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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초고압 송전탑 노선, 누가 결정하는가

이정현 전북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

변방에서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중심을 흔들었다. 34만5000볼트 송전탑이 지나는 전북 농산촌 주민들이 제기한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재검토와 지역 이전 요구, 그리고 수도권의 반발. 이 이슈는 수도권 일극 집중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며 국가균형발전과 반도체 산업 경쟁력 확보라는 핵심 의제로 떠올랐다.

과거 농민 운동은 대부분 이해관계자의 저항이나 님비라는 벽에 부딪히곤 했다. 이번 송전탑 반대 운동은 다르다. 문제의 원인을 국가 구조에서 찾았고, 해법도 보상이나 우회 노선이 아닌 전력과 산업 정책의 전환을 제시했다.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에 공감대가 형성됐고, 용인 반도체 산단 재검토 여론도 커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5극 3특 균형발전과 재생에너지가 생산되는 남쪽으로의 기업 이전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럼에도 송전탑 갈등 최전선의 주민들은 변화를 체감하지 못한다. 국민주권 정부에서도 송전선로를 정하는 한전의 입지선정위원회는 달라진 게 없다. 근본 문제는 사업자가 심판을 본다는 점이다. 아무리 공기업이라 해도 한전은 사업자다. 사업 강행 논리가 우선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위원회 구성·운영과 경과지 선정, 주민의견 수렴 등은 민간 용역 업체가 맡는다. 국가적 중요 사업을 공기업과 민간 업체가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주민들은 몇 번의 회의 만에 외통수에 몰린다. 참여하면 “위원회에서 결정했다”며 책임을 떠넘기고, 참여하지 않으면 “주민이 협조하지 않았다”며 1년 6개월 내 의결이 안 되는 경우 위원회 자체를 건너뛸 수 있다. 지난 12월 30일, ‘345kV 서남권 해상풍력 공동접속설비 건설사업’ 입지선정위원회가 주민 반발로 무산됐다. 한전은 운영 기한 내 입지를 정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위원회 해산을 예고하고, 입맛에 맞는 전문가 위원으로 협의회를 구성해 입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송전탑 노선은 첨예한 갈등 사안이다. 충분한 논의와 합의가 필요하다. 주민대표들이 99% 합의로 노선을 결정해도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전의 셀프 위원회가 결정한 노선을 누가 인정하겠는가. 운영 기한이 넘었다는 이유로 고시로 정한 심의 의결 기구의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법 논리에도 맞지 않는다.

위원회 구성과 운영도 문제다. 주민대표는 공개모집이나 선출 기준이 없고, 실거주나 이해관계 검증도 부재하다. 전문가는 한전이 위촉하며, 위원장도 교수나 전문가만 가능하다. 국무회의도 공개하는 세상에 주민은 왜 이 노선이 결정됐는지 알 수 없다. 회의록은 결과 중심 요약만 남기고, 토론 과정이나 반대 의견, 대안 검토는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 마을 대표가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알 수 없다. 위원도 주민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다. 결과에 따라 주민과 위원이 다투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노선을 정하는 선호도 조사는 전문 배경지식이 없는 일반 주민이 이해하기 어렵다.

현 제도상 입지선정위원회는 갈등 해결 기구가 아니다. 주민 참여를 형식화하고 한전의 책임을 희석하며, 정부의 정치적 책임 회피 수단으로 전락했다.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의 전면 재검토와 지역 이전을 포함한 국가 차원의 공론화 없이는 이 갈등이 끝나지 않는다. 입지선정위원회를 잠정 중단하고 제도를 국민의 눈높이에 맞도록 전면 개편해야 한다. 위원회가 계속되는 한 갈등은 끝나지 않는다. 투쟁의 강도와 주민 저항은 더 거세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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