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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의 화려한 변신】아이들 떠난 자리…사람 발자국 소리 요란

【익산 성당초 남성분교】교도소세트장 영화·드라마 단골…유명 배우·감독·관람객까지 북적 /【완주 고산 삼기초】3년전 지역경제순환센터 문열어…농촌활력 위한 다양한 교육 진행

▲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자리한 국내 유일한 교도소세트장. 이곳은 옛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다. 지난 1999년 2월 성당초등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됐다.

△영화·드라마 70여편 출연한 교도소

 

'또각또각'.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다. 등 뒤에서 문이 닫힌다. 발소리를 주문 삼아서 잠시 다른 세상으로 걸어들어 간다. 여기는 교도소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영화나 드라마 촬영을 하기 위해서 지어진 교도소세트장이다. 익산시 성당면 와초리에 자리한 국내 유일한 교도소세트장. 이곳에는 한국영화 중 8번째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7번방의 선물' 속 '7번방'이 있다.

 

철문, 쇠창살로 무장한 수감시설과 담장, 망루, 면회장과 취조실 등 교도소의 구석구석을 재현해 놓았다. 걸음마다 철문과 쇠창살이 이어지고 '이동중 잡담금지', '반성하는 삶의 자세', '질서 확립' 등의 문구는 보는 이를 긴장하게 한다. 양쪽으로 나란히 늘어선 2층 수감실은 교도관이 금방이라도 뚜벅뚜벅 걸어올 것만 같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촬영된 영화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를 외친 지강헌의 이야기를 다룬 '홀리데이'. 지난 2005년 영화를 촬영하기 위해서 익산시와 영화제작사가 손을 잡았다. 그렇게 세워진 익산 교도소세트장은 '홀리데이'를 시작으로 '거룩한 계보'와 '식객', '포세이돈' 등의 수많은 영화 속으로 들어갔다. '자이언트'와 '싸인', '마이더스'와 '야왕', '돈의 화신' 등의 드라마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익산 교도소세트장은 현재까지 모두 70여편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다.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장으로 이름 높아진 지금의 교도소세트장이 몸을 들어앉히기 전 이곳은 학교였다.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던 학교. 익산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지난 1999년 2월 성당초등학교와 통합되면서 폐교됐다. 교실을 채울 아이들이 줄어들면서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을 받을 수 없게 됐지만 이곳은 다시 사람들의 발길로 북적인다. 유명 배우들이 찾아오고 이름난 감독들도 오고 드라마 스텝들도 붐빈다. 그리고 이젠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추억하기 위한 관람객도 찾는다. 특히 올해 상반기 화제작이었던 '7번방의 선물' 덕분에 그 수가 부쩍 늘었단다. 2013년 1월부터 현재까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6500여명. 며칠 전에는 이번 달 말께 개봉할 영화 '애비'와 '레드블라인드'도 촬영을 끝마쳤다고 한다. 아이들이 떠난 옛 남성분교에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하려는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 완주 고산면에 폐교된 삼기초등학교가 귀농귀촌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이 자리잡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텃밭가꾸는 법 등을 교육하고 있다.

△달인 김병만의 모교 농촌활력 중심지로

 

며칠 후 전주에서 535번 버스를 탔다. 차창 밖의 가을 바람이 손에 잡힐 듯한 화창한 날. 버스는 고산터미널에 나를 부려놓았다. 다시 300번 버스에 올랐다. 기사님께 옛 삼기초등학교를 아시느냐고 물었다. 김장배추 모종을 손주인양 무릎에 앉힌 한 어르신이 "내릴 곳을 알려주마"라고 하셨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 도착할 때까지 어린 배추처럼 얌전히 앉아 있었다. 10여분 쯤 달렸을까. 버스는 다시 나를 부려놓고 제 갈 길을 떠났다. 활짝 열린 교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아직 학교였을 때 16년 동안 외길 인생을 걸어온 '달인'으로 인기를 얻은 개그맨 김병만 씨가 이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2003년 삼기초등학교는 문을 닫았다. 학교에 와야 할 아이들이 하나둘 떠났기에. 그리고 이곳에는 2010년 지역경제순환센터가 개관했다. 완주군에서 그동안 방치 돼 있던 폐교를 리모델링했고 농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중간지원조직들이 입주했다.

 

너른 운동장 가운데에는 조형물들이 제법 멋스러운 자태를 뽐내며 앉아 있다. 운동장 끝 화단, 여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여러 동물상들과 수줍은 소녀상이 반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신발부터 벗는다.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 공정여행사업단인 '마을통', 로컬푸드사업단인 '건강한 밥상', 주민을 위한 문화활동을 지원하는 '공감문화센터' 등이 한 공간에 있다. 이 건물에 가장 먼저 입주한 커뮤니티비즈니스센터를 찾았다. 다양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곳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바로 교육이다. 귀농귀촌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농사 이외의 농촌에서 가능한 일들을 소개하고 농촌살이에 필요한 것들을 교육한다. 목공수업, 텃밭 가꾸기 등 다채로운 교육을 진행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을 하는 주민을 상담하는 일도 한다. 그러고 보니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진 계단 벽면에는 마을별로 그 마을 주민이 직접 쓴 사업기획서가 가득 채워져 있다. 운동장 가장자리.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간직한 사람들이 농촌에서 살기 위해 가꾼 텃밭에는 올망졸망 열매가 달렸다. 토마토, 가지, 고추, 색색으로 그 빛깔이 화사하다.

 

△사람과 사람 잇는 폐교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문을 활짝 열어둔 옛 삼기초등학교를 천천히 걸어 나온다. 아이들의 발소리, 웃음소리, 쟁쟁한 함성으로 시끌벅적하던 운동장은 아이들이 떠나고 나서는 심심했을 것이다. 그 아이들과 함께 어른들도 모습을 감춰서 주변의 마을들도 고요해졌을 것이다.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곳에서 떠난 사람이 돌아오기를, 다른 이들이 찾아주길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스스로가 누군가의 고향이 되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나를 옛 삼기초등학교까지 무사히 데려다 준 300번 버스의 기사님을 다시 만났다. "또 만나니까 반갑네." 인사를 건네신다. 그래, 그런 것이다. 문이 열려있으면 우리는 언젠가 '사람'을 만난다. 왠지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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