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학전문대학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이른바 국립의전원법이 3월 30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이제 본회의 의결만 남았다. 고령화·지방 소멸·코로나19 위기가 겹치며 지방의료 붕괴가 현실이 되자 국가는 뒤늦게나마 공공의료 인력 양성에 나선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병원 비중과 공공의료 인력은 OECD 최하위 수준이다. 응급환자가 골든타임 안에 병원에 닿지 못하고, 농촌·산간 지역 어르신들은 전문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해 병을 키운다. 그럼에도 공공의료에 특화된 의사를 체계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은 없었다. 국립의전원법은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한 제도이다. 국가는 기존 의대 정원과는 별도로 매년 100명을 국립의전원에서 선발하고, 졸업 후 15년간 지방의료원·공공병원·보건소 등에서 의무복무를 하게 한다.
국립의전원이 들어서는 지역에는 학교만 생기지 않는다. 학생·교수·연구 인력이 모이고, 주거·소비·교육 인프라가 함께 성장한다. 필수의료 접근성이 개선되고 의료·바이오 산업과 연관 서비스업이 결합해 지역경제에도 새 활력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 의전원은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서남의대가 있던 곳, 서남권 공공의료의 중심이 되어야 할 남원이다.
2018년 2월 서남의대 폐교 이후 정부는 의대 정원 49명의 교육을 전북대와 원광대에 위탁했다. 이 정원의 본래 취지는 서남권 의료취약지역을 해소하고 공공보건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지리산 자락 남원에 배정된 공적 자산이었다. 같은 해 4월 더불어민주당과 보건복지부는 이 정원을 활용해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을 설립하고, 교정은 전북 남원에 둔다고 공식 발표했다.
오늘날 국립의전원 논의는 바로 이 당·정 합의, 곧 남원의 공공의대 약속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20·21대 국회에서 공공의대 관련 법안이 잇달아 폐기되면서 국가의 약속은 번번이 좌절됐다.
서남의대 폐교 직후부터 남원공공의대추진시민연대를 중심으로 시민사회와 시의회는 “서남의대 정원은 남원과 서남권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일관되게 요구해 왔다. “학교는 사라졌지만 남원 몫인 49명의 권리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외침이었다.
남원은 전북·전남·경남이 만나는 교차점으로 장수·임실·순창·함양·구례·곡성과 함께 하나의 생활·의료권을 이룬다. 그러나 응급·필수의료 인프라는 취약하고 고령층 비중은 매우 높다. 이 권역에서 공공의료 확충이 시급하다는 사실은 국가 통계와 현장의 체감이 함께 증명하고 있다.
“서남의대 정원은 남원 몫”이라는 말은 지역 이기주의가 아니라, 서남대 설립 취지와 당·정 공식 발표, 국가가 밝힌 공공의료 정책 방향에서 도출된 정당한 주장이다.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는 의사의 장기 수급을 예측해 필요한 숫자를 제시할 뿐, 국립의전원을 어느 지역에 설치할지, 정원을 어떻게 배분할지는 법에 따른 설립위원회에서 결정한다.
추계위가 공공의대 정원 100명을 제시했다고 해서 국립의전원의 남원 설치가 자동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서남의대 정원은 남원에 공공의대(국립의전원)를 설치하기로 한 과거 당·정 합의를 오늘에 잇는 정책적 연결고리다. 동시에 국립의전원을 남원에 두어야 할 분명한 근거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서남의대정원을 기반으로 설치하게 될 국립의전원을 남원에 배정하고 법적 제도화하는 정치적 결단이다.
그러나 국립의전원법 어디에도 “남원”이라는 두 글자는 적혀 있지 않다. 지난 8년간의 정책 결정과 국민 앞에서 한 약속을 추적하다 보면, 국립의전원을 남원에 두어야 하는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서남의대 폐교의 상처를 안고 소멸 위기를 견뎌 온 남원에 국립의전원을 세우는 것은 특혜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공공의료 정책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최소한의 책임이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립의전원을 남원에 설치하겠다”고 결단하는 순간, 서남의대 정원으로 시작된 국가적 약속은 비로소 완성된다. 국립의전원 남원 설치, 이제 청와대는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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