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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소통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를 애도하며…

2022년 6월 9일 오전 10시 55분경 대구 수성구 범어동 대구지방법원 옆 변호사 사무실 건물에서 방화로 보이는 화재가 발생해 방화 용의자를 포함해 7명이 숨지고 40여 명이 다쳤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처음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 카카오톡 단체창에는 연이어 사고와 관련된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직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올라오기도 했고 다들 참담한 심정으로 속보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는 하루였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사건의 전말은 수억 원대 투자 반환금 소송을 했다가 1심에서 패소한 의뢰인이 상대편 변호사 사무실에 찾아가 사무실에 근무하고 있던 변호사와 직원들을 흉기로 찌르고 방화를 저지른 것이었다. 심지어 희생된 사람들은 그 사건과는 무관한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변호사와 직원들이었다. 정작 가해자가 앙심을 품고 찾아간 변호사는 지방재판 중이어서 화를 면했고, 사망한 변호사와 직원인 사무장은 사촌 관계이고, 여직원은 이제 막 결혼한 신혼이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이번 참사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커졌다. 테러에 가까운 방화가 애꿎은 희생자들을 만들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대구 수성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 현장에서 정밀 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를 확인하고 나니 허탈한 마음과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인지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앉아 최근에 나에게 불만을 가질 만한 사람은 없었는지 화재가 발생하면 지금 내 머리 위에 있는 스프링클러는 제대로 작동을 하긴 하는 것인지, 이제는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나에게 보복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생각하며 재판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또한 이러한 위험을 막는 보다 확실한 방법이 필요한데 이를 위해 보안요원을 채용하는 것은 비용이 너무 부담되는 것이 사실이고, 영업을 위해 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것 역시 현실적으로 어렵다 보니 고민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이번 사건 이후 가스총이나 삼단봉 등 개인 호신용구를 구입을 권유 받기도 했는데, 대한변호사협회까지 나서서 호신용구를 협회 차원에서 공동구매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는 말도 들린다. 변호사업무를 하는데 이러한 호신용구까지 필요하다니 더 참담한 심정이다. 재판 결과는 대개 승패가 나눠지다 보니 패자는 억울함과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다. 나 역시 변호사로서 10년 정도 일 해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는 했는데 법정에서 변론 후 사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상대 의뢰인이 ‘저런 사기꾼 편인 당신도 똑같은 사람’이라며 소리를 지르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며 막무가내로 사무실에 찾아오기도 하고, 심지어 상대방 변호사가 나의 핸드폰 번호를 자신의 의뢰인에게 줘 개인번호로 전화가 오는 황당한 일이 있기도 했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대신해서 분쟁 상대방과 법리적으로 다투다 보니 어느 순간 당사자와 변호사를 동일시하여 적대감을 표출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심지어 소송과정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다 보니 그 과정에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기도 한다. 다른 동료 변호사들 역시 상대 측 의뢰인들의 폭언, 협박 등이 비일비재한 현상이라고 이야기 하고는 한다. 이렇듯 변론 과정에서 의뢰인뿐만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이런저런 곤욕을 치른 일들이 있다. 이번 참사가 더 큰 충격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변호사들은 실명과 사무실 위치까지 다 공개되어 있다 보니 위험에 상시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점 때문이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변호사의 이미지를 생각한다면 누군가는 ‘변호사가 뭔가를 잘못했겠지’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주변의 변호사 누구를 봐도 이런 일을 겪어야 할 만큼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위해 판례와 논문을 뒤지고, 상대방 주장의 허점을 찾아 공격하며, 최대한 의뢰인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정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고, 가끔은 공익활동을 하면서 사회에 기여도 하며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변호사는 그 사건을 발생시킨 당사자가 아니다. 변호사는 그저 당사자의 권익을 위해 변호·대리하며 맡은 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다. 더욱이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해도 그와 같은 테러행위에 정당성을 부여 할 수는 없다. 이와 같은 사적 보복은 법치주의를 위협하는 행위이고, 우리 사법 시스템의 한 축인 변호사제도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보복이 무서워 변론 활동이 제한된다면 이는 결국 실체적 진실 발견에 저해가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하여 잘못된 판결이 내려진다면 사법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서울지방변호사회는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 재발 방지를 위해 변호사 대상 범죄를 가중처벌하는 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발의안에는 △변호사 및 그 사무직원을 폭행하여 상해·중상해·사망에 이르게 하는 경우 △폭행·협박 등 방법으로 변호사의 직무수행을 방해하는 경우 △변호사 업무수행을 위한 시설·기물을 파괴·손상하는 경우 가중처벌한다는 내용이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변호사가 그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는 이유로 도리어 범죄의 대상이 되는 사회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상적 변론 활동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우아롬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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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7 17:56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⑪ 상생실천으로 가장 주목받게 된 KTX광명역세권

