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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와 전북가야를 팔자

▲ 객원논설위원
▲ 객원논설위원

지난해는 전북지역 고대사에 눈을 뜬 한 해였다. 전주를 왕도로 한 후백제사와 1500년의 긴 잠에서 깨어난 전북가야사에 대한 재발견은 나를 자못 흥분케 했다. 정년퇴직 후 노인문제에만 몰두해 있던 차에 오래 전 인연을 맺었던 중앙대 송화섭 교수를 만난 게 계기였다. 더구나 송 교수의 이웃에 사는 군산대 곽장근 교수를 만난 건 큰 행운이었다. 이분들은 1년 동안 전북 고대사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준 도반(道伴)이요 스승이었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후백제포럼(시민연대)을 결성하고 5차례의 답사와 학술대회에 동참하는 기회를 열어주었다. 이제는 스케일도 제법 커졌고 일부 성과도 거뒀다. ‘후백제 왕도 복원 프로젝트’는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인 이재명 캠프의 대선공약에 이름을 올렸다. 또 18일에는 국회의원회관에서 김성주·김종민·안호영·임이자 의원과 후백제학회가 주최하는 ‘역사문화권 지정을 위한 국회토론회’를 가졌다.

전북지역 고대사는 어느 지역 못지않게 다채롭고 역동적이다. 이 지역 고대사의 기반인 1∼4세기 마한을 비롯해 5∼7세기 중반의 백제, 최근에야 모습을 드러낸 가야, 풍운아 견훤(진훤)이 또다시 삼한 통일의 대업을 이루려 했던 후백제 등 다이나믹하다. 특히 1500년 동안 잊혀져있다 뒤늦게 발굴돼 고고학계를 놀라게 한 전북 동부지역의 가야 유적과 지난해 지방정부협의회가 구성된 후백제사의 재조명 작업은 전북만의 차별성을 지닌 매머드급 프로젝트라 할만하다.

나는 지난달 초 장수와 남원일대 가야유적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서 거대한 가야 고총군락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방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장계분지와 장수분지, 아영분지와 운봉분지의 산 정상부 능선을 따라 고분군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때마침 서산으로 지는 해를 등지고 펼쳐진 고분군은 나를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 놀랍고 황홀함이란! 천지개벽이나 경천동지가 이럴 때 쓰는 말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예전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여행을 위해 찾았던 신라의 수도 경주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신라고분을 보고 느꼈던 감흥이 되살아났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이곳 420여 기의 가야고총과 110여 개소의 봉화, 250여 개소의 제철유적 등은 오랫동안 소중히 묻어둔 보물창고와도 같았다. 더구나 남원의 유곡리·두락리 고분군은 올해 6월, 유네스코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의 최종 등재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고총왕국, 봉화왕국, 제철왕국 등을 잘만 활용하면 장수와 남원은 물론 전북이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 같은 예감에 흐뭇했다.

전북은 지금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경상권, 충청권, 전남권이 수도권에 맞서 행정통합형 메가시티 등을 추진하는데 전북은 광역통합은커녕 기초통합인 전주·완주 통합도 못해 왕따 신세다. 이러한 때 전북 고대사의 재발견은 위축된 전북도민의 정신적 풍요와 자긍심을 높이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전북 동부지역의 고분·봉화·제철·산성 등 가야의 탁월한 유적과 유물, 후백제의 궁성 찾기와 동고산성·남고산성의 사적 지정 등 역사문화자원의 활용은 앞으로 지역경제와 관광의 활로를 찾는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상상해 보라! 장계분지를 둘러싼 산맥 정상들에 태양광을 이용한 레이저 점등 행사를. 올림픽대회에서 성화 점화하듯 이 산 저 산에서 봉화불이 밤하늘을 향해 축포처럼 터지는 장면을… 가히 세계적 명소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후백제와 전북가야의 유적발굴은 걸음마 단계다. 도민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

/조상진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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