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news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은 지역구 당선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하고 비례 도의원 1명, 비례 시의원 3명에 그쳤다. 지난 4년 전과 마찬가지로 전북은 국민의힘이 아직도 넘지 못할 높은 장벽이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윤석열 대통령에게 14.4%의 지지율을 보냈고 정권교체가 됐기에,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이전과 다를 것이라 기대했지만 마주한 결과를 보니 안타깝고 아쉽다. 지난 30년간 기울어진 운동장이었던 전북은 민주당을 향해 전폭적인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민주당 일당 독주 속에서 경쟁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고, 여당도 없는 3무(三無)정치 속에서 전북경제는 활력을 잃고 추진 동력이 계속 떨어져 갔다. 전북의 미래를 이끌어 갈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충청‧경상도로 옮겨가며 낙후된 전북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민주당의 일당독주와 전북 홀대의 결과가 전북도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 것이다. 민주당을 지지했던 도민들은 다른 지역이 경쟁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전북의 발전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은 필자가 지난 10년간 이야기해 온 여‧야 쌍발통 정치로 나아가야 전북발전에 미래가 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지역은 충청이다. 2018년 제7회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주당에게 65%의 당선율을 보내며 정권에 힘을 실어줌과 동시에 지역 현안 사업들을 신속하게 추진시켜 진정한 지역 발전을 이뤄냈다. 이에 대한 한 예로, 충남의 지역 중점 현안 사업이었던 국도 77호선 「보령해저터널」은 이미 10년 전에 착공하며 지난해 개통된 성과를 안았다. 똑같은 국도 77호선인 부창대교(노을대교)는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충청은 여당인 국민의힘에게 힘을 실어줬다. 충북은 전체 181명 중, 국민의힘 소속 115명(64%)과 민주당 소속 65명(36%)가 당선되어 다수당이 됐다. 충남에서도 전체 241명 중 국민의힘 소속이 144명(59%), 민주당 소속이 97명(40%)이 선출됐다. 양 당의 60% vs 40% 구도가 이어진 것이다. 이처럼 충청은 여당에게 힘을 실어주며 충청발전에 커다란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보수 정당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는 윤석열 정부가 들어섰음에도 각각 29명과 27명의 기초의원이 당선되며 지역 내 최소한의 견제와 균형이 가능한 정치 환경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주변 지역들은 전북이 일당독주의 사슬을 끊어내야 하는 명확한 이유를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의 전북은 여전히 고립된 섬처럼 오로지 민주당만 바라볼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방시대’라며 지역균형발전의 중요성을 강조한 만큼 전북 발전의 기회가 펼쳐지는 듯 보였다. 이에 지역균형발전특위에서 부위원장으로 활동했던 필자가 전북 현안을 꼼꼼하게 챙긴 결과, 대선 당시 7대 공약 26개 실천과제였던 전북 공약이 7대 공약 46개 실천과제로 최종 확정됐다. 공약과 실천과제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민주당과 경쟁하며 전북의 발전을 위해 뛰어다닐 여당 소속 일꾼을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20개 늘어난 46개의 실천과제를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지역과 중앙을 연결하고 소통창구 역할을 해줄 인물을 만들지 못했으니 앞으로 4년간이 답답할 뿐이다.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선거는 전북의 조배숙 후보에게 지난 대선 때보다 3.5%p나 많은 17.9%라는 지지를 보낸 만큼 호남에서 외면 받았던 국민의힘이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준다. 이를 바탕으로 진정성을 갖고 전북의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충남과 경북‧대구처럼 여‧야가 경쟁하며 지역 발전을 이끌 수 있는 정치 환경을 조성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민주당 일당 독주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도민들께서 아픔을 헤아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크게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정운천 국민의힘 국민통합위원장·전북도당위원장
6·1 지방선거가 마무리되면서 새로 출범할 지방의회 의장단 선거전이 시작됐다. 벌써부터 의장단 입지자들의 물밑 선거전이 뜨겁다고 한다. 개정된 지방자치법이 올해 1월 13일부터 시행되면서 지방의회는 소속 공무원의 인사권이 독립됐다. 집행부를 견제 감시하는 권한에 더해 지방의회 소속 공무원의 임용권이 의장에게 부여돼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지방의회는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누어 2년마다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을 선출한다. 그동안 의원들의 선수(選數)와 나이에 따라 다선 의원들이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 자리를 나눠 갖는 식으로 원구성이 이뤄져 왔다. 전북도의회의 경우 다선 의원 중심으로 전반기 의장 후보 5명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고 2명의 부의장과 5명의 상임위원장 자리도 경쟁이 치열하다고 한다. 시·군의회의 의장단 선거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이 독점하고 있는 지방의회는 현역 국회의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교섭단체를 두고 있는 전북도의회의 경우 사실상 민주당 소속 의원들끼리 의장단을 구성해왔다. 3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전주시의회와 2명의 국회의원이 있는 익산시의회는 국회의원 지역구에 따라 전후반기 의장단을 나눠왔다. 의회 내부의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장단 선거를 실시하지만 미리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원만한 의회 운영을 위해서는 경험도 필요하지만 능력과 자질이 더 중요하다. 지방의회는 그동안 주민들에게 불신을 주는 행태들을 적지 않게 보여왔다. 정읍시에서는 의장 아들의 사업체와 여러 차례 부당 수의계약을 한 사실이 전북도 감사에서 적발됐다. 전주시에서는 부친 소유의 건설회사가 18건의 수의계약을 맺은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 적발된 시의원이 의장 후보군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의장단은 도덕성에 흠결이 있어선 안된다. 지방의회가 행정권력을 제대로 견제·감시하려면 이해충돌 논란에서 자유롭고 도덕성과 능력을 함께 갖춘 의장단이 선출돼야 한다. 단순히 선수와 나이를 앞세워 감투를 차지하려는 의원들에게 의회 운영을 맡겨선 안된다. 과거의 관례에 함몰되면 지방의회의 변화와 쇄신을 기대할 수 없다. 주민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지방의회 원구성이 이뤄져야 한다.