광명시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로 이케아 입점 문제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이케아 입점이 광명시 관내 상권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한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를 작성해야만 했다. 이를 위해 광명시는 부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를 구성했다. 2014년 5월 26일 광명시청에서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가 열렸다. 김용연 광명부시장이 위원장으로 참석했으며, 신세희 기업경제과장, 안경애 광명시장상점가진흥사업협동조합 이사장, 김남현 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이진발 광명시생활용품협동조합 이사장 등 광명시 중소상인들이 위원으로 참여했다. 유통업상생발전협의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특히 지역협력계획서의 경우, 광명시 구도심권 활성화 및 사회공헌사업과 광명시민 우선채용 계획에 대해 구체적인 사업계획과 이행계획을 밝혀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2014년 7월 24일 상권영향평가서와 지역협력계획서는 완성됐다. 상권영향평가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광명시에는 대규모 점포, 전통시장, 다수의 소매점이 존재하나 이케아 판매상품과 겹치는 비중이 낮아 이케아 개점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적을 것으로 판단되며, 광명시 주요 상권은 광명동 및 철산동에 집중돼 있어 이케아 사업예정지인 소하동은 KTX 등 교통인프라 확충 및 역세권 복합개발계획에 따라 지역 활성화가 기대된다. * 광명시의 인구 통계현황, 기존 사업자, 상권의 특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이케아 개점은 광명시 세수확대 및 고용창출 효과를 유발해 기존 사업자들과 신규 고객의 유입확대로 부정적 효과보다 긍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은 지역협력계획서 주요 내용이다. * 이케아는 광명시 지역발전과 함께 기존 사업자들과 상생을 구축하기 위해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이케아 매장 내에 350평 규모의 지역 업체 전시장을 설치하고, 광명시와 협력해 중소상인 상생협력 방안을 지속적으로 발굴한다. * 이케아 코리아 본사를 광명으로 이전하고 이케아 광명점 직원은 광명시민을 우선 채용한다. 광명시민을 위한 어린이집을 개원하며 구도심권 활성화 및 사회공헌사업에 참여한다. 이러한 상생협약의 결과로 이케아는 개점을 앞두고 직원을 채용하면서 광명시민 300여명을 채용했다. 이케아의 광명시민 우선채용은 2015년과 2016년에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2016년에는 500여 명이 넘는 광명시민들이 이케아 광명점에서 일했다. 또한 2014년 7월 23일에는 광명시 요청으로 이케아에서 발주하는 사업에 광명시 관내업체가 더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광명시-이케아 실무협의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신세희 과장을 포함한 광명시 공무원들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 등 이케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케아는 개점을 앞두고 폐기물처리업체, 세탁업체, 음식물처리업체 등의 협력업체를 선정할 계획이었다. 광명시는 이케아 입점으로 유발되는 경제효과가 광명시 관내 중소기업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다양한 대책을 마련하면서 이케아가 광명시 관내업체를 협력업체로 선정할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였다. 그리고 2014년 12월 18일 드디어 이케아 광명점이 문을 열었다. 2011년 12월 27일 광명시가 이케아 유치를 발표한 뒤 이케아 입점까지 꼬박 3년이 걸린 셈이다.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의 말을 들어보자. “양기대 광명시장 등의 중재로 수 차례의 협의과정을 거치면서 지역상인단체들의 기대와 우려를 알 수 있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에게 이케아 광명점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서로 진심을 가지고 대화하면 양쪽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움을 준 양기대 광명시장을 비롯한 관계부서 공무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이케아 광명점은 광명시의 일원으로 전국에 광명시를 알리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앞으로 열린 마음으로 광명시의 소비자들과 중소상인들 위해 좋은 이웃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케아 개점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케아 개점은 전국적인 관심사였다. 이케아 개점일에 광명시는 1981년 시 승격 이후 처음으로 KTX 광명역세권으로 향하는 도로가 꽉꽉 막히면서 거대한 주차장으로 바뀌는 사태가 벌어졌다. 개점시간 전부터 이케아 매장으로 향하는 차량들로 KTX 광명역 주변 간선도로가 마비되면서 도로에는 차량이 2km 이상 길게 늘어섰다.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은 3,500여 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주차장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케아 개점일에 방문객이 몰려들 것을 예상, 60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까지 만들었지만 한꺼번에 몰려든 차량으로 주차난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했다. 