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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형, 미안해

서동석 호원대 행정학과 교수

 

형,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이었네요. 소슬바람이 선듯 다가서기도 하는 걸 보니 문밖은 어느새 가을의 문턱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테니스를 치거나 운동을 하면서 알차게 시간을 보내셨던 형. 구수한 입담으로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었지요. 부족한 저에게 항상 넉넉한 가슴을 보여주셨던 인생의 선배이기에 저는 늘 형이 고마웠지요.

 

80년대 중반쯤에 중앙로 큰 길 가에 '가게'를 내고 이웃들과 정을 나누셨지요. 화려했던 예전이나 인구가 빠져나간 지금이나 중앙로는 군산 정신의 중심임에 틀림없지요. 그런 중심지이지만 수 십 년이 지났어도 여름만 되면 물난리를 겪는 '아픔 많은 동네'이기도 하지요.

 

물난리를 겪으면서 형과 함께 밤을 새던 날을 떠올렸지요. 형이 세상을 뜬 지도 벌써 몇 년인데, 오늘은 형 생각에 가슴 한 켠이 아려 옵니다.

 

가게 안으로 물이 넘치는 걸 막느라 형수와 함께 밤을 새기도 했었지요. 자동차가 지나가면 파도처럼 밀려오는 물을 밀어내느라 발을 동동 거리기도 했고요. 1층에 물이차면 가재도구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며 안절부절 했었지요. 벽돌과 모래주머니로 출입문을 막아 놓아 보았지만 늘 소용없는 일이 되곤 했었죠. 허탕하게 앉아 하늘만 자꾸 올려 보던 그 날, 형의 그 모습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형이 떠나고, 또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 중앙로의 아픈 모습들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군산의 옛 도심지 물 난리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이 반복되고 있고요. 형하고 가게 앞에 쪼그리고 앉아 물에 젖은 물건들을 닦던 그 날. 지금도 그와 같은 일들이 계속되고 있지요.

 

기록적인 비가 내렸다는 지난 8월의 물난리로 요즘 온 동네가 시끄럽습니다. 누구는 '천재'라고도 하고 또 누구는 '인재'라고 주장합니다.

 

저는 영수형과 같이 오랫 동안 물난리를 겪었던 한 사람으로써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어디에다 하소연 할 데도 없는 것 같아요. 지방행정부인 군산시에서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한답니다. 어떤 시민 단체에서는 작년에 이어 똑 같은 수해가 났으니 '인재'라며 '폭우피해 공동대책위'를 구성해 실상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군산시의 태도는 예전에 형이 살던 때와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아무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더군요. 모두가 '모르쇠'이고 입만 열면 '복구가 우선'이라는 논리입니다. 이 때만 지나면 잊혀 질 거라 생각하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해마다 물난리를 겪으면서도 묵묵히 군산을 지켜온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을 겁니다. 백중 사리도 아닌데 물이 빠지지 않은 그 이유가 어디 있는가를 말입니다.

 

영수형. 이 가을의 문턱에서 알곡이 영그는 좋은 일들만 얘기해야 하는데 미안합니다. 제가 형에게 더 미안한 이유는 그 난리를 겪던 형수 보기가 더욱 민망해서이지요. 형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이제 물 난리 좀 안났으면 좋겠다."는 거였는데, 그 작은 소망하나 이뤄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합니다.

 

수 십 년이 지났어도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이라면 악착같이 치료해야겠지요. 저부터 앞장 서서 이런 물난리가 어떻게 해서 고쳐지지 않는지 따져보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언제가 먼 나라에 계신 형을 볼 면목도 서고, 눈가가 마를 날이 없는 형수 보기가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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