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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첨단산업 시대, 대학의 균형 있는 책무는 무엇인가

백승우 전북대 농경제유통학부교수

대학은 지금 ‘글로컬(Glocal) 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지역과 세계를 동시에 겨냥한 혁신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피지컬 AI 등 첨단산업은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고, 대학 역시 이에 발맞추어 연구와 인재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첨단산업에 몰두하는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과연 기초학문은 어디에 서 있는가. 첨단산업은 분명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이끄는 엔진이다. 반도체 기술은 모든 디지털 기기의 심장이며, 인공지능은 산업 전반을 혁신하고 있다. 하지만 첨단산업은 기초학문 위에서만 가능하다. 물리학의 원리가 없었다면 반도체는 존재할 수 없고, 수학적 사고가 없었다면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대학이 점점 기초학문을 ‘비경제적’이라 치부하며 소홀히 한다는 점이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은 사회적 관심으로부터 멀어진다는 이유로 축소되고, 순수과학은 연구비 확보가 어렵다는 이유로 밀려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첨단산업의 토대는 언제나 기초학문이고 기초가 무너지면 결국 첨단도 오래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인문학은 인간의 삶과 가치, 사회의 방향을 묻는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지, 어떤 윤리적 기준을 세울지는 결국 인문학의 몫이다. 사회과학은 제도와 정책, 경제와 문화의 구조를 분석하며 기술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조율한다. 예컨대 피지컬 AI가 노동 시장을 바꿀 때, 그 변화가 불평등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사회과학적 연구다. 인문학적 성찰이 없다면 기술은 인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자연과학은 첨단산업의 뿌리다. 반도체의 전자 이동, 바이오 산업의 유전자 연구, 신소재 개발의 화학적 원리 등은 대부분 기초과학에서 출발한다. 단기적 성과에 매달려 기초연구를 소홀히 한다면, 미래의 혁신은 불가능하다. 노벨상 수상 연구 대부분은 수십 년 전의 기초연구에서 비롯되었다. ‘쓸모 없다’고 여겨졌던 연구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류의 삶을 바꾸는 기술로 이어진 것이다. 대학이 기초학문을 지키는 것은 학문적 자존심을 넘어 미래 혁신의 씨앗을 심는 일이다.

글로컬 사업은 지역과 세계를 연결하는 전략이다. 지역 산업과 연계해 첨단 분야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이 단순히 ‘산업 맞춤형 인재 양성소’로 변질된다면, 본래의 사명은 잃게 된다. 특히, 국립대학은 단기적 산업 수요를 충족하는 기관이 아니라, 장기적 지식 생태계를 지키는 보루다. 따라서 국립대학은 첨단산업과 기초학문을 균형 있게 발전시켜야 한다. 산업과 연결된 응용 연구를 강화하되, 동시에 기초학문을 꾸준히 지원하고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 국립대학이 해야 할 가장 현명한 선택은 기초학문을 지키고 가꾸는 것이다. 첨단산업은 이 기초 위에서만 꽃을 피운다. 만약 대학이 기초학문을 외면한다면, 단기적 성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 미래는 잃게 된다. 반대로 기초학문을 지켜낸다면, 첨단산업은 더 깊고 넓은 뿌리를 내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다. 첨단산업의 시대일수록, 대학은 기초학문의 가치를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인류와 사회를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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