도시가 완전히 마비된 것 같은 사태가 벌어지자 광명시 공무원들은 광명시 초유의 교통난과 주차난 해소를 위해 날마다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휴일도 없이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다. 광명시, 코레일, 광명경찰서, LH공사는 합동으로 ‘KTX 광명역세권 교통특별대책본부’를 설치,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섰다. 이케아와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은 기 확보한 주차장 외에 550대를 더 주차할 수 있는 임시주차장을 마련하고 무료주차시간을 5시간에서 3시간으로 단축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런 상황은 오래되지 않아 진정됐다. 광명시의 능동적인 대처로 교통체증과 주차난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전인자 당시 광명시 자치행정국장의 말을 들어보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저희들도 깜짝 놀랐습니다. 직원들은 비상근무 체제에 들어갔고 광명경찰서도 마찬가지였죠. 늘 조용하던 도시가 이케아 개점으로 갑자기 복잡해지면서 교통체증이 유발돼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었고 민원이 쏟아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민원 해결이 우선이라 거기에 초점을 맞춰 행정력을 집중했어요. 이케아 입점으로 온 도시가 마비된 것 같아 시민들에게 죄송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케아가 개점했는데 매장이 썰렁하다면 KTX 광명역세권 활성화가 실패한 것이 되기 때문이죠. 몰려드는 차량들을 보면서 일단은 성공했다는 안도감을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전인자 국장 설명대로 이케아 개점으로 불거진 교통문제와 주차난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해결되었다. 이케아는 입점 1년 뒤, 기자회견을 열어 1년 동안 670만 명이 이케아 광명점을 방문했다고 발표했다. 이케아는 1년 동안 3,08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광명시의 코스트코, 이케아 유치가 성공을 거두면서 한 때 광명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했던 KTX 광명역세권은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게 되었다. 광명시의 KTX 광명역세권 활성화 의지가 값진 성공을 거두면서 광명시 브랜드 가치는 상승했으며 도시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효과를 거뒀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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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6 18:08

김남규 전주시의장 “지역 발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살겠습니다”

김남규 전주시의회 의장이 오는 30일 24년 동안의 의정 생활을 마무리한다. 후배들을 위해 앞길을 터줘야 한다는 생각이 아름다운 퇴장의 이유가 됐다. 김 의장은 제6대 전주시의회를 시작으로 11대까지 무려 여섯 차례나 주민의 선택을 받아 의원 배지를 단 인물이다. 그는 특히나 20년 넘는 의원 생활 중 문화·예술계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는 평가도 받는다. 퇴임을 앞둔 김 의장을 만나 그동안을 회고하고, 퇴임 후 활동에 대해 들어봤다. 6선 의원으로 24년간 의정 활동을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의정 활동의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6번이나 당선된 것은 머리가 아닌, 가슴과 발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슴으로 다가서고, 발로 뛰는 의정 생활을 했습니다. 꼭 가야 할 곳에 남들보다 먼저가 있었고, 감동이 있는 지역구 활동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주민들에게 항상 감사한 생각입니다.” 내심 7선 의원에 도전하고 싶은 욕심도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7선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에서는 6·1지방선거에서 청년과 여성을 많이 우대했습니다.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줘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후배들이지만 과감하게 물려줘야 할 때도 있는 것입니다. 기득권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퇴장의 시점을 잘 잡는 것도 정치인의 덕목이고, 입신(立身)만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결심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의원 생활이 무려 24년입니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일이 많으셨을 것 같습니다. “IMF 시절 함박눈이 펑펑 내릴 때, 제가 배달하는 도시락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누가 알아주지도 않았지만 ‘소외된 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배달을 했습니다. 그 때 도시락을 두 손에 받으며 기뻐하던 그 분들의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처음 의정 생활을 시작할 때 ‘가장 모범적인 지방의원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항상 근본에 충실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문화 분야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전주는 전국적으로 문화 분야의 지수가 가장 높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그 분야를 통해 지역 발전을 이끌고 싶었습니다. 문화경제위원회에서 전문성 있는 자기 브랜드를 만든 것 같습니다. 의원 생활 초창기인 20여 년 전에는 문화 부서를 다들 기피했지만 나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고 자부합니다. 낙후된 북부권 개발을 위해 에코시티 개발과 학교 유치, 건지산과 오송제를 명품화하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지금도 보람된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반대로 정말 기억에서 지우고 싶은 일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시의원 생활을 하다 보면 다양한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시민이 원하는 의정 생활을 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아쉬운데, 그랬던 기억이 바로 시내버스 파업입니다. 