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으면 기다리는 가족과 반가운 해후를 생각하며, 고향길을 서두르거나 마음의 고향이라도 되찾아 떠나보게 된다. 우리만의 설은 오랜 시간 맺어온 이웃들과의 인연을 기억하며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함께 생각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설날에는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조·부모님께 먼저 세배를 올린다. 웃어른의 여러 가지 덕담으로 올해는 더욱 건강하라, 결혼을 하라, 자식을 낳아라, 우수한 학업을 성취하라, 승진을 하라 등 해당자에게 격에 맞는 말을 하신다. 예부터 의례적이지만 가슴이 뿌듯하고 화기애애하며 즐거운 분위기다.
민족 최대명절인 설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고향에 가고는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도 있다. 이번 설엔 여러 가지 망향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경기불황에 긴 연휴까지 겹쳐 작년보다 훨씬 많을 듯하다. OECD 국가 반열에 오른 나라로써 명절이 반가운 경제, 귀향에 마음이 설레는 경제, 그런 경제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양력을 사용하게 된 것은 1895년 11월 17일이므로 120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동안 음력을 사용하던 것을 이날부터 양력으로 고쳐서 개국 1월 1일로 하고, 연호를 건양이라고 새로 제정하여 공포한 것이다. 서양의 진보된 문물제도가 오랜 쇄국주의를 고수해 온 한반도에 밀려들어 오면 갑신정변, 갑오경장 등의 혁신정치를 통하여 청나라에 얽매였던 역사적 굴레를 벗어나, 자주독립 국가로 새로운 정치 체제를 세우려고 했다.
한국의 설날은 한때 혼돈과 수난의 시기를 겪기도 했다. 서기 488년 신라 비처왕 때 설날을 쇠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으며, 그 뒤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이어졌다. 을미개혁으로 양력이 도입되면서 새해 첫날의 기능은 양력설에 내주었다. 1910년 국권침탈 이후 조선문화 말살 정책을 편 일제(日帝)는 조선인들이 설에 세배하러 다니거나 설빔을 차려입은 경우에는 먹물을 뿌려 옷을 얼룩지게 하고 떡 방앗간을 멈추도록 경찰을 동원해 감시하는 등, 온갖 탄압과 박해를 가했으나 음력설을 쇠는 풍습은 없애지는 못했다.
광복 이후 이승만·박정희 정부는 2중과세라는 이유로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 공휴일로 지정하였다. 국민은 음력설의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두하므로 전두환 정부에서는 민속의 날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절반쯤 복원됐다. 6월 항쟁 이후 집권한 노태우 정부는 민족 고유의 설날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민중의 뜻을 받아들여 1989년에 음력설을 부활하여 3일간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박근혜정부에서는 2014년부터 대체공휴일을 시행하였다.
한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1967년부터 음력설을 공휴일로 하고 3일간을 연휴로 하였다. 이것은 남북이 같다.
우리가 지금 당연한 듯 쇠고 있는 설에는 자신을 낮추고 깎아 내렸던 아픈 역사가 스며있다. 이런 의미를 안다면 구정이니 신정이니 하는 용어와 음력설이니 양력설이니 하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는 게 좋다. 설은 음력 1월 1일 하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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