선거철이 되면 여야 정치권에서 청년 인재 영입에 열을 올린다. 청년층 표심을 겨냥해 ‘젊은 정치’를 내세운 각 정당이 청년공약과 함께 청년 정치에 공을 들인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각 정당이 경선과정에서 청년과 정치신인에게 가산점을 부여했다. 그런데도 지방의회에 입성한 2030세대 청년정치인의 비율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전체 당선자 4125명 가운데 광역·기초의원에 당선된 39세 이하 청년은 총 416명으로 약 10%를 차지했다. 4년 전 선거에 비해 그 비중이 다소 늘었지만 청년층 유권자 비율(34%)에는 한참 못 미친다. 특히 전북지역의 경우 이번 선거에서 광역·기초의원에 당선된 2030세대 청년 정치인은 16명으로 전체 당선자 237명 중 6.7%에 그쳤다. 우리 사회가 젊은 정치, 청년 정치를 외치고 있지만 전북 정치권은 여전히 고령화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출산율 저하와 고령화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의 시대, 지방의회마저 지역의 미래를 이끌 젊은정치인을 끌어들이지 못하고 50~60대 기성 세대 중심으로 구성됐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과 건강한 지방자치 구현을 위해서는 청년들이 다수 지방의회에 진출해 지방정치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정당에 충성하는 다선의 지방의원들이 조직력을 앞세워 부동의 자리를 지켜가는 구조는 지방정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돈과 조직력에서 앞선 기성 정치인들이 이해득실을 따져 청년 정치인을 배척한다면 지역정치는 후퇴할 수밖에 없다. 우선 각 정당이 청년정치인 양성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2030세대의 정치권 진출을 활성화할 수 있는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과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 각 학교에서도 일찌감치 풀뿌리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생활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 한다. 마침 민주시민교육을 강조하고 있는 전북교육청이 지역의 각 정당 및 시민단체와 협력해 지방정치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만하다. 이 같은 교육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통해 자연스럽게 확장된 예비정치인 풀이 기초의회와 광역의회, 그리고 국회로 이어져 지역정치권의 건강한 세대교체를 이뤄야 한다.
수도권에 대응하는 비수도권의 광역경제권 설정에서 전북만 소외될 우려가 높은 가운데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전북 정치권의 역량에 달렸다. 현재 국회의 다수당은 더불어민주당이기에 새로 선출된 김관영 도지사 당선인과 전북 국회의원의 정치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특별법 제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김관영 도지사 당선인은 지난 3일 당선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를 올해 안에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안호영 의원이 지난 4월 발의한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입법을 연내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다. 하지만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도지사의 의지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 입법은 국회의원의 권한이고 다수당인 민주당과 여당인 국민의힘의 합의가 중요하다.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통과된 강원도특별자치도 특별법은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함께 뜻을 모았기에 가능했다. 강원도에서 대선과 지방선거 국면을 활용해 물밑 작업을 진행했던 만큼 여야 간 이의 없이 쉽사리 통과됐다. 야당 원내대표를 역임했던 김관영 당선인도 “이렇게 빨리 통과된 것은 의외”라면서 민주당의 역할론을 거론했었다. 이제 전국 광역경제권 5극+3특 체제에서 제주 강원에 이어 전북만 특별자치도 특별법 제정이 안 된 만큼 전북 정치권의 역할이 시험대에 올랐다. 김관영 당선인은 전북 국회의원의 원팀 정신 복원을 통해 연내 통과를 목표로 세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전북 정치권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전북의 최대 당면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각오다. 김관영 당선인의 바람과 목표대로 우선 십인십색인 지역구 국회의원의 원팀 정신 복원이 시급하다. 민주당 도당위원장 선거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해 도지사 후보 경선에 이르기까지 갈등과 불협화음을 내온 전북 정치권이 다시 하나로 뭉쳐야 할 때다. 대통령직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위 부위원장을 맡았던 정운천 국민의힘 전북도당위원장도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 설치를 공언했다. 전북 정치권이 전북새만금특별자치도의 당위성과 논리를 가지고 여당인 국민의힘과 다수당인 민주당의 합의를 끌어내면 강원도처럼 특별법의 국회 통과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전북 정치권의 분발과 통 큰 정치력 발휘를 기대한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 선거의 존재 자체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여느 선거와 마찬가지로 결과는 뻔한 데 굳이 예산과 인력 낭비하면서 선거를 치러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여전히 민주당 성향의 투표 심리가 강한 전북의 경우다. 공분을 자아내며 공천 내홍을 겪고 이에 못마땅한 도민들이 이번 만큼은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벼르고 있었는데 결국은 도돌이표 민주당 선택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과거에 비해 민주당 쏠림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낳았다. 광역 기초의원의 86%를 독점하고 4개 기초단체 의회는 민주당 의원으로만 채워졌다. 이 중 62명이 선거 없이 무투표 당선인 점을 감안하면 그저 말문이 막힐 지경이다. 더욱이 같은 당 출신 단체장에 대한 의회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당 독주에 따른 역기능은 여기에만 그치질 않는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지방 권력의 핵심 축으로 인식된 이들은 선거 품앗이뿐 아니라 각종 이권과 인사 개입 등에도 무소불위 권한이 예상되지만 마땅한 제동 장치가 없다는 게 현실적 고민이다. 매번 되풀이되는 이런 일당 독주의 투표 행태는 유권자의 정치 혐오와 기피증을 불러 온다. 기득권 세력의 독과점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민주당의 반사 이익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공천 기준도 유권자 눈높이 보다는 당의 충성도가 먼저다. 그러면서 투표율은 점점 낮아지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전북은 48.6%로 전국 평균 50.9% 보다 낮았다. 역대 8번 선거 중에서 가장 낮았다. 공천 반발로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후보들이 고전한 것도 투표율 저하에 따른 정당 조직력이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선거에 대한 유권자 무관심은 민주주의를 역행한다” 고 한다. 정치권 상황이 아무리 꼴불견이더라도 그리고 함량미달 정치인 행태가 다소 못마땅하더라도 이를 핑계로 투표를 기피하는 것 자체가 더 큰 문제다. 우리 일상생활의 소소한 것부터 정치권 영향에서 자유로운 건 거의 없다. 세금과 전기료, 보험료 인상폭은 물론 쓰레기봉투 용량 제한까지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투표를 통해 제대로 된 인물을 뽑아야 하는 이유가 명확하다. 전북을 포함한 호남 지역의 ‘민주당 짝사랑’ 은 이번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80%대 압도적 지지율로 출구조사 발표 때부터 이미 승패가 정해져 있을 정도다. TK지역도 마찬가지다. 여타 지역은 그래도 개표 초중반까지 혼전 양상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더욱 안타까운 건 민주당이 싹쓸이하는 와중에도 국민의힘 후보의 득표율 변화에 애써 의미를 부여하며 민심이 달라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다. 일부에선 선거 결과에 대해 “해도 해도 너무한다” 는 장탄식이 터져 나오는 상황에서 해바라기성 유권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선거에서 당선된 정치인의 수준을 보면 그를 뽑은 유권자 수준과 비슷하다” 는 정치권 속어가 생각난다. 김영곤 논설위원
