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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김병종·안숙선을 뺏길 셈인가

석달 전쯤 74세의 원로배우 박근형 선생을 인터뷰차 만난 적이 있다. 정읍경찰서 맞은편 찻집에서 였다.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 1시간 30분가량 얘기를 나눴다. 점퍼차림으로 나타난 박 선생은 너무도 꾸밈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인상적인 것은 "50년 넘게 한 우물만 팠는데 연기가 싫증난 적이 없느냐?"는 물음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직도 대본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말이었다. '살아있는 연기 교과서'라는 찬사가 실감났다.

 

또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고향에 대한 애정이었다. 박 선생은 몇 년 전부터 고향에 자주 내려 온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그마한 서당같은 무료공간을 만들어 어린아이들과 놀면서 책도 읽고 연극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연기를 할 수 있는 소양을 키워 줄 예정"이라고 들려줬다. 꽤 오래 전부터 그런 계획을 세우고 고향에 무언가 공헌하겠다는 생각이 너무 고마웠다. 그 결실(연기연구소)이 올 3월이면 열매 맺을 것이라고 한다.

 

정읍시 인구는 1980년 22만 명을 넘었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딱 반토막이 났다. 본정통을 지나가봐도 빛 바랜 담벼락마냥 윤택이 나질 않는다. 이런 현상은 전북 어딜 가도 마찬가지다. 서울 등 수도권은 물론 부산이나 광주에 갔다 전북에 돌아올 때면 초라함이 확연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에서 소외된 탓이 크겠으나 문제는 앞으로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는 점이다. 정치적으로도 야지(野地)여서 특단의 배려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계속해서 인구는 줄고 지역개발의 동력도 뚜렷이 내세울 게 없다. 언제까지 새만금 타령만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렇다면 스스로 동력을 찾는 수 밖에 없다. 그것이 문화자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살아있는 인물을 활용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그런데 도내 자치단체들은 이에 관심이 적은 것 같아 안타깝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올해 80세인 고은 선생은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르는 작가다. 그의 작품이 20여 개국에 번역돼 국경을 넘는 영감을 주고, 미국과 유럽 등 여러 나라의 초청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그를 자치단체들이 가만 놔둘리 없다. 현재 거주하는 경기도 안성은 물론 수원, 파주, 강원도 춘천과 태백이 서로 모시기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수원시는 2015년까지 100억 원(부지매입비 제외)을 들여 '고은문학관'을 짓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정작 고향인 군산은 그의 대표작인 '만인보'를 형상화한 조각상 건립 계획이 고작이다.

 

또 문화자원의 보고인 남원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양화가인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나 안숙선 명창 등의 문화자원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김 화백에게도 여러 시군에서 그의 미술관을 짓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향인 남원은 물밑에서 얘기가 오갈 뿐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 국악계의 프리마돈나 안숙선 명창의 경우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고 있다. 남원은 가왕(歌王)이자 동편제의 시조인 송흥록을 비롯해 송광록, 장재백, 유성준, 김정문, 강도근 등으로 이어져 온 판소리의 본가다. 그 자랑스런 맥을 안숙선이 잇고 있다. 이들 말고도 조선의 마지막 춤꾼이라는 남원의 조갑녀(90), 군산의 장금도(84) 등도 보석같은 분들이다.

 

지금 자치단체들은 문화 스토리텔링 발굴에 혈안이 돼 있다. 얼마전 포항시는 소설가 성석제에게 1억 원을 대주며 포항사투리가 들어가는 작품을 써달라고 의뢰했다. 또 울진군은 김주영의 소설 '객주'집필에 1억8000만 원을 지원했다. 울진의 보부상 길을 재조명 해달라는 뜻에서다. 도내 자치단체들도 살아있는 지역출신 문화인물 활용과 스토리텔링 발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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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진 cho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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