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메아리]"누구나 다 네편이 아니란다”
오늘, 둘째 아이 선오가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큰 딸 은오가 입학할 때는 그저 먹먹하니, 안쓰러운 느낌뿐이었는데, 세월에 적응이 되었나 보다. 어제는 둘째 아이에게 입학을 앞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다. 큰 애가 입학했을 때는, 이 아이가 앞으로 이와 같은 통과의례를 몇 번이나 치러야할지, 또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고통과 좌절을 겪어야 할 것인지, 쓸데없이(?) 미리 헤아리다가 변변히 입학을 축하한다는 말조차 해주지 못했던 것을 상기하면, 장족의 발전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아이는 부모를 성장시키기도 한다."누구나 다 너를 좋아하지는 않을 거란다”둘째 아이에게 내가 가장 힘주어 말한 이야기는 그런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아빠, 엄마가 다 너를 예쁘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 모두 다 너를 좋아하는 줄 알았겠지만, 네가 좋아하는데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있을 거란다.'대개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은 자신을 보호해주고, 좋아하는 것만 고를 수 있고, 자신이 좋다고 말하면('엄마 사랑해요') 그에 대해 자신이 말한 것 이상의 즐거운 반응이 돌아오는 것을 아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환경에서 보호받고 크는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런 아이들이 친구로 하여 상처를 입고, 또 자신이 상처를 주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제부터 본인이 스스로 온몸으로 겪어나가야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그런 중에, 어린 아이는 이 세계가 자신을 중심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자신은 자신이 관계하는 바의 관계망의 총합'임을 차츰 알게 될 것이다. 그 세계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기쁨이면서 동시에 슬픔이고, 좌절이며 희망이고, 상처이며 치유라는 것, 또한 알게 될 것이다. 물론, 함께 살아가는 벗들로 인해 수없이 많은 일과 감정적 반응이 발생하고, 예측 불가능한 변화를 겪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둘째 아이가 그 당장에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는 나도 기대하지 않는다. 아직 체감치 않은 일을 어찌 미리 짐작하겠는가. 대개 그 나이 때는 지금보다 더 어린 시절에 대해서만 이해할 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엔 관심이 없는 법 아니던가.하지만, 그래도 지금 그런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 그 중요한 고비고비는 대개 혼자서 넘어가야 하는 법이다. 자신 스스로 발화점을 찾아 불을 일으키고, 그 열로 자신을 담금질하며 가야 되는 기나긴 길…. 주위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란, 네가 이 고비를 잘 견디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단다, 하는 존재감을 심어주는 것 외에 많지 않다. 결국 가장 좋은 충고란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적절한 순간에 다시 들려주는 것일 뿐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는 생각.하긴 어찌, 아이에게만 이런 다짐을 하겠는가. 나 역시 이제 막 초등학교 교문을 들어설 아이의 뒷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크게 다짐할 일이 있다.후일 성장한 이 아이가 나를 속상하게 하더라도 실망하지 않기! 이 아이가 겪을 좌절이나 고난이 우리까지 아프게 하는 그 날이 올지라도, 다 받아들일 것! 다 감싸줄 것!이 아이는 태어난 그 순간부터 우리에게 기쁨과 웃음을 안겨줬으며, 그 시간은 지금까지로 충분했다. 지금껏 우리 부부는 이 아이들로부터 너무 많은 선물을 받아온 셈이다. 어쩐지 앗긴 것 같고 학교에 보내자니 불안하지만, 이 또한 한 아이를 키움으로써 얻게 되는 선물 같은 것. 두려움과 상처가 우리를 성장시킨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예쁜 짓을 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였을 뿐이다. 마찬가지로, 이 아이가 커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고의적인 것은 아닐 것. 다만, 그걸 우리가 섭섭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하니, 오늘은 오늘까지 받은 선물을 기억할 것!이 다짐이 또한 나를 성장시키리라. 오늘, 우리집 둘째 아이는 내게 그런 깨달음을 안기고 학교에 들어간다. 오늘 한 아이가 그렇게, 세상을 향해 첫걸음을 내딛는다. /김병용(소설가·백제예술대 문예창작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