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일반기사

전북대 아마추어 밴드 ‘싱건지’

‘아이돌 열풍’에도 “실력도 인기도 우리가 최고”  자긍심...내년 군입대 앞두고 마지막 공연… 인생의 전환점 계기로

▲ 전북대‘싱건지’33기가 전북대 구정문 앞‘까치섬’에서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전북대‘싱건지’

아이돌(idol·십대 우상) 열풍이다. 방송사마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둘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하나로 이어진다. 과거엔 ‘대학가요제’가 대세였다. 요즘엔 사회자가 이효리라는 것만 알 뿐, 대상이 누구인지도 관심 밖이다. 그래서 궁금했다. ‘우후죽순’처럼 번성했던 대학 ‘스쿨 밴드’의 오늘….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시대, 그들은 ‘스펙 쌓기’에 혈안인 메마른 회색 청춘과는 달랐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였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20일 오후 7시 전북대 동아리전용관 지하 1층. 이 대학 아마추어 밴드 ‘싱건지’(Sing-건지) 33기를 만났다. △베이스기타 이승환 △드럼 윤정헌 △보컬 길호성(이상 기계공학과) △기타 석종민 △기타 김혁준(이상 기계설계공학과). 2010년 입학한 21살 동갑내기다. 모두 대학에서 처음 악기를 잡았다. 이날은 김혁준 씨만 빠졌다. 싱건지는 1978년 5월 8일 창단됐다.

 

△ 입대 전 ‘마지막 공연’…“실력도 인기도 우리가 최고”

 

내년 초 군 입대를 앞둔 이들은 지난 18일 ‘라이브클럽 투비원’에서 마지막 공연을 했다. 싱건지 33기 통산 26번째 공연이었다. 이들은 같은 중앙 동아리 밴드인 ‘토러스’, ‘육자배기’, ‘야망’보다 실력과 비주얼 면에서 앞선다고 자부한다.

 

“(전북대) 구정문 앞 ‘까치섬’에서 공연하면 보통 100여 명이 모여요. 무대 위에서 보면 빽빽이 차요.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무대를 쌓지만 관객 수는 현격히 차이가 나죠.”

 

하물며 단대 밴드와의 실력 차는 더 두드러진다. 석종민 씨는 “우리가 진공관이 달린 앰프(amplifier·증폭기)라면, 걔네는 트랜지스터를 장착한 앰프”라고 비유했다.

 

이런 그들도 최근 KBS에서 종영한 밴드 서바이벌 ‘톱(TOP)밴드’에 나오는 밴드들과는 거꾸로 ‘천지(天地) 차이’라며 옷깃을 여몄다.

 

 

△ ‘아이돌 대세’, 밴드 설 자리 줄어

 

석종민 씨는 “밴드보다 아이돌이 유행이라 관객들도 노래하고, 방송 안무 하는 애들을 더 쳐다본다”며 “저희도 아이돌 그룹 노래를 편곡해서 연주할 때가 반응이 더 좋다. 그래서 슬프다”고 말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탓에 밴드의 입지도 좁아졌다.

 

이승환 씨는 “외부 공연은 30만 원부터 60만 원까지 (출연료를) 받는다”며 “보통 대학 총동아리연합회 공연분과에서 (외부) 공연을 나눠주는데, 요샌 밴드를 불러달라는 연락 수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과거 선배들은 1년에 최소 50번 이상 공연했지만, 지금은 그 절반으로 줄었다는 것.

 

 

△ 공연 비용 대려 ‘알바’는 기본, 스폰서 구하기도

 

이들에 따르면, 보통 한 밴드가 ‘까치섬’에서 공연하려면 무대 비용 등 200만 원이 든다. 뒤풀이까진 300만 원이 필요하다.

 

이들이 모두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다. 석종민 씨는 전북대 주차요금 정산소, 길호성 씨와 윤정헌 씨는 닭갈비집, 이승환 씨는 호프집에서 일한다.

 

공연을 앞두고는 ‘스폰서’(sponser)를 구하러 학교 앞 상점가를 누빈다. ‘팸플릿에 광고를 실어드리겠다’고 하면 단골집에선 5만 원부터 10만 원까지 내지만, 대개는 문전박대당하기 일쑤다.

