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편찮으셔서 마음의 준비는 해왔지만, 실제로 맞이하는 이별은 매우 차가웠다.
그렇게 차가웠던 2017년의 여름을 보내고 겨울이 왔다.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졌고, 아침저녁으로 안부전화를 나누며 아버지와의 이별을 적응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누나, 엄마가 쓰러지셨어!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으니까 누나도 빨리 올라와!” “어? 무슨 소리야. 방금 전에 엄마랑 통화했는데…” 찰칵….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중환자실에 누워계신 어머니를 보고 가슴이 내려앉았다. 아버지도 아직 보내드리지 못했는데, 어머니까지 이렇게 되다니.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며칠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정신이 없었다. 마음을 다 잡고 출근을 했다. 회사가 소란스러웠다.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예정이라고 했다. 비정규직인 나에게 좋은 일이었지만 어머니 생각에 마냥 좋아할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수술을 마치고 일반병실로 모셔졌다. 어머니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2명의 동생들과 돌아가며 어머니를 모시고, 다른 날은 요양사를 고용했다.
그 무렵, 정규직 전환 절차가 무사히 끝나고 2018년 1월 국립공원의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7년 동안의 경력이 인정되는 순간이라 매우 기뻤고 감사했다.
병원에서 요양사가 매일같이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꿈쩍을 하지 않는다며. 어머니는 나를 기다렸다. 그래서 매일 병원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요양사의 손길을 거부하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회사에서 병원까지는 1시간 거리. 나조차도 지쳐갔다. 그렇지만 어머니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규직 전환의 기쁨을 뒤로하고,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아쉽게도 퇴사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다.
2018년 2월 과장님께 퇴사 의견을 드렸다. 모든 상황을 알고 계셨던 과장님은 차마 나를 잡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 사이, 사무소에서 연락이 왔다. 부모 요양의 경우 3개월까지 휴직이 가능하다는 소식이었다. 퇴사가 아닌 휴직에 대해 알아보시고 연락을 취한 것이다. 당연히 휴직하겠다고 의사전달을 했다. 모든 게 감사했다.
사실, 비정규직도 휴직이 가능하지만 ‘비’정규직이라는 한 글자의 무게는 규정집을 논하며 마음대로 휴직할 수 없는 부담감이 있다. 이는 비정규직뿐만이 아니라 같이 근무하는 정규직원들도 느끼는 점이다.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비정규직과의 사이는 얇은 유리벽이 존재했다. 하지만 ‘비’라는 글자를 뗀 지금은 국립공원이라는 큰 집 아래 깨진 유리파편을 같이 치우고 있다.
퇴사 후의 불안감이 사라졌고, 어머니도 돌봐드릴 수 있게 되었다. 이번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정규직 전환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내가 아닐까 싶다. 좋은 제도로 ‘비’라는 무거운 가방을 벗었고, 좋은 타이밍에 ‘더’ 많은 혜택을 받게 되었다. 앞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국립공원에서 좋은 일을 ‘더’ 기쁘게 ‘더’ 열심히 ‘계속’ 일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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