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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을 맞아…나의 사부곡

▲ 김용무 전북신용보증재단 이사장
벌써 재작년(2016년) 이맘 때 쯤의 일이다. 필자의 돌아가신 아버지가 전주고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으셨다.

 

수여식장에서 필자가 한 인사말이다.

 

“제 아버지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1927년 제적을 당하신 이후 무려 90년만의 일이고, 1980년에 돌아가신지 꼭 36년 만에 제 손에 들고 있는 이 전주고보 명예졸업장을 오늘 받으셨습니다. 저의 지금 심정은 이제 서야 자식의 작은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너무나 흐뭇하고 한없이 눈물겹고 정말 감격스럽습니다. 어젯밤 생전에 쓰신 아버지의 일기장을 다시 읽다가, 아버지의 삶이 그렇게 순탄하지도 않으셨고, 결코 행복하지도 않으셨을 것 같은(자식이 감히 아버지의 행복과 불행을 판단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일이기는 하지만) 한 많았던 인생, 그리고 외롭게 사셨던 일생을 생각하면서 저는 밤새워 한없이 울고 또 울었습니다. 이제는 아버지의 모교가 된 전주고등학교에 감사드리고,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면서 남은 삶을 살아 갈 것입니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버지의 명예졸업장에는 ‘전주고보 2학년에 재학 중(1926년) 일제에 항거하여 일본인 교장 퇴진 운동을 주도하다 제적된 동창회원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숭고한 애국정신을 기려 명예졸업장을 수여합니다’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필자의 선친의 학업은 여기까지였다. 학업이 중단되고, 나이 마흔 아홉에 어머니와 사별하신 후, 4·19혁명과 5·16군사쿠데타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회참여에 제한을 받아, 그로 인한 실망으로 삶의 의욕을 잃으신 나머지, 일체의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하지 않으셨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버지 본인은 물론 우리 가족 모두가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고통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겪으면서 살았다.

 

살 집이 없어 셋방살이를 전전했으며, 식량이 떨어져 밥을 굶기를 밥 먹듯이 했고, 땔감이 없어 필자는 겨우 국민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땔감을 찾아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녀야만 했다.

 

아버지는 재혼을 하고 싶어 하셨지만 자식들이 반대하는 재혼은 하지 않겠다 하시면서 혼자서 22년을 사셨고,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일상생활의 불편함과 나이 드셔서의 보살핌도 전혀 받지 못하신 채 일흔 한 살의 나이에 외로움과 쓸쓸한 삶을 사시다가 홀로 허무하게 돌아가시고 말았다.

 

필자는 지천명의 나이가 다 되도록 부모님과 불우했던 가정환경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점심 식사 중에 손자들 교육문제로 형수와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아버지에게 손자들이 아버지와 형수 중 누가 더 가깝냐고 논리적으로 따지듯이 물었다. 자기 자식 자기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라는 얘기였다. 그 순간 갑자기 내 뺨을 후려치시더니, 하시는 말씀이 “부모를 가르치려 드는 놈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자식”이라 하시면서 화를 벌컥 내셨다.

 

학비가 없어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경제적 현실에 낙담한 나머지 고등학교 때 학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지내다가 군대에 입대해서 논산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있을 때 나에게 보내신 아버지의 첫 편지에 ‘자강불식’이라는 말을 쓰셨다. ‘스스로 힘써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쉬지 않는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사자성어를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다.

 

서정시인 김소월의 ‘부모’라는 시에 ‘묻지도 말아라. 내일 날에 내가 부모되어서 알아보리라’라는 시구가 생각난다.

 

필자의 나이 내일 모레면 일흔이다. 평생을 아무 탈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몸을 가장 큰 유산으로 남겨 주신 부모님의 은혜를 이제 서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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