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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구걸 외교와 사드

▲ 장세균 한민족 대외관계사 연구소 이사장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한 을사늑약과 5년 뒤, 한일 합방으로 조선 500여 년의 역사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총 한 방 쏘지 못하고 송두리째 나라의 국권을 일본에 헌납한 꼴이다. 조선 패망의 운명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국가를 개조할 때 조선은 중국 청나라에 의존한 채 잠을 자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26대 고종이라는 한 인간의 무능이 자리잡고 있다.

 

나라의 운명이 오직 한사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하더라도 왕조 국가에서 왕의 역할은 지대한 것이다. 고종은 그의 실질적 집권, 34년의 긴 세월속에 한반도에서의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일본이라는 열강들의 세력균형을 통한 조선 독립의 유지를 위해 그 나름대로 노력은 했다. 열강들 간의 상호 견제를 통해서 한반도에서의 세력균형이 되도록 중국 전래의 이이제이(夷以制夷) 전법을 이용했다.

 

오랑캐를 시켜 오랑캐를 제어한다는 중국의 고대 전법이다. 여기에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김홍집이 가지고 온 주일 청국 공사관 서기, 황준헌이 건네준 『조선책략』이라는 책도 고종의 외교에 지침서 역할도 했다. 『조선책략』의 내용은 연미국(聯美國) 결일본(結日本) 친청국(親淸國)으로써 미국과 연합하고 일본과 결합하고 청나라와 친해서 러시아를 방어하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고종이 추구하려 했던 개화정책, 중립화 추구, 용병제에서 징병제로의 전환정책은 모두 실패했고 그 이유는 그의 일관성, 결단성의 결여에서 오는 결과였다. 그는 명성황후의 척족들이 돈 받고 관직을 팔아먹는 망국적 부패를 막지 못했고 급진적 개혁을 반대하는 김윤식을 비롯한 친청파들을 멀리했어야 했으며 스위스와 벨기에와 같은 중립국을 원했다면 돈을 주고 군인을 사는 용병제에서 메이지 일본식의 징병제로의 전환을 강력히 추진했어야 했다.

 

군사력의 뒷받침이 없는 중립국화는 허황된 꿈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나라 앞에서 고종은 마땅히 배수진을 치는 결연성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의 부인 명성황후가 일본의 낭인들에 살해당하자(1895년 을미사변) 고종은 신변의 위험을 느낀 나머지 궁궐과 가까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했다(아관파천).

 

그 후 러일전쟁이 발발할 것을 예상하자 러시아 공사관과 미국 공사관에도 피신 요청도 해두었다. 조선은 미국에 그리 매력이 있는 나라가 아니었고 일본과 미국은 궁합이 서로 잘 맞아서 일본의 강압에 의한 강화도 조일조약 때에도 미국은 일본에 유리한 충고를 해주었으며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자 곧바로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 테프트 밀약을 맺어 미국의 필리핀 점령을 일본이 묵인해주는 대신 일본의 조선 점령을 미국이 묵인한다는 조약을 맺었다.

 

미국은 한일 합방이 되자 다른 열강보다 제일 먼저 주한 미국 공사관을 조선에서 철수했다. 우리의 주권은 어이없이 이렇게 상실되었다. 2015년 5월 18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사드 한반도 배치문제를 처음 언급했다. 사드 배치문제에 한국 전직 외무장관들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있다. 사드 배치에서도 우리의 주권이 충분히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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