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 이승엽 농업연구사
인간의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식물과 미생물은 서로 돕거나 때론 싸우기 위한 대화를 끊임없이 나누고 있다. 식물은 병원균의 침입을 감지해 낼 방어 시스템을 구축하는가 하면, 이 위험을 주변 동료들에게 알려 다가올 전쟁에 대비하기도 한다. 한편, 미생물 역시도 성공적인 병 발생을 위해, 적진(식물 내부)에서 숨을 죽이다가 충분한 군대가 모아졌다고 판단됐을 때 돌격 신호를 보내 무기를 꺼내 들고는 한다.
동식물과 달리 현미경으로 겨우 그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미생물이 인간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7세기 후반 네덜란드의 포목상 레벤후크가 자신이 만든 현미경을 이용해 미생물을 발견한 이후 생물학은 비약적인 발전을 해 왔다. 1953년 왓슨과 클릭이 DNA의 구조를 확인하고 2003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완성 이후 인간은 생명의 본질에 접근해 갔다.
DNA를 중심으로 하는 분자생물학은 기존 생물학이 해결하지 못하던 많은 문제를 해결해 내었다. 생명의 근원에 인간이 접근해 갈수록 생명윤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분자생물학은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생명의 오묘함에 대한 놀랍고 매력적인 사실들을 알려 주고 있다.
식물과 미생물이 생존을 위해 서로 소통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소통은 지구상 최고의 고등생물이라 자부하는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음성으로 하는 소통은 아니지만 그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협력하고 싸우고 위험에 대비하는 방법을 터득해 왔다. 이제 인간은 그들의 대화를 해독하는 작업에 첫 발을 들여놓았다.
이런 작업을 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 있다. ‘분자생물학적 식물/미생물 상호작용(Molecular Plant-Microbe Interactions; MPMI)’ 연구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은 현미경 관찰, 유전자 분석, 생물정보학 등의 다양한 도구를 사용해 식물과 미생물 사이의 은밀한 대화를 쫓는다.
한 예를 들자면, 그들은 온실가루이의 공격을 받는 고추에 주목한다. 공격받은 고추는 잎에서 화학 물질을 분비해 주변 친구들에게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경보를 받은 친구들은 신속하게 대응체계를 갖춘다. 뿌리에서 분비된 화학 물질은 주변의 세균에게 도와줄 것을 청한다. 요청을 받은 세균은 뿌리 주변에 모여들어 식물의 면역 체계를 촉진시킨다.
올여름 독일 퀼른에서는 1,200여 명의 MPMI 연구자들이 모여 지난 2년 동안의 학술적 성과를 나누는 모임을 가졌다. 이들은 그곳에서 자신들이 관심을 가지는 생명체를 대상으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식물과 미생물의 은밀한 대화를 엿듣고 통역하는 탐구의 기쁨을 만끽했다.
이들과의 모임에 함께 하며 소통한 지난 여름날은 내게는 기대감과 열정의 시간이었다. 이 자리에서 함께 이야기된 단편적 성과들은 통합되고 구조화되어 식물의 생산성을 높이고 병해충을 방제하며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는 등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한 결실로 승화될 것이다.
그리고 2년 후 제21회 MPMI 학회가 제주에서 열린다. 식물과 미생물의 은밀한 대화를 읽어 내고 농업 현장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을 찾는 이들의 노력은 계속되고 나날이 발전될 것이다. 우주 태초의 소리인 듯, 자연계 심연의 소리인 듯 그들의 은밀한 대화에 관심이 있는 연구자들과의 2년 후 만남을 기대해 본다.
이승엽 국립농업과학원 식물병방제과 농업연구사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