가족과 함께 간 봄나들이 진달래, 개나리를 만났다. 방긋 웃는 꽃을 보니 내 마음도 방긋 미소 짓는다. 꽃은 우리를 보아서 방긋 우리는 꽃을 보아서 방긋 △태윤 어린이는 가족과 함께 봄나들이를 다녀왔군요. 추운 겨울을 견디고 꽃을 피운 진달래와 개나리가 방긋 웃고, 그 꽃을 보며 가족도 방긋 웃는 모습이 풍경처럼 그려지네요. 그 미소가 태윤 어린이와 항상 함께하기를 바랄게요. /윤형주 아동문학가
6·1 지방선거 결과 민주당의 지방의회 독점이 더욱 확고해지면서 집행부 견제 감시 기능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과 민원 해결, 분쟁 조정, 예산 심사 및 승인, 자치행정사무의 집행을 감시하는 감사 기능 등을 갖고 있다. 지자체장들이 주민들이 낸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지역살림을 잘 꾸려가고 있는지, 지역발전을 위해 예산을 골고루 배분해 잘 사용하고 있는지 감시하는 기구다. 지방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가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그러나 지자체장과 지방의원이 민주당 일색인 전북 정치 구조에서 견제와 감시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지 걱정스러운게 사실이다.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전북도의회는 민주당이 전체 40석 중 37석을 장악했다. 진보당이 지역구 도의원 1명, 국민의힘과 정의당이 각각 1명씩의 비례대표 도의원을 배출했을 뿐이다. 민주당 소속 도의원 중 60%는 유권자들의 검증과정도 없이 무투표 당선됐다. 237명의 도내 광역의원과 기초의원 가운데 205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민주당 독점 정치구조와 함께 그동안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켰던 지방의원들이 다시 의회에 입성했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당원명부 유출 혐의와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의원, 불륜 스캔들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의원, 집행부 공무원에게 욕설과 막말을 퍼부었던 의원, 재량사업비와 수의계약 등으로 논란을 일으킨 의원들도 있다. 새로 출범할 지방의회에서 이들이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품격있는 의정활동을 펼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방의회를 바라보는 걱정과 우려가 크지만 기대와 희망도 있다. 도의회에는 초선 의원이 절반을 넘는 22명에 달하고 40대 미만의 젊은 정치인 16명이 광역·기초의회에 새로 진출했다. 경륜과 경험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지만 변화와 쇄신을 이끌 열정을 기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견제와 감시 없이 거수기 노릇만 하는 지방의회는 언제든 민심의 심판을 받는다. 새로 출범할 지방의회가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견제할 것은 견제하는 제대로 된 의회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부장을 지낸 민병훈 박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한 작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란다.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가 불명의 `채용신 평생도병풍`이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등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진귀한 수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전시장에서, 그것도 작가 불명의 작품이 그를 붙든 것은 전북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민 박사는 전주 출신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지목한 병풍 속 주인공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은 근대 초상화가의 거장으로, 인생 전반부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후반부 전북에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어진을 그리면서 어진화가로 화명을 떨쳤으며, 사대부와 우국지사, 일반인까지 초상화 대상을 넓혔다. 그가 그린 최익현 초상과 황현 초상은 보물로 각각 관리되고 있고, `운낭자초상`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내 미술계도 석지의 독특한 기법과 표현양식, 회화의 근대성에 주목하며 채용신 관련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다. 채용신 관련 연구 논문이 석박사 논문을 포함 20편에 이른다. 200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거 60주년 기념 석지 채용신전`을 연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그러나 정읍 태인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했고, 그의 묘소도 선산이 있는 익산 왕궁에 자리하는 등 석지의 활동 기반이었던 전북에서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그의 사후 70년이 된 지난 2011년에서야 기획전을 연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연유로 채용신의 일생을 담은 병풍을 수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가 미상의 작품이기에 작품 대상의 주인공과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폭으로 이뤄진 병풍은 채용신의 어린 시절 공부에서부터 과거급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수군으로 활동했던 모습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박물관 측은 조선말 사회변화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355점 컬렉션 전에 이 작품을 내걸었다고 귀띔했다. 민병훈 박사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 채용신이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의 다섯번째 작품(사어용도)이다. 지금은 없어진, 그 당시 흥덕전(덕수궁 궁전자리)에서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긴 것을 두고서다.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담긴 병풍)을 펼쳐놓고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살아 있는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은 어진모사 모습을 이 병풍이 보여주고 있다. 어진은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핵심 문물이어서 어진 제작과 봉안, 관리 때 왕을 모시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제작에도 전란과 화재로 대부분 어진이 소실됐다. 경기전 태조어진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전신상 어진이다. 봉안처인 경기전이 함께 남아 있다. 10여 년 전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전국 유일의 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부족하다. 전북에서 활동한 채용신과 어진 관련 콘텐츠가 담긴 `채용신 평생도 병풍`이 어진박물관에 놓인다면 여러모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지역 연고와 작가 연고가 있는 광주 대구 등 지역의 공립미술관에도 100여점을 나눠 기증했다. `채용신 평생도 병풍`의 제자리는 어진박물관이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아닌, 어진박물관에 있을 때 이 작품과 어진박물관, 채용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번 기회에 전북의 소중한 문화자산인 어진박물관과 채용신이 재조명 됐으면 좋겠다. /김원용 논설위원