아이들이 등·하교를 제때 하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 속에서 느꼈던 안타까움은 지금도 아쉽기만 합니다. 삼천동의 쓰레기 소각장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의정 활동을 펼쳤어야 했는데, 시내 전체에 쓰레기 대란이 일어나 시민이 불편을 크게 겪었던 것은 24년 의정 생활을 되돌아볼 때 지금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전라북도 정치권 인사 중 문화·예술 분야에서 단연 최고라는 평가가 나옵니다. 그동안 문화 예술 분야에서 어떤 일을 해오셨나요. “한옥마을을 브랜드화하는 데 힘을 많이 쏟았습니다. 20여 년간 한옥보존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한옥마을의 변화를 이끌었습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첫 회부터 열정을 다 했고, 지금 전주영화제는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영화제가 됐습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영화제를 지키고 발전시키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맛의 도시의 위상을 발판으로 음식관광과 미식관광을 활성화하려고 했었는데, 이 분야에서는 성과를 만들지 못한 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음식을 발판으로 한 관광산업 활성화는 후배 정치인들이 이끌어 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11대 전주시의회를 마무리하는 의장 역할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점에 주안점을 두었나요. “지방의회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많은 것 같습니다. 의원들의 도덕적 해이와 시민과의 소통 부재, 여론 수렴의 한계 등이 그런 것입니다. 의회는 정책 생산과 집행부 견제 역할에 더욱 충실해야 하고, 시민에게 더 다가서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대 전주시의회를 잘 마무리하고, 12대 의회를 준비하는 데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예산과 정책, 입법 분야의 강화와 홍보 분야의 대폭적인 조직 개편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맞는 의회 활동과 이를 통한 시민의 알권리 충족에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퇴임 이후에는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이신가요. “전주시가 앞으로 10~20년 후에 어떻게 나아갈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민거버넌스’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시민과 함께 의견을 나누는 공유 공간을 만들고, 관광과 예술, 경제의 도시로 전주시가 발전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리고 싶습니다. 이를 통해 시민거너넌스가 시민운동 차원으로 승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은 소박한 소망입니다.”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4년 동안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준 시민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한솥밥을 먹으며 지역 발전에 힘을 쏟은 동료, 선·후배 의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의 삶은 지역을 위해 헌신하는 자세로 살고 싶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응원해 줬으면 합니다. 24년 의정 생활의 마지막을 아름다운 꽃길로 단장해 주신 시민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 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릴 수 있는 전주시민의 김남규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획
  • 강정원
  • 2022.06.23 17:06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다시 찾은 생명, 압화를 말한다

어릴 적 할머니 댁에 가면 손주들 온다고 문살에 붙어있던 누런 종이를 떼어내고 밀가루 풀을 직접 쒀 바르던 문살 창호가 생각난다. 창호지 안쪽에는 마당에 피어있던 꽃잎 몇 장을 따서 얹고 다시 한 장을 덧바르면 우리들은 예쁘다며 좋아했던 추억이 있다. 우리 선조들이 문살 창호지에 단풍잎, 은행잎, 코스모스 등을 넣어 장식했던 것처럼 압화의 방법으로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재탄생 시킨다. 어릴 적 생각하며 압화 전문가 ‘꽃그림 이야기’의 주인공인 전은숙 작가를 만나러 부안 작업실을 찾았다. 들꽃, 다시 피어나다 압화는 공예적, 실용적이며 예술이라는 또 다른 영역으로 인식된다. 조형예술의 일종으로 꽃과 잎을 눌러서 말린 그림을 말한다. 아름다운 꽃과 잎사귀 등을 이용하기에 어떤 미술소재보다도 정적이며 소박하고 자연의 사계절 색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작업을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또 다른 자연의 모습을 알아간다. 자연과 함께하며 자연의 모습을 알아 간다는 것, 가장 큰 장점이라는 압화 작품은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秋’ 작품은 콩잎, 해바라기, 가시여뀌, 담뱃잎, 기린 기생초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그림 이야기’ 동아리를 활성화 시켰는데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부안여성회관 압화교육 출강 당시 꽃으로 만나 꽃으로 이야기하다란 뜻을 함께한 수강생들을 중심으로 동아리를 만들면서 시작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다양한 연령대의 회원들이 3~4년 동안 활동을 함께 해 오고 있으며 오랜 기간 참선의 자세로 가족처럼 활동을 하고 있는 회원들은 전국의 압화 공모전에서 다수의 수상을 차지할 만큼 경력이 쌓였고 회원전 등을 통해 압화 작가로의 길에 한걸음씩 내딛고 있다. ‘내변산의 봄’ 작품은 노루귀, 다닥냉이, 왓소니아, 떡쑥, 가죽나무 껍질 등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는 꽃꽂이를 통해 화훼장식 기능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꽃이라는 소재가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는 걸 알았다. 꽃에는 다양한 색과 질감 그리고 향기가 있다. 자연이 준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 ‘꽃’이라는 생각에 압화를 연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압화를 배우기 시작했을 당시 국내에 압화가 많이 알려지지 않은 때였다. 