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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몰러 가는 농부의 행복

채영규  농부

 

삶의 기쁨은 큰 것에서만 오는 것은 아니지요. 소소한 일상에서 오는 것도 기쁨과 행복을 줍니다. 문밖 떼 까치가 겨울 하늘 향해 소리치고 사랑채 대청에 간직한 늙은 호박 힘겹게 가져 옵니다. 보기만 해도 배불러요. 큰 칼로 서걱 서걱 호박 속 불그스레함이 환하게 비쳐옵니다. 석류 알처럼 주렁주렁 붙어 있는 호박씨를 손으로 주섬주섬 긁어 종자를 받는데 허연 서리 얼음이 손을 아릿거리게 하네요. 끌어 모은 호박씨 신문에 담고 방문 앞마루 햇빛에 널었습니다.

 

근대의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한 한옥에서 어릴 적 듣던 그 소리. 그 바람. 그 풍경 속에 녹아내린 내 모습 자애로움으로 옵니다.

 

지난 가을에 거둬들인 수수 대, 옥수수 대, 깨 대, 콩 대, 국화 대, 백여년 된 구들 아궁이에 태우기라도 하면 황순원의 소나기, 메밀꽃 피는 달빛이 부럽지 않아요. 서릿발처럼 차가운 밤하늘 유난히 맑고 빛나게 다가오는 별빛과 달빛 추위로 몸이 달달 떨려도 아랑곳 않고 서있는 여유, 물론 뜨거운 구들장 방을 믿기 때문이지만요. 자연 속에 자연을 품고 자연을 먹고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데는 뭐 그리 큰 장신구가 필요하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좀 거친 것 같지만 속은 든든함으로 뜨뜻해져 옵니다.

 

짚더미처럼 쌓인 깨 대, 콩 대, 국화 대에 몸을 던져봅니다. 어릴 적 눈 위에 몸을 던져 사진 찍듯이 말입니다. 약간의 먼지와 함께 국화 향, 들깨 향이 가슴 저리도록 좋네요. 사람이 사는 게 무엇인지 나만의 전원 속에서 조용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흙에서 일한다는 것은 삶을 가꾸는 일과 같습니다. 우리 자신이 논과 밭, 자연 그리고 우주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고 우주 속에 내가 내 속에 우주가 내재되어 있음을 느끼는 것이지요. 땀 흘린 내 노동은 내 식탁에 먹을 것들로 풍성한 채소와 과일들, 양식들이 쌓여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가 펑펑 솟아나오고 우리 집 까젭이(장닭), 뚠보(암닭)는 덩달아 꼬끼오 꼬꼬꼬 요란을 떨어대고, 겨울인데 나의 꽃밭에서는 목련, 작약, 수선화 꽃들이 벌써 봄을 준비하고 있고요. 이런 모습들을 보면 매우 감동적이고 나에게 주어진 이 작은 공간 안에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고 지킬 수 있다는 것에도 뿌듯함과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에 배가 고픈 것인지도 모릅니다. 불확실한 미래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지만 세상은 비바람이 없는 세상은 아닙니다. 비도 오고, 해도 뜨고, 눈도 오는 게 세상입니다. 비만 오는 것도 아니고, 해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도 오고, 해도 뜨고 하는 게 세상입니다. 자고로 이기고 나가야 좋은 것이 온다고 우리 어머님께서 말해줍니다. 하늘을 봐요. 맑잖아요. 자연을 존중하면서 하는 농사일 좀 힘든 것 같지만 결국은 가장 행복해져요. 풀잎 하나하나 거기에도 다 의미가 있고, 자신의 존재가치만큼 존중받고 사랑받고 싶어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어요. 대지에서 뿜어 나오는 생명, 참 경이로와요. 자연의 순리, 순응, 이치가 예전엔 무겁고, 갑갑하고, 덜컹거림이었어요. 그런데 이젠 자연이 오히려 나를 따라와요. 나 하고자 하는데로 순응해 줘요. 얼마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봄이 기다려집니다. 얼은 땅을 용케도 뚫고 새파란 순 나오고, 노오랗게 봉우리 맺고 꽃필 수선화가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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