아버지를 찾는다는 핑계로 날마다 술집을 돌아다니면서 생판 모르는 아저씨들한테 술을 얻어먹고 취하는 고아원 아이. 최인호의 단편소설 <술꾼>의 주인공이다. ‘술꾼’은 ‘술’에 ‘꾼’을 붙인 말로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주량 또한 만만치 않은 사람을 가리킨다. 진정한 술꾼은 주종(酒種)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던가. 모름지기 술꾼은 술시가 되면 술이 고플 줄 알아야 한다. 계절 따라 조금 다르지만 ‘술[酒]시’이기도 한 술시(戌時)는 저녁 7시부터 9시까지다. 그런데 한자어 ‘술(戌)’은 ‘개(犬)’하고 뜻이 크게 다르지 않다. ‘술 취한 개’도 거기서 나온 말일까.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찰떡궁합이 따로 없다. 어설픈 흉내의 뜻을 가진 말로 ‘풋’이 있다. ‘풋마늘’이나 ‘풋사랑’의 그 ‘풋’이다. 잔 것 같지 않은 잠도 ‘풋잠’이다. 누군들 양손에 술병을 움켜쥐고 태어났으랴. 다들 처음에는 남들 따라서 어설프게 마시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풋술’이다. 풋술의 대부분은 맛도 제대로 모르면서 따라주는 대로 들이붓는다. 그걸 ‘뻘술’이라고도 부른다. 평소에는 입에 대지도 않던 술을 어떤 일로 ‘회가 동해서’ 갑자기 퍼마시는 사람들이 있다. 한바탕 소나기처럼 퍼마신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소나기술’이다. 술에는 장사 없다고 했다. 소나기술에 엉망으로 취한 이는 제 몸과 마음을 가누지 못해 곱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일쑤다. 아, ‘홧술’도 있다. ‘홧병’을 다스리려고 마시는 술이다. 이 또한 뒤끝이 좋기 어렵다. 술이 나를 마시기 때문이다. 홧술이나 소나기술을 마시고 나면 ‘술망나니’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크고 작은 사고를 치기 일쑤다. 끊어진 필름은 무슨 수로 이어붙일 수 있을까. 술을 ‘도깨비 뜨물’이라고 불렀던 것도 그런 까닭에서였으리. 논에 물을 대려면 삽이나 괭이로 물꼬를 터주어야 한다. 술도 물이다. 그래서 술이 들어가는 목을 ‘술꼬’라고 한다. 술을 잘 못하던 사람이 주량이 크게 늘어서 술을 잘 마시게 된 것을 두고 옛날에는 ‘술꼬가 터졌다’고 했다. 그런 이들이야말로 앞서 언급한 술꾼들 아니고 무엇이랴. ‘타오르는 물’이 술이다. 술시부터 자시(子時) 끝까지 퍼마신 술은 다음날 아침에도 코나 입을 통해 알코올 기운을 활활 풍겨낸다. ‘소줏불’이다. 빈속에 안주 없이 마시는 술을 최고로 치는 술꾼들이 적지 않다. 그걸 ‘강술’이라고 한다. ‘깡소주’를 마신다고 하지만 그건 군대식 용어를 빌려다 악으로 깡으로 마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다. 프로기사가 되면 초단을 받는다. 다른 이름으로는 ‘수졸(守拙)’이다. 졸렬하나마 스스로는 지켜낼 줄 안다는 뜻이다. 바둑의 최고 단수는 9단이다. 그걸 ‘입신(入神)이라고 한다. 신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뜻이다. 술도 바둑의 입신하고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지가 있다. ‘열반주(涅槃酒)’다. 한평생 술과 더불어 살다가 결국 술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그야말로 ‘술독에 빠져 죽는’ 경지 아니고 무엇일까. 풋술이든 뻘술이든 상관없다. 가끔 퍼마시는 소나기술이 대수랴. 굳이 술꾼 아니라도 살다 보면 때로는 홧술도 필요하리. 출근해서까지 소줏불 좀 풀풀 날린다고 세상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가끔 깡소주 퍼마신다고 누가 잡아갈 턱 있을까. 그래도 딱 하나, 열반주만은 멀리할 일이다. 입원실 병상에 며칠간 누워 지내면서 그런 생각을 잠깐 했었다. /송준호 우석대 교수
해양환경을 보전코자 해양환경관리법에 의해 해양환경공단(이하 공단)이 설립됐다. 공단은 해양수산부의 지도,감독을 받는 산하 공기업이다. 공단은 설립 목적의 달성을 위해 예방선(예인+방제)을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공단의 예방선은 본래의 업무인 해양오염 방제활동보다는 돈벌이 사업인 예선 업무에 치중하고 있다. 국회 더불어민주당 이원택의원(김제 부안)이 5년간 공단이 전국 항만에서 운용하고 있는 27척 예방선의 방제건수는 1척당 1년에 2건을 밑돌고 있는 반면 하루 평균 3건의 예선 수익을 올렸다고 밝힌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예선업이 지난 1990년대 등록제로 전환되면서 항만 예선시장은 민간에 활짝 개방됐다. 하지만 공단은 여전히 사기업처럼 민간과 경쟁하면서 예선업에서 발을 빼지 않고 있다. 문제는 공단이 어떤 기준도 없이 항세가 열약한 군산항에 많은 예방선을 운용하면서 민간 예선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단은 전국 입출항 척수의 2.2%에 불과한 군산항에 현재 전체 예선 7척 중 57.1%인 4척이나 운용하고 있다. 올해 예선 적정 수급계획상 공단 예방선의 항만별 시장 점유율(척수기준)은 부산항 13.6%, 울산항 9%, 마산항 20%, 평택항 9.7%, 포항항 5.8%에 불과한데 비해 군산항은 66.7%에 달한다. 군산항에서 민간업체가 설 땅을 공단이 휘젓으면서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셈이다. 반면 인천항은 물론 유류나 화학단지가 있는 대산항이나 여수 광양항 등은 군산항보다 입출항 척수가 훨씬 많고 방제수요가 큰 항만인데도 공단의 예방선은 한척도 배치돼 있지 않다. 누가봐도 공단의 예방선 배치 운용이 공정과 상식에 맞지 않다. 왜 유독 전북 유일 항만인 군산항이 이같이 불합리한 홀대를 받아야 하는 지 씁쓸하다. 이와관련,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이 의원은 합리적인 예방선 배치기준마련을 주문했다. 당시 해양수산부는 올해 2차 예선수급계획에 예방선 재배치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검토는 전혀 없었다. 이 의원은 신임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에 서면 질의를 통해 수요를 감안, 예방선을 전국적으로 골고루 재배치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해양수산부는 답변을 통해 현 상황에 대한 개선의지가 없음을 내비쳤다. 해양수산부는 추후 타 항만에 예선 폐업, 입출항 척수증가 등 증선 수요가 새롭게 발생할 경우 공단 예선의 다른 항만배치 방안을 공단과 적극 협의하겠다고 답변했다. 또한 새만금 신항 개항에 따른 군산항 예선 증선 수요가 있을 경우 민간 예선업체의 추가 등록이 가능할 수 있다고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예선업이 예선수급계획에 따라 허가제와 비슷해졌고 선박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런 답변은 비현실적이다. 불합리한 공단의 현 예방선 배치 운용상황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현재의 잘못을 바로 잡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해양수산부가 거꾸로 불공정과 비상식을 포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및 정의를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출범했다. 조 장관은 진정 공단의 현 예방선 배치 운용상황이 공정하며 상식에 맞는다고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안봉호 선임기자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 부장을 지낸 민병훈 박사로부터 얼마 전 전화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고 이건희 회장 기증 1주년 기념전에서 만난 한 작품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란다. 그가 주목한 작품은 작가 불명의 `채용신 평생도병풍`이었다.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 모네의 `수련` 등 대한민국 최고 부호의 수장고에 있던 진귀한 수집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된 전시장에서, 그것도 작가 불명의 작품이 그를 붙든 것은 전북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민 박사는 전주 출신으로 국립전주박물관에서 학예실장을 지냈다. 그가 지목한 병풍 속 주인공인 석지 채용신(1850~1941)은 근대 초상화가의 거장으로, 인생 전반부 무관으로 활동하다가 후반부 전북에서 화가로 살았던 인물이다. 고종의 어진을 그리면서 어진화가로 화명을 떨쳤으며, 사대부와 우국지사, 일반인까지 초상화 대상을 넓혔다. 그가 그린 최익현 초상과 황현 초상은 보물로 각각 관리되고 있고, `운낭자초상`은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국내 미술계도 석지의 독특한 기법과 표현양식, 회화의 근대성에 주목하며 채용신 관련 연구들을 꾸준히 해왔다. 채용신 관련 연구 논문이 석박사 논문을 포함 20편에 이른다. 2000년대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서거 60주년 기념 석지 채용신전`을 연 것도 그 연장선에서다. 그러나 정읍 태인에서 아들 손자와 함께 공방을 운영했고, 그의 묘소도 선산이 있는 익산 왕궁에 자리하는 등 석지의 활동 기반이었던 전북에서 정작 그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전북도립미술관이 그의 사후 70년이 된 지난 2011년에서야 기획전을 연 정도다. 