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레슬러, 미·소 냉전에 올림픽 꿈 '좌절'
대한민국 올림픽 참가 사상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한국사람으로서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사람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했던 고 손기정이었다.
하지만 일제지배하에 출전했던 그의 가슴엔 태극기가 아닌 일장기가 붙어있었고, 결국 그 유명한 일장기 말소사건이 일어났다.
태극마크를 달고 첫 금메달을 따낸 사람은 1976년 몬트리얼 올림픽 레슬링에 출전했던 양정모였다.
체급은 달랐지만 양정모와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뒹굴며 올림픽 금메달을 꿈꿨던 전북 출신 강용식(61)씨의 이야기를 다뤄봤다.
전주에서 태어나 신흥중때 레슬링을 시작한 강용식씨는 영생고, 원광대를 졸업한 뒤 주택공사에서 선수로 활동했다.
선수로 활동한 16년 동안 그는 전국체전에서만 무려 2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전국단위 대회중 가장 권위있는 대회가 전국체전이었던 시절, 일개 선수가 24개의 금메달을 따낸 것은 전 종목을 통틀어 전북에서는 물론, 전국적으로도 유래가 없는 일이다.
신흥고에 들어갔으나 영생고를 졸업하고, 경희대에 입학했으나 원광대를 졸업한 그의 이력만 봐도 파란만장한 선수생활을 짐작케한다.
신흥중, 신흥고를 다니면서 전주시 고사동 종합체육관을 드나들던 강씨는 당시 코치겸 전무이사였던 구기섭(전 체육회 사무처장)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레슬링 수업을 받는다.
전국체전 금메달 24개의 대위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강 씨가 천부적으로 유연한 허리를 타고난데다, 자유형과 그레코로만형 둘 다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적으로 두 종목을 다 뛴 선수는 몇몇에 불과하고, 더욱이 동시에 메달을 따낸 사람은 강용식을 빼곤 유래를 찾기 어렵다.
레슬링은 힘이 중요할 것 같지만 사실은 얼마나 유연성을 갖추고 있는가 하는게 관건이다.
다 끝난것처럼 보였던 경기가 유연한 동작 하나에 의해 뒤집어지는 일이 허다하다.
그래서 선수의 움직임을 보고 특정 선수가 이겼다고 판단하지 말고, 반드시 심판의 최종 판정을 지켜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천부적인 유연성을 가진 이가 바로 강용식이었다.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만 하면 항상 메달을 따냈지만 그는 74년 이란에서 열린 제7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심판 텃세로 다 이긴 경기를 놓치면서 통한의 은메달에 머문다.
그 대회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전북 출신인 강용식·배기열·안한영은 은메달을 땄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에 첫 금메달을 선사하며 전 국민에게 감동을 줬던 양정모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한발 앞서 나갔다.
태릉 선수촌 시절, 체급이 달라 라이벌은 아니었으나, 강용식과 양정모는 서로 상대의 실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함께 생활하면서 양정모는 축구나 배구 등 구기종목 하는 것은 별로여서 처음엔 눈여겨 보지 않았는데, 레슬링을 하는 걸 보고는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고 여겼죠."
강씨의 회고담으로 양정모는 그의 2년 후배다.
1980년이 선수 강용식에겐 불운이 닥쳤다.
모스크바 올림픽 출전권까지 확보한 가운데 하루하루 피말리는 훈련을 해가며 선수로서의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던 강용식에게 하루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이 당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일제히 올림픽 보이콧 카드를 들고나선 것이다.
꼭 4년뒤 소련과 동구권은 미국 LA올림픽 보이콧으로 응수했다.
꿈을 잃은 선수에겐 모든게 허무해졌고, 근면과 성취욕에 불타던 그의 눈빛은 게으름과 자포자기로 바뀌었다.
이 대목을 설명하는 순간, 강 씨의 얼굴엔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마치 영화 '실미도'에서 북파 공작이 무산돼 버린 특수부대원들의 허탈한 심정을 연상케 한다고나 할까.
올림픽 출전이 무산된 1980년, 강 씨는 전주에서 열린 제61회 전국체전때 대통령 앞에서 선수대표 선서를 하는 영광을 안았으나, 그에겐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 직후 사실상 선수생활을 접었기 때문이다.
한 해를 쉬고, 1982년 경남 진주에서 열린 63회 전국체전때 또다시 출전 90kg급 자유형에서 우승한 그는 그레코로만형(90kg급)에도 출전했으나 경기도중 팔이 빠지면서 바로 은퇴하게 된다.
전북체고 코치를 지내면서 키워낸 애제자가 김성태·김승민 등이다.
전북 레슬링 선수의 인맥은 세계레슬링연맹이사였던 김익종(진안), 국가대표 감독을 지낸 안천영(군산), LA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유인탁(김제) 등으로 이어지는데 그의 뒤를 이을 후배는 과연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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