지금처럼 압화 도구나 꽃 건조용품이 발달되지 않아 모든 게 부족한 상태로 부안에서 처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압화는 시간을 넘고 계절을 지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압화가 국내에서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봄이 시작되고 햇살이 쏟아질 듯 한 어느 날 내변산의 봄을 즐기며 사색의 시간을 즐기던 내게 발길 멈추게 했던 봄의 왈츠 같았던 그 곳을 작품에 담고자 했다. 작품에 쓰인 모든 소재는 내변산에서부터 격포 해안 길을 따라 들에 핀 꽃과 풀잎을 채취 건조하여 만든 소재를 이용한 작품이다.(작가노트 중에서) 누름 꽃이 만들어지는 과정 압화는 생화 채취 후 전 처리과정과 건조과정을 잘 알아야 하고 색의 변화와 보관법 등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건조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작품완성은 압화 작품을 미완성으로 만들 수 있다. 이렇듯 전 처리과정, 건조과정, 보관법등을 잘 이해한다면 압화작품을 더욱 아름답고 오랫동안 볼 수 있게 해 작품의 가치를 높게 평가 받을 수 있다. 핀셋을 이용해 정교하게 말린꽃을 올리고 있다. 압화는 자연소재를 채취 건조한 소재로만 작업하기 때문에 다른 공예보다 많은 어려움을 수반한다. 섬세함과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장시간의 작업과정을 통해 완성되기에 어려움이 있는 것만큼 압화의 매력은 깊고 가치가 높다. 들로 산으로 발길을 옮겨야 하는 작업 또한 시간과 열정이 허락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압화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것들로 작업을 하는 만큼 작가가 살고 있는 천혜의 경관 ‘부안’은 압화를 하기에 최고의 환경인 것 같다. 꽃 이름은 모르지만 계절마다 봤던 꽃들이라 정겹다. 들국화와 장미가 보이고 향나무 같은 잎사귀도 보이는데 그 본질은 그대로 살려 또 다른 형태의 작품이 완성됨이 놀랍다. 자연에서 알게 된 사계절의 변화와 계절의 색에서 늘 설렘으로 만나는 기다림의 시간 앞에 들꽃과 들풀의 모습은 행복이고 즐거움의 여유로 다가온다며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 마냥 들 떠있다. 압화를 통한 향기 나는 삶 ‘풍요’ 작품은 갯모밀, 노루귀, 팬지, 비올라, 자작나무 껍질 등을 이용한 작품이다. 작가는 계절을 만지는 작업을 통해 자연을 닮아가는 본인을 발견하면서 자연이 주는 건강한 행복 앞에 또 다른 삶의 행복을 만나는 길임을 알게 됐다고 한다. 작업이 힘들고 어려우며 완성까지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꽃그림 전시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동아리 회원들이 지난해 중국 청도에서 열린 압화전에 참여 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로 나아갈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압화는 앞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작가는 압화를 폭넓게 발전시켜 액세서리와 소품 등을 다양한 상품으로 만들고 작품을 통해 예술작품을 깊이 있게 발전시키며 많은 사람들과 예술로의 길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전은숙 작가는 2006년에 압화공예가로 활동을 시작하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고자 회화작품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압화대전 대상 (농림부장관상)을 수상 그 외 코리아아트페스타전, 부안미협회원전, 군산 아트페어 참여 꽃그림이야기회원3회 등 전시를 했다. 부안독립신문 압화이야기로 1년간 연재하면서 압화를 소개했다. (사)한국압화아카데미협회 이사와 대한민국 압화대전 심사위원, 사)한국미술협회 정회원 등 꽃그림이야기를 운영하며 자연의 풀꽃을 작품에 담고자 하는 압화작가들과 동행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최지영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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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2 16:31

[참여&소통 2022 시민기자가 뛴다] 사회서비스 현장의 행복 미래를 그리는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

지난 5월 발표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통해 정부의 사회서비스 분야 정책 방향을 확인했다. 사회서비스 관련 내용은 국정 목표 3번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부분의 ‘사회서비스 혁신을 통한 복지·돌봄서비스 고도화’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양질의 보편적 사회서비스 제공 및 사각지대 발굴, 사회서비스 혁신을 위한 범부처-민관협업 체계 구축, 사회서비스 인력의 보수체계와 근로 여건 개선 등을 통한 서비스 품질향상이다. 윤석열 정부는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민관협업을 활성화하고 사회서비스 혁신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11월 개원한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원장 서양열)은 사회서비스 현장과 만나고 소통하며, 민간을 강화하고 민관협력 활성화를 위한 발걸음을 이미 시작하고 있다. 전북사회서비스원이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업을 통해 앞으로의 사회서비스의 방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찾아가는 사서원’ 통해 만난 사회서비스 현장 사람들 전북사회서비스원은 사회서비스 기관·단체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현장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 ‘찾아가는 사서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한 해 동안 365명의 사회서비스 현장 사람들을 만날 예정이다. 찾아가는 사서원을 통해 만난 사회서비스 종사자들은 사회서비스원이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따뜻하고 존중받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길 기대하며, 민관의 중간 전달체계로의 역할을 적절히 수행해주길 원했다. 앞으로 전북사회서비스원은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지원사 등 돌봄 종사자와 다양한 직군의 사람들을 만나며 현장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하고자 한다. 사회서비스 공감과 연대의 장 ‘사회서비스 현장 생각 공연장’ 도내 사회서비스 기관은 2021년 12월 기준 사회복지시설 3,427개소, 장기요양기관 2,277개소, 바우처 제공기관 490개소로 6194개에 이르고 종사자는 8만 9310명이다. 