이건희 회장이 어떤 연유로 채용신의 일생을 담은 병풍을 수집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가 미상의 작품이기에 작품 대상의 주인공과 작품성에 주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10폭으로 이뤄진 병풍은 채용신의 어린 시절 공부에서부터 과거급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 수군으로 활동했던 모습 등을 연대기 순으로 담았다. 박물관 측은 조선말 사회변화상을 잘 드러낸 작품이라는 점에서 이번 355점 컬렉션 전에 이 작품을 내걸었다고 귀띔했다. 민병훈 박사가 주목한 것은 그보다 채용신이 어진을 모사하는 모습의 다섯번째 작품(사어용도)이다. 지금은 없어진, 그 당시 흥덕전(덕수궁 궁전자리)에서 태조 어진을 그리는 장면이 생생하게 담긴 것을 두고서다. 임금을 상징하는 일월오봉병(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산봉우리가 담긴 병풍)을 펼쳐놓고 여러 신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치 살아 있는 왕의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은 어진모사 모습을 이 병풍이 보여주고 있다. 어진은 조선시대 왕을 상징하는 핵심 문물이어서 어진 제작과 봉안, 관리 때 왕을 모시듯 했다. 그러나 이렇게 공들인 제작에도 전란과 화재로 대부분 어진이 소실됐다. 경기전 태조어진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유일한 전신상 어진이다. 봉안처인 경기전이 함께 남아 있다. 10여 년 전 경기전 내 어진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다. 전국 유일의 어진 전문 박물관이다. 그러나 콘텐츠는 부족하다. 전북에서 활동한 채용신과 어진 관련 콘텐츠가 담긴 `채용신 평생도 병풍`이 어진박물관에 놓인다면 여러모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건희 회장 유족은 그의 수집품 대부분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고, 지역 연고와 작가 연고가 있는 광주 대구 등 지역의 공립미술관에도 100여점을 나눠 기증했다. `채용신 평생도 병풍`의 제자리는 어진박물관이지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수장고가 아닌, 어진박물관에 있을 때 이 작품과 어진박물관, 채용신이 더욱 빛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김원용 논설위원
바람 일지 않게 스란치마 끄는 소리로 그러나 여물게 굴러떨어지는 잎새에 흘러 소년의 반짝이는 이 꽃잎에 앉아 소녀의 부끄러움 산천을 씻는 빗물 방울방울 산도 들도 초록 세상 한 마리 새로 날아서 올라 구름도 초록으로 물들이고 싶은 △‘스란치마’는 소란 단을 부착한 치마다. 전통 혼례 의상이지만 녹색당의와 스란치마를 입고 폐백을 올리는 건 신부의 꿈이었다. 대청마루를 지날 때 스쳐 지나가는 스란치마의 소리는 우아하고 아름답게 들렸을 것이다. 마음이 초록일 때 마음을 적시는 빗방울도 초록으로 스민다. 초록은 순수한 자연의 무채색이다. 초록을 더 초록으로 물들이는 빗방울은 젊은 날의 기억으로, 초록 세상의 공간으로 간다. 꽃잎이 초록으로 스미는 곳, 젊은 꿈이 있었던 공간일터. /이소애 시인
‘저를 만나면 즐거우시죠?’ 김관영 전북도지사 당선인이 지난 2012년 4월 치러진 19대 총선을 앞두고 2011년 8월 출간한 책 제목이다. 자신의 살아온 길과 정치적 견해 및 신념을 밝힌 자서전이다. ‘고시 3관왕 희망전도사 김관영’이란 부제가 달린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정치 입문이 ‘지경(地境)을 넓히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이 되길 소망했다. 자신이 가진 역량을 발휘해 더 많은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는 소망대로 국회의원에 이어 전북도지사에 당선되며 지경을 넓혔고 전북 발전을 위해 일할 기회를 갖게 됐다. 김 당선인은 지난 2일 당선후 첫 행보로 군산과 전주의 전통시장을 방문해 경제와 민생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도지사가 될 것을 다짐했다. 책상에 앉아 권력을 행사하는 도지사가 아니라 도민 곁에서 대화하고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현장에서 답을 찾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에서 7년 정도 근무한 그는 ‘공무원이 현장에 가까울수록 행정은 현실에 가까워진다’는 경험칙을 갖고 있다. 공공기관 심사평가 업무를 맡았을 당시 광업진흥공사에 대한 불합리한 평가기준의 문제점을 현장 출장을 통해 확인한 뒤 바로잡았고 평가에서 만년 꼴찌이던 광업진흥공사는 불명예를 벗었다고 한다. 공무원의 사명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는 관료사회의 우수성과 성실함이 국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한다. 지난 3일 전북도청 기자실을 찾은 김 당선인은 도정의 중점 과제로 기업유치 및 경제, 시·군과의 협치, 인사 문제 등을 강조했다. 기업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시장·군수들의 지역발전 노력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키지 않고 도와주겠다고 했다. 열심히 일하고 도민들께 서비스 잘하는 공무원을 승진에서 우대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로 일할 당시 체험했던 고객중심 서비스 정신을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기도 전에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 스카우트 된 김 당선인은 ‘변호사는 의뢰인의 을이어야 한다’는 고객중심주의를 체득했다. 후배 변호사들에게는 “고객이 찾아오길 기다리지 말고 먼저 찾아가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진정성을 갖고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주파수를 맞추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당선인은 학창시절과 중앙공무원교육원 교육시절, 김앤장 근무시절 내내 오락부장 또는 엔터테이너로 불릴 만큼 분위기 메이커였고 노래 실력도 뛰어나 초청받은 결혼식장에서 축가를 열 번도 넘게 불렀다고 한다. 2002년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며 기념문집(아름다운 약속)에 직접 쓴 자신의 묘비명에 ‘30대 초반까지 자신을 절차탁마하기 위해 보여준 불굴의 의지는 이를 지켜본 많은 사람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으며, 만 30세에 이룬 고시 3관왕의 성과는 그의 노력의 극히 일부 부산물일 뿐이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만나면 즐거운 사람, 즐거운 전북을 위한 그의 더 큰 노력과 성취가 기대된다. 강인석 논설위원
이번 6.1 지방선거는 더불어민주당 공천과정에서 빚어진 선거 브로커 파문을 비롯해 휴대전화 대리투표, 금품 선거 의혹, 유권자 선택권이 사라진 무투표 당선 속출, 역대 최저 투표율 기록 등 적지 않은 폐단과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러한 지방선거의 폐해는 지역정서에 기인한 정당 공천제도의 허점에서 비롯된 것으로써 지방선거 제도의 전면 개정이 요구된다. 지난 1991년 지방의원 선거에 이어 1995년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뽑는 전국 첫 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된 이래 8차례 지방선거를 치러왔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처럼 정당 공천을 둘러싼 잡음과 혼탁, 과열이 심했던 전례가 없다. 민주당 후보 자격심사와 공천심사 과정에서 계파 간 알력 다툼과 줄 세우기 줄서기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선거 브로커가 후보 경선 과정에 개입해 금권 동원과 공무원 인사권 거래, 휴대전화 여론조사 왜곡 및 금품 살포 문제 등이 터져 나왔다. 이 과정에서 유력 후보들이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극심한 공천 후유증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민주당의 공천 파문과 부작용은 요지부동인 지역정서에서 비롯됐다. 특정 정당의 공천이 끝나면 사실상 선거 결과가 결정되는 상황이기에 후보자들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천장을 거머쥐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책과 비전, 인물론은 실종되고 조직 동원과 세 대결을 통해 공천에만 집착하는 그릇된 선거 풍토를 조장하고 있다. 이번 제8회 지방선거에서도 광역의원 지역구 후보 22명과 시·군의원 지역구 후보 33명, 기초 비례대표 후보 7명 등 총 62명이 무투표 당선됐다. 이는 역대 최다 규모로 이들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대거 무투표 당선은 유권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역대 최저 투표율도 문제다. 이번 전북 투표율은 48.7%로 지방선거 사상 최저치다. 민주당 공천 파문에 따른 선거 피로감과 대거 무투표 당선이 선거 무관심을 부추긴 탓이다. 따라서 인물 본위의 투표와 유권자 참정권 확대, 그리고 지방자치의 중앙정치 예속화 등을 탈피하기 위해선 시장·군수와 지방의원 선거의 정당 공천제 폐지가 마땅하다.
