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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가방

▲ 이미숙 전주시의원 의원
있어야 할 곳에 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현실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 있어야 할 위치를 바꾸어 놓아도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적어도 고장난 지하철 스크린 도어를 손보다 열아홉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졸지에 남은 생을 몽땅 빼앗겨 버린 그 남자에겐.

 

이상과 현실이 헝클어진 현실 속에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의 위치를 찾는 과정, 그 몸부림치도록 괴로운 과정을 겪어야한다. 그 과정에 더러는 오류도 범하고 오판도 하지만 그것이 생의 성패를 가늠하지는 않는다.

 

누구에게는 오늘이 남은 생의 첫 날이지만 어느 누구에게는 오늘이 남은 생의 마지막 날이 되기도 한다. 오늘을 남은 생의 마지막 날로 살고 간 열아홉의 그 남자! 그 남자는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위해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사회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그 남자에게 세상이 해 준 것은 무관심과 무책임에 가려진 초라한 임금이 전부였다. 무모하게도 허술한 방관이 그 남자를 죽음으로 내몰고 말았다. 이제 겨우 몽실몽실 몽우리 맺혀가는 열아홉의 그 남자! 지식의 범람과 물질문명의 과대평창으로 인한 시대적 피해자가 되어 자신이 원치도 않는 시기에 생을 마감하고 만 것이다. 아니 무책임하고 무개념적인 사람들로 인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번 일이 처음이 아니라 빈번했었다니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당사자가 내가 아니면 그만이라는 얘긴가? 본인의 부주의로 몰고 가서 책임을 회피해 버리면 그만인가? 정부와 관련 인사들에게 감히 눈을 부라리며 삿대질을 해본다. 그 남자는 달랑 가방 하나를 위대한 유산으로 남기고 떠났다. 그 가방 속에는 치밀하고 철저하게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메모 도구와 공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리고… 나무젓가락과 함께 뜯지도 못한 컵라면 하나가 들어있었다.

 

얼마나 시간에 쫓겼으면 컵라면 하나 먹을 시간이 없었을까? 그 남자에게는 때가 되어 남들이 다 먹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정녕 사치였을까? 이런 절망적인 현실 앞에 누가 감히 고개를 들 수 있단 말인가!

 

쥐꼬리만 한 급여지만 월급을 탔다고 동생에게 용돈을 쥐여 주고 나선 날이 자기 생의 마지막 날이 되리란 걸 생각이나 했겠는가. 생일을 하루 앞 둔 날이 자기 생의 끝 날인 줄을 알기나 했겠는가.

 

그 남자의 억울한 죽음보다 더 슬픈 현실은 이러한 일련의 사고가 날 때마다 적어도 이 나라에선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가 없다는 사실이다. 가해자가 없어 사고가 날 때마다 유야무야 넘어가 버리니 같은 일이 자꾸 반복되는 것이다.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이번 만큼은 절대로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된다. 관련 당국은 국민들이 눈을 시퍼렇게 뜬 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지금쯤 생때같은 자식을 먼저 보내고 그 자식이 남기고 간 컵라면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붓고 있을 부모에게 사죄하는 일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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