구장을 매일 찾아 정구를 배웠다.
2학년이 되면서 그는 학교에서 선발하는 엔트리(6명)에 뽑히며 주전의 영광을 안았다.
하지만 주전에서 탈락한 3학년 선배들의 시샘이 더해지면서 그는 선배들로부터 구타 등 괴롭힘을 당해 몇번이나 운동을 그만둘뻔 했다.
운동선수는 으레 감독한테 맞고, 선배들에게 맞는 어두운 시대의 한 단면이었다.
하지만 중 3때 전국체전에 출전해 우승하면서 그는 전국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돼 유명세를 구가한다.
당시엔 소년체전과 전국체전을 함께 했는데, 그가 첫 우승컵을 들어올린 이후 전북 정구는 이후 약 20년간 전국무대를 호령하게 된다.
지금의 전주역 근처에 살던 엄씨의 집에는 "어린 학생이 장한 일을 했다"며 매일 사람들이 찾아왔고, 학교에선 전교생이 죽 늘어선 가운데 박수를 받으며 걷는 영예를 누렸다.
전주상고에 진학해서도 그는 3학년때 또다시 전국체전에서 우승했고, 실업팀에서도 잇따라 우승하는 등 전국체전에서만 10개 이상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정구경기는 단 하나의 금메달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특정 선수가 그렇게 많은 금메달을 따낸다는 것은 기적이었다.
전남에서 온 이경천씨와 짝을 이뤄 출전하면 이들을 꺾을 팀은 어디에도 없었다.
매년 2∼3개 대회를 휩쓸며 그의 인기는 상한가를 쳤다.
골프나 테니스가 별로 없던 시절, 도 단위 기관장들은 매 분기별로 정구대회를 통해 친목을 도모했다.
특히 전북과 전남지역 도 단위 기관장들은 정구대회를 통해 활발한 교류활동을 했고, 그때마다 엄용옥 고문은 기관장들의 코치 역할을 하며 친분을 쌓았다.
이춘성 전 전북지사는 정구를 무척 좋아해 시간 날때마다 엄씨를 불러 함께 운동을 했다.
황인성 전 지사는 운동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국대회 우승을 하고오면 선수를 항상 음식점에 불러 극진한 대접을 하며 "당신이 전북의 위상을 높였다"며 그렇게 좋아하곤 했다.
지금도 그 모습이 선하게 떠오른다는게 엄 고문의 말이다.
전북은행에 들어와 선수생활을 하던 그도 나이가 차고, 중견 간부가 되면서 선수생활을 접었다.
그 대신 은행원으로서 성공하려고 무진 애를 썼다.
전북은행에 다니면서 하루는"운동한 사람이 뭘 알겠느냐"는 핀잔을 들은 이후 피눈물을 흘리며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대리 시험을 앞두고 당시 경원동 전북은행 본점 지하 벙커에서 6개월동안 잠을 자며 악착같이 공부해 합격해낸 일화를 기억하는 후배들이 지금도 있다.
전북은행 재직시절, 그는 김병석 전 도의회 부의장, 김호서 현 도의장 등과 함께 근무하기도 했는데 훗날 이들은 지방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전북은행 본점 관재과장 시절, 현 금암동 본점 터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는 엄씨는 준공식을 보지 못하고 은행을 명예퇴직한다.
지금은 한가롭게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자신은 누가뭐래도 평생 정구인이라는 그는 "언젠가 후배 정구인들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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