6·1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전북도민의 민심은 변화와 발전에 대한 갈망이었다. 물론 민주당이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대거 배출하면서 ‘민주당 공천=당선’이라는 공식을 다시 확인했지만, 일부 시·군에서 무소속 후보에게 패해 텃밭을 내주면서 압승을 거두지는 못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전북은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해 지역정치권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피로감을 보여줬다. 공천 파행 사태 등으로 인한 실망과 변화에 대한 갈망으로 민주당 지지층이 상당수 이탈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민주당은 반성이나 변화의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노력조차 없는 민주당에 실망이 크다. 어쨌든 선거는 끝났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은 당선자들은 갈등과 분열을 봉합하고, 지역발전을 이끌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인구절벽의 시대, 전북지역 상당수 시·군은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같은 위기를 극복하고 ‘전북 대전환’의 급물살이 시작되는 변곡점을 만들어내야 한다. 올해 출범한 새 정부가 ‘어디서나 살기좋은 지방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했다. 지방시대, ‘전북 대전환’을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리더십이 요구된다. 공동체의 위기를 직감하고, 지역의 정체성을 살린 창의력과 추진력으로 지역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위기의 시대, 지역의 미래 비전을 제시하고 소통과 통합으로 그 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협치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시민사회와 여야 정치권, 행정 등 다양한 영역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협치야말로 이 시기, 지역의 미래를 이끌 새 단체장들이 보여야 할 리더십이다. 특히 지역현안을 놓고 불거진 시·군 간 갈등에 대해 그동안 조정·중재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전북도의 역할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교육청과 지자체의 협치도 절실하게 요구된다. 우리 사회 교육문제가 풀기 어려운 난제가 된 것은 교육의 문제가 ‘교육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회 불평등과 같은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있기에 교육현안 해결은 지자체·시민단체 등 지역사회 다양한 주체의 긴밀한 소통과 협업이 필요하다.
내 나이 채 스무 살도 안 되던 해에 군에 입대하여 월남전 파병이라는 국가의 명령을 받았다. 혹독한 훈련을 받고난 후, 부산 항 제 3 부두를 떠날 때는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 땅을 다시 밝게 될지 모르겠다고 수없이 맘속으로 되 뇌였다. 그리고 남지나해의 검푸른 파도를 타고 장장 5박6일간의 긴 항해를 시작한 끝에 도착한 곳은 월남 땅 퀴논이라는 항구였다. 도착 시간은 그날 오전 10시 30분 정도… 역시 열대의 나라답게 날씨는 무척 뜨거웠다. 월남인의 특이한 삼각형 모자며, 두부장수처럼 어깨에 걸머진 물통 같은 짐들, 아오자이 입은 가냘픈 여인들의 자태…… 이 모든 것이 낯 설은 이국땅이었지만 임무를 마치고 꼭 살아서 돌아가고야 말겠다는 마음만은 간절했다. 그 후, 십 육 개월간의 파월 생활 동안 나는 생(生)과 사(死)의 전투 속에서 피비린내 나는 실전을 경험했다. 고막이 찢어지는 듯 한 팬텀 비행기 소리며 콩 볶듯 쏘아 대는 소총소리, 내 키보다 훨씬 큰 정글을 헤매며 숨 가쁜 베트콩과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을 때, 나는 내 삶을 영위하려고 안간힘을 다해 싸웠다. 살아서 돌아가리라! 살아서 돌아가리라! 하고 이를 악물고 싸웠다. 사정없는 베트콩과의 총격전이 끝난 후, 새벽녘 별빛에 비친 전쟁의 흔적은 비참했다. 부상을 입은 전우는 붉은 피를 흘리며 정글 속에 나뒹굴고 있었고, 여기 저기 적들의 총탄으로 얼룩진 참혹한 광경은 참으로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부상을 입은 전우들의 살려달라는 피맺힌 울음소리며 부상당한 전우를 부둥켜안고 헬리콥터만 오기를 애타게 기다릴 때, 나는 전우애란 것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참혹한 광경은 나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치열한 싸움터에서 임무를 마치고 내 나라 고국을 향하는 거대한 배에 올랐을 때에는 같이 파병에 임했던 수 많은 전우들 중에는 전사한 자도 있었고 부상을 입은 전우도 있었다. 마음이 찢어지는 듯 아팠지만, 나는 살아서 돌아간다는 아주 벅찬 희망감에 파랗게 철썩이는 파도의 갑판에 서서 하늘을 향해 내 조국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모른다. 그 검푸른 파도를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월남 땅을 뒤로하며 임무를 끝낸 내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간신히 살아나왔음을 파랗게 철석이는 파도는 그렇게도 나를 축복하고 있었다. 월남참전을 그렇게 말리시었던 어머님이 바다의 넘실대는 파도위에서 환한 얼굴로 어서 오라, 어서 오라, 내 아들아! 손짓하시는 것 같았다. 애타게 불렀던 내 조국 대한민국 태극기가 파도위에서 너울거렸다. 파도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디 치거라. 얼마든지 바람에 부딪쳐 보아라. 나는 굴하지 않고 굿굿이 살아남았음을 내 조국에 가서 고하리라. 아! 살아서 돌아가는 내 조국이여, 내 조국이여…… 파도야 어서 함께 내 조국으로 돌아가자 꾸나. /황만택 월남전참전용사·수필가