 

 

△ 그들이 밴드에 미친 이유

 

주위에선 여전히 학업보다 밴드에 ‘미친’ 이들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교수님은 한심하게 쳐다봐요. ‘너는 왜 공부는 안 하고, 동아리만 하느냐.’ 저희 과는 (과 공부에) 매진하면 취업이 되는 과라서 상담할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학점 얘기도 나오고….”

 

다른 멤버들이 ‘윤도현을 좋아하고, 부르는 성향도 비슷하다’고 말한 길호성 씨는 “미래를 생각하면, (매일 1시간 이상 합주하는 게) 안 좋다는 걸 안다”면서도 “무대 위에서, 남들 앞에서 공연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10%도 안 될 거다. 사람이 모이고, 환호가 클수록 더 잘하게 된다. 마약 같다”고 ‘밴드 예찬론’을 폈다.

 

석종민 씨는 “원래 고등학교 때까진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밴드 하면서 대범해졌다”며 ‘밴드=인생의 전환� �繭箚� 말했다. 이승환 씨는 “지금만큼의 열정이라면, 제대 후 뭐든 잘할 자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스스로 다른 가수들의 곡을 카피(copy·모사)하는 ‘카피 밴드’라고 불렀다. 자작곡도 아직 하나뿐이다. 제목은 없다. ‘같이 놀아 봐요. 이 시간을 즐겨 봐요. 오늘을 위해 우린 만난 거잖아요’라는 후렴만 똑같고, “가사는 그때그때 변한다”고 이승환 씨가 귀띔했다.

 

 

△ 밴드에 대한 ‘오해’…부모님은 제일 든든한 후원자

 

이들은 밴드를 하면서 오해도 많았고, 부모님 반대도 거셌다고 했다.

 

이승환 씨는 “밴드 하면 오토바이, 술, 담배는 기본이고, 질 나쁜 ‘양아� �湧� 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와 보니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끝까지 남더라”고 말했다.

 

경기도 천안이 집인 윤정헌 씨는 석 달 전부터 동아리방에서 먹고, 잔다.

 

‘딴따라’ 하는 아들을 말리던 부모님을 피해 가출(?)한 것이다. 그는 “얼마 전 부모님을 만났다. 뺨부터 맞을 줄 알았는데, ‘건강했냐’고 물으셨다”며 “그동안 속에 담아놨던 것을 다 토해냈고, 부모님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금은 부모님이 이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석종민 씨는 동아리방에 놓인 액자를 가리키며 “아버지(석상문 씨·49)가 (지난 10월) 정기 공연 때 찍어준 단체 사진”이라며 웃었다.

 

 

△ 음악은 이상에, 꿈은 현실에 뿌리를 박고…

 

다른 대학 락 페스티벌에서 여러 번 입상한 이들이지만, 지난 8월 전주 남부시장에서 열린 ‘제2회 60W’에선 뼈저린 실패를 맛봤다.

 

이들은 “대회 전 합주도 못 하고, 공연하는 와중엔 서로 맞지도 않았다”며 “실력이 출중한 인디밴드들을 보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난다, 긴다’ 하는 밴드들조차 무명(無名)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공연만으론 생계유지가 빠듯해 대부분 부업을 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

 

“그래서 요즘은 밴드가 원(one) 기타, 원 베이스, 원 드럼으로 기타(연주자)가 노래도 부르고, 멤버 숫자도 줄이는 추세예요. 그만큼 페이(pay)를 더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음악으로 성공하고, 밥 먹고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일까. 이들의 꿈은 하나같이 현실에 뿌리를 박고 있었다.

 

윤정헌 씨는 ‘현대자동차’, 이승환 씨는 ‘조립 관련 공기업’, 석종민 씨는 ‘생체공학자’, 길호성 씨는 ‘LS엠트론’ 등 매우 구체적으로 겨냥했다.

김준희
다른기사보기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100
최신뉴스

오피니언[열린광장]지방의회, 왜 필요한가에 대한 시민과의 약속

오피니언[기고]식물과 미생물의 은밀한 대화를 쫓는 사람들

오피니언성과로 판단해야(오목대)

오피니언[새 아침을 여는 시] 마음의 문-이근풍

정치일반[엔비디아 GTC 현장을 가다] ①산업 재편과 문명적 도약 예고한 젠슨 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