사회서비스원이 모든 기관을 대상으로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주요 사업대상을 소규모 사회복지시설 및 단체, 장기요양기관, 바우처 수행기관으로 설정했다. 전북사회서비스원은 주요 사업대상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지원사업을 안내하는 것을 목적으로 ‘사회서비스 현장 생각 공연장’을 3회 진행했다. 사회서비스 품질향상을 위해 기획된 경영컨설팅지원, 안전점검지원, 역량강화 교육에 대한 홍보와 존중받는 사회서비스 현장을 만들기 위해 기획한 종사자 가족여행지원 등 소진예방사업을 소개하고 소통했다. 이후에도 공감과 연대를 위한 소통의 장을 적극적으로 열어 현장과 발걸음을 함께 할 것이다. 전라북도 사회서비스 현재를 통해 미래를 그리는 ‘전북복지희망포럼’ 전라북도 사회서비스 분야별, 직능별 다양한 실무자 150명의 참여로 도내 사회서비스 현장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서비스 분야 혁신을 위한 의제를 발굴하고자 전북복지희망포럼을 진행한다. 올 초 사회서비스 종사자 중 전북복지희망포럼과 함께할 종사자를 1차 모집했으며, 준비 간담회를 통해 구성원 모집 및 공동의제 발굴, 분과별 조직구성 등 운영방식을 보완하고 있다. 이들과 함께 전라북도 사회서비스의 현재를 통해 행복한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 7일마다 전하는 따뜻한 손 편지 ‘사서원의 마음편지’ 도내 사회서비스 기관을 대상으로 매주 ‘사서원의 마음편지’를 온라인으로 발송한다. 마음편지는 전북사회서비스원의 운영 방향과 주요 사업을 공유하고, 도내 사회서비스 현장의 다양한 소식을 나누기 위해 전하는 온라인 편지다. 또한 마음편지는 불철주야 현장에서 구슬땀 흘리는 사회서비스기관 종사자를 마음으로 응원하고, 그들의 노고에 함께 공감해주길 바라는 뜻도 담긴다. 소소하고 투박하지만 전북사회서비스원의 진솔한 마음이 담긴 편지가 한 주 업무를 시작하는 월요일에 잔잔한 울림을 주길 바라본다.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의 방향 전북사회서비스원은 민관협력 활성화와 전북형 돌봄 체계 마련, 사회서비스 종사자 교육 및 연수 기회 확대라는 세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적극적인 사업을 구상할 계획이다. 사회서비스원을 통해 민과 관의 긍정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민간이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지원하고자 하며 전라북도 특성을 고려한 돌봄 체계를 마련하여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서비스 전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을 고민하고자 한다. 또한, 사회서비스 종사자의 연수 및 교육 기회를 확대하여 사회서비스 현장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도내 사회서비스 품질향상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할 계획이다. 사회서비스 현장은 사람이 ‘있는’ 곳, 사람이 ‘일하는’ 곳, 사람이 ‘함께 성장하는’ 곳이어야 하며 현장의 행복한 미래를 실현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작은 소망이자 소명이다.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서비스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종사자의 처우개선과 서비스 현장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의 행보에 많은 도민 여러분이 동행해주길 바라본다. 전라북도사회서비스원은 「전라북도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조례」에 의해 설립된 지방 출연기관으로 사회서비스의 공공성과 전문성, 투명성을 높이고 품질을 향상시켜 도민의 복지증진에 기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김민지 전라북도 사회서비스원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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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0 17:22

[지역 상생의 길 - KTX광명역세권에서 배운다] ⑩ 중소상인-이케아, 줄다리기 협상 끝에 상생 타결

2013년 7월26일 광명시청에서 1차 중소상인-이케아 상생협력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상봉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 이사장을 포함한 광명시 중소상인 대표들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 등 이케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광명시에서는 배동만 재정경제국장과 신세희 기업경제과장이 자리를 함께 했다. 예상대로 이날 회의는 양쪽의 입장 차이를 확인하는 자리였다. 아울러 이케아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에서 이케아 부지 매입과 관련하여 또다른 대형마트가 입점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최초로 제기했다. 이에 대해 이케아는 부지를 매입할 때 LH공사에서 분할 매각할 수 없다고 해서 전체 부지를 매입했다며 부지 활용 차원에서 부지 일부에 다른 사업자가 입점할 수 있게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이케아는 롯데쇼핑과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이케아는 부지 일부를 KB자산운용주식회사에 매각했고, KB자산운용주식회사는 이 부지를 롯데쇼핑에 장기 임대하면서 예상하지 않았던 롯데프리미엄아울렛이 입점하게 된다. 1차 상생협력 회의가 끝나고 닷새 뒤, 대책위는 광명전통시장 조합사무실에서 회의를 열고 앞으로 대응방안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이케아 입점을 돌이킬 수 없다는 판단을 하고, 그러면 어떤 실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지 의견을 모았다. 우선 1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대형마트 입점 의혹이 나온 만큼 이케아 판매시설 내 대형마트 입점 제한을 요청하기로 했다. 또한 이케아에 광명시 가구협동조합에 이케아 매장 내에 2천 평 규모의 공간을 장기 저리로 임대해줄 것과 200평 규모의 국산 가구전시 홍보관을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기로 했다. 2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대책위는 이케아 매장 건물 안에 영화관과 대형마트 입점 불가 입장을 강력히 밝히면서 이케아측에서 적극적으로 막아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케아는 이케아 부지 일부를 제3자에게 매각하고, 제 3자가 롯데쇼핑과 임대계약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임대계약이 완료되면 대책위와 롯데쇼핑의 미팅을 주선하겠다고 약속했다. 대책위는 2,000평 규모의 무상임대 요구도 했다. 