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5일 열린 장계초등학교 개교100주년 맞이 행사는 몇년전부터 모든 동문 들이 심혈을 기울인 노력의 성공적 결과물이었다. 경향 각지에서 너도나도 예산 확보에 노력, 모금 목표치가 초과돼 모두를 기쁘게 했다. 물론 조그마한 시골학교라서 목표를 낮춰 잡았던 점은 인정하지만, 모두가 박수로 환영했다.
처음 모금 목표액을 고향 임원들이 상경하여 알릴 때만 해도 크게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 예산의 대부분을 서울이 부담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해서였다. 그러나 모금액이 갈수록 쌓여가면서 걱정은 연기처럼 새어나갔다. 우리는 기적 같은 조짐을 설마설마 하며 기대했지만, 행사 당일에 결과를 보니 모든 게 기우였을 뿐이었다. 모두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어난 것이다. 그 덕분에 필자의 손에 공로패가 쥐어졌다.
1990년 6월23일 재경 장계초등동창회를 창립시키는데 38회 동기생들과 앞장 섰다. 그 당시 준비 과정에서 우리는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고, 어려운 고비도 많이 넘겼다. 십여차례 회동이 이뤄진 서울이란 장애물은 고향 장안산처럼 높기만 했다. 지금보다 한 30년 일찍 휴대폰이 나왔으면 어려움은 훨씬 줄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스쳐 지나간다.
이제 100주년이란 도도한 물결 속에서 앞날이 걱정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돌이켜보면, 장계면에 소재한 5개의 초등학교가 한때(1960년-2000년도)는 포화 상태였다. 장계는 장날이면 산촌사람들로 성시를 이뤘다. 장계초등만 해도 학생수가 1000명을 훨씬 초과 했고, 4개 학교까지 합치면 3000명도 넘었다. 그러나 이번 재학생 수를 확인해 보니 236명이었다. 모두가 놀랐고, 허탈감에 빠졌다. 물론 장계 만의 일은 아니지만, 괜한 상실감에 싸여 교실 옥상에서 쏘아대는 불꽃놀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0주년 경사 축제였지만, 밀려드는 우울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농사를 포기한 논밭은 늘어날 것이고 귀농 귀촌보다 더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지 않으면 우리 친구들이 농촌의 막내로 끝을 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걱정을 왜 미리 하나 하는 생각도 났지만, 불 보듯 뻔한 미래 예측은 너무 빠른 속도로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는 것만 같다.
농촌 활력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산촌의 부활에 대해 우리가 부단히 연구하고, 지원해야 한다. 고향세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
필자는 몇년 전 ‘종택아 미안하다’를 제목으로 전북일보에 기고를 한 적이 있다. 친구 종택이가, 술도 담배도 멀리하던 그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필자도 쓰러질 뻔 했다. 우리들의 고향이 이렇게 멍들어가는 것은 곤란하다. 절실하게 연구하고 발표하고 동참해야 한다. 축구 연습장에 쏟았던 정열을, 또 다른 생산적인 것을 위해 쏟아야 한다. 이번 100주년을 계기로 장계를, 장수를 ,전북을 살릴수 있는 길을 찾아 우리 모두 나서 봅시다.
/김영헌 재경장수군민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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