여름이 오면 성창순 명창이 생각난다. 아주 무더웠던 그해 여름에 선생을 만났다. 선생은 자신이 그동안 여러 형태로 출반했던 모든 음반자료를 책보에 싸서 내게 건네주셨다. 오래된 음반, 카셋트 테이프, CD 음반까지 망라한 것이었다. 당신의 예술세계를 하나로 묶어서 종합음반으로 정리하시고 싶다고 했다. 그때 선생은 내게 우전(雨田) 신호열 선생의 ‘적벽부’ 글씨가 담긴 부채를 선물해 주셨다. 선생이 내게 주신 부채는 우전 선생의 글씨로 소동파의 ‘적벽부’가 촘촘하게 채워져 있었다. 우전이 세필로 단아하게 써서 직접 성창순 명창에게 준 것이다. 우전 선생은 빼어난 한학자이자 섬세한 글씨를 잘 쓴 분으로 이름이 나있다. 나도 대학 다닐 때, 이분에게 <고문진보>와 <시경>을 배운 바 있는데, 선생의 가르침에 수업 때마다 감탄했었다. 선생은 토를 달지 않고 한문을 읽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선생은 네 글자씩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낭송하셨다. 지금도 부채를 펼치면 스승이신 우전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경이롭다. 성창순 명창은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를 가졌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를 소리로 그려냈다. 명창이 소리할 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품은 부채다. 성창순 명창에게는 탐낼만한 부채가 많았는데, 이당(以堂) 김은호 선생의 장미그림 부채가 기억에 남는다. 성창순 명창은 소리판에서 늘상 장미 그림 부채를 들고 판을 이끌어갔다. 이 그림은 원래 이당이 김소희 명창에게 선물한 것이었다고 한다. 김소희 명창은 이 부채를 두고두고 아꼈는데, 어느날 성창순 선생을 불러 부채를 물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끼던 놈인디 결국 자네에게 주네. 잘 간직허고 좋은 소리허시게”. 성창순 명창은 귀한 <춘향가> 소리판에서만 장미그림 부채를 들었다. 부채를 강하게 펼치면, 붉은 장미에서 내뿜는 진한 장미향이 순식간에 주변에 퍼졌다. 김은호 화백은 20세기 전반기부터 활약한 당대 최고의 화백으로 화조도와 인물 그림에 능한 분이었다. 남원 광한루의 춘향사당에 모셔진 춘향 영정이나, 진주의 촉석루에 모셔진 논개의 초상도 이당의 단아한 화풍의 산물이다. 이당은 우리 음악을 애호하였고, 우리 음악에 대한 조예도 대단히 깊어 인연이 닿은 예술가들에게는 멋진 그림을 선사했다고 전한다. 성창순 명창이 <심청가>를 할 때면 소정(小亭) 변관식 선생의 복숭아꽃밭 그림 부채를 꺼내들었다. 심청이가 살던 곳은 도화동이고, 장승상 부인이 살던 곳은 무릉촌이다. 소정 선생은 바로 그 도화동 무릉촌을 고스란히 그림으로 그려, 성창순 선생에게 증정했다. 소정은 산수화에 특히 빼어난 분이다. 그이의 복숭아 그림은 도원을 지향하는 도가적 세계와, 복숭아밭이 가진 관능적 아름다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소정의 산수화 부채는 명창이 펼쳐만 보아도 시원한 바람이 일어났다. 부채에는 소리꾼의 교양이 담겨 있다. 성창순 명창은 우전 선생에게 서예를 배워 단아한 글씨를 남기기도 했다. 선생은 특히 우아하고 기품있는 자세로 소리판에 임했다. 선생은 부채를 펼쳐 보이는 자태마저도 우아했다. 선생이 직접 소리하는 장면은 이제 다시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선생이 남겨준 부채와, 책보에 싸서 내게 건네준 음원자료는 내게 남아있다. 음원으로 만들어 선생께 전해드리지 못한 것이 여전히 내게는 부채다. 그렇지만 이제 선생이 남기는 음원자료를 모두 정리했다. 이 소중한 음원을 국악방송 아카이브에 담아두고, 선생의 예술세계 전모를 세상에 전하고자 한다. /유영대 국악방송 사장
가까운 미래 모든 인간은 25세가 되면 노화를 멈추고 몸에 새겨진 시계에 1년의 유예 시간을 제공받는다. 이 시간으로 음식을 사고 버스를 타고 집세를 내는 등 모든 것을 시간으로 계산한다. 부자들의 금고에는 세대를 거쳐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시간이 보관되어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퇴근 버스를 탈 2시간이 없어 심장마비로 죽고 동네 불량배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훔치는 게 일상이다. 소수의 영생을 위해 다수가 죽어야 하는 시스템으로 빈민가에 사는 많은 사람은 매일 오르는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 죽어 나갈 수밖에 없다. 삶에 필요한 비용이 모두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시간으로 결제가 되는 시간의 상상력을 소재로 한 영화이다. 우리는 눈앞에 닥친 시간만을 급박하게 대하며 살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보내고 있는 시간은 순환한다. 아침이 되면 닫혀 있던 건물들이 문을 열고 회사로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늘어나다가 날이 저물면 도시의 길에는 사람이 종적이 줄어들게 된다. 매년 더 뜨겁고 습해지는 여름이 다가오지만 때가 되면 지나간다. 같은 건물이라도 새벽녘의 모습과 저녁노을이 비칠 때의 모습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건축설계 자체는 평면에 그리는 2차원적인 작업이나 그것은 3차원적으로 지어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사람은 찰나가 아닌 지속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므로 건축 공간은 사람이 머물고 움직이며 생활하는 긴 시간을 위해 수많은 물질로 지어진다. 땅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주 천천히 그 어떤 것보다도 깊이 변하는 것이며 이렇듯 물질을 통해 시간을 불러내고 이어가는 일이다. 어떤 건물이든 특정한 사회를 위해, 특정한 장소에, 특정한 용도를 위해 지어지게 되어 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주문생산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용도를 단지 편리함의 측면에서만 바라보지 말고 짓고자 하는 시설의 본래 목적을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는 집과 집 사이의 간격처럼 가까운 거리만 보고 살지만,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면 먼 산과 하늘을 보게 된다. 건축공간은 크건 작건 그것이 서 있는 주변과 거리를 두고 대립하고 있으며 우리의 공동생활을 위한 규칙으로도 작용한다. 물리적 가치나 경제적 가치가 충분하더라도 사람들이 잘 가지 않게 된다든지 딱히 분명한 용도가 없으면 건물의 사회적인 가치가 사라진다. 고유한 지역성이나 역사성이 희박해진 우리의 건축과 도시에 다시금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지금 있는 흔한 주택들을 이 도시의 시간적인 삶의 일부로 여기고 시간이 어떻게 공간에 누적되는지를 제대로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집은 자기가 살아갈 현재를 위해 설계하고 짓지만 일단 지어지고 나면 미래를 향한 긴 시간이 그 공간에 누적되기 시작한다. 꼭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집과 길과 주변의 사물들과 함께 눈비를 맞으며 바람에 맞서며 다양하게 변화하는 시간을 경험한다. 예술적으로 잘 지은 집을 감상하기 위해 존재하는 건축이 아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건축의 근본을 말하고 실천하는 것이 좋은 건축이고 그것을 잘 만드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다. 우리 공동의 생활을 지탱하는 질서를 세우고 뒷받침해 줄 수 있는 건축설계의 가장 큰 매력은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는 것이다. 커피 한잔에 4분, 버스요금 2시간을 벌기 위해 오늘도 바삐 뛰어다니는 우리에게 건축은 시간을 짓는 이들의 노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게 한다. /이길환 길종합건축사사무소ENG 대표