이케아는 받아들일 수 없으나, 가구전시 홍보관으로 200평을 무상 제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케아는 전통시장과 광명 구도심 주차난 해소를 위한 주차 빌딩 건설 요구는 본사와 협의하겠다고 답변했다. 양측의 입장 차이만을 확인하는 회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광명시의 고심은 깊어만 갔다. 2013년 8월 1일, 광명시는 결국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했다. 광명시 관계자는 고심 끝에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할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이케아 건축허가 소식이 전해지자 대책위는 강하게 반발했다. 우선 두 차례 진행된 상생협력 회의는 중단됐다. 대책위는 2013년 8월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광명시가 이케아 건축허가를 전면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이케아 건축허가를 승인한 광명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광명시는 대책위와의 대화를 이어가면서 이케아와의 상생을 계속 신경썼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의 말을 들어보자. “이케아 건물 착공을 앞둔 8월 6일 광명시는 이케아에 대형마트 입점 자제를 요청하는 공문을 발송했습니다. 대형마트 입점이 불가하다는 확고한 입장을 전달한 것입니다. 이는 대책위에서 이케아가 국내의 대형 유통기업인 롯데쇼핑과 MOU를 체결하고 이케아 부지에 대형쇼핑센터를 입점시킬 계획이라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구체화되자 광명시에 대형마트 입점을 막아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이 공문은 ‘이케아 부지 내 대형마트 입점 자제 협력 요청’으로 제목은 비교적 온건하지만 내용에서 대형마트 입점을 반대하는 광명시의 강경한 입장이 확실하게 드러나 있다. “귀사에서는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되는 대형마트의 입점이 되지 않도록 적극 노력하여 주실 것을 당부드리며, 향후 우리 시의 반대 입장에도 불구하고 대형마트 입점을 추진한다면 우리 시에서는 중소상인단체와 공동으로 입점 저지를 위해 강력하게 대응해 나갈 것임을 알려드리니 귀사의 적극적인 협조를 부탁드립니다.” - 공문에서 일부 내용 발췌 건축허가를 받은 이케아는 2013년 8월 20일,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했다. 이케아는 착공에 앞서 8월 6일에 기공식을 열어 이케아 한국 입점을 대외적으로 알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책위의 격앙된 분위기를 잘 알고 있는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은 기공식을 하면 중소상인들의 반발로 물리적인 충돌이 일어날 것을 우려, 이케아에 기공식 취소를 요청했다. 이틀 뒤인 8월 8일, 김한진 이케아 코리아 이사는 광명시의 조언을 받아들여 기공식을 취소하고 기공식 비용을 광명시 사회공헌사업에 기부하기로 했다고 알려왔다. 광명시의 진심이 통했던 것일까. 대책위는 2013년 9월 2일 대책회의를 열고 이케아 입점 저지 활동을 지속하는 한편, 이케아 건축허가 승인 이후 잠정 중단됐던 중소상인-이케아 상생협력 회의에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대책위는 이케아에 요구할 상생협상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리한다. 이케아 부지 내 2천 평을 가구협회에 무상임대, 광명 구도심권에 국내 가구점과 전통시장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주차장 건립 지원, 이케아 부지 내 영화관 및 대형마트 입점 반대 등이었다. 2013년 12월 19일, 3차 상생협력 회의가 열렸다. 대책위는 이케아가 2,000평 무상임대 요구를 거부하자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규모를 축소해 가구 상설전시관으로 1,000평을 요구했다. 이케아는 200평을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에 5년 단위로 무상임대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은 5년 단위 재계약을 통한 임대를 반대하면서 규모를 500평으로 조정하도록 했다. 밀고 당기는 협상을 거쳐 이케아는 가구유통사업협동조합에 350평 규모의 가구홍보전시관을 무상임대하기로 했다. 임대기간은 5년이지만 이후 다시 연장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대책위는 대형마트와 영화관 입점은 절대로 안 된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이케아에 이를 수용해줄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와 이케아는 여러 차례 의견 조율을 거친 끝에 2014년 4월 1일에 열린 4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의견 차이를 확 좁힐 수 있었다. 그리고 4월 21일에 열린 제5차 상생협력 회의에서 상생협력 방안을 확정했다. 드디어 9개월에 걸친 긴 협상 줄다리기가 마무리된 것이다. 2014년 4월 29일 광명시청 중회의실에서 광명시 중소상인들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을 비롯한 광명시 공무원들과 패트릭 슈뤼프 이케아 코리아 대표, 이상봉-안경애-김남현-박재철 이케아 입점 저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 등이 참석했다.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이케아 코리아는 광명시 관내 중소유통시장의 안정과 중소상인 지원을 위해 이케아 광명점 일부를 공동전시-판매장으로 제공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이 창출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2. 광명시와 이케아 코리아는 구도심권 활성화를 위하여 대책위원회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고 상생발전 방안을 마련함으로써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지역사업에 적극 협력한다. 3. 이케아 코리아는 직원 채용 시 광명시민을 우선 채용하고 고용안정을 위해 적극 노력하며 지역사회 소외계층이나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봉사활동 등 사회공헌 사업에 적극 참여한다.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을 포함한 광명시 공무원들은 누구보다도 중소상인과 이케아의 상생협약 체결을 기뻐했다. 이제 광명시가 중소상인들을 위해 코스트코와 이케아가 상생협약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도록 관리감독하는 일만 남았다. 중소상인과 대형유통기업이 윈-윈하는 모델이 탄생하는 상황이어서 양기대 당시 광명시장의 감회도 남달랐다. /양기대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광명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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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9 17:35

