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봐도 근사한 도서관이 내가 사는 근처에 있다. 전주 아중호수도서관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감탄이 나오는,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는 공간이다.
이런 동네에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한동안은 자부심을 느꼈다. 막상 찾아가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어느 주말, 가볍게 책을 챙겨들고 도서관을 찾았다. 자부심은 곧 실망으로 바뀌었다. 그곳은 ‘도서관’이라기보다 ‘무료 카페’에 가까웠다. 공간 내 소음과 울림이 심했고, 책을 읽을 만한 공간도 없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과는 달리 내부는 비좁다.
전체 좌석이 101석인데, 그 중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일반 열람석은 12석에 불과하다. 공간분리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절반에 가까운 50석은 호수 조망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고, 음악 감상 및 청음 좌석도 25석이다.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정작 ‘읽는 공간’은 가장 주변으로 밀려난 꼴이다.
열람실이 아닌 다른 공간들도 문제다. 좌석을 차지하기 위한 이른바 오픈런(개장 전 대기)이 적지 않고,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자기의 물건을 놔두고 장시간 자리를 비우는 일이 다반사다. 공공시설이 순환되는 이용 구조를 갖지 못한채, 소수의 일부 이용자들을 위한 고정 좌석처럼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왜 이런 도서관이 필요할까? 이 부근에는 이미 사설 카페가 적지 않다. 풍경을 즐기고 시간을 보내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은 민간에서도 충분히 공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공공이 또 하나의 ‘카페형 공간’을 만들어야 했던 이유가 정말 궁금하다. 공공의 역할이라면 민간이 대신하기 어려운 영역에 더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도서관이 과거처럼 조용히 책만 읽는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고 보지는 않는다. 오늘날 도서관은 문화와 경험을 공유하는 열린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민들이 모여 소통하고 머물며 새로운 활동을 만들어내는 ‘공동체의 거실’ 역할은 충분히 의미 있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이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사람이 머물며 사유하고 스스로를 채워가는 공간이라는 본질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
특히 아중지구는 거주 인구수는 많지만, 공공도서관 시설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도서관을 또하나 들이는 것이 공공예산의 적절한 사용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주시가 ‘책의 도시’를 표방하며 특화 도서관을 확충해 온 점은 분명 긍정적이다. 산책로와 숲, 호수와 결합한 도서관은 도시의 품격을 높이는 데 기여해 왔다. 그러나 시설 확충이라는 성과에 치우친 나머지, 정작 도서 구입과 프로그램 운영, 이용 환경 개선 같은 내실이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만성동 기지제 주변에 새로운 도서관 건축이 한창이다.
아중호수도서관처럼 기지제를 내려다보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도서관이 사진찍기 좋은 곳에 그쳐서는 안된다. 공간을 어떻게 배분하고 활용할 것인지를 충분히 고민하고 치밀하게 시행했으면 좋겠다.
도서관은 건물의 외형이나 숫자로 평가되는 공간이 아니다. 많은 시민들에게 실제로 어떤 도움이 되는지가 더 중요하다.
이제는 방향을 다시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도서관의 숫자가 아니라, 얼마나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가를 따져야 한다. 시민이 책을 읽고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인지, 공공재로서 공정하게 이용되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 도서관의 생명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6월 3일 선거일이, 그 변화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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