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출신으로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街人) 김병로 선생은 공사(公私) 구분이 엄격했다. 그가 9년 4개월 동안 대법원장으로 있는 동안 가족들은 그의 관용차를 타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언젠가 추운 겨울 날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손자에게 대법원장 승용차를 태워준 운전기사는 “이 사람아! 이 차가 대법원장 차지 대법원장 손자 차인가?”라는 나무람을 들어야 했다. 또 한번은 가인의 며느리 부탁으로 중학교 입시를 치른 손자의 성적을 알아보기 위해 비서관이 잠시 학교에 다녀왔다. 그걸 안 가인은 “자네는 대법원장 비서관인가 내 며느리 비서관인가?”라는 호통을 들어야 했다.
그는 1950년 9·28 수복때 부인을 잃었다. 전쟁이 일어나자 부인을 친정인 전남 담양으로 보냈는데 그곳을 덮친 공비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것이다. 김갑수 전 대법관은 “가인은 대법원장이라는 공인으로서 난중(亂中)에 가족을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부인을 희생시킨 것”이라고 회고했다. 나아가 냉혹한 그의 공인의식은 대법원장 재임중에 부인의 묘소를 찾는 일마저 억제시켰다. 대법원장이 부인의 묘소에 간다면 관계당국이나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친다는 이유였다.
또 사도법관으로 서울고등법원장을 역임한 김제출신 김홍섭 판사의 일화도 유명하다. 김 법원장은 병든 부인을 입원시키면서 자신은 관용차를 타고 가고 부인은 시내버스를 타고가게 했다. 부인은 민간인이니 관용차를 타서는 안되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김 법원장은 항상 물들인 작업복에 운동화 차림으로 다닐만큼 청빈했다.
요즘 부산시를 비롯 서울시와 광주시, 전남도 등에서 시도지사 사모님(부인)에게 기사가 달린 전용차를 1대씩 배치하고 공무원 1-2명을 비서로 두어 물의를 빚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관사에 청경 3명도 배치했다. 이같은 행태에 비난이 일자 이들은 한결같이 ‘70년대 이후 계속된 관행’이라고 항변한다.
물론 시도지사의 배우자가 공적활동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시도지사와 함께, 또는 단독으로 참석해야 할 공식행사도 많을 것이다. 문제는 ‘공적인 행위’가 아닌데도 평소 특혜를 누리는 경우다. 세태가 달라졌다지만 가인이나 김홍섭 판사같은 공인의식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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