[문화&공감 2022 시민기자가 뛴다]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의 현장 – 남원농악을 잇는 사람들

문화재청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 이래, 60년 동안 수많은 무형유산을 발굴하여 국가 지정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이를 꾸준히 육성해 오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은 2013년 개원 이래, 국가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한 무형유산의 전승 환경 개선, 전수 교육 확대, 전시⋅공연⋅행사 등 세대 간 전승 활성화에 필요한 제반 업무 지원에 힘쓰고 있다. 이 중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사업은 무형유산 지원 사업의 가장 기초가 된다. 해당 종목의 연행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기록하기 때문이다. 즉, 해당 종목을 전승하는 보유자 또는 보유단체의 핵심 기⋅예능 실연 전 과정을 영상, 사진, 음반, 도서로 남겨 세대 간 전승과정에서 지속되는 무형유산 고유의 속성과 변화양상을 포착한다. 아울러, 기록화를 통해 종목의 소멸 위기가 닥쳤을 때 기록시점의 근거자료를 토대로 해당 종목의 소생 기반을 마련한다. 국가무형문화재를 기록으로 담는 데에는 사업 담당자와 전승자 모두에게 대단한 결심을 요구한다. 하나의 연행 속에도 수많은 기⋅예능이 있고, 각 과정에도 고도의 기량이 갖추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실연할 수 없는 특수한 연행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다. 예능 종목 보유단체의 경우, 수많은 인원들이 합심하여 단일한 기⋅예능을 표출해야 하므로 평소 단체 지도자와 구성간의 각별한 노력 속에 엄청난 연습량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원농악 개인놀이 장면.(열두발 상모놀이) 특히 농악은 상쇠를 중심으로 긴 세월 동안 전승 체계를 잡아가는 경우가 많고, 이를 통해 독자적인 해당 지역만의 색채를 이루어가는 곳이 많다. 상쇠는 농악단의 지도자로서 한 번 직책을 부여받고 나면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이 길게는 수 십년 간 그 역할을 꾸준히 도맡는지라, 대개 상쇠의 지휘 속에 제각각 부여받은 역할에 따라 농악의 구성과 전승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농악의 기록화는 상쇠와 구성원의 호흡이 가장 무르익어 기량이 최고조에 올랐을 때가 최적의 기록 시점이 된다. 2022년 6월 11일. 국가무형문화재 남원농악 기록화 촬영이 있었다. 이 날 모든 일정을 마치고 김정헌 상쇠 선생님 인터뷰가 있었다. 소회를 말하려던 상쇠 선생님이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 선생님 앞에서 질문하던 피디님과 촬영감독님도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 뒤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원래 본 촬영은 6월이 아닌 5월이었다. 3월 말, 국립무형유산원-남원농악보존회 간 전체 미팅 때, 남원농악의 상쇠를 맡고 계셨던 류명철 회장님이 보존회를 이끌고 계셨다. 이 날은 주요 전승자들이 함께 회의석상에 배석하여 구체적인 촬영 장소와 연행 내용을 긴밀히 조율하고서 ‘다들 5월에 봅시다’하고 웃으며 돌아갔다. 그런데 바로 다음날 류 선생님이 급히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모두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류 선생님의 급보도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선생님이 빠진 보존회는 당시로서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은 시나리오였기에 기록화는 잠시 소강상태에 빠졌다. 보존회는 류 선생님이 주도하여 일구어낸 주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한 명의 상쇠 곁에서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전승 체계를 잡아온 전승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사업 담당자로서 걱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잘 할 수 있을까요" 노파심에 자문 교수님께 여쭈니 "남원농악은 실력이 탄탄한 집단이다. 곧 수습해서 할 수 있다"는 확신의 답이 왔다. 류 선생님의 장례가 수습되고, 차기 회장이 선출되었다. 류 선생님 곁에서 줄곧 부쇠로 활동했던 김정헌 선생님이 보존회를 이끌게 되었다.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는 예정대로 진행되어야 했다. 5월 중순, 모두가 ‘비장한’ 마음으로 다시 만났다. 농악은 본디 야외촬영이기에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가면 악천후로 진행이 어려웠다. 보존회는 한 달 안에 연습을 완료하고 촬영에 임하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과를 6월 11일에 종일 보았다. 그 사이 김정헌 선생님은 더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오전에는 마을굿, 오후에는 판굿으로 짜였다. 상쇠의 역할, 보존회의 열의는 대단했다. 마을 당산나무를 시작으로 마을 샘터를 돌아 김주열 열사 생가에서 지신밟기를 했다. 지신밟기만 해도 문굿-마당굿-고사소리-조왕굿-장독굿-샘굿-곳간굿-술굿 여덟 굿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류 선생님 생전의 고사소리를 받아 김 선생님은 실수 하나 없이 보존회원들과 주거니 받거니 호흡을 맞췄다. 열다섯 개의 굿으로 구성된 판굿에는 도둑잽이라는 연극도 포함되어 있다. 순서 하나의 혼선 없이 보존회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도 물만 축이고 뛰었다. 판굿이 끝나고 이어지는 개인놀이에서도 전승자들은 유감없이 제 기량을 보여주었다. 엄청난 연습량의 뒷받침이었다. "나이 서른에 시작해서 25년을 뛰었는데 아직은 할만 합니다"면서 웃으며 퇴장하는 분이 있었다. 잘한다 잘한다 박수소리가 나니 "아니 그럼 내 젊은 시절 여기 다 갈아넣었는데 이 정도 못하면 안되지"라며 너스레를 떠는 분도 보였다. 이 날은 동네 온 어르신들이 다 나와 농악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코로나 이후, 실로 반가운 마을 행사였다. 이 날의 기록화는 참여한 전승자뿐만 아니라 담당 공무원, 촬영자, 마을 주민 모두에게 기억될 것 같다. 기록화 본연의 목적인 ‘세대 간 전승’을 어김없이 보여준 날이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강석훈 국립무형유산원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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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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