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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목대] 보릿고개

요즘은 생경한 말이지만 보릿고개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배고픔의 대명사였다. 봄이 되면 지난 가을에 수확한 양식은 바닥이 나고 기대할 것은 보리가 빨리 익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미쳐 여물지 않아 5-6월, 한 두달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춘궁기(春窮期) 또는 맥령기(麥嶺期)라 했다. 어찌나 힘들든지 '보릿고개가 태산보다도 높다'고 할 정도였다.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사람들은 산에 들어가 나무껍질을 벗기거나 칡뿌리를 캐어 왔다. 논에 나는 자운영을 삶아서 된장에 무쳐 먹기도 하고 쑥에 밀가루를 묻힌 쑥범벅 개떡은 최고의 별미였다. 들에 나가 찔레 순을 벗겨 먹고 삐리를 뽑아 악구댕이 볼을 채워야 했다. 그것도 못먹어 누렇게 부황든 아이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미당 서정주는 그의 시 '보릿고개'에서 곤궁함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사월 초파일 뻐꾹새 새로 울어/ 물든 청보리/ 깎인 수정(水晶)같이 마른 네 몸에/ 오슬한 비취의 그리메를 드리우더니// 어느 만큼 갔느냐, 굶주리어 간 아이.// 오월 단오(端午)는/ 네 발바닥 빛깔로 보리는 익어/ 우리 가슴마다 그 까슬한 가시라기를 비비는데…// 뻐국새 소리도 고추장 다 되어/ 창자에 배는데…/ 문드러진 손톱 발톱 끝까지/ 얼얼이 배는데…”

 

다른 시인의 '보릿고개'도 비슷한 정서다. "한 입 덜자고 여물지 않은 딸년 시집보내 울고/ 늙은 할미는 내가 빨리 죽어/ 한 입이라도 줄여야 한다며 늘 넋두리였다/ 하루 해는 왜 이리 길었던가/ 포동포동 살이 찐 허연 달을 바라보며/우물물로 배를 채워도 보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이처럼 배고픔의 상징이었던 보릿고개는 이제 옛말이다. 쌀이 남아 돌고 보리밥은 웰빙과 다이어트 식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에는 보리가 관광상품으로 등장했다. 고창 공음면 학원농장 일대 보리밭 30만평에서 펼쳐지는 청보리밭 축제는 장관이다.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사이로 수십만 인파가 찾아와 북적거린다. '경관농업'으로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삭이 여물기 전에 가축사료로 사용하기 위해 베어내는 총체(總體)보리는 농가의 효도 작물이다.

 

김제 벽골제광장에선 9일 '친환경 총체보리 한우축제'가, 군산에선 11일 '꽁당보리밥 축제'가 열렸으니 금석지감이 아닐 수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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