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25 22:25 (Tue)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조상진 칼럼

[조상진의 열린생각] 전주와 경주 APEC

Second alt text

이달 초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가 성공리에 끝났다. 회의가 열린 경주는 한동안 한국과 세계의 임시수도 같았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을 비롯해 갓 취임한 일본 다카이치 총리 등 20여 개국 정상들이 모여 세계적 화두를 논의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정상회의가 끝난 후 “영혼까지 갈아 넣으며 총력을 다했다”고 말해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를 보여줬다.

경주에서 열린 이 회의가 성공한 이유는 뭘까. 세계사적 대전환기에 한국의 경제적 위상이 높아진 점도 있겠지만 K컬처 등 한국의 문화적 저력이 뒷받침된 덕이 아닐까 싶다. 회의 기간 내내 나는 경주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같은 천년고도(古都)로서, 경주의 눈부신 성과가 어디서 온 것인지, 만약 전주에서 이런 국제적 회의가 열린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했다.

우선 경주부터 보자. 경주는 BC 57년에서 935년 통일신라가 멸망할 때까지 천년(992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17만8천여 호가 살았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번창한 국제도시였다. 4인 가구로 치면 70만명이 넘는 도시로, 당나라 수도 장안(長安)과 견줄만한 규모였다. 금으로 입힌 집(金入宅)이 35채가 있었고 절과 탑이 별처럼 가득했다. 하지만 고려 이후에는 한반도의 동남쪽 귀퉁이에 치우친 탓에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60∼70년대는 중고등학생들의 수학여행지로 겨우 명맥을 유지했다. 그러다 1970년대 초, ‘경주관광종합개발 10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2019년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엄청난 재원이 투입되었다. 그 결과 경주는 독보적인 역사문화도시로 자리 잡았다.

그 저력이 이번 경주 APEC 회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한미·한중 정상회의가 열린 국립경주박물관에는 우리나라 금관 6점을 한데 모은 특별전을 열어 ‘황금의 나라 신라’를 세계에 자랑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에게 선물한 천마총 금관모형과 나전칠기 쟁반, 그리고 지드래곤 공연 등은 외신을 타고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이와 함께 솔거미술관, 우양미술관, 오아르미술관, 경주 플레이스C에서는 굵직굵직한 전시와 부대행사가 열려 눈길을 붙잡았다.

그러면 천년고도 전주는 어떨까. 전주는 후백제의 왕도요 조선왕조의 탯줄이다. 한 도시가 두 왕조에 걸친 경우는 전주가 유일하다. 후백제는 비록 존속기간이 짦았으나 중세의 문을 활짝 연 역동적인 국가였다. 영역도 호남과 영남, 충청을 아울렀으며 고구려 영토까지 회복하려 노력했다. 이후 조선왕조를 탄생시켰고 태조 이성계의 발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있는 곳이 전주다.

이번 경주 APEC에서 봤듯 이제는 역사와 문화의 시대다. 단순히 문화가 세계 외교무대의 장식품이 아니라 메시지요 돈이다. 가령 죽은 자들의 집인 고분(고총)을 보자. 신라 고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경주 노사동 오아르미술관은 왕릉뷰로 대박을 터뜨렸다. 개관 6개월만에 20만명이 찾았다. 또 강원도 원주의 ‘뮤지엄 산’에 조성된 돌의 정원(Stone Garden)은 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핫플이 되었다. 전북에도 경주 천년의 미소와 같은 막새가 동고산성에서 나오고 장수 삼봉리·동촌리에는 가야 고분이 즐비하다. 

백범 김구선생은 1947년 <나의 소원>에서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문화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마침 백범이 유네스코가 선정한 ‘2026년 세계 기념인물’로 결정되었다. 전북이 산업화에는 뒤졌으나 역사문화자원은 다양하고 풍부하다. 전주 또한 경주 못지않은 역사문화도시로 우뚝 솟았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조상진 chosj@jjan.kr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