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수 진안우체국장·수필가
진안에 들어와 3년을 살다보니 농촌 생활이 훤히 보인다. 두드러지는 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1.5차 산업의 눈부신 발달이다. 홍삼을 비롯해 각종 과실과 채소류 그리고 육류 등의 가공기술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과물 시장이나 도매시장에 통째 출하하던 농·축산물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가공된 형태로 소비자를 찾아가고 있으니 대견하다.
다른 하나는 주민이 마을회관에 모여 공동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이 현상은 농한기인 겨울철에 절정을 이룬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한자리에 모여 낮 시간을 공유하고, 저녁까지 같이 먹은 후 잠잘 때가 돼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이는 분명 새로운 풍속도다. 공동생활을 하다 보니 어른을 공경하는 좋은 풍습이 되살아나고, 세시풍속까지 재연되고 있다.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월 대보름을 지나면서 어렸을 적에 이웃마을 달집태우기(속칭 '망우리') 작전을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애써 만든 달집 점화를 이웃마을 복병에게 내주고 나서 당한 마을의 청년들은 망연자실하다 사태 수습에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뭉뭉한 연기 속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똘똘 뭉쳤고, 다음해에는 꼭 이겨내고야 마는 저력을 과시했다. 그렇게 끈끈한 마을 이고 이웃이었다.
그때의 기운과 단결심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마냥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런 변화상에 착안해 우리 진안우체국은 11개 모든 우체국이 지난해부터 마을회관을 방문, 공동관심사를 논의하고 있다.
참살이 마케팅 방향, 물류비용 절감방안, 그리고 우리 상품이 지역경계를 어떻게 넘어서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 우리는 우선 '블로그'를 통한 원투원 마케팅을 해법으로 제시하고 군내 여성농업인대표 100여명을 초대하여 교육한 바 있다. 이 밖에도 금융상품, 보이스 피싱 피해 근절, 다문화가정 적응력 향상 등에 대해서도 많은 의견을 나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어르신들이 문화예술의 향기에 목말라 한다는 것이다. TV시청, 화투놀이 등으로는 감성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시대적 분위기 때문이려니 싶다. 2월 9일에 방문한 '마령면 평지'마을은 전주 '함초롱 만돌린 봉사단'이 함께해줘 큰 도움이 되었다. 만돌린으로 연주하는 흘러간 가요는 사람의 심금을 울렸기에 좌중은 깊은 감흥에 빠져 들었다.
강원도 평창에서 '감자 꽃 스튜디오'를 성공적으로 운영해 문화 전도사로 갈채를 받고 있는 이선철 대표는 농·산촌 어르신들의 음악적 감수성이 생각보다 높다고 말한다. 문화의 향유! 이는 어르신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이슈이자 의욕을 부르는 기제임을 새삼 깨닫는다. 마을회관을 방문하면서 농촌이 생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다. 고령화 농촌은 문자나 화면 속 이야기가 아닌 엄연한 현실이기에 응원 또한 현장감이 있어야 함을 절감한다.
얼마 전에 로드 스쿨러 일행이 진안군 내 여러 곳을 방문했다. 그들이 교량 난간에 남긴 초록 물고기 유영하는 그림이 희망을 노래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체국은 내일도 모레도 마을을 찾아 어르신들에게 희망을 드리는 아름다운 동행을 계속할 것이다.
※로드 스쿨러(Road-schooler)란 학교를 벗어나 다양한 학습공간을 넘나들며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고 교류하고 연대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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