6.1 지방선거를 통해 도지사와 시장·군수 등 15명의 단체장이 새로 선출됐다. 도지사와 전주시장 정읍시장 남원시장 김제시장 완주군수 장수군수 순창군수 고창군수 등 9명은 새로운 인물로 바뀌었다. 군산시장과 무주군수 진안군수 부안군수 등 4명은 연임에 성공했고 익산시장과 임실군수는 3선 고지에 올랐다. 김관영 도지사 당선인을 비롯해 14명의 시장·군수 당선인은 이번 선거전에서 저마다 지역 발전을 위한 공약과 비전을 내걸었다. 15명의 당선인 모두 지역 경제 살리기와 민생 회복, 기업 유치와 산업 활성화, 일자리 창출과 청년 지원 정책 등을 이구동성으로 제시했다. 그만큼 전북 경제 상황과 먹고 사는 문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전북의 위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인구 감소와 산업 위축, 청년 인구 유출 등 거듭되는 악순환은 전북의 현주소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전주를 제외하곤 13개 시·군이 소멸 위기에 내몰렸고 성장동력을 잃은 전주시도 지난해부터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섰다. 게다가 자동차와 조선 등 전통적인 제조업이 퇴조함에 따라 전북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와 군산 현대중공업 가동 중단에 이어 군산 타타대우와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생산 물량이 격감하면서 전북을 지탱해온 제조업 기반이 무너졌다. 그렇지만 전북도와 정치권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지 못했던 게 현실이다. 이러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전북 발전의 키를 잡은 도지사와 시장·군수 당선인의 역할과 리더십이 중요하다. 당장 전북은 초광역협력과 메가시티 발전전략에서 소외되면서 고립무원의 처지로 남게 됐다.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전북 발전전략을 모색하느냐가 도지사 당선인의 제1 과제가 아닐 수 없다. 단체장 당선인이 내건 기업 유치와 일자리 창출, 신산업 발굴 등 지역발전 공약은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표 얻기에 급급해서 장밋빛 청사진만 내걸고 나 몰라라 뒷짐만 져서는 절대 안 된다. 지역의 힘과 동력을 하나로 모으고 주민과 약속한 비전과 정책, 그리고 발전 전략을 잘 이끌어서 지역 소멸 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를 썼다.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브로커)을 거머쥐었고, ‘칸의 남자’라 불릴 만큼 칸영화제의 주목을 받아온 박찬욱 감독은 감독상(헤어질 결심)을 받았다. 남우주연상은 한국 최초이고, 감독상은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감독상을 받은 이후 두 번째다. 2019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은 데 이어 한국 영화의 빛나는 성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결실이다. 한국 영화의 화려한 수상 소식이 전해진 올해 칸영화제에서 그 못지않게 주목을 받은 또 한 편의 영화가 있다. 상영회에서 해외 취재진은 흐느꼈고, 7분 동안 세 번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는 화제의 중심에 선 영화, 칸영화제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다음 소희>다. 이 영화는 부산영화제 선재상(2007), 올해의 여성영화인상(2014),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2015) 수상 등 일찌감치 한국 영화계의 주목을 받아온 정주리 감독의 작품이다. 정 감독의 칸영화제 진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에도 정 감독은 영화 <도희야>로 비평가주간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었다. 비평가주간은 프랑스비평가협회 소속 최고 평론가들이 참신하고 작품성 있는 영화를 엄선해 상영하는 섹션이다. 해마다 10편 내외의 작품만 선정되는 만큼 경쟁이 가장 치열한 부분으로 꼽힌다. 비평가주간에, 그것도 폐막작으로 선정되었다는 것은 이 영화의 작품성을 제대로 인정받았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영화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또 있다. <다음 소희>는 콜센터 실습생의 안타까운 사망사건을 그린 영화다. 2017년 전주의 한 이동통신사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여고생이 저수지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통신사 하청업체 콜센터에서 실습생으로 일한 지 5개월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학보다는 일찌감치 취업을 택한 이 여고생은 왜 죽음을 택했을까. 이 사건은 취업률에 목매는 정부와 학교, 저임금에 착취당하는 실업계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그대로 들춰냈다. 이 영화를 칸에 보내면서 "너무나 한국적인 이야기에 과연 외국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는 감독의 우려에 칸의 관객들은 뜨거운 공감으로 답했다. 메시지의 ‘보편성’이 가져다 준 힘이었다. 2017년, 불과 5년 전에 벌어졌던 여고생의 안타까운 죽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의 죽음을 통해 알게 된 한국 사회의 잔혹한 현실에 함께 분노했던 우리는 무엇을 했을까. 곧 만나게 될 <다시 소희>가 기억을 불러내는 이유가 있을 터. 아직도 온전히 치유되지 못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 한계를 보니 그의 죽음을 소환한 영화의 힘이 새삼 커 보인다./김은정 선임기자
전북장학기금 총액 타 지역보다 너무적다
[백성일 칼럼] 민심이냐 당심이냐로 판가름 난다
장학금, 미래 인재 키우는 소중한 밑거름
[사설]고령운전 사고 급증, 면허제도 개선해야
[새벽메아리] 이리역 폭발 사고 48주기, 익산의 정체성을 묻다
[오목대] 오페라 공연장이 된 채석장
[사설] 제2중앙경찰학교 정치적 판단 작용 없기를
[기고] 지속가능한 희망의 청신호 “출생아 증가”
'씨지'보다 '컴퓨터 영상 처리'가 좋아요
[전북아동문학회와 함께하는 어린이시 읽기] 내가 글자를 먹을 수 